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음광장
우리는 왜 이야기를 사랑할까? 소설, 영화, 드라마, 웹툰, 웹소설 등 이야기 장르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 이런 특징은 풍경놀이터의 작가 양성 과정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작가를 꿈꾸는 농·청각장애인 중에도 이야기를 짓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다. 그리고 여기에 그 꿈을 이룬 세 명의 소설가가 있다. 『여기는 안녕시 행복동입니다』(출판사 핌, 2024)의 한송희 작가, 『경계의 푸른 얼굴들』(출판사 핌, 2024)의 최유경 작가, 『초파리』(출판사 핌, 2024)의 이주형 작가가 바로 그들이다.
간절한 마음은 기회를 만든다
예술은 충동에서 시작한다.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었던 한송희의 충동, 평소 글을 잘 쓴다는 평을 받아 재능을 발전시키고 싶었던 최유경의 충동, 글이 자신의 업이 될 것을 감지한 이주형의 충동이 시작이었다. 이들이 풍경놀이터의 수업에 찾아온 이유는 모두 같다. 농·청각장애인을 위한 글쓰기 전문 교육기관이 여기밖에 없다는 것이다. 첫 시간에 한송희 작가는 “전에 글쓰기 교육을 받으려고 여러 곳을 알아봤지만, 수어나 문자통역이 지원되는 곳이 없었다. 농인에 대한 이해도 부족해 수업을 듣더라도 어려움이 있었다. 한번은 드라마 작가 교육을 받았는데, 같이 수강했던 분의 도움으로 실시간 카톡으로 수업 내용을 전달받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풍경놀이터는 간절함이 모이는 곳이 되었다. 이런 간절함은 풍경놀이터가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었다. 202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예술단체의 예비예술인 최초발표지원 사업’ 공고가 떴을 때, 수강생들의 얼굴이 겹쳤다. 우리는 이 사업을 따야만 했다.
가능성을 증명한 9개월의 시간
깐깐했던 심사를 거쳐, 지원사업에 선정되었다. 9개월 안에 작품 지도부터 출간까지를 끝내야 하는 일정이었다. 출판사를 운영하는 나는 이게 얼마나 어려운지 혹은 무모한 도전인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작가가 되고자 한 예비 농·청각장애 청년 작가들과 이를 돕고 싶다는 풍경놀이터의 간절함을 믿었다.
우선 우리는 촘촘한 계획을 세웠다. 4월부터 5월까지 문장력 강화와 기획서 쓰기, 6월부터 10월까지 원고 퇴고 완료, 12월 출간. 책이 세상에 나오는 과정을 아는 분들이라면 이 계획을 비현실적으로 느낄 수 있겠지만, 간절함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았다. 다행히 세 사람 모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명료하게 있었다.
우리는 스토리를 짜고, 플롯 판으로 구조와 캐릭터에 문제가 없는지 점검한 후 글을 쓰기로 했다. 한송희 작가는 이 과정을 굉장히 탄탄하게 해나갔고, 최유경 작가는 중간에 기획을 한번 엎었음에도 완성을 향해 달렸다. 이주형 작가는 원고지 70매로 구상했던 단편을 700매의 장편으로 발전시켰다. 저마다 개성에 맞게 글을 써나가는 시간이었다. 이 과정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필요한 도움은 주되 작가의 개성과 생각을 침해하지 않는 것이었다. 글은 결국 작가가 써내야 하는 것이니까.
성장이 기대되는 시작점에서
작가들 내면의 결이 잘 묻어나는 소설 세 편이 완성되었다. 소시민을 향한 애정이 가득한 『여기는 안녕시 행복동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킬 연대의 힘을 믿는 『경계의 푸른 얼굴들』, 20대 젊은이들을 믿고 응원하는 『초파리』에서 우리는 작가의 마음결을 읽어낼 수 있다.
짧은 시간 안에 이렇게 멋진 작품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작가 본인들의 열정과 노력 덕분이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가슴이 뭉클해져서 박수를 하게 된다. 동시에, 여러 예술기관의 후원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이번 소설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사업으로 만들어졌지만, 그 이전에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지속적인 교육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예술가의 탄생은 단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예술기관의 꾸준한 지원과 후원 속에서 예비예술가는 신진예술가로, 신진예술가는 한층 성숙한 예술가로 자라난다. 특히 장애예술인에게는 이러한 지원이 더욱 절실하다.
출간 이후 한송희, 최유경, 이주형 작가는 나름의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책보고에 큐레이션되어 책이 소개되었고, 여러 단체와 모임에서 북토크를 하고, 새로운 작품도 구상 중이다. 이제 세 명의 소설가에게도 각자 성장해야 할 시간이 왔다. 나름의 고민과 노력, 그리고 안정적인 후원 속에서 이들이 자신만의 세계를 자유롭게, 그러나 단단히 완성해 가기를 바란다.
(위 왼쪽부터) 한송희 작가, 최유경 작가, 이주형 작가
(아래 왼쪽부터) 『여기는 안녕시 행복동입니다』, 『경계의 푸른 얼굴들』, 『초파리』

맹현
작가, 출판사 핌 대표.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장애문화예술단체 풍경놀이터에서 5년째 교육과 행사를 기획하고 글쓰기 지도를 하고 있다. 도덕 토론 드라마 〈어쩌지, 어떡하지〉, KBS2에서 방영한 애니메이션 〈파파독2〉의 각본을 썼다. 쓴 책으로는 『영화를 알면 논술이 보인다』(공저), 『아기자두와 아기호두의 시』, 『쓰레기 위성의 혜나』, 『쓰레기 위성의 혜나2_알리올라 행성의 비밀』, 『거울 가면』이 있다.
sirens77@naver.com
∙ 풍경놀이터 홈페이지 pgplayground.co.kr
사진제공. 필자(한송희, 최유경, 이주형)
2025년 11월 (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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