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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2025 모두예술극장 기획 〈야호야호 Echoing Dance〉 어둠 너머의 신경다양성을 길라잡이 삼아

  • 박수연 미학연구자
  • 등록일 2025-07-30
  • 조회수 157

리뷰

199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신경다양성 운동은 자폐 스펙트럼을 비롯한 신경학적 차이를 의료 전문가들이 진단하는 질환으로 보지 않고 인간 다양성의 하나로 재정립하려는 당사자 중심 운동이었다. 이 과정에서 기존에 ‘정상’으로 간주하던 인지 및 행동 양식은 ‘신경전형성’이라는 범주로 재명명되며 상대화되었다. 신경다양성 어린이를 위한 참여형 무용 공연 쇼케이스 〈야호야호 Echoing Dance〉는 어린이들 각자의 움직임을 있는 그대로 환대하며, 다양성의 세계가 품고 있는 아름다움을 춤으로 전하려는 국내 첫 시도로 기획되었다. 2024년 12월부터 리서치와 워크숍, 무용 놀이 수업 등을 통해 심화한 것으로, 차이 안에서 같이 있는 방식에 대한 질문을 무용수와 아이들이 함께 몸으로 풀어낸다. 공연장에 모인 아이들은 이런 무대에 기꺼이 아이들을 참여시킬 수 있는 ‘좋은’ 부모들과 관계자들의 비장애중심적인 관심, 비전형성을 전형성에 준하도록 길들이거나 최소한 ‘다르게 유능한(differently abled)’ 등의 수식어로 매개하고자 하는 종류의 애정을 받고 있기에 자리할 수 있었던 것일지 모른다. 무용수들과 아이들은 바로 그와 같은 기대 및 수요를 제한이자 조건으로 삼고 특정한 시공간에서 만나, 동일한 기대를 어느 정도 충족시키는 동시에 좌절시켜야 할 것이다.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흘러가지만, 아이들에게 지시하지도 않고 그들이 하고 있는 것 이외의 동작을 새롭게 가르치지도 않는다. 아이들이 먼저 움직임을 보이면, 무용수들은 ‘본’ 것을 춤과 연계하여 화답한다. 파동이 어딘가에 부딪혀 방향이 변하고 진폭이 커지듯, 무용수들은 아이들의 움직임을 잇고 차이 안에서 증폭시킨다. 전형성의 우위가 작동하지 않으며 애초에 그러지 않아도 되는 예외적인 장을 마련하는 것은 다행히도 현대예술이 가질 수 있는 한 가지 강력한 의미이기도 하다. 공연장에도 규칙은 있으되, 최소한도로만 그렇다. 장르적으로 특수하게 규율된 움직임을 부과하는 대신, 무대에서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생성을, 창작자와 참여자의 구별을 막론한 그곳의 존재 모두를 통약하는 조건으로 계속해서 새길 것, 그리고 상호 영향받기를 면제하지 않고, 정답 없고 예기할 수 없는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것.

그런 관점에서 아이들을 보면 비로소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 있다. 아이들은 가르치지 않아도 차이에 비상하고,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존재들이다. 과잉된 감각에 맞서 모종의 항상성을 다투면서도 즉흥적으로 자꾸 무언가 이전과 다르게 되어간다. 몸과 세상, 자아와 비자아를 분리하는 일상적인 금지들이 유예되고 들어 올려진 공간에서, 하던 대로 여전히, 무지한 눈이 보지 못하는 무언가를 보고, 반응하고, 다투고, 때로는 불편하기에 스스로를 달래도록 애쓰면서. 자신의 몸짓이 진단명이나 범주가 아닌 춤으로 번역되는 이 광경과 상황을 아이들은 어떻게 감각하고 있을까? 어쩐지 마음이 출렁여서 때때로 가진 기억을 털어내려 애써야 했다.

빛과 어둠의 경계를 작은 발광체들의 궤도들이 교란한다. 발광체들은 투명한 포일이나 테이프 같은 것으로 칭칭 감겨있어 아이들이 바닥에 튕기기도 하고 던져올리기도 한다. 몸에 부딪혀도 아프지 않을 것이다. 발광체가 날아와 옆 사람을 통해 보호자들을 비롯한 관객들에게 주어졌다. “던지세요.” 어리둥절했지만 나도 던졌다. 물체가 날아가며 손을 떠나는 느낌이 드니까 더욱더 멀리 던질 수도 있었을 것 같았다. 둥글게 뛰어다니는 움직임이 발광체가 떠올랐다 떨어져 내리는 궤적과 닮았다 생각한다. 시작쯤에는 저항하던 아이도 어느새 즐거워하며 공간 안에 스며들었다. 아이들은 털실 뭉치 같은 물체를 풀어헤치고, 풀린 것을 든 채로 이동해서 움직인 자취를 만들기도 하고, 흩어졌다 다시 원무를 추듯 모이기도 한다. 조직된 군무와는 다른 유기성이다. 분위기가 무르익고 충분히 많은 일이 벌어지고 난 시점에서는 바라던 모든 것을 벌써 이룬 듯 아주 바깥으로 떠나가는 아이도 있다. 모든 시작과 끝이 한 점으로 수렴하지는 않으며, 애초에 그럴 필요도 없다. 어느새 무용수들이 안녕이라 외치며 떠나가니, 어떤 아이가 무용수들을 따라나서려 했다. 이 아이에게는 끝이 아쉬운 것 같다.

각본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므로, 매 공연이 동일한 흐름과 이야기로 구성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공연이 회차마다 다른 사건으로 발생하고 또한 아주 우연한 동작들의 관계적인 연합으로 이루어질 것임을, 따라서 기록할라 치더라도 매번 다른 기록이 나올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이 기록 또한 공연의 일부만을 다룰 수밖에 없으며, 가능한 반응의 여러 경우의 수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중요하게는 ‘신경다양성’이라 부르는 특성이 오늘 같은 사건을 만들어 나가는 가장 큰 동기였다고 말할 수 있다. 아이들의 표정과 소리, 궤적이 ‘자유’, ‘다양함’이라는 단어의 공감각과 심상을 만들었다고 감히 말하면 너무 감상적일까. 저항감도 의무감도 없이 가뿐하게 (비)규칙을 직관하고 받아들이며, ‘어떻게’를 묻지도 않고 그저 복수의 차이로 있는, 또 차이를 행위화하는 것만 같았던 아이들의 웃음. 웃음은 파열이고, 이유와 의도로 환산할 수 없을 나머지다. 예전에는 없었고 지금은 있는 것일까? 과거부터 있었지만 지금 알아차린 것, 어쩌면 변한다는 바로 그 점에서만큼은 변하지 않는 것. 다만 그것들을 목격하며 상시 조건으로 껴안는 창작자들의 의지, ‘전문가’로서 훈육된 몸을 보류한 채 아이들의 보조도구로 만족하려던 의지를 되새긴다. 새로 있게 된 것이라면 그런 의지와 비개념의 개념일 것이다. 시범 공연에서 내가 목격한 것들.

  • 어린이와 어른이 마주 보며 무릎을 꿇고, 바닥에 이마를 맞댄 채 엎드려있다.
  • 무용수가 어린이와 바닥에 마주 보고 앉아 눈을 맞추고 있다.
  • 어두운 무대 위 바닥에 여러개의 원형이 겹으로 그려진 영상이 빔프로젝션되고, 무용수와 어린이들이 그 위에서 춤추듯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다.
  • 어른들과 어린이들이 긴 빨간 끈을 양손에 들고 무대 곳곳에 서 있다. 바닥에는 흰 공들이 흩어져 있다.
야호야호 Echoing Dance

야호야호 Echoing Dance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2025.6.27.~6.29.|모두예술극장

8~11세 신경다양성 어린이와 형제자매, 보호자를 위한 참여형 무용 공연 쇼케이스. 우리는 어떻게 나와 다른 몸, 식물, 동물, 바람, 빛과 함께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서로의 다름을 구별하지 않고 연결될 수 있을까? 각자가 다르게 움직이고, 다르게 느끼며, 다르게 연결되는 다양성의 세계가 품고 있는 아름다움을 춤으로 전한다. 신경다양성 어린이들이 자신만의 방법으로 정해지지 않은 움직임 속에서 자신만의 리듬으로 반응하고 머무를 수 있다. 소리, 빛, 떨림, 멈춤의 시간까지도 모든 감각이 춤이 되는 특별한 경험을 전한다. 연출 김재리, 안무 이윤정·정지혜, 무용수 정지혜, 송명규, 정재필, 정한별.

이음온라인 [문화소식]

박수연

박수연

박사과정에서 미학 연구노동자로의 도정을 밟고 있다. 공저 『미친, 사랑의 노래: 김언희의 시를 둘러싼 (유사) 비평들』, 공역 『우리가 언제 죽을지, 어떻게 들려줄까: 고통, 장애 그리고 파멸에 대하여』(요하나 헤드바 저)가 있다. 이름표와 진단을 전적으로 거부하지도, 수용하지도 않으며 협상해 나가는 중이다.
madelaine722@naver.com

사진 제공.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모두예술극장

2025년 7월 (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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