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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음광장 미디어 속 장애인 캐릭터 찾기③ 장애인도 영화 찍을 수 있다고요

  • 김성호 영화평론가
  • 등록일 2025-11-05
  • 조회수 21

이음광장

장애인도 번지점프를 할 권리가 있는 걸까.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 〈주희에게〉에선 벌써 영화 세 편의 주인공이 된 한 장애인의 이야기가 주요하게 등장한다. 휠체어도 아닌 침상, 마치 전동휠체어처럼 침상을 개조해 그 위에 누워 나다니는 중년의 사내 선철규가 그 주인공이다. 뇌성마비로 누워 지내면서도 번개 맞은 것처럼 하도 싸돌아다닌다고 해서 ‘번개 맞은 지렁이’라 불리는 선철규가 꿈인 번지점프에 다가서는 이야기, 그것이 다큐멘터리 〈주희에게〉의 한 줄기를 이룬다.

영화에서 철규와 그를 돕는 이들은 번번이 좌절을 마주친다. 제 발로는 층계참 하나도 올라서지 못하는 이가 저 높은 곳에서 줄을 묶고 뛰어내리겠다니, 평생을 번지점프로 밥벌이해온 이에게도 금시초문이며 황당무계한 일인 것이다. 번번이 거절당하지만, 철규는 주눅 들지 않는다. 그는 휠체어 침상에 오를 때도, 영화에 출연할 때도, 바다 한가운데서 떠 있어 보고 싶다고 했을 때도, 삶의 순간순간 수많은 반대와 마주해왔던 터다. 번지점프 또한 뇌성마비 장애인이 하지 못하란 법은 없다는 것이다. 그런 법이 있다면, 절대 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면 제 앞에 내놓으란 기세로 맞서는 철규의 모습을 관객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게 된다.

장애인이 영화를 찍는 일은 꼭 번지점프 하는 것과 닮았다. 철규가 현장에서 마주하는 표정들, 때로는 직접 발화하는 말들은 장애인에게, 그곳은 그가 있을 자리가 아니라고 전한다. 장애인이 가진 장애, 비장애인보다 운동 수행 능력이 떨어진다는 게 그 근거가 된다. 비장애인에게 맞춤형으로 설계된 틀, 이를테면 번지점프대엔 애초부터 휠체어가 오를 수 없게 설계되었다거나, 영화를 찍는 카메라며 레일 등의 도구도 장애인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또한 장애가 된다. 무엇보다 여러 사람의 협업으로 이뤄지는 영화제작 과정에서, 장애인과의 협업을 불필요하게 감당해야 할 추가적 불편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을 무시할 수 없다. 작품보다 장애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 순간 또한 적잖다. 그 모두가 그저 편견 때문만은 아니다.

올해 반짝다큐페스티발(이하 반다페)에서 첫 다큐멘터리 〈우리가 만든 궤적〉을 상영하고, 2026년 반다페 운영위원으로 합류한 백진이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장애인이랑 뭔가를 한다는 건 기다림의 연속 같아요. 제가 이상한 고집이 있거든요. 무조건적인 도움은 받지 않으려는 거요.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나 없나 판단이 서지 않는 일이 있다면 일단 해봐야 해요. 그래서 판단이 서야 도움을 받죠. 그걸 기다리는 데 최소 5분이에요. 다른 장애인과 작업을 한 대도 그럴 거예요. 세팅을 하고, 그걸 알려주고, 그림을 장애인 작업자에게 그려준다는 게 최소 시간이 1.5배는 걸려요. 저 같은 경우만 하더라도 제가 갈 수 있는 로케이션 장소를 찾기 어려웠어요. 찾더라도 촬영을 협의하기가 어렵고요. 저는 이걸(촬영하기 어려운 상황을) 작품에 담아내면 좋은 작업이라 ‘오히려 좋아’였지만, 아닌 경우가 더 많겠죠. 저는 제가 총괄로 작업을 진행했으니 불만을 가진 사람이 없었지만, 감독이 아니라면 장애인과 작업하기가 어렵겠다고 느꼈어요.”

그저 백진이 감독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익명으로 인터뷰에 응한 장애인과의 협업 경험이 있는 영화 스태프 상당수가 같은 의견을 전했다. 장애인에겐 자신이 오늘 이 현장에 서기까지 장애와 싸워온 이력이 있기 마련인데, 비장애인에겐 그것이 일종의 고집이나 자존심 세우기로 느껴질 때가 잦았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선철규가 번지점프대 앞에서 물러서지 않기를 고집하는 것이나, 백진이 감독이 직접 할 수 없는 일에서만 도움을 구하는 것 같은 일들처럼. 어디 그뿐인가. 지난 글에서 소개한, 현장에서 디렉션이 바뀌는 상황도 시각장애나 청각장애를 가진 이에겐 그저 변경이 아닌 장애로 작용한다. 그들의 삶과 그들이 겪어온 역경을 이해하는 이에게는 감안하여 다루는 것이 마땅한 일이겠으나, 돈과 시간의 효율이 최우선인 영화제작 현장에서는 쓸데없는 비효율적 요소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비장애인에게 시각장애인이 영화를 대하는 입장을 느끼도록 하는 인상적인 실험영화인 〈안보영 프로젝트〉의 노영빈 감독도 비슷한 경험을 말한다.

“일반적인 제작 현장에서 장애인과 함께 촬영할 땐 신경 쓸 지점이 많습니다. 저 역시도 출연해 주신 시각장애인 안나 님과 단순히 어딘가로 이동하는 과정에서까지도 고려해야 할 지점이 많았습니다. 활동지원사를 동원해야 할지 판단해야 하고, 만약 혼자 이동한다면 ‘자비콜’(부산 지역 장애인 콜택시 서비스-편집자 주)과 같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했으며, 배차를 기다리는 시간까지 적지 않게 소요됐습니다.”

그러나 현재적 장애는 어디까지나 현재까지의 어려움일 뿐이다. 노영빈은 주연이었던 안나와 함께 다시 한번 시각장애를 다룬 〈살아, 간다〉라는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기획부터 배리어프리 버전 제작을 염두에 둔 선구적인 작품이다. 현장에서도, 상영 단계에서도 장애를 넘어 전에 없던 시도를 하는 이들이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올해 가치봄영화제를 비롯해 여러 영화제에서 선보인 〈새이와 도하〉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초등학교 장애아동 도우미 제도와 관계된 갈등과 우정을 다룬 영화로, 도하 역할을 실제 지체장애와 지적장애를 가진 서지우 어린이가 맡아 연기했다. 촬영 내내 현장에 동행한 서지우의 어머니는 현장에서의 배려가 적응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제작 현장은 체력적으로 힘들고, 다양한 시공간에서 이루어지며, 많은 이들과 협업이기에 장애인들이 일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에요. 경험 삼아 지원했는데 덜컥 캐스팅되니 무모한 선택으로 모두에게 피해를 줄까 두려웠습니다. 지체와 지적 동반 장애라서 대본을 읽고 캐릭터를 이해하고 연기를 한다는 게 어려웠죠. 감독님과 스태프들이 여러 차례 집 근처로 찾아와 아이와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관계를 형성한 뒤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촬영할 때 감독님께서 “속으로 열까지 센 다음에 고개를 드는 거야” 하고 아이가 이해할 수 있게 장면마다 쉽게 지도를 해주셨어요. 또 촬영하고 나면 꼭 칭찬부터 먼저 해주셨고, 스태프들도 정말 잘하고 있다고 응원을 많이 해주셨죠. 이런 노력들이 있었기에 아이가 감독님이 원하는 장면을 연기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가능하다. 불가능하지 않다. 그저 불편이고, 효율의 저하가 있을 뿐이다. 그 같은 어려움에 맞서 장애인이 배우로, 스태프로 영화에 참여하도록 이끄는 이들이 이렇게 존재한다. 한동안 주요 매체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던 장애인 배우들이 〈우리들의 블루스〉 같은 작품에서 제 모습을 드러냈다. 독립영화 가운데서도 위에 언급한 작품처럼 꾸준히 그 영역과 쓰임이 확장되고 있다. 서로서로 북돋아 더 나은 협업을, 더 효과적인 활약을 이끈다. 장애는 그렇게 삶 속으로, 또 사회 안으로 들어온다.

김성호

김성호

1986년 서울 태생. 영일고등학교, 연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기자, 영화평론가, 서평가, 3급 항해사다. [파이낸셜뉴스] 기자로 6년간 일했다. 3급 항해사 자격 취득 후 상선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다. [오마이뉴스]에 ‘김성호의 씨네만세’, ‘김성호의 독서만세’ 시리즈를 연재 중이다. 저널리즘 에세이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를 썼다.
goldstarsky@naver.com

사진 제공. 필자

2025년 11월 (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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