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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접근성, 배려에서 문화로 불완전함 속에 작동하는 ‘질문하는 공간’

  • 김지원 공간디자인 스튜디오 석운동 대표
  • 등록일 2025-07-23
  • 조회수 367

이슈

2020년 봄, 오픈을 앞둔 합정동의 작은 국수 가게 앞에서 나는 의뢰한 고객과 기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계단 옆으로 휠체어가 들어올 수 있는 경사로를 만들고 싶다는 사장님에게, 공들여 그건 불가능하다는 설득을 하는 중이었다. 휠체어가 들어오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가게 앞 버스정류장을 침범해야 하며, 보도에 경사로를 설치하는 것은 불법 시설물이 된다고 말이다. 무엇보다, 비용이 든다고. 사장님은 결국 경사로를 만들지 않는 선택을 했다.

그해 겨울, 혹독한 추위에도 지하철 출퇴근길에서 시위하는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몸들이 뉴스에 오르내렸다. 가파른 계단들, 너무 높거나 먼 지하철과 승강장 사이의 공간들, 거의 없거나, 있어도 꼭꼭 숨겨둔 엘리베이터와 경사로를 기어다니는 몸들. 지하철의 계단과 합정동 국숫집의 계단이 겹쳐졌다.

공간을 디자인하는 사람들은 은연중 자신이 만든 공간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고 있다. 750밀리미터(mm) 높이의 책상과 450밀리미터 높이의 의자, 2,100밀리미터 높이와 900밀리미터 폭을 가진 문들. 이 일반화된 수치들은 평균의 몸을 상정한다. 그러나 ‘평균’이라는 이름의 이 수치는 곧 특정한 신체, 특정한 움직임, 특정한 삶을 기준으로 한다. 국수를 먹는 식당의 테이블 높이도, 지하철과 승강장 사이의 높이 차이도, 어떤 신체는 진입이 가능하고 어떤 신체엔 불가능하다. 접근성이란 결국 이런 수치들에 관한 질문이다. 국수를 먹거나 지하철을 타는 당연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되어도 괜찮은가?

2024년, 용인의 한 마을 인문학 공동체의 요청으로 경사로를 만들 기회가 생겼다. 장애여성공감에서 운영하는 극단 춤추는허리의 공연을 위해 경사로를 만들고 싶다는 이들의 요청에, 내가 만들지 못했던 경사로를 떠올렸다. 반쯤은 죄책감을 걷어내고 싶단 요량으로, 반쯤은 이제는 다르게 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로 일을 받았다.

해당 공간에 할당된 주차장 한 칸을 포기하고, 원상복구를 전제로 건물주인을 설득했다. 주차장 한 칸을 포기하며 얻을 수 있었던 최대 경사도는 6:1이었다. 1만큼의 높이에 대해 6만큼의 거리가 있다는 뜻이다. 국내 접근성 기준에 따르면 수동휠체어 사용자를 기준으로 권장되는 경사도는 12:1이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만든 것은 2배 가파른 경사로였다.

공연 당일, 그 경사로 위로 춤추는허리 구성원들이 멜로디언을 불며 춤을 추듯 올라왔다. 전동휠체어는 아슬아슬하게, 수동휠체어는 다른 단원들의 도움을 받으며. 장애여성공감 이진희 공동대표는 그날의 강연에서 평소의 전투력을 내려놓고 말했다. “중요한 건 태도에요.” 그는 공간의 기능, 경사로의 각도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접근성이란 단지 설비나 수치적 기준의 문제로 환원될 수 없다는 듯. 함께 고민하고, 도움을 요청하고, 도움 받을 수 있는 공간인가의 문제. 완벽하지 않더라도, 누군가의 손을 빌려 진입할 수 있다면 그 공간은 불완전함 속에서도 작동한다. 당연하다.

건축사학자 데이비드 기슨은 『장애의 건축』에서 “장애는 건축이 대응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건축이 시작해야 할 지점이다”라고 말한다. 기슨은 평균적이고 건강한 몸만을 중심에 두고 설계되어 온 현대 건축의 전제를 비판하며, 기능주의가 결코 중립적인 논리가 아님을 지적한다. 기능은 언제나 특정한 신체를 전제로 작동하며, 그 외의 몸들을 ‘예외’로 만든다. 그는 묻는다.

“기능주의는 충분한가?”

국수 가게 앞 계단으로 다시 돌아간다. 여전히 경사로는 만들 수 없다. 물리적 조건은 녹록지 않고, 예산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나는 이제 완벽한 기능보다, 질문이 열어줄 문을 더 오래 상상하게 된다.

춤추는허리는 경사로가 너무 가파르다는 듯한 몸짓을 익살스럽게 표현했다. 경사로 옆으로 만들어둔 핸드 레일에 매달리며 올라갈 듯 못 올라갈 듯 올라가는 모습을 연출하다가 거뜬히 올라가는 모습을, 그리하여 모두의 환영을 받는 모습을 만들어냈다. 그 순간 가슴이 철렁했던 것은 12:1과 6:1이라는 ‘2배의 수치’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만들어낸 풍경, 물리적 한계를 익살과 연대로 압도하는 장면이 더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내 안에 남아 있는 기능주의적 집착을 자주 떠올린다.

공간은 필연적으로 무언가를 강화하거나 약화하는 흐름을 형성한다. 계단이 하나 생길 때마다, 혹은 하나가 사라질 때마다 어떤 몸은 포함되고 또 다른 몸은 배제된다. 그래서 공간과 건축은 언제나 정치적이다. 결코 중립일 수 없다. 하지만 동시에 접근성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이며, 질문이다. 그 질문이 살아 있는 공간은, 물리적 불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몸이 함께 살아갈 수 있다.

  • 경사로의 설계 도면으로, 경사로의 측면 손잡이와 길이, 폭 등 구조와 수치가 표시되어 있다.

    인문학 공동체 건물 앞 경사로 설계 도면

  • 완성된 나무 경사로 위로 전동 휠체어 이용자가 진입하고, 주변 사람들은 박수와 환호로 맞이하고 있다.

    극단 춤추는허리의 경사로 입장 퍼포먼스

김지원

김지원

2017년부터 공간디자인 스튜디오 석운동을 운영하고 있다. 상업공간과 전시공간의 디자인·제작·시공을 하고, 장애학과 공간에 관심을 두고 세미나 ‘짓기와 거주하기’를 진행 중이다.
seokundong@gmail.com
석운동 홈페이지

사진 제공. 필자

2025년 7월 (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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