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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와 질병을 쓰고 읽는 긴장 관계②

이음광장 [장애 알림] 대상 폴더에 이름이 같은 파일이 있습니다

  • 소연 작가
  • 등록일 2023-01-11
  • 조회수551

이음광장

비장애인은 내 글을 좋아한다. 그렇게 되도록 쓴다. 경험으로 터득한 그들의 취향에 의하면, ‘선한’ 장애인이 예상 가능하게 ‘나쁜’ 말을 하는 모양새를 보기 좋아하시더라. 이를테면 한국 사회의 장애인 차별에 이는 분노를 단정하게 정리해서, 이해가 쏙쏙 가도록 예시하고, 정해진 순서대로 몰랐던 것을 배우고 또 깨닫게 하고, 권익을 옹호하도록 유도하는 방향의 ‘감동’ 스토리다. 누구도 불편하게 하지 않고, 비당사자에게 장애와 질병에 대해 발화할 수 있도록 명분과 용기를 준다.

이때 장애인의 인생 최대 딜레마가 ‘나는 비장애인이 되고 싶은가, 아닌가?’라는 질문이라고 설정해서 적당히 자극을 주기도 한다. “다시 태어나도 장애인으로 태어나고 싶어?”라는 질문을 들은 적이 있다. 초면이나 다름없는 사람이었던 그가 나를 빤히 쳐다보는 찰나의 정적 동안, 나는 내가 포르말린에 절인 표본이 되었다고 느꼈다. 내가 말해야 할 것은 정해져 있었다. 그들은 “나는 장애를 극복했다”라고 말하는 ‘(비)장애인’을 치운 자리에, “내 장애는 극복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장애인’을 대신 넣었다. 물론 내가 무엇을 말해도, 그러니까 둘 중 무엇으로 답해도, 그 말은 비장애인의 ‘깨달음’으로 흡수될 예정이었지만.

‘불편하지 않은’ 장애예술

작년 12월,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 허리의 공연 <빛나는>을 관람했다. 일전에 같은 내용의 공연을 본 적이 있기에 그때 받았던 울림을 기대했다. 정작 극장을 나오면서 들었던 생각은, 나는 이 연극이 정말 싫은데 싫다고 말하기도 싫다는 것이었다. 온갖 데서 몇 번이고 반복되던 소녀시대의 노래
<다시 만난 세계>가 연극 안에서 몇 번이고 되풀이되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배우는 확성기를 들고 외쳤다. “저희가 이상한가요?” “저희가 부끄러운가요?” “나, 여기 있다!” 질문의 끝마다 관객들은 “아니요!”라고 답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2019년에 <빛나는>을 처음 관람했을 때 나는 울었다. 이 연극이 장애인이 현실에서 겪는 차별 경험과 당사자의 권리 주창을 다룬다는 사실을 관람 전부터 알았고 그것이 지닌 귀중한 가치도 알고 있었다. 장애당사자가 발화하는 자기 경험은 그 내용이 세상에 이미 알려진 것일지라도, 모종의 정확함으로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함을 지닌다. 그리하여 그것은 개개의 특별한 발화로 탈바꿈한다. 나는 2022년의 <빛나는>에서 그것을 기대했고, 그 기대는 이상하게도 충족되지 못했다. 그 이유를 아직 잘 모르겠다.

다른 작품을 떠올렸다. 2022년에 공연된 강보름 연출의 <소극장판-타지>는 장애 당사자가 제작 단계부터 참여한 작품이다. 극 중 배우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리처드 3세>를 끌어오며 나쁜 악당이 될 것을 선언한다. 그런데 그 후로 이어지는 언행은 순하기 짝이 없었다. 얌전히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이 겪는 어려움을 읊는 대사는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마치 정은영 시각예술작가의 ‘여성국극 프로젝트’를 담은 <여성극장>이, 젠더 이분법을 전복함으로써 보는 이가 “불편했으면 좋겠다”는 의도(‘2018 올해의 작가상’ 수상자 정은영(링크))와는 다르게, 페미니스트 관객의 기대에 기다렸다는 듯이 안착했던 것처럼.

우리는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내 발화는 갇혀있는 것인지 자유로운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한 친구는 내가 쓴 글을 읽더니, 소감을 전했다. “페미니즘이나 장애에 관한 것이 아니어도 네가 글을 잘 쓴다는 걸 알게 됐어”
“정체성은 지식의 주체가 되는 경험에서 나오”지만(『빨래하는 페미니즘』, p.413) 그 정체성의 이름이 다시 나를 옭아맸다.
내 정체성은 내 명함인가?

유튜버이자 창작자 김지우는 “어리고 장애가 있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많아지면 좋겠다”(『하고 싶은 말이 많고요, 구릅니다』)고 말했다. 나도 그러길 간절히 바랐다. 죽을 만큼 외로웠으니까. 하지만 글을 써도 여전히 외로웠다. 내 글은 “어리고 장애가 있는 여자”의 것으로 읽혔기 때문에. 그게 싫다면, 나는 하고 싶은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내 정체성을 배제한 말하기를 고민해야 하나? 그 분절은 꺼림칙했다. 오로지 하나뿐인 내 몸을 여럿으로 갈라서 여기까지는 장애, 여기까지는 페미니스트, 여기까지는 둘 다 아닌 것, 이런 식으로 나누기란 불가능했다.

고민하다 결론 내렸다. 세상에 나를 말할 언어가 없다면, 혹은 나의 언어를 독해할 이가 없다면, 아무것도 말하지 말아보자.

그러니까, 글쓰기 때려치우겠다는 선언이었다.

  • 전봇대에 붙은 도로명 표지판이 보이고 통유리 문이 설치된 오래돼 보이는 건물 입구. 그 앞에, 여러 명의 휠체어 장애인 사진과 날짜, 장소 등이 크게 쓰인 연극 <빛나는>의 홍보 배너가 있다. 유리문에는 화살표가 크게 있는 홍보지 두 장이 붙어 있다.

    공연장 입구에 세워놓은 연극 <빛나는> 홍보 배너

  • 격자 무늬 바탕에 창작공감:연출 <소극장판-타지>가 쓰인 팸플릿, 해당 공연의 티켓이 그 위에 겹쳐 있다.

    연극 <소극장판-타지> 팸플릿

SOYEON

소연

한국 근대 젠더사를 공부하는 (예비)연구자. 페미니스트 때려치우고 싶은 장애-페미니스트이자 글쓰기에 자아 의탁한 사람. 정체성의 합계일 뿐인 이름을 가졌으면서 그 이름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다. 앞뒤가 맞지 않는 이상한 삶을 살며, 역시 이상한 인간의 흔적을 쫓는 일에 관심이 있다. 2020년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청년장애예술가 양성 사업에 참여해 『돌림 노래』를 독립출판했고, 현재 연극 <종말의 문을 열면>(가제)을 준비 중이다.
soyean1224@naver.com
블로그 바로가기(링크)

사진 제공. 필자

소연

소연 

한국 근대 젠더사를 공부하는 (예비)연구자. 페미니스트 때려치우고 싶은 장애-페미니스트이자 글쓰기에 자아 의탁한 사람. 정체성의 합계일 뿐인 이름을 가졌으면서 그 이름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다. 앞뒤가 맞지 않는 이상한 삶을 살며, 역시 이상한 인간의 흔적을 쫓는 일에 관심이 있다. 2020년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청년장애예술가양성사업에 참여해 『돌림 노래』를 독립출판했고, 현재 연극 <종말의 문을 열면>(가제)을 준비 중이다.
soyean1224@naver.com
필자 블로그 바로가기 : https://blog.naver.com/soye_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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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음광장

비장애인은 내 글을 좋아한다. 그렇게 되도록 쓴다. 경험으로 터득한 그들의 취향에 의하면, ‘선한’ 장애인이 예상 가능하게 ‘나쁜’ 말을 하는 모양새를 보기 좋아하시더라. 이를테면 한국 사회의 장애인 차별에 이는 분노를 단정하게 정리해서, 이해가 쏙쏙 가도록 예시하고, 정해진 순서대로 몰랐던 것을 배우고 또 깨닫게 하고, 권익을 옹호하도록 유도하는 방향의 ‘감동’ 스토리다. 누구도 불편하게 하지 않고, 비당사자에게 장애와 질병에 대해 발화할 수 있도록 명분과 용기를 준다.

이때 장애인의 인생 최대 딜레마가 ‘나는 비장애인이 되고 싶은가, 아닌가?’라는 질문이라고 설정해서 적당히 자극을 주기도 한다. “다시 태어나도 장애인으로 태어나고 싶어?”라는 질문을 들은 적이 있다. 초면이나 다름없는 사람이었던 그가 나를 빤히 쳐다보는 찰나의 정적 동안, 나는 내가 포르말린에 절인 표본이 되었다고 느꼈다. 내가 말해야 할 것은 정해져 있었다. 그들은 “나는 장애를 극복했다”라고 말하는 ‘(비)장애인’을 치운 자리에, “내 장애는 극복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장애인’을 대신 넣었다. 물론 내가 무엇을 말해도, 그러니까 둘 중 무엇으로 답해도, 그 말은 비장애인의 ‘깨달음’으로 흡수될 예정이었지만.

‘불편하지 않은’ 장애예술

작년 12월,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 허리의 공연 <빛나는>을 관람했다. 일전에 같은 내용의 공연을 본 적이 있기에 그때 받았던 울림을 기대했다. 정작 극장을 나오면서 들었던 생각은, 나는 이 연극이 정말 싫은데 싫다고 말하기도 싫다는 것이었다. 온갖 데서 몇 번이고 반복되던 소녀시대의 노래
<다시 만난 세계>가 연극 안에서 몇 번이고 되풀이되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배우는 확성기를 들고 외쳤다. “저희가 이상한가요?” “저희가 부끄러운가요?” “나, 여기 있다!” 질문의 끝마다 관객들은 “아니요!”라고 답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2019년에 <빛나는>을 처음 관람했을 때 나는 울었다. 이 연극이 장애인이 현실에서 겪는 차별 경험과 당사자의 권리 주창을 다룬다는 사실을 관람 전부터 알았고 그것이 지닌 귀중한 가치도 알고 있었다. 장애당사자가 발화하는 자기 경험은 그 내용이 세상에 이미 알려진 것일지라도, 모종의 정확함으로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함을 지닌다. 그리하여 그것은 개개의 특별한 발화로 탈바꿈한다. 나는 2022년의 <빛나는>에서 그것을 기대했고, 그 기대는 이상하게도 충족되지 못했다. 그 이유를 아직 잘 모르겠다.

다른 작품을 떠올렸다. 2022년에 공연된 강보름 연출의 <소극장판-타지>는 장애 당사자가 제작 단계부터 참여한 작품이다. 극 중 배우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리처드 3세>를 끌어오며 나쁜 악당이 될 것을 선언한다. 그런데 그 후로 이어지는 언행은 순하기 짝이 없었다. 얌전히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이 겪는 어려움을 읊는 대사는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마치 정은영 시각예술작가의 ‘여성국극 프로젝트’를 담은 <여성극장>이, 젠더 이분법을 전복함으로써 보는 이가 “불편했으면 좋겠다”는 의도(‘2018 올해의 작가상’ 수상자 정은영(링크))와는 다르게, 페미니스트 관객의 기대에 기다렸다는 듯이 안착했던 것처럼.

우리는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내 발화는 갇혀있는 것인지 자유로운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한 친구는 내가 쓴 글을 읽더니, 소감을 전했다. “페미니즘이나 장애에 관한 것이 아니어도 네가 글을 잘 쓴다는 걸 알게 됐어”
“정체성은 지식의 주체가 되는 경험에서 나오”지만(『빨래하는 페미니즘』, p.413) 그 정체성의 이름이 다시 나를 옭아맸다.
내 정체성은 내 명함인가?

유튜버이자 창작자 김지우는 “어리고 장애가 있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많아지면 좋겠다”(『하고 싶은 말이 많고요, 구릅니다』)고 말했다. 나도 그러길 간절히 바랐다. 죽을 만큼 외로웠으니까. 하지만 글을 써도 여전히 외로웠다. 내 글은 “어리고 장애가 있는 여자”의 것으로 읽혔기 때문에. 그게 싫다면, 나는 하고 싶은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내 정체성을 배제한 말하기를 고민해야 하나? 그 분절은 꺼림칙했다. 오로지 하나뿐인 내 몸을 여럿으로 갈라서 여기까지는 장애, 여기까지는 페미니스트, 여기까지는 둘 다 아닌 것, 이런 식으로 나누기란 불가능했다.

고민하다 결론 내렸다. 세상에 나를 말할 언어가 없다면, 혹은 나의 언어를 독해할 이가 없다면, 아무것도 말하지 말아보자.

그러니까, 글쓰기 때려치우겠다는 선언이었다.

  • 전봇대에 붙은 도로명 표지판이 보이고 통유리 문이 설치된 오래돼 보이는 건물 입구. 그 앞에, 여러 명의 휠체어 장애인 사진과 날짜, 장소 등이 크게 쓰인 연극 <빛나는>의 홍보 배너가 있다. 유리문에는 화살표가 크게 있는 홍보지 두 장이 붙어 있다.

    공연장 입구에 세워놓은 연극 <빛나는> 홍보 배너

  • 격자 무늬 바탕에 창작공감:연출 <소극장판-타지>가 쓰인 팸플릿, 해당 공연의 티켓이 그 위에 겹쳐 있다.

    연극 <소극장판-타지> 팸플릿

SOYEON

소연

한국 근대 젠더사를 공부하는 (예비)연구자. 페미니스트 때려치우고 싶은 장애-페미니스트이자 글쓰기에 자아 의탁한 사람. 정체성의 합계일 뿐인 이름을 가졌으면서 그 이름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다. 앞뒤가 맞지 않는 이상한 삶을 살며, 역시 이상한 인간의 흔적을 쫓는 일에 관심이 있다. 2020년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청년장애예술가 양성 사업에 참여해 『돌림 노래』를 독립출판했고, 현재 연극 <종말의 문을 열면>(가제)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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