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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접근성: 법 정책과 인식의 진화 성숙의 시대를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

  • 정종은 부산대학교 예술문화영상학과 교수
  • 등록일 2025-07-23
  • 조회수 116

이슈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20세기에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1960년대 이전까지는 장애를 주로 개인이 가진 결핍이나 질병의 문제로 여겼다. 따라서 장애인은 항상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자 보호가 필요한 사람으로 생각되었고, 이에 따라 장애인이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할 기회 역시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1960년대 후반부터 유럽과 북미에서 신사회운동(new society movement)이 부상하면서 여성, 흑인과 함께 장애인을 바라보는 관점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 장애를 단순히 개인의 몸이나 마음의 문제로 바라보는 ‘의료적 모델’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 예컨대 불평등한 제도나 환경 때문이라고 보는 ‘사회적 모델’이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적 모델은 장애인의 삶을 제약하는 주요 원인이 개인적 ‘결핍’이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낸 물리적·정보적·인식적 ‘장벽’에 있음을 강조한다. 이에 따라 장애인은 단순한 보호의 대상에서 벗어나, 보편적이고 평등한 권리를 가진 사회의 주체로서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사회적 모델에 기반한 국내외 법·제도의 변화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개념적으로 또 정책적으로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어냈다. 아래의 표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배리어프리, 유니버설 디자인, 인클루시브 디자인이라는 개념과 운동이 속속 출현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 [표] 접근성 유사 개념의 비교 고찰(주1)

    접근성 유사 개념의 비교 고찰 테이블
    구분 배리어프리
    (Barrier-free)
    유니버설 디자인
    (Universal Design)
    인클루시브 디자인
    (Inclusive Design)
    대상 장애인 장애인에서 출발. 고령자, 어린이 등 신체 기능적 약자 포함 장애인, 고령자에서 출발. 현재는 다양한 사회구성원 포괄
    용어의 태동 1960년대 미국, 1968년 건축장벽 제거법 명시. 1974년 UN 「장벽 없는 건축설계」 보고서 1985년, 로널드 L. 메이스 1994년, 로저 콜맨
    주요 지역 미국, UN 미국 영국
    추구 가치 공평한 접근가능성 향상 보편성, 접근가능성 향상 문화다양성, 사회통합, 평등
    목표 건축, 주거 등 생활환경 포함, 문화자원에서의 접근가능성 향상 건축, 생활환경 및 제품, 서비스에서의 접근가능성 향상 건축, 생활환경, 제품 및 공공 서비스 접근가능성 및 접근성 향상
    접근성의
    적용 범위
    물리적 접근성
    서비스 접근성
    물리적(감각적) 접근성
    서비스(콘텐츠) 접근성
    물리적(감각적) 접근성
    서비스(콘텐츠) 접근성
    사회적·문화적 접근성
    특징 장애인의 접근가능성 향상 장애인, 고령자, 어린이를 포함한 접근성 향상 장애인을 포함, 사회구성원으로서 다양한 집단에 소속된 개인의 개별적 다양성에 중점을 둔 접근
    예술 현장에서의 재성찰적 논의 배리어컨셔스, 가시적·비가시적 장벽에 대한 인식 및 지속적 관심 보편성에 대한 근원적인 재성찰 과정적 관점에서의 포용, 사회구조적 배제에 대한 포괄적 관점과 태도 요청

이러한 변화 과정에서 눈여겨볼 정책적 전환점도 적지 않았다. 우선, 유엔이 1981년을 ‘장애인의 해(International Year of Disabled Persons)’로 선포한 것을 시작으로, 1992년 ‘세계 장애인의 날’을 제정하고, 2006년 제61차 유엔 총회에서 ‘유엔 장애인권리협약(UN CRPD)’을 비준했다. 이것은 장애인을 보호 대상이 아닌 자율적 사회구성원으로 규정하며,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문화적 권리를 강조하는 지향을 공유하고 있다. 이후 소위 선진국을 중심으로 세계 각국에서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과 정책을 고도화하기 시작했는데, 영국에서 큰 주목을 받았던 「장애인차별금지법」(Disability Discrimination Act, 1995)과 「평등법」(Equality Act, 2010) 제정이 특히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도 2008년에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약칭: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서 장애인의 문화예술 활동 참여를 제한하는 차별이 법적으로 금지되었고, 2020년에는 「장애예술인 문화예술 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약칭: 장애예술인지원법)이 통과되면서 장애가 있는 예술인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법·제도적 기반이 처음으로 마련되기도 했다. 이를 기반으로 ‘제1차 장애예술인 문화예술활동 지원계획’ 발표(2022), 모두예술극장 설립(2023) 등이 이어졌고, 2023년 말에는 「문화예술진흥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국내 총 759개의 국공립 문화시설에서 연 1회 이상 장애예술 관련 공연 또는 전시 개최가 의무화되었다. 같은 시기에 문화체육관광부가 장애인문화예술과를 신설하면서 장애인 접근성 확산을 위한 괄목할 만한 진전이 이루어지기도 했으나, 1년여 만에 다시 사라지고만 현 상황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010년대 중반 전후로 우리나라 공연예술계에서 일부 연출가와 기획자들이 자발적으로 시도해 온 ‘접근성’ 공연이 최근 급속하게 접근성 정책으로 확대·부상하게 된 데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존재한다. 물론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 2022년부터 국공립 문화시설을 대상으로 ‘무장애 문화향유 활성화 지원사업’을 추진해 오기는 했지만, 법·제도의 정비를 거치면서 접근성 및 접근성 매니저에 대해 보다 집중적이고 체계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와 같은 흐름 속에서 한국고용정보원은 「2023 국내외 직업 비교 분석을 통한 신직업 연구」를 통해 “장애인 접근성을 고려한 문화예술 공간 및 프로그램 운영 기획을 총괄하는 접근성 매니저”를 문화예술계의 유망한 신직업으로 발표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은 2024년 8월, 국내 최초로 「문화시설별 접근성 가이드」를 발간하였다. 이를 계기로 2024년 10월, 11월에 서울, 광주, 부산 등에서 개최한 일련의 포럼과 워크숍 역시 접근성 및 접근성 매니저에 대한 관심을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선진국 문화정책의 지표로서 접근성 정책

필자는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접근성 정책이 21세기 들어 세계적으로 거세게 확산해 온 것은 그것이 ‘성장의 시대’를 넘어 도래하고 있는 ‘성숙의 시대’와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20세기, 인류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거친 후에 전 지구적으로 유례없는 ‘성장’을 경험했다. 효율성과 효과성이라는 깃발 아래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고 유통하고 소비했으며, 이로써 자연은 거대한 인공물들, 즉 수많은 공장과 주거시설, 휴양지와 도로 등으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성장의 시대가 과연 무한히 계속될 수 있는 것일까? 최근 기후위기 등이 초래한 지속가능성에 대한 불안감은 ESG 경영의 부상 등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인류의 전면적인 성찰 또는 방향 전환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다.

이러한 성찰의 요구는 그 어느 나라보다 우리나라에서 시급히 대두된다. ‘한강의 기적’이란 표제 아래 엄청난 경제성장을 거듭하면서 우리나라는 ‘개발국가’ 모델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굳이 1997년의 IMF 사태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그러한 압축적인 성장이 계속될 수 없음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가령 1970년 우리나라 신생아 수는 100만 명에 달했고, 경제성장률은 10%를 기록했다. 반면 2023년 우리나라 신생아 수는 23만 명에 불과했고, 경제성장률도 1.4%에 지나지 않았다. 더는 자원을 쏟아붓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성과가 도출되는 시대가 아닌 것이다. 압축적 성장, 급속한 발전의 시대는 이제 끝이 났다. 지금은 지속 가능한 성장, 성숙한 성장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할 수 있는 시대인 것이다.

2021년 대한민국은 유엔 무역개발회의(UNCTAD) 회원국의 만장일치 지지를 받으면서,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지위를 바꾸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무엇이 질적으로 달라졌는가? 코로나와 계엄 등을 겪으면서 우리는 아직도 선진국 진입에 걸맞은 문화정책을 새롭게 마련하지 못했다. 분명한 사실은, 선진국 문화정책을 과거의 ‘성장 패러다임’에서 찾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성찰과 성숙이기 때문이다. 문화·관광·체육시설을 지어놓기만 하면 사람들이 몰려오고 나름의 성과지표가 충족되던 시대는 이미 끝이 났다. 이제는 “장애인을 포함하여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이들이 자신의 개별성과 다양성이 존중되는 환경 속에서 문화예술 창작, 향유를 포함한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에 동등하고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문화적 권리”로서의 접근성 개념을 중심으로 문화정책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재구성해야 하는 시점이다(주2). 앞으로 접근성 정책은 시혜나 보완이 아니라 선진국 문화정책의 지표로서 문화예술 생태계를 위한 모든 정책의 기획과 실행과정에서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기반으로 간주해야 한다.

접근성 시대를 위한 세 가지의 인식 변화

새로운 패러다임, 즉 성숙의 시대를 위한 접근성 정책의 실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모두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크게 다음의 세 가지가 중요하다.

첫째, 앞서도 지적하였지만, 접근성이란 특정 대상에 대한 서비스나 시혜가 아니라 모든 인류의 보편적 권리와 기회에 관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은 비단 향유 접근성만이 아니라 창작 접근성까지를 포괄하는 ‘기회’에 관한 것임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둘째, 사회구조적 문제 또는 장벽은 단순히 물리적 제거의 대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끊임없는 관찰과 경청, 협업을 통해 점진적이고 지속적으로 극복해야 하는 것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배리어프리보다는 ‘배리어컨셔스(barrier-conscious)’라는 개념이 더욱 적확하다는, 여러 접근성 매니저·프로듀서의 통찰이 빛을 발한다. 접근성 정책이란 하나의 정답을 도출한 후 한 방에 완성해 낼 수 있는 과업이 아니다. 일회적인 열광적 투자가 아니라 지속적인 성숙한 관심이 필요하다.

셋째, 이러한 성숙한 관심은 몇몇 접근성 매니저만의 고군분투로 확산할 수 없다는 사실도 적시할 필요가 있다. 이미 활동 중인 접근성 매니저들은 각종 공연장과 전시장에서 응당 슈퍼맨과 같은 역할을 기대받고 있다. 문화시설의 제반 사항은 그대로 머물러 있는 상황에서, 이들에게 충분한 권한과 예산을 제공하지도 않으면서, 갑자기 뛰어난 접근성을 갖춘 시설·기관으로 거듭나서 모두를 위한 접근성 공연·전시를 기획하고 실행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성숙의 시대에는 문화시설 종사자 한 사람 한 사람은 물론이고, 문화시설 이용자까지 모두가 접근성 매니저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처럼,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고 새로운 정책적 실천에 대한 기대가 무르익고 있다. 접근성 개념 및 정책은 이러한 기대와 지향에 대한 푯대와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이에 대한 더 많은 관심과 구체적인 실천의 노력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피어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주1.최보연·정종은(2024), 「문화예술 분야 장애인 접근성 제고를 위한 개념적 고찰」, 교육연극학 16(2): pp. 107-108.
주2.정종은·최보연·최보경·최강찬·강지섭(2025), 「2024 접근성 매니저 직무분석 및 양성 과정 개발」,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정종은

정종은

서울대학교에서 미학을, 영국 글래스고대학교에서 문화정책학을 공부했다. ㈜메타기획컨설팅 부소장,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부연구위원, 상지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조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 부산대학교 예술문화영상학과에서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자체평가위원, 청원심의위원, 여가친화기업 인증위원, 국공립박물관·미술관 평가인증위원, 문화도시 평가위원, 길 위의 인문학(박물관) 운영위원장, 국립현대미술관 정부미술품운영위원, 한국연구재단 인문학대중화운영위원 등을 역임했다.
jjekorea@hanmail.net

2025년 7월 (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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