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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음광장 농인의 공연예술 접근성① 농인 관객의 시선에서 공연을 다시 보기

  • 조희경 수어 번역·감수자
  • 등록일 2025-12-03
  • 조회수 54

이음광장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연극, 뮤지컬, 콘서트, 영화, 미술관, 전시회 등 다양한 문화예술을 즐길 권리가 있다. 청인의 경우, 시각적 즐거움과 함께 소리로부터 다양한 정보를 얻는다. 박물관에서는 인이어 이어폰을 통해 큐레이터의 설명을 들으며 작품을 감상하고, 뮤지컬에서는 화려한 무대 연출과 함께 웅장한 음악과 정교한 음향효과에 전율을 느낀다.

한편 장애인의 문화향유권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고 사회적 관심 또한 높아지면서 정부 예산이 확대되고, 여러 문화예술 기관과 단체가 정부의 지원을 받아 ‘배리어프리 공연’을 기획하며 접근성 있는 문화예술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이 흐름 속에서 우리는 질문을 하나 던져볼 필요가 있다.

농인은 문화예술을 어떻게 즐기고 있을까?

자막이 있다고 다 해결된 걸까?

수어통역과 한글 자막이 제공되는 공연이 예전보다 늘어난 것은 분명한 변화이다. 하지만 농인 관객이 공연을 온전히 즐기기에는 여전히 한계가 많다.

우선, 자막의 위치 문제가 있다. 대부분의 자막 화면이 무대와 멀리 떨어져 있어서 농인 관객은 배우와 자막을 모두 보기 위해 쉼 없이 눈을 움직여야 한다. 이런 시선의 분산은 공연에 몰입하기 어렵게 만들고, ‘번갈아 보기’가 장시간 이어지면 눈의 피로감도 크다.

또한 자막은 소리의 ‘뉘앙스’를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무대에는 보이지 않지만 어딘가에서 큰 폭발음이 울리거나 멀리서 점점 거칠게 다가오는 기차 소리가 들릴 때, 청인 관객은 소리만으로도 긴박함을 직감한다. 그러나 자막에는 [스피커기차 빠른 기차 소리] 정도로 단순하게 표기될 뿐이다. 시각적 정보만으로는 속도감이나 분위기, 긴장감을 온전히 전달받기 어렵다. 게다가 무대와 자막이 떨어져 있으면 이러한 정보조차도 늦게 파악하게 된다.

수어통역이 있으면 괜찮을까?

수어통역은 소리 정보의 한계를 보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한국어 대응식 수어통역을 사용한다면 여전히 한계가 남는다. ‘한국어 대응식 수어’는 한국어 문장을 그대로 수어 단어로 옮기는 방식이다. 많은 공연에서 배우의 대사, 배경 소리 등을 한국수어 문법에 맞추지 않고 단순히 수어를 한국어에 대응하여 번역하고 있다.

통역에서 중요한 것은 양보다 질이다. 아무리 많은 내용을 전달한다고 하더라도 번역의 질이 낮으면 농인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 수어통역에는 ‘번역’이라는 장벽이 존재하여 대사의 의미와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다. 이는 마치 미국 원작 공연을 한국어로 번역해서 무대에 올릴 때, 한국 관객이 대사 속에 담긴 미국의 문화나 정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아무리 많은 내용을 통역하더라도 그 질이 떨어지면, 농인 관객에게는 공연의 본질이 전달되지 않는다.

통역사의 위치와 방식도 중요하다. 농인 관객은 공연 시작 전에 통역사의 위치를 확인하고, 배우와 통역사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자리를 선택한다. 그러므로 통역사가 고정된 위치에서 통역해야 농인 관객의 시선이 분산되지 않고, 공연을 좀 더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다. 한편 최근에는 수어통역사가 배우를 따라다니며 통역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 경우 농인 관객이 통역사를 배우로 착각하거나, 계속 움직이는 통역사를 눈으로 좇느라 쉽게 피로를 느낄 수 있다. 특히 통역사가 배우와 비슷한 공연 의상을 착용할 경우, 누가 배우인지 구분이 어려워 혼동이 더 커지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은 공연의 몰입도를 떨어뜨리고, 수어통역의 효과를 반감시키는 요인이 된다.

이럴 때 수어 감각을 갖춘 ‘농인 수어통역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 농인 수어통역사는 청인과 농인 사이의 문화적 차이를 인지하고 공연 속 의미를 농인에게 어떻게 전달할지 전략을 세운다. 대사뿐만 아니라 음향효과까지도 손과 비수지 등 다양한 시각적 표현으로 풍부하고 자연스럽게 구현한다. 이렇게 소리 정보가 시각적으로 생생하게 전달될 때, 농인 관객은 비로소 공연에 깊이 몰입할 수 있다.

배리어프리는 ‘완성’이 아니라 ‘과정’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배리어프리는 단순히 자막이나 수어통역을 제공한다고 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공연을 기획하고 준비하는 모든 과정에서 ‘농인의 시선’을 고려해야 한다. 번역의 질은 적절한가? 자막과 통역사의 위치가 농인 관객에게 잘 보이는가? 농인 관객이 공연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는가? 이런 질문들을 계속해서 던지고, 농인 관객의 피드백을 받아 반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배리어프리는 단순한 장치가 아니라, 농인이 공연의 감동과 의미를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환경을 지속적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농인의 시선을 놓치지 않고, 번역과 통역의 질, 자막과 통역사의 위치, 관람 편의성을 끊임없이 점검하고 개선할 때, 농인들도 문화향유권을 온전히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공연 문화는 모두를 위한 것이다. 그 ‘모두’ 속에 농인도 자연스럽게 포함되어야 한다. 청각 중심의 공연 문화를 넘어 시각 언어로도 감동이 전달되는 무대, 농인도 ‘같이’ 감상할 수 있는 공연이 많아질 때 비로소 진정한 문화다양성과 평등이 실현될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농인의 시선에서 공연을 다시 바라보는 일이다.

  • 어두운 무대 한가운데 둥근 조명이 비추는 가운데, 세 명의 수어통역사가 검은 옷을 입고 왼쪽 앞에 나란히 앉아 있다. 가운데 통역사는 두 손을 들고 표정을 살리며 수어를 전달하고 있다. 무대 오른쪽 뒤에는 배우들이 서로 마주 보고 연기 중이며, 무대 앞 오른쪽 가장자리에는 한 배우가 앉아 있다.

    2025년 공연 〈맆소녀〉 무대에서 수어통역 중인 3명의 농인 수어통역사

조희경

조희경

제1 언어로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으로, ‘이래봄’ 강사 대표이자 나사렛대 시간강사로 수어·농문화 강의를 하고 있다. 수어통역·번역·감수 전문가로 다양한 교육과 자문 활동에 참여하며, 리움미술관 〈감각 너머 2024〉 국제수어 통역, 누비스 〈창작연극 오디션 워크숍〉 강의, 공연 〈침묵 속에 기록된〉 수어 지도, 〈라이트 트리스〉 접근성 자문 등 공연뿐 아니라 박물관과 전시의 농인 접근성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chohik@hanmail.net

사진 제공. 필자

2025년 12월 (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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