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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전반에서 접근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물리적·심리적·사회적 장벽을 허물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조금씩 확산하고 있다. 그렇다면 예술가의 문화적 권리로서 요구하는 접근성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웹진 이음 인터뷰 등 이음온라인에 참여한 예술가 24명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이들의 경험과 바람에 더해, 나 자신의 선언을 댓글로 남기며 우리의 선언으로 완성해 보는 것은 어떨까.
1편 함께한 사람들▶ 고나영 장애여성공감 활동가・극단 춤추는허리 배우 | 고아라 무용가・A.R.A 대표 및 예술감독 | 김상미 장애여성공감 활동가・극단 춤추는허리 배우 | 김상홍 연극배우·연출가 | 김환 미술작가・HTH 대표 | 문승현 미술작가·옐로우닷컴퍼니 대표 | 백지윤 연극배우 | 서지원 장애여성공감 활동가・극단 춤추는허리 배우 | 신강수 배우·작가·강사·예술난장 대표 | 안종일 영화감독·미디어협동조합 숨 대표 | 우지양 프리랜서 예술가·배우 | 이성수 배우·연출·힘빼고컴퍼니 대표
접근성이나 정당한 편의 제공이 법·제도로 잘 보장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물리적으로 접근이 안 되는 것을 넘어서 장애인을 낯설고 불편하게 느끼는 공간이나 관계에서는 아무리 물리적 접근성, 쉬운 정보가 넘친다 해도 가고 싶다고 느끼기 어렵습니다. 몸도 말도 움직임도 각자 다른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는 공간, 관계, 시간, 정보 등이 복합적으로 고려되는 접근성이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이 함께하던 광장. 다양한 몸과 정체성이 연대의 마음으로 함께 있었다고 느낀다.
고아라 무용가·A.R.A 대표 및 예술감독
“나는 모든 언어가 ‘보이도록’ 만들어지기를 요구합니다!”
청각장애인에게 소통 환경은 단순히 편의가 아니라 권리의 문제입니다. 구화와 수어를 병행하는 한 사람으로서, ‘보이는 언어’에 대한 수용과 존중을 요구합니다.
김상미 장애여성공감 활동가・극단 춤추는허리 배우
“나는 천천히 말하는 것을 요구합니다!”
나는 발달장애 여성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빠르게 말하면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차근차근, 천천히 이야기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천천히 말해도 괜찮아〉 발달장애여성 노래로 알리는 거리 활동
김상홍 연극배우·연출가
“나는 중증장애인이 편하게 관람할 수 있는 환경을 요구합니다!”
대극장 휠체어 관람석이 맨 뒤쪽에 고정 배치되어 무대 위 배우들의 표정을 제대로 볼 수 없는 게, 나를 슬프게 한다. 공연장뿐만 아니라 영화관에서도 항상 뒤쪽에서 관람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비행기를 탈 때도 중증장애인은 가장 먼저 타고 가장 늦게 내려야만 한다. 시간이 촉박한 경우엔 낭패 보기 일쑤다. 비행기 화장실이 비좁아서 휠체어를 타고 볼일을 제대로 볼 수 없는 것 또한 나를 슬프게 한다.
대극장 객석 계단
영화관으로 가는 계단
김환 미술작가·HTH 대표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줬으면 좋겠어’를 요구합니다!”
매년 전시 홍보물에 ‘시설 접근성이 어려워 진심으로 죄송하다’라는 안타까운 문구가 보인다. 미안해하지 말자. 동료 작가들의 잘못이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을 전달해 주었으면 한다.
문승현 미술작가・옐로우닷 컴퍼니 대표
“나는 모든 생활 기반 서비스를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이용할 권리를 요구합니다!”
나는 생활 기반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한 별도의 인적·물적 장치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기관 직원의 느리고 친절한 설명조차 필요하지 않습니다. 필요한 것은 단 몇 마디 말의 발음을 인식하는 데 걸리는 짧은 시간일 뿐입니다. 그런데 왜 나는 여전히 강한 의심의 미간 속에서 바라보여야 하고, 보호자와 함께 방문하라는 요청을 받아야 하는 걸까요? 내가 바라는 작은 시작은 서비스 기관 간의 연대입니다. 복지서비스 기관은 금융기관과 연계하여 행정 서비스 접근 약자를 위한 지원 체계를 함께 마련해야 합니다. 일반 행정 서비스도, 교통 서비스도 이와 같이 서로 협력하는 관계로 나아갈 때, 비로소 인식도 바뀌기 시작할 것입니다
백지윤 연극배우
“나는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설명을 요구합니다!”
정보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사람도 차별 없이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쉬운 설명을 요구합니다.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소통하고 이해할 수 있는 환경은 더 포용적인 사회를 만드는 기본이 되기 때문입니다.
서지원 장애여성공감 활동가・극단 춤추는허리 배우
“나는 완벽히 세팅되기보다, 함께 만들어 갈 공간·관계를 요구합니다!”
접근성은 단순히 물리적인 것만을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100퍼센트 완벽하게 세팅된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장애예술가뿐만 아니라 여성예술가, 빈곤예술가, 이주예술가, 청소년예술가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사회로 꺼내고 끊임없이 여러 집회 현장이나 공연 현장에서 이야기하고 알렸던 것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업할 때 누구와 동료 관계를 만들고 유지할 것인가, 공연을 주도해서 만들어갈 만한 환경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장애인 문화예술, 접근성은 하나만 보는 것이 아닌, 여러 가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이야기하며, 때론 상대방의 입장과 경험을 들어야만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이 함께하던, 장애여성의 권리를 요구하는 거리 활동
신강수 배우·작가·강사·예술난장 대표
“나는 건강한 신체가 아니어도 됨을 요구합니다!”
오디션 공고문에서 ‘건강한 신체’ 또는 남성과 여성의 원하는 키와 몸무게를 명시한 내용을 보고, 이 선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안종일 영화감독・미디어협동조합 숨 대표
“나는 보이지 않는 길에 빛을 비추어 주기를 요구합니다!”
접근성은 존재하지만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그 기초를 찾기가 어렵다. 보호자 또는 주변 사람들이 가르쳐 주는 것은 한계가 있다. 학교는 그나마 프로그램들을 통해서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길이 보이지만, 가정이나 시설은 그 길조차 찾기 어렵다. 수도권 이외의 지역은 형편이 더 좋지 않다. 열려 있지만 찾지 못하는, 예술 접근성을 볼 수 있는 작은 빛을 비추어 주길 바란다.
비장애인과의 예술 협업 활동
우지양 프리랜서 예술가·배우
“나는 수어와 농문화, 퀴어성과 농정체성이 토크니즘을 넘어 창작의 주체로 존중받는 환경을 요구합니다!”
나는 수어로 말하고, 농문화 안에서 살아온 농인 성소수자 예술가입니다. 많은 자리에서, 농인의 언어나 정체성이 그저 ‘도구’로 쓰이는 경우를 자주 마주합니다. 비농인이 농인의 이야기를 대신 전하거나, 다양성과 포용을 말하면서도 농인을 배경처럼 세워두는 장면 말입니다. 이것은 포용이 아니라 토크니즘(tokenism)입니다. 진정한 접근성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농인에게 수어는 단지 의사소통 수단이 아닙니다. 나에게 수어는 세상을 바라보고, 나를 표현하고, 타인과 연결되는 예술 언어이자 고유한 문화입니다. 농인은 초대받는 존재가 아니라, 무대를 만들고 세상을 말하는 창작의 주체여야 합니다. 농인으로, 성소수자로, 예술가로 살아가는 나의 모든 존재가 존중받는 환경을 요구합니다. 이것은 나 한 사람을 위한 말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변화의 요청입니다.
2024년 7월 4~5일 프랑스 랭스에서 열린 제11회 세계농축제(Festival Clin d’Oeil)에서 선보인 연극 〈맥베스〉는 6명의 농인 배우가 전편을 수어로 이끌며 청인 없이 무대를 완성한 대표적인 농인 창작극이다. 언어와 정체성, 그리고 무대의 주체성까지 모두 농인의 언어로 구성된 이 작품은, 내가 요구하는 ‘접근성’의 실현이자, 창작의 주체로서 농인의 존재를 보여주는 실천적 예시다.
이성수 배우·연출·힘빼고컴퍼니 대표
“나는 접근성 아티스트가 되어주기를 요구합니다!”
접근성은 존재하지만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그 기초를 찾기가 어렵다. 보호자 또는 주변 사람들이 가르쳐 주는 것은 한계가 있다. 학교는 그나마 프로그램들을 통해서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길이 보이지만, 가정이나 시설은 그 길조차 찾기 어렵다. 수도권 이외의 지역은 형편이 더 좋지 않다. 열려 있지만 찾지 못하는, 예술 접근성을 볼 수 있는 작은 빛을 비추어 주길 바란다.
정리. 김윤정 프로젝트 궁리 에디터 yoonjung9610@naver.com
사진 제공. 참여 예술가
2025년 8월 (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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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나영 장애여성공감 활동가・극단 춤추는허리 배우
“나는 각자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들을 수 있는 공간·관계를 요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