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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음광장 미디어 속 장애인 캐릭터 찾기 장애가 장애가 되지 않는 영화를 꿈꾸며

  • 김성호 영화평론가
  • 등록일 2025-09-03
  • 조회수 65

이음광장

첩보영화 같은 드라마의 한 장면. 이모가 어린 조카를 꼬드겨 함께 어느 기업 본사 건물에 들어선다. “이모가 다이아몬드라고 말하면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는 거야” 몇 번이고 말을 맞추며 찾아든 곳은 기업 사무실 한편에 자리한 사내 어린이집이다. 그곳에서 이들을 맞이하는 이는 어린이집 교사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다. 그런데 이 여성, 오른팔이 팔꿈치 위에서 잘려 있다. 말하자면 한 팔이 끊어진 장애인이다. 영국 공영방송국 BBC가 2019년에 제작한 TV 드라마 〈이어즈&이어즈(Years and Years)〉에 등장하는 이 장면은 기업에 몰래 침입해 내부 자료를 빼내는 시민사회단체 활동가의 활약상을 다룬 짤막한 에피소드다. 이모는 마치 회사에 제 자식을 데려온 직원처럼 행세하며 어린이집 교사의 주의가 산만해진 틈을 타 컴퓨터에 저장장치를 삽입한다. 그러고는 정보가 모두 다운로드 된 뒤 저장장치를 회수해 유유히 자리를 뜬다. 이 장면에서 어린이집 교사는 꼭 필요한 조연이다. 대단한 역할까진 아니래도 한 신의 주요 인물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데 그녀가 팔이 잘려 있는 장애인인 건 어째서인가. 장애인이 아니어도 좋을 이 역할을 확연히 그 장애가 눈에 띄는 배우에게 맡겨두고도 드라마는 그에 대한 언급을 따로 하지 않는다.

올해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화제작 〈계엄령의 기억〉이란 작품이 있다.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국제영화상을 받은 영화로, 정식 수입돼 8월 20일 국내 개봉하기도 했다. 이 영화는 군부독재를 겪은 1970년대 브라질 한 가정의 비극을 다룬다. 전직 국회의원 루벤스 파이바가 군부에 연행돼 의문사 당한 뒤 아내 에우니시 파이바가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이 줄기를 이룬다. 반세기나 걸려 파이바 가정이 거둔 무시할 수 없는 승리를 영화는 아프게 조명한다. 영화는 크게 전반부의 1970년대와 후반부의 민주화된 2000년대 시점으로 나뉘어져 있다. 영화가 후반부로 옮겨오면 철부지였던 파이바 가족 아이들이 어엿한 성인이 되어 제 어머니 곁을 지키고 있다. 이때, 영화가 2000년대로 건너오면 개구쟁이였던 아들 마르셀루는 휠체어를 타고 있다. 사고를 당해 하반신이 마비된 장애인이 되어 있는 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답게, 제 가족의 이야기를 글로 써낸 마르셀루 루벤스 파이바가 그러하듯, 극 중 자신 또한 휠체어를 탄 작가가 되어 있는 것이다.

장애인이 등장하는 작품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작품이 장애를 대하는 태도에 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이어즈&이어즈〉와 〈계엄령의 기억〉이 장애를 노출하는 방식은 한국에선 만나기가 어렵다. 작품은 장애를 구구절절 말하지 않는다. 그저 보여줄 뿐이다. 어린이집 교사는 그녀가 젊은 백인이고 단발머리를 하고 보라색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오른팔이 잘려 있는 장애인일 뿐이다. 중요한 건 그녀가 사내 어린이집 교사라는 것이지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다. 그래서 작품은 그를 따로 언급하지 않는다. 휠체어를 탄 아들도 마찬가지다. 그는 동정의 대상이라거나 장애를 딛고 일어선 인간 승리자 같은 존재가 아니다. 그저 파이바 가족의 다른 자식들이 그러하듯, 가정의 비극을 딛고 잘 자란 아들일 뿐이다.

등록장애인 수 263만 명, 인구의 5%가 장애인인 한국이다. 그러나 영화와 드라마에서 장애인이 그만큼의 비중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건 명백하다. 우리나라의 미디어가 그리는 장애는 아직도 이례적이기만 하다. 점유율 1%에 미치지 못하는 극소수 독립영화를 제하고, 주류 상업영화와 드라마가 장애를 그리는 방식은 ‘극복해야 할 재난’이며 ‘열등함’, 또 ‘배려받아야 할 약자’로서의 존재를 그다지 벗어나지 않는다. 장애를 딛고 일어서는 성장물을 넘어서, 장애가 장애가 되지 않고 동등한 인간으로 묘사되는 상황을 한국에선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문학과 영화, 만화 등에서 성평등도를 측정하는 기준으로 널리 알려진 벡델 테스트(The Bechdel Test)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 테스트는 세 가지 질문으로 이뤄지는데, ‘이름을 가진 여성 캐릭터가 둘 이상 등장하는가’, ‘여성캐릭터 간 대화가 이뤄지는가’, ‘남자와 관련 없는 주제로 대화가 이뤄지는가’이다. 이를 장애로 바꿔보면 어떨까. 근래 본 영화와 드라마에서 이름을 가진 장애 캐릭터를 본 일이 있는가. 장애와 관련 없는 주제로 장애를 가진 캐릭터가 다뤄지는가.

벌써 5년이 넘은 TV 드라마 〈스토브리그〉는 바로 이 지점에서 기록할 만한 작품이다. 도움과 배려를 받아야 하는 존재, 장애 그 자체를 극복해 가는 서사의 일부로만 주목받던 장애인이 이 드라마에서는 완전히 달리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촉망받던 야구 유망주에서 불의의 사고로 장애를 얻은 인물 백영수가 야구단 전력분석팀원으로 입사해 다른 인물과 마찬가지로 팀의 성장에 기여한다. 장애는 그저 이 인물의 오늘을 이룬 특징 중 하나일 뿐, 희비극을 이루는 극적 장치로 쓰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 드라마 이후 5년이 지나는 동안 나는 단 한 편도 이처럼 장애를 담박하게 묘사한 작품을 만나지 못하였다.

또 한 가지, 앞서 〈이어즈&이어즈〉 속 또 다른 주연 배우 루스 매들리는 척추질환을 앓는 장애인으로 극 중에서도 휠체어를 타고 등장한다. 그녀가 연기한 로지 라이언스는 본래 장애인이 아니었으나, 오디션에서 그녀의 연기를 본 작가가 루스 매들리를 캐스팅하기 위하여 설정을 바꾸었다고 전한다. 한국 영화 현장에서 이와 같은 사례를 나는 전혀 듣지 못하였다. 심지어 〈스토브리그〉 속 휠체어를 탄 인물조차 비장애인 배우가 맡아 연기하고, 다른 많은 장애인 배역 또한 그와 같다는 점을 생각하게 된다.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이 장애를 대하는 방식은 여전히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운 무엇이다. 반면 장애인 배우와 감독, 스태프들에겐 진입장벽이 한없이 높으니, 실재하는 장애 인구 5%가 미디어 속에선 그 십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김성호

김성호

1986년 서울 태생. 영일고등학교, 연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기자, 영화평론가, 서평가, 3급 항해사다. [파이낸셜뉴스] 기자로 6년간 일했다. 3급 항해사 자격 취득 후 상선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다. [오마이뉴스]에 ‘김성호의 씨네만세’, ‘김성호의 독서만세’ 시리즈를 연재 중이다. 저널리즘 에세이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를 썼다.
goldstarsky@naver.com

2025년 9월 (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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