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텍스트 크기

가

고대비

통합검색

툴팁 텍스트

잠깐! 찾고 싶은 정보와 관련 있는 핵심 단어를 적어주세요.

예시) 장애인예술교육 분야 자료집을 찾고 싶을 땐, "예술교육"처럼 핵심 단어를 적어주세요.

추천 키워드

배리어프리 콘텐츠 검색하기

트렌드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만난 장애예술 모두가 함께 존재하는 축제는 가능할까

  • 이연경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극장운영부 과장
  • 등록일 2025-11-05
  • 조회수 24

트렌드

나에게 영국은 좀 복잡한 나라다. 한 나라이면서 섬이 여러 개, 스코틀랜드며 잉글랜드며 이름도 여럿이라서 헷갈리기 딱 좋다. 내가 익숙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영어도 또박또박한 영국식 발음이라, 낯설게 들릴 때면 대화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일쑤다. 하지만 내 생애 최애 소설인 『해리포터』 시리즈가 태어난 나라이고, 드라마 시리즈물도 미국 드라마보다는 영국 드라마에 손이 더 간다. 게다가 ‘골인’ 외에는 규칙을 전혀 모르지만, 온 마음으로 응원했던 자랑스러운 축구선수 손흥민이 수년간 활약했던 무대 또한 영국이다. 해외 출장을 다녀본 적은 있지만, 영국과의 인연은 2022년 단 한 번이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쓸고 난 뒤, “유럽은 공연장에 마스크 쓴 사람이 한 명도 없다더라”라는 이야기가 오가던 시기였다. 런던과 맨체스터에서 일주일 정도를 보냈는데, 그 후로 어느덧 시간이 흘러 2025년 8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근무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출장을 다녀오게 되었다. 그곳에서 경험한 모든 일과 만남, 새롭게 알게 된 사실, 예전에는 몰라서 보이지 않던 것들 덕분에 기억에 오래 남을 일주일이었다. 과연 전 세계 사람들을 공연과 예술로 불러들이는 이 축제는 얼마나 ‘모두’를 위한 축제일까?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에서는 매년 8월이면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과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이 동시에 개최되고, 로열 에든버러 밀리터리 타투와 에든버러 아트 페스티벌 등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가 함께 열린다. 에든버러는 도시 전체가 거대한 무대 같았다. 거리의 건물마다 공연 포스터가 붙어 있고, 곳곳에서 거리 공연이 펼쳐졌다. 생각보다 도시는 컸지만, 구석구석에서 축제의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공연 시작을 기다리며 티켓을 손에 쥐고 줄 서는 행렬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난 후 사람들은 상기된 얼굴로, 혹은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하고 다시 어딘가로 발걸음을 향했다. 잠시 목을 축이려 카페나 펍에 앉아 있으면 배우들이 반짝이는 눈동자로 공연 전단을 쥐여 주러 다가오기도 했다.

에든버러 페스티벌에는 장애예술을 조명하는 ‘디제너레이트(Degenerate) 페스티벌’이 2002년에 개최되었고,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등 다양한 행사에서 장애예술가들의 작품을 선보인다. 이번 출장은 스코틀랜드 영국문화원(British Council Scotland), 스코틀랜드 예술위원회(Creative Scotland), 에든버러 페스티벌 연합(Festivals Edinburgh) 등 스코틀랜드의 예술 기관들이 함께 만든 ‘모멘텀(Momentum)’ 프로그램을 통해, 스코틀랜드의 여러 장애예술가 및 단체와 협업하는 기관들을 만나는 일정이었다. 모멘텀은 에든버러에서의 네트워크 구축 및 협력 기회 확대를 목표로 하는 대표적인 국제교류 프로그램이다. 스코틀랜드 국립극장처럼 규모 있는 국립단체도 인상적이었지만, 예술산업의 지속성을 지탱하는 풀뿌리 민간단체들의 존재가 더 깊게 남았다.

평균 3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장애예술단체들은 대부분 국가지원금 의존도가 높았으나, 그 지원을 바탕으로 스스로 수익구조를 개발하고 새로운 생장점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공식 회의를 통해 만난 여러 단체는 장애예술 생태계 안에서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하며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컷팅 엣지 극단(Cutting Edge Theatre)은 학습장애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연극을 통한 자기표현의 발견”을 돕는다. 룽 하 극단(Lung Ha Theatre Company)은 장기적인 훈련을 통해 배우의 전문화를 목표로 삼는다. 버드 오브 파라다이스(Birds of Paradise)는 장애예술가가 단체 대표로서 리더십을 발휘하며 예술과 사회적 메시지를 결합하는 모델을 보여준다. 이들 세 극단은 장애예술에서 교육·창작·리더십의 기능을 분담하며 하나의 생태계처럼 유기적으로 공존하고 있었다. 이러한 구조적 다양성은 장애예술이 복지 영역을 넘어 완성된 예술산업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명색이 축제에 왔는데, 미팅만 하고 돌아갈 수는 없었다. 몇 편의 공연을 사전예약했고, 자연스럽게 장애예술 혹은 접근성 서비스가 제공되는 작품들을 선택했다. 브라질의 시각장애인 극단 ‘테아트로 세고’(Teatro Cego)의 〈또 다른 보기(Another Sight)〉는 암전 속에서 향기와 발걸음, 냄새로 이야기를 전하는 4D 형식의 공연이었다. 시각이 사라진 자리에 다른 감각이 확장되는 경험은 신선했지만, 뉴타운이라 부르는 에든버러의 신시가지조차 18세기에 만들어진 도시이기에 전기나 냉방시설은 한국과 비교하기 어려웠다. 숨이 턱 막히는 좁은 공간에서 퍼진 진한 ‘샤넬 넘버5’의 향은 공연 의도와 상관없이 4D 이상의 효과를 냈다. ‘아, 이것이 내가 경험하지 못한, 누군가는 지금도 겪고 있을 일일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공연단체는 자신들이 이런 식으로 ‘간접적 장애인식개선 효과’를 냈다는 사실을 모를지도 모른다.

에든버러는 축제로 전 세계 사람들이 모였지만, 여전히 완전하게 ‘모두를 위한 축제’는 아니었다.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으나, 오래된 건축물의 보존 문제 때문에 경사로나 장애인 화장실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그렇지만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접근성을 갖추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공연에는 영국 수어(BSL) 통역, 자막해설, 휠체어석 안내 등이 기본적으로 포함되어 있었고, 드물게 수어를 창작적 요소로 녹여낸 작품도 있었다.

영국은 다민족 국가로서의 긴 역사가 있고, 2010년 제정된 ‘평등법(Equality Act)’을 바탕으로 ‘평등성·다양성·포용성(EDI)’ 정책이 꾸준히 강화해 왔다. 장애예술단체들은 수혜자나 대상이 아닌 예술 실천 주체로서 이 정책의 중심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 도시의 접근성이 눈에 띄게 뛰어나다고 느끼지는 않았지만, 중세 시대 도로 구조를 그대로 유지한 에든버러의 구시가를 생각하면 이해할 만했다. 구불구불한 길, 오르막과 내리막이 빈번한 도시에서 길을 익히고 접근 가능한 경로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데도 낮이고 밤이고 골목마다 사람들이 예술로 흘러 다녔다. 특히 밤이 되면 도시 곳곳의 공연장에 불이 켜지고, 전 세계의 예술가와 관객이 한자리에 모였다. 언어는 달라도 박수의 리듬은 같았다. 하지만 똑같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 순간마다 나는 축제란 결국 “함께 존재하게 하는 기술”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번 에든버러 출장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그 거대한 축제 속에서도 모두가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다는 확신이었다.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은 대부분 초청이나 지원 없이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축제이기에, 작품을 찾는 사람에게도 공연하려는 사람에게도 쉽지 않다. 하지만 예술로 가득한 8월 한 달 동안, 누군가는 무대 위에서 춤추고, 누군가는 객석에서 웃고, 또 누군가는 거리의 조명과 음악을 조율한다. 예술을 만드는 사람과 즐기는 사람이 같은 공기 속에서 각자의 이유와 명분으로 행하는 곳, 그것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낭만적인 생각이 들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곱씹어보니, 그 현장을 한국의 장애예술가들도 직접 보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영상이나 자료로만 접하는 것이 아니라, 에든버러의 골목을 직접 걸으며 전 세계 예술가들과 어깨를 맞대는 경험을 함께하면 좋겠다. 예술은 교류 속에서 자라나고, 그 출발점은 결국 ‘같이 보고, 같이 느끼는 경험’이다. 꼭 에든버러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상이 나를 잠식하려 기다리고 있는 이곳에서 잠시 벗어나 낯선 곳에서 예술을 불쏘시개 삼아 다시 예술을 꽃피우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언젠가 어떤 지원서의 문장을 새롭게 써 내려가게 하는 힘이 될지도 모른다. 그저 일주일간의 출장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예술과 인간에 대한 신뢰를 다시 확인한 시간이었다. 장애예술이 더 넓은 세계와 연결될 수 있다는 확신, 그리고 예술이야말로 우리가 진짜로 만날 수 있는 언어라는 믿음이 남았다. 언젠가 한국의 장애예술가들이 그곳에 발을 디디게 되기를 꿈꿔본다.

  • 여러 사람이 벽에 설치된 모니터 좌우로 나란히 앉아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모니터 화면에는 모멘텀 소개가 띄워져 있다.

    모멘텀 관계자 미팅

  • 커튼콜에 두 사람이 관객을 향해 인사하고 있고, 객석에서 관객이 손을 높이 들고 박수 보낸다. 무대에는 시소, 사다리 등 기계장치들이 놓여있다.

    크리스틴 타인·로비 싱, 〈이런 기계장치들(These Mechanisms)〉
    68세에 무용을 시작한 크리스틴 타인이 80세를 맞아 기획한 첫 공연. 사다리를 타고, 물통을 들며 몸의 기능과 한계를 예술로 보여준다.

이연경

이연경

2023년까지 약 10년간 (재)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서울아트마켓과 서울국제공연예술제를 담당하며 한국 공연예술과 세계가 만날 수 있는 접점을 마련하고자 했다. 짧은 기간 동안 독립 프로듀서의 길을 걷다가 모두예술극장 개관과 더불어 장애예술을 접하고, 본격적으로 다양한 예술가들과 작업하며 모두를 위한 공연을 만들고자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 입사했다. 현재는 극장운영부에서 공연을 기획하고 있다.
emilia@kdac.or.kr

사진 제공. 필자

2025년 11월 (69호)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제공하는 자료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 4유형 : 출처표시,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의 조건에 따라 이용이 가능합니다.

댓글 남기기

제 2021-524호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WA-WEB 접근성 (사)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 | 1.업체명: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주소: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고 112 3.웹사이트:http://www.ieum.or.kr 4.유효기간:2021.05.03~2022.05.02 5.인증범위:이음온라인 홈페이지 | 「지능정보화 기본법」 제47조제1항 및 같은 법 시행규칙 제9조제5항에 따라 위와 같이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를 발급합니다. 2021년 05월 03일 사단법인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