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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와 질병을 쓰고 읽는 긴장 관계①

이음광장 [장애 알림] (응답 없음)

  • 소연 작가
  • 등록일 2022-12-14
  • 조회수693

이음광장

비장애인을 전동휠체어로 받아버리고 싶다고 쓴 적이 있다. 잘난 비장애인의 ‘정상적인’ 몸을 육중한 바퀴로 짓이기겠다고, 냉소와 조롱을 퍼부으면서, 몸이 아프지 않은 사람은 주저 없이 죽으라고 썼다. 어떻게든 독자를 불편하게 해보겠다는 호언장담 이후에 나온 글이었다.

한 친구는 내게 말했다. “네가 정말로 누군가를 받아버린다면, 깽값의 반을 함께 물게”라고. 사뭇 진지한 말투여서, 나는 “누구를 고를까?” 물었고, 친구는 답했다. “몰라. 아무나, 남자?”
다른 친구는 내 글을 잘 읽었다고 말했다. 읽으면서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그리고는 물었다.
“글에 썼던 내용, 전부 진심이야?”
내심 아니길 바라는 표정이었다. 정확히는, 설마 그럴 리가 있겠냐는 두려움이었다. 원하는 대로 답해주었다. “내가 쓴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연출이야” 거짓말은 아니었다. 진심도 아니었지만.

글 한 편을 내놓으면 각기 다른 응답을 받는다. 글과 응답 사이에, 이를테면 긴장 관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쓰고 싶은가. 그것이 독자에게 어떻게 읽히는가. 나는 어떻게 읽히고 싶나. 이 세 가지 사이의 긴장은 모든 종류의 글에 있지만, 장애와 질병을 글로 쓰는 경우 마주해야 할 그것은 아주 팽팽하다.

나는 약 8년간 혼자 글을 썼다. 중학생에서 대학생으로 커가면서 오로지 나만 이해하면 끝나는 글을 썼다. 학교 급식과 끔찍하도록 활기 넘치는 세상과 수면 부족과 혐오스런 인간에 대해서 줄줄 쓰다가, 종종 장애와 질병을 글로 썼다. 장애와 질병 또한 ‘정체화’라는 단계를 설정할 수 있다면 나는 고등학생 때 정체화를 거쳤다. 그것은 휠체어 위에서도, 장애인 화장실이나 응급실 침대 위에서도 일어나지 않았다. 보통의 어느 날, 잠 못 자는 새벽에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서 생각했다. 나 장애인이네. 페미니즘과 장애학이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정체성은 지식의 주체가 되는 경험에서 나오”니까.(주1) 우울인지 분노인지 구별되지 않는 감정을 점점 더 풀어 썼다. 2014년의 봄에 나는 지독한 무기력에 빠졌고, 2015년의 여름을 지나면서 그것을 뚫고 나온 고삐 풀린 발화를 목격했다. 인터넷에서 여자들이 ‘여성혐오에 반대한다’라며 미친 여자처럼 떠들어댔다. 슬쩍 나도 끼었다. 나는 혼자가 아니야. 연대는 나의 빛. 지지는 나의 힘.

스물셋이 지나고 내 글을 다른 이에게 적극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큰 이유는 기껏 써놓은 게 아까워서였다. 아니면 악을 쓰려고, 내 말을 좀 들으라고. 2020년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청년 장애예술가 양성 사업-너와 나의 티키타카’의 결과물로 독립출판한 『돌림 노래』도 그 일환이었다. 덕분에 내 글을 더 넓은 곳에 내보였고 그래도 된다는 믿음의 싹을 틔웠다.

『돌림 노래』는 우울과 불안, 지긋지긋한 삶, 장애와 질병의 경험, 무엇보다 사랑을 말한다. 수록된 글이 쓰인 2016년부터 2020년까지 나아가기란 쉽지 않았다. 내 생각을, 내 정체성을, 내 경험을 남에게 들려주는 일은 용기가 필요했다(내 모부는 아직도 이 책의 출간 사실을 알지 못한다). 나의 약하고 여린 부분, 또는 여느 사람과 ‘다른’ 부분을 기꺼이 드러내는 작업은 망설임을 동반했다. 되는 대로 손을 휘저으면서 주변에서 아무거나 잡았다. 속에서 치미는 것을 토해내고 다시 삼켰다. 배배 꼬인 마음을 가닥가닥 풀어내어 아무렇게나 겹쳐놓았다. 그리고, 환대받았다. 누구도 내 글로 나를 약점 잡지 않았다. 좋았다는 말만 잔뜩 들었다.
그중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나라면 이런 글 못 썼을 거야”
그러니까, 자기라면 이렇게나 내밀한 글을 남에게 보여줄 엄두가 나지 않았을 거라는 말이었다. 오래 생각했다. 내 글의 좋음을 ‘솔직함’으로, 다시 말해 ‘놀라움’으로 말한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돌림 노래』가 좋았다는 여러 응답은 분명 연대이자 지지였다. 그런데, 가끔, 연대는 나의 벽. 지지는 나의 짐.

이게 정말 내 글에 대한 응답인가? 다들 대체 뭘 보고 좋다고 하는 거야? 내 처절한 고함과 뒤틀린 빈정거림이 듣기에 좋으신가? 그 정체가 무엇이든, 어떤 기대에 맞추어 내 글이 재단되고야 말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 서사’라고 부를 법한, 희망적인 ‘장애 극복’의 휴먼 드라마를 바라는 상투적인 기대가 있는 한편으로, 그 서사의 반대 방향을 기대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둘 모두 충족시키고 싶지 않았다. 내가 하는 말은 두 가지의 기대를 아슬아슬하게 타고 넘어서야 했다. 두 기대에 모두, ‘좋은 글’을 구경하려는 듯한 태도가 깔려있었기 때문이다. 내 장애와 질병을 두고 ‘잘 읽었다’라고 하는 류의. 그게 벽과 짐이었다. 결국 다다른 곳은, (응답 없음).

소연 저, 『돌림 노래』, 다시서점·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020

주1: 스테퍼니 스탈 저, 고빛샘 역, 『빨래하는 페미니즘』, 민음사, 2014, p.413

소연

한국 근대 젠더사를 공부하는 (예비)연구자. 페미니스트 때려치우고 싶은 장애-페미니스트이자 글쓰기에 자아 의탁한 사람. 정체성의 합계일 뿐인 이름을 가졌으면서 그 이름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다. 앞뒤가 맞지 않는 이상한 삶을 살며, 역시 이상한 인간의 흔적을 쫓는 일에 관심이 있다. 2020년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청년장애예술가 양성 사업에 참여해 『돌림 노래』를 독립출판했고, 현재 연극 <종말의 문을 열면>(가제)을 준비 중이다.
soyean1224@naver.com
블로그 바로가기(링크)

사진 제공. 필자

소연

소연 

한국 근대 젠더사를 공부하는 (예비)연구자. 페미니스트 때려치우고 싶은 장애-페미니스트이자 글쓰기에 자아 의탁한 사람. 정체성의 합계일 뿐인 이름을 가졌으면서 그 이름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다. 앞뒤가 맞지 않는 이상한 삶을 살며, 역시 이상한 인간의 흔적을 쫓는 일에 관심이 있다. 2020년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청년장애예술가양성사업에 참여해 『돌림 노래』를 독립출판했고, 현재 연극 <종말의 문을 열면>(가제)을 준비 중이다.
soyean1224@naver.com
필자 블로그 바로가기 : https://blog.naver.com/soye_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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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음광장

비장애인을 전동휠체어로 받아버리고 싶다고 쓴 적이 있다. 잘난 비장애인의 ‘정상적인’ 몸을 육중한 바퀴로 짓이기겠다고, 냉소와 조롱을 퍼부으면서, 몸이 아프지 않은 사람은 주저 없이 죽으라고 썼다. 어떻게든 독자를 불편하게 해보겠다는 호언장담 이후에 나온 글이었다.

한 친구는 내게 말했다. “네가 정말로 누군가를 받아버린다면, 깽값의 반을 함께 물게”라고. 사뭇 진지한 말투여서, 나는 “누구를 고를까?” 물었고, 친구는 답했다. “몰라. 아무나, 남자?”
다른 친구는 내 글을 잘 읽었다고 말했다. 읽으면서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그리고는 물었다.
“글에 썼던 내용, 전부 진심이야?”
내심 아니길 바라는 표정이었다. 정확히는, 설마 그럴 리가 있겠냐는 두려움이었다. 원하는 대로 답해주었다. “내가 쓴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연출이야” 거짓말은 아니었다. 진심도 아니었지만.

글 한 편을 내놓으면 각기 다른 응답을 받는다. 글과 응답 사이에, 이를테면 긴장 관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쓰고 싶은가. 그것이 독자에게 어떻게 읽히는가. 나는 어떻게 읽히고 싶나. 이 세 가지 사이의 긴장은 모든 종류의 글에 있지만, 장애와 질병을 글로 쓰는 경우 마주해야 할 그것은 아주 팽팽하다.

나는 약 8년간 혼자 글을 썼다. 중학생에서 대학생으로 커가면서 오로지 나만 이해하면 끝나는 글을 썼다. 학교 급식과 끔찍하도록 활기 넘치는 세상과 수면 부족과 혐오스런 인간에 대해서 줄줄 쓰다가, 종종 장애와 질병을 글로 썼다. 장애와 질병 또한 ‘정체화’라는 단계를 설정할 수 있다면 나는 고등학생 때 정체화를 거쳤다. 그것은 휠체어 위에서도, 장애인 화장실이나 응급실 침대 위에서도 일어나지 않았다. 보통의 어느 날, 잠 못 자는 새벽에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서 생각했다. 나 장애인이네. 페미니즘과 장애학이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정체성은 지식의 주체가 되는 경험에서 나오”니까.(주1) 우울인지 분노인지 구별되지 않는 감정을 점점 더 풀어 썼다. 2014년의 봄에 나는 지독한 무기력에 빠졌고, 2015년의 여름을 지나면서 그것을 뚫고 나온 고삐 풀린 발화를 목격했다. 인터넷에서 여자들이 ‘여성혐오에 반대한다’라며 미친 여자처럼 떠들어댔다. 슬쩍 나도 끼었다. 나는 혼자가 아니야. 연대는 나의 빛. 지지는 나의 힘.

스물셋이 지나고 내 글을 다른 이에게 적극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큰 이유는 기껏 써놓은 게 아까워서였다. 아니면 악을 쓰려고, 내 말을 좀 들으라고. 2020년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청년 장애예술가 양성 사업-너와 나의 티키타카’의 결과물로 독립출판한 『돌림 노래』도 그 일환이었다. 덕분에 내 글을 더 넓은 곳에 내보였고 그래도 된다는 믿음의 싹을 틔웠다.

『돌림 노래』는 우울과 불안, 지긋지긋한 삶, 장애와 질병의 경험, 무엇보다 사랑을 말한다. 수록된 글이 쓰인 2016년부터 2020년까지 나아가기란 쉽지 않았다. 내 생각을, 내 정체성을, 내 경험을 남에게 들려주는 일은 용기가 필요했다(내 모부는 아직도 이 책의 출간 사실을 알지 못한다). 나의 약하고 여린 부분, 또는 여느 사람과 ‘다른’ 부분을 기꺼이 드러내는 작업은 망설임을 동반했다. 되는 대로 손을 휘저으면서 주변에서 아무거나 잡았다. 속에서 치미는 것을 토해내고 다시 삼켰다. 배배 꼬인 마음을 가닥가닥 풀어내어 아무렇게나 겹쳐놓았다. 그리고, 환대받았다. 누구도 내 글로 나를 약점 잡지 않았다. 좋았다는 말만 잔뜩 들었다.
그중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나라면 이런 글 못 썼을 거야”
그러니까, 자기라면 이렇게나 내밀한 글을 남에게 보여줄 엄두가 나지 않았을 거라는 말이었다. 오래 생각했다. 내 글의 좋음을 ‘솔직함’으로, 다시 말해 ‘놀라움’으로 말한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돌림 노래』가 좋았다는 여러 응답은 분명 연대이자 지지였다. 그런데, 가끔, 연대는 나의 벽. 지지는 나의 짐.

이게 정말 내 글에 대한 응답인가? 다들 대체 뭘 보고 좋다고 하는 거야? 내 처절한 고함과 뒤틀린 빈정거림이 듣기에 좋으신가? 그 정체가 무엇이든, 어떤 기대에 맞추어 내 글이 재단되고야 말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 서사’라고 부를 법한, 희망적인 ‘장애 극복’의 휴먼 드라마를 바라는 상투적인 기대가 있는 한편으로, 그 서사의 반대 방향을 기대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둘 모두 충족시키고 싶지 않았다. 내가 하는 말은 두 가지의 기대를 아슬아슬하게 타고 넘어서야 했다. 두 기대에 모두, ‘좋은 글’을 구경하려는 듯한 태도가 깔려있었기 때문이다. 내 장애와 질병을 두고 ‘잘 읽었다’라고 하는 류의. 그게 벽과 짐이었다. 결국 다다른 곳은, (응답 없음).

소연 저, 『돌림 노래』, 다시서점·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020

주1: 스테퍼니 스탈 저, 고빛샘 역, 『빨래하는 페미니즘』, 민음사, 2014, p.413

소연

한국 근대 젠더사를 공부하는 (예비)연구자. 페미니스트 때려치우고 싶은 장애-페미니스트이자 글쓰기에 자아 의탁한 사람. 정체성의 합계일 뿐인 이름을 가졌으면서 그 이름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다. 앞뒤가 맞지 않는 이상한 삶을 살며, 역시 이상한 인간의 흔적을 쫓는 일에 관심이 있다. 2020년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청년장애예술가 양성 사업에 참여해 『돌림 노래』를 독립출판했고, 현재 연극 <종말의 문을 열면>(가제)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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