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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음광장 장애예술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비평 프로젝트② 춤과 말의 경계가 희미해진 공간

  • 서수빈 공연예술비평가
  • 등록일 2026-01-07
  • 조회수 62

이음광장

전통예술을 농인 공동체와 함께 즐겨본 적이 있었던가. 전통공연예술이 청인 중심의 문화로 공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난 이후, 비평은 어떤 이야기를 해볼 수 있을지에 관한 많은 생각이 든다. 전통예술에서도 장애 담론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는 반가운 마음이 들었지만, 한편 농인 당사자가 아니며 농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은 청인이, 천하제일탈공작소가 소리를보여주는사람들과 함께한 탈춤과 수어가 결합한 공연 〈춤이되고 말이되고〉(주1)를 어떤 관점으로 리뷰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분명 ‘청인’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리뷰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농인의 문화를 이해하여 그들의 입장을 대변해서 써보리라는 다짐은 되려 시혜적인 태도임이 분명하며,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이것은 나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이기도 하다. 나 또한 청인이며, 이미 청인 중심의 문화로 자리 잡은 (전통)음악을 전공하는 향유자로서의 한계를 분명히 밝히고 시작하려 한다. 전통예술과 수어라는 두 문화가 어떻게 접합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에 관한 질문을 해보고자 한다. 물론 이러한 논의에 앞서 에이블리즘(ableism)에 대한 경계는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자막해설과 수어통역이 사라진 무대

보통 농인을 위한 접근성이 적용된 공연의 경우 자막해설과 수어통역이 제공되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무대 뒷벽, 무대 양옆 모니터 등에 자막해설이 제공되거나, 수어통역사가 무대 한편에서 수어통역을 진행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그림자 수어통역으로 극 중 인물 곁에 수어통역사가 붙어 한국어를 한국수어로 변환하며 함께 극의 한 장면을 만드는 등 점차 수어통역 자체를 공연 내부로 통합하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주2) 무대의 장면과 통역을 번갈아 바라보아야 하는 장벽(barrier)을 무너뜨리고자 함이다. 자막해설과 수어통역의 시도에서 접근성이 멈춘다면 구색만 맞추는 설정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천하제일탈공작소는 일찍이 〈풍편에 넌즞 들은 아가멤논〉에서부터 수어통역을 제공하면서 접근성을 지속적으로 시도해 왔으며, 이번 공연 〈춤이되고 말이되고〉에서는 무대 위에 오른 연희자(퍼포머) 모두 수어를 사용하여 통역사가 붙지 않은 상태로 공연 전체를 구성해 갔다. 수어가 춤인 듯 춤이 수어인 듯, 시각 언어와 몸짓 언어를 (청인 기준의) 무언극 형태로 풀어나갔다.(주3) 모든 내용을 다 이해하지는 못하였을지라도 무대 위에 등장하는 수어와 춤의 내용을 일대일로 번역할 필요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공연의 흐름을 이해하고 따라가는 데 어렵지 않았다.

음악 활용에 관한 문제

공연이 끝난 뒤, 많은 질문을 품고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했다. 실제 이 공연은 한국어와 한국수어라는 두 언어가 공존한다고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한 가지 언어가 더 존재했다. 바로 음악이라는 소리 언어이다. 세 가지 언어의 공존을 보며 나는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명징하게 들리는 저 소리 언어에 대해서는 어떠한 고려가 있었을까? 분명하게 들려오는 신시사이저와 베이스, 대금의 C단조 음계에 기반한 선율 음악은 농인을 고려한 음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굿장구의 진동만이 극장의 바닥을 통해 전달되어 느낄 수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농인 공동체에게 ‘음악’이란 청인의 전유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청취하는 행위 자체는 청력 기관을 통해 ‘듣는 행위’에만 있지 않기 때문이다. “청취하는 행위는 단지 소리라는 감각적 요소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 ‘떨림’에 접촉하는 것이다.”(주4)

음악 문화가 청인 중심으로 형성되었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그러나 우리는 음악을 다른 감각의 차원으로 경험하게 하는 시도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음악의 3요소가 선율, 화성, 리듬이라지만 이것은 서양음악 중심이고 더 나아가 청인 중심의 사고방식이다. 특히, 전통음악은 호흡과 움직임, 떨림(진동)을 느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음악을 새롭게 감각하는 차원의 시도는 어려웠을까. 무대 위 악사들의 연주를 통해 명징하게 들려오는 조성 음악에 기반한 이지리스닝(Easy Listening)화된 음악은 청인에게도 전통음악의 특색을 전부 탈락시킨 타자화된 음악에 불과했으며, 농인 관객 또한 고려하지 않은 음악이라고 느껴졌다. 한편, 굳이 음악이 필요했을까 질문을 던져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제4과장을 시작하며 퍼포머 한 명이 무대에서 핀조명만을 받은 채 수어 시 퍼포먼스를 행하였다. 객석에는 농인 커뮤니티에서 온 가족 단위의 관객이 많았는데, 이때 아이들이 소곤대고, 몸을 움직이며 끽끽 대고, 무언가를 두드리는 소리들이 모여 하나의 배경음악이 되었다.(주5) 청인 관객이 들을 수 있는 ‘음악’은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았을까.

  • 큰 원으로 비추는 조명 아래 빨주노초파남보 색깔의 트레이닝복을 입은 여덟 명의 출연자가 서거나 앉거나 몸을 낮춘 채 다른 동작으로 움직이고 있다. 뒤쪽에는 희미한 조명 아래 악사들의 실루엣이 보인다.
  • 큰 원으로 비추는 조명 아래 다른 색깔의 트레이닝복을 입은 네 명의 출연자가 경쾌한 몸짓과 표정으로 팔을 크게 들어 올린 동작으로 함께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 무대 위에서 하얀 셔츠로 갈아입은 여러 명의 출연자가 왼팔은 얼굴 아래에 가로로 놓고 오른팔은 머리 위로 높이 든 채, 한 발로 겅중 뛰며 탈춤을 추고 있다.
  • 공연이 끝나갈 무렵 관객들이 무대로 내려와 출연자들과 어우러져 함께 춤춘다.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다양하고 자유롭고 즐거운 모습이다.
주1.천하제일탈공작소 제작・서울남산국악당 공동기획 〈춤이되고 말이되고〉 2025.12.15.~12.16. 서울남산국악당. 천하제일탈공작소는 3년 전부터 대안학교 소리를보여주는사람들에서 탈춤 교육을 해왔고, 그 시간이 쌓여 공연을 올리게 되었다. 공연정보 : 이음온라인 [문화소식]
주2.국립극단이 명동예술극장에서 올린 연극 〈십이야〉(2025), 모두예술극장 개관공연 〈푸른 나비의 숲〉(2023/2024) 등에서 그림자 통역이 시행되었다.
주3.이 말에는 모순이 있다. 사실 ‘수어’라는 언어가 존재하였기에 ‘무언(無言)’이라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나 청인인 나에게 그저 소리 없는 극을 ‘무언극’이라고 설명해 왔으며, ‘무언(無言)극’이라는 개념 또한 청인 중심의 개념이었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주4.권희철 평론집 『정화된 밤』 중 「시의 음악」, 문학동네, 2022년, 21쪽.
주5.아이들도 무대 위 퍼포먼스가 하나의 언어로 전달되고 있음을 이해하였는지 크게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소곤댔다. 성인의 기침 소리의 데시벨이 더 크다고 느껴졌을 정도였으니까.
서수빈

서수빈

우리 삶 속에서 자연스럽다고 여기는 것들을 늘 의심하고 질문하며 살아간다. 전통예술(국악)을 공부하며 사회 속 다양한 공간에서 펼쳐지는 예술적 실천에 주목하고, 소수자 담론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공허한 선언을 외치기보다는 침묵하게 된 목소리들에 주목하며 이들과 함께 망명하는 비평가가 되고 싶다.
tjtnqls991005@gmail.com

사진 제공.천하제일탈공작소

2026년 1월 (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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