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우주와 서은정의 2인전 《침묵과 외침》은 청각장애라는 공유지를 통해 소리라는 감각의 부재를 ‘침묵’과 ‘외침’이라는 각자의 표제어로 구성한 전시이다. 표제어 ‘침묵과 외침’은 소리의 상태를 통해 가시적인 세계와 비가시적인 세계를 포괄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따라서 전시는 음성 중심의 소리에 방점을 두는 것처럼 다가왔다. 청각장애인에게 소리란 비정형의 매우 낯선 세계와 다름없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소리는 상상의 차원이 된다. 소리와 언어는 다르다. 소리가 질료라면, 언어는 질료를 통해 의사를 전달하는 소통의 매체가 된다. 그간 장애의 세계는 당사자성보다 정상성을 중심으로 설계되었다. 비교적 최근에서야 하나의 세계로 인식하려는 노력과 실천이 이뤄지는 추세다.
존재로서의 소리
이우주의 세계는 ‘파동’이라는 개념을 통해 진동과 흐름을 가시화함으로써 소리를 감각적인 경험으로 전유한다. 작가가 체험한 몸의 경험을 음성이 아닌 다층적인 감각으로 시각화하는 것이다. 그의 회화는 청각을 음성언어로 제한하는 고정된 사고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존재하는 모든 것에서 생성되는 존재의 형태로서의 ‘소리’를 감각한다. 합지와 분채를 사용해 층층이 쌓아 올린 얇은 겹들을 통해 가청을 위한 소리가 아닌 존재를 위한 소리—파동의 서로 다른 질감, 물성, 형태—의 아상블라주(집합과 조립)가 이뤄진다. 이는 마치 음악이 아닌 자연의 소리나 일상 소리의 존재를 발췌하려는 쇤베르크의 구체 음악에서 비롯된 사운드아트와도 공명하는 지점이다. ‘존재론적인 소리’는 존 케이지가 〈4분 33초〉를 통해 시각과 언어 중심의 세계관을 벗어나 ‘존재로서의 소리’라는 진리를 누구라도 발견하기를 바랐기 때문에 발견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우주의 작업은 단순히 소리를 되찾기 위한 ‘부재의 획득’이 아니라 회화를 통해 소리의 세계를 가시화한다. ‘침묵’은 사전적으로 ‘말하지 않은 상태’라고 정의한다. 서구 언어학은 체계적인 문법으로 이뤄진 표준의 언어(langue)와 말(parole)을 구분한다. 여기에서 말이란 몸짓과 표현 그리고 방언처럼, 표준이 아닌 개성, 자율성, 지역성, 신체적 차이를 드러내는 가능성의 언어이다. 구조주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음성 중심주의를 비판하며, 음성(우월)과 문자(열등)와 같은 서구 사상의 전통적인 이항대립 구도를 폭로하고 해체하려 했다. 서구 문명의 시원인 신학에서의 목소리를 절대적인 진리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목소리는 거부할 수 없는 존재로 그 위력을 드러낸다.
새로운 질서로 생명력을 피우는
서은정의 회화는 초현실주의적인데, 낭만적인 정서와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가 혼합되어 있다. 여기에 더해 내부에서는 일종의 관찰자인 요정 혹은 작가의 얼터 에고(또 다른 자아)가 등장하곤 한다. 서양미술사를 살펴볼 때 꽃을 주제로 한 정물화는 주로 17세기 네덜란드와 플란데런 지역에서 유행한 정물화의 한 장르인 ‘바니타스’와 같이 삶의 덧없음을 드러내는 미학적 장치로 활용되었다. 당시 미술사를 좇아보면 꽃을 주제로 한 회화는 여성 화가의 전유물로 폄훼하여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이러한 관행은 장애미술 현장에서도 적잖게 발견되는 장면이다.
서은정 작가가 표현한 꽃은 생명력의 절정에 도달했음을 선언한다. 겨우내 응축된 기운이 폭발하는 시기이다. 검은색 바탕 위에 흰 꽃잎이 반쯤 입을 벌린 〈백작약〉(2025)은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의 육감적인 꽃을 연상시킨다. 어두운 화면에 아크릴 물감의 다소 텁텁한 질감은 비밀스러운 정원의 정서를 끌어올린다. 작가는 정원 속에 자신을 구성하는 일종의 토템―애착 인형, 꿀벌 요정 등—을 배치하여 정원이라는 세계 속에 영토화를 시도한다.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는 이러한 과정을 리토르넬로(ritornello)라 불렀다. 단순한 음악적 반복구를 넘어 혼돈 속에서 감각적 질서를 만들어내어 ‘영토’를 설정하고 탈영토화를 일으키는 창조적 배치물로서 리토르넬로는, 자신의 영토임을 알리는 새들의 지저귐(외침)으로 나타난다.
유기적인 세계의 유영과 생명의 탐미
이우주의 작업이 물을 연상시킨다면, 서은정은 땅을 상상하게 한다. 이우주가 자유롭게 세계를 떠돌아다니는 유기적인 세계를 주목한다면, 서은정은 어머니가 손수 가꾼 정원에서 생명의 성장을 관측하고 탐미하며 견고하게 뿌리를 내린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한인 철학자 한병철은 베를린의 혹독한 겨울을 견디기 위해 밝은 꽃으로 채워진 정원을 소망한다고 밝힌다. 그래서 겨울에 핀 꽃으로 만들어진 정원을 상상한다. 한겨울의 정원에 꽃을 피우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그는 ‘형이상학적 소망’을 깨운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형이상학적 소망이란 자연 그 자체로서의 세계라고 불러도 된다. 그는 세상이 지나치게 비물질화되어가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숨기지 않는다. 폴 세잔이 생트 빅투아르 산에 몰두하는 것은 괜한 아집이 아니었다. 세잔은 회화를 통해 진짜 세계를 관측하고 싶었다. 그는 자연의 광경을 (재)구성하기 위해 자연을 정밀하게 관측하되, 그 과정을 과학적 체계로 구체화하기보다 신체를 통하여 느끼고자 했다. 세잔은 이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대상의 겉모습이 아닌, 산이 품고 있는 생명력이라는 보이지 않은 차원의 세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침묵과 외침》은 서로 주제를 바꾸어도 그 의미가 통하는 전시이다. ‘말-없음’은 할 말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침묵은 새로운 생명을 키우기 위한 기다림의 상태와 같다. ‘말-바깥의 소리’란 아무리 제어하고 통제하려 해도 생성되는 생명력을 의미한다. 그것은 마치 겨울 정원이 얼어서 단단해진 지면 아래에서 다가올 봄을 기다리며 기운을 끌어오는 시기로 비유할 수 있겠다. 생명은 항상 소리를 동반한다. 동시대 사운드아트가 생태주의를 표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음성 중심에서 소리의 세계로의 접안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품으려는 포용성이 나타나는 변곡점이 아닐까.
서은정 〈엄마의 정원〉, 72.7×100cm, 캔버스에 아크릴, 2020
서은정 〈백작약〉, 40.9×53cm, 캔버스에 아크릴, 2025
이우주 〈음양조화〉, 24.5×35cm, 장지에 분채, 2025
이우주 〈생명〉, 30×30cm, 장지에 분채, 2025

침묵과 외침
우주스튜디오 | 2025.11.26.~12.8. | 갤러리 hoM
‘두 개의 시선’이라는 부제를 단 서은정・이우주 2인전. 어떤 존재는 침묵으로 자신을 증명하고, 자신을 낯선 타인처럼 바라보며 가장 깊은 내면의 의미를 묻는다. 또 다른 존재는 외침으로 세상에 나선다. 존재함에서 비롯된 확장, 세상과의 적극적인 대면이다. 이우주 작가와 서은정 작가는 ‘침묵’과 ‘외침’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이우주 작가는 자신의 신체 특성을 자신이 아닌 것처럼 바라본다. 서은정 작가는 자신을 낯선 모습으로 표현하며 자신과 거리를 두려 한다. 이들은 자신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자신을 스스로 깨달아 간다. 양극단에 있는 듯했던 이 두 개념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모인다. 이 세상에서 나는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
조형예술을 전공한 서은정 작가는 주로 자연과 식물을 매개로 자신만의 동화적인 상상력을 더한 작업을 해왔다. 동양화를 전공한 이우주 작가는 음성・텍스트・수어 중심체계 언어에 대한 복합적인 인지 감각을 바탕으로 현대미술적인 요소를 접목하여 초현실적인 작업세계를 구축하고자 한다.
∙ 전시정보 : 이음온라인 [문화소식]

정현
미술평론가, 독립큐레이터. 인하대학교 조형예술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고, 장애인예술 비영리단체 잇자잇자 사회적협동조합을 운영하고 있다. 예술가와 정체성의 상관성 연구로 프랑스 파리대학에서 조형예술학 박사를 받았다. 한국 시각예술 현장을 바탕으로 비평 생산을 지속하고 있으며 《이상뒤샹》(2013), 《시간의 밑줄》(2015) 등의 전시를 기획했다. 공저로 『Art Cities of the Future_st Century Avant-Gardes』(2014), 『큐레토리얼 실천 담론』(2014), 『NFT, 처음 만난 세계』(2022) 등이 있다.
hyunjung68@inha.ac.kr
사진 제공.우주스튜디오(촬영. 쥬노스튜디오)
2026년 1월 (71호)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제공하는 자료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 4유형 : 출처표시,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의 조건에 따라 이용이 가능합니다.
댓글 남기기
이전글 보기
다음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