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텍스트 크기

가

고대비

통합검색

툴팁 텍스트

잠깐! 찾고 싶은 정보와 관련 있는 핵심 단어를 적어주세요.

예시) 장애인예술교육 분야 자료집을 찾고 싶을 땐, "예술교육"처럼 핵심 단어를 적어주세요.

추천 키워드

배리어프리 콘텐츠 검색하기

리뷰 김은미 〈춤추는 립스틱〉 휠체어와 하이힐, 그리고 깊은 응시가 담긴 무대

  • 김옥란 연극평론가
  • 등록일 2025-08-06
  • 조회수 128

리뷰

객석에 입장하니 무대에는 이미 배우가 등장해 있다. 아내와 남편이다. 남편은 아내의 입술에 립스틱을 바르고 있다. “삐뚤어졌어” “안 삐뚤어졌는데?” 공연이 시작되면 아내와 남편은 툭툭거린다. 아내는 중증장애인이다. 무대 한쪽에는 전동휠체어가 놓여있다. 남편은 연극 연습을 나가는 아내를 위해 외출을 준비 중이다. “솔직하게 인정하면 어디 덧나?” “좀 삐뚤어졌어도 그냥 넘어가면 안 되냐?” 아웅다웅하지만, 두 사람은 마치 오랜 친구처럼 보인다. ‘삐뚤어진’ 립스틱은 장애의 몸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공연의 제목은 ‘춤추는 립스틱’이다. 공연은 ‘삐뚤어진 립스틱’을 ‘춤추는 립스틱’으로 뒤집어 보여주는 전복적인 힘을 지녔다.

공연은 중증장애인 김진옥이 직접 쓰고 출연한 작품으로,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김진옥은 2009년 극단 ‘장애인문화예술판’에서 배우로 데뷔한 이후 전시, 연극, 움직임공연 등 다양한 무대에 서왔다. 이번 작품은 작가로서 첫 작품이다. 대본은 발가락으로 한 글자 한 글자 타이핑해 완성했다. 인권·평화 활동가이자 페미니스트 작가인 김은미 연출가와 함께 2024년 9월 성북마을극장 낭독공연을 거쳐 2025년 7월 이음센터에서 본공연을 올렸다.

장애 서사 - 생존 서사와 가족 서사를 넘어

공연은 김진옥의 개인사를 충실하게 따라간다. 출생에서부터 예술가의 삶을 사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변곡점을 짚어나간다. 그중에서도 여전히 화해하지 못한 엄마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엄마는 치매를 앓다가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 그러나 진옥은 엄마에게 여전히 미안하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엄마는 진옥을 낳고 기뻐했지만, ‘뇌성마비’ 진단을 받은 이후 딸에 대한 돌봄을 회피했다. 진옥은 10대 시절 대부분을 집에 ‘방치’되어 있었다.

엄마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진옥은 휠체어에서 내려와 꼿꼿이 앉아 엄마의 시간을 응시한다. 엄마는 일제강점기 의사 아버지가 있는 부유한 집안에서 피아노를 배우면서 자랐지만 6·25전쟁이 나고 모든 것을 잃었다. “6·25만 아니었으면 이렇게 살 사람이 아닌데….” 엄마의 입버릇이다. “앉은뱅이 딸을 낳은 죄 많은 여자” 엄마는 아이의 장애에 대한 차별적 시선도 견디지 못했다. 대신 진옥에게는 아빠가 있었다. 아빠는 진옥에게 예쁜 구두와 원피스를 입혀 주말마다 바깥세상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아빠는 일찍 세상을 떠나고, 진옥은 다시 세상과 격리되었다. 진옥이 좁은 방안에 갇히는 과정은 장면이 진행될 때마다 사면 무대의 한쪽에 설치된 기둥들을 움직여 점점 더 공간이 좁혀오는 것으로 표현했다.

“나 교과서 사줘” “나도 치마 입을래” “나 휠체어 사줘” “나도 밖에 나가고 싶어” “나 평생 저 방에서만 살았어. 왜 계속 그렇게 살아야 해?” 진옥은 묻지만, 엄마는 대답이 없다. 대신 진옥에게는 친구들이 있었다. 친구들은 진옥에게 화장을 해주고, 예쁜 신발도 신기고, 휠체어를 밀고 바다로 갔다. 친구들은 앙상블들이 맡았다. 진옥은 한글도 친구들에게 배웠다. 친구들이 몸으로 표현하는 자음과 모음으로 ‘진옥’이라는 이름을 읽고, 윤동주 시집으로 한글 공부를 했다. 윤동주 시집으로 한글 공부를 시작했다니,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멋진 장면이었다. 장애 서사가 단순한 생존 서사를 넘어, 그리고 가족 서사를 넘어 새로운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장면이다.

“그래도 이 여행을 멈추고 싶진 않아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엄마는 계속 옷을 갈아입고, 진옥은 계속 신발을 갈아신는다. 엄마는 어두운 방에 혼자 남겨지고, 딸은 계속 신발을 갈아신으면서, 휠체어를 밀면서 사회로 나아간다. 교회로, 장애인 인권운동 시위 현장으로, 진옥은 거침이 없다. 진옥은 장애인 인권운동 현장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 그러나 사회에서 여성의 삶 또한 쉽지 않았다. 여전히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힌다. “네가 무슨 결혼을 해?” 엄마는 진옥의 결혼에 반대한다. “혹시 무슨 하자 있나?” 진옥의 남편 또한 비하의 말을 듣는다. “낳으실 건가요?” 의사는 진옥의 임신에 대해 축하의 말 대신 낙태를 암시한다. 관객은 공연 내내 진옥이 들었던 차별과 혐오의 말들을 고스란히 같이 듣는다.

그러나 공연의 클라이맥스는 정작 사회적 차별에 맞서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대신 진옥의 상태가 의료적 치료를 통해 나을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게 되는 계기를 통해서다. 어느 날 딸 지우는 뇌병변장애로 오인당했으나 ‘세가와병’으로 밝혀져 약물치료로 걸을 수 있게 된 환자 이야기를 알려온다. 진옥 또한 희망을 품게 된다. 이 사건은 실제로 2012년 대구에서 있었던 사례이다. 진옥 또한 검사를 받고 세가와병으로 진단받는다. 진옥은 걸을 수도, 손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희망에 들뜬다. 진옥은 등산도 하고, 딸에게 닭볶음탕도 직접 만들어주고 싶다. 소박한 소원들이다. 역설적으로 남편과 함께 손 잡고 산에 오르고, 딸에게 직접 요리를 만들어주고 싶은 아내와 엄마의 마음이 가장 크게 느껴졌던 장면이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도록 약물치료는 아무런 효과가 없고, 결국 진옥은 세가와병이 아니라는 진단을 다시 받는다. 진옥은 비록 한 달 동안이지만 행복했던 꿈이라고 말하고 감정을 추스른다. 희망이 가장 큰 고통이 된 것이다. “그래도 이 여행을 멈추고 싶진 않아요” 진옥은 남편과 계획했던 여행을 가기로 한다. 공연의 마지막은 진옥이 핑크색 원피스와 하이힐을 신고, 남편 또한 핑크색 셔츠를 입고 함께 여행을 떠나는 장면이다. 진옥과 남편은 휠체어를 밀고 극장 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간다. 진옥의 곁에 함께 했던 앙상블들은 온몸을 두드려 소리를 내는 보디퍼커션 음악으로 진옥과 남편의 뒤를 따른다.

김진옥 배우는 진옥 역할로 직접 출연하고, 남편 역할에는 진준엽 배우, 엄마 역할에 김보경 배우, 딸 지수 역할에 방선혜 배우가 출연했다. 김진옥 배우와 진준엽 배우는 60대 부부의 평범하고 사소한 일상을 유머와 함께 보여주었다. 김보경 배우는 고집스러우면서도 외롭게 늙어가는 엄마의 텅 빈 삶을 담담하게 보여주었다. 여성 서사로서 엄마와 딸은 끝내 불화했지만, 이 공연을 통해서 작가 김진옥은 엄마와 자신의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나는 나의 삶을, 연민을 없애 객관화시켜 바라보고 싶었다” 이는 작가 김진옥이 2024년 낭독공연 당시 ‘창작의 글’에 썼던 말이다. 실제로 배우 김진옥은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쓰고 출연하면서도 냉정한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역할을 조율하고 있었다. 차별에 맞서는 장면들에 들뜨지 않으면서, 희망으로 더 쉽게 무너졌었던 모습들에 강한 인내력을 보여주었다. 차별에는 웃음으로, 고통에는 깊은 응시의 시선으로 무대 위에 존재했다. 김진옥 배우는 장애여성의 존재감을 비단 휠체어와 하이힐로만 보여준 것은 아니다. 김진옥 배우가, 어머니의 시간과 자신의 시간을 바라보던 깊은 시선에서 자기만의 삶을 살아가는 강한 여성의 힘이 느껴졌다. 김은미 연출가를 비롯한 공연팀 전체가 김진옥의 이야기를 응원하고 함께 하는 에너지가 느껴졌던 공연이다.

  • 무대 중앙에 진옥이 앉아 두 팔을 위로 올리며 놀라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고 그 주위로 4명의 배우가 둥글게 둘러앉아 웃으며 서로를 향해 손을 뻗거나 손뼉을 치고 있다.

    진옥과 친구들

  • 녹색 조명이 비추는 어두운 무대에 악보를 품에 꼭 끌어안은 희정과 피난민으로 분한 배우들이 긴장하고 불안한 표정으로 서 있다.

    희정의 고난

  • 무대 안쪽 한편에 세워진 가벽 옆에 놓인 의자에 희정이 고단하고 슬픈 표정으로 앉아 있다. 무대 앞쪽에는 휠체어에 탄 진옥이 앞에 선 남편과 손을 마주 잡고 웃고 있다.

    행복한 진옥

  • 어두운 무대의 파란 핀 조명 아래 진옥이 앉아 있다. 진옥을 둘러싼 4명의 배우가 온몸을 두드리며 몽환적인 꿈속을 표현하고 있다.

    진옥의 꿈(바다)

춤추는 립스틱

춤추는 립스틱

김은미 | 2025.7.4.~7.6. | 이음아트홀

비장애인 남편과 딸을 두고 평범하지만 단란한 일상을 사는 60대 중증장애여성이 어느 날 자신의 장애가 뇌병변이 아닌 오진에 의한 ‘세가와병’일 수 있다는 말을 듣는다. 치료받으면 ‘걷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만나며 주인공과 가족의 감정은 소용돌이치고, 자신을 방에 두고 외면했던 무지한 어머니로 인해 많은 것을 포기하며 살아야 했던 지난 삶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 회한이 밀려온다. 동시에 왜 딸인 자신에게 곁을 주지 않았는지, 대답하지 않는 어머니의 삶에 다가가 질문한다. 극작 김진옥, 각색·연출 김은미, 출연 김진옥 김보경 진준엽 방선혜 김한솔 조예현 김진희 박문민 민주화.

이음온라인 [문화소식]

김옥란

김옥란

연극평론가, 드라마투르그. 연극을 만들고, 비평하고, 연구하고 멋진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 블로그

사진 제공.김은미

2025년 8월 (66호)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제공하는 자료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 4유형 : 출처표시,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의 조건에 따라 이용이 가능합니다.

댓글 남기기

2025-08-11 11:43:11

비밀번호

작성하신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휠체어와 하이힐이라는 상반된 이미지가 공존하는 이 무대는 장애와 아름다움, 그리고 강인함을 동시에 표현한 것 같아요~ 춤추는 립스틱>을 통해 장애예술가의 이야기가 이렇게 감동적으로 전해지는 모습을 보며 진정한 예술의 힘을 느꼈습니다.

제 2021-524호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WA-WEB 접근성 (사)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 | 1.업체명: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주소: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고 112 3.웹사이트:http://www.ieum.or.kr 4.유효기간:2021.05.03~2022.05.02 5.인증범위:이음온라인 홈페이지 | 「지능정보화 기본법」 제47조제1항 및 같은 법 시행규칙 제9조제5항에 따라 위와 같이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를 발급합니다. 2021년 05월 03일 사단법인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