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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리뷰 2026 모두예술극장 기획 초청 〈브레인〉 하나의 인간, 하나의 몸은 존재하지 않는다

  • 이경미 연극평론가
  • 등록일 2026-06-24
  • 조회수 24

작품읽기

모두예술극장 해외초청공연 〈브레인〉은 일본 오사카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극단 타이헨(TAIHEN)의 작품이다. 타이헨의 김만리 예술감독은 1953년 오사카에서 태어난 재일조선인 2세다. 장애인 해방운동에 몸담았던 그는 1983년 중증신체장애인으로 구성된 극단 타이헨을 결성해 43년간 80여 편의 작품을 만들어왔다. 〈브레인〉은 그 축적 위에서 뇌·신체·인공지능의 관계를 통해 ‘생명의 존엄’을 묻는다.

공연이 시작되면 김만리 연출을 포함한 ‘타이헨’의 중증 신체장애 배우 여덟 명이 휠체어와 같은 보조기구 없이 바닥에 누운 채 천천히 몸을 굴리며 어두운 무대 위로 등장한다. 드라마틱한 파동이나 전환도 없다. 여덟 명의 몸은 계속 구르거나 뒤집고 느리게 기다가 서로 포개져 하나가 되기도 하면서 공간 안에 묵묵히 하나둘 리듬을 쌓아간다. 그 리듬은 어느 순간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넘어, 인간 세상이 당연한 듯 공유하고 있는 몸 자체에 관한 질문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정상’의 몸에 스스로를 가둔 인간

본래 인간은 자신의 몸을 세계와 분리된 것이 아니라 동일한 재료로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했었다. 물과 흙, 공기와 불과 함께 섞여 있고, 자연을 포함한 세상의 다양한 공동체 활동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의미를 갖는 우주의 한 부분이라 여겼다. 하지만 고대 고전주의에서 시작해 서구 르네상스를 거치며 인간은 ‘하나의 인간’, ‘하나의 몸’을 향한 환영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 환영의 끝에는 똑바로 서서 두 팔과 두 다리를 활짝 벌려 세상, 더 나아가 우주라는 공간을 상징하는 원과 사각형을 마치 측정하고 통제하는 듯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인체 비례도 ‘비트루비우스의 몸’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백여 년간,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우리는 곳곳의 파시즘과 전쟁, 차별과 배제, 혐오와 약탈, 생태 파괴 등으로 그 몸의 환영에서 비롯된 온갖 불합리한 실체를 오롯이 체감했고, 체감하는 중이다. 한편에서 많은 사람들이 심각하게 되묻는다. “인간은 바닷가 모래사장에 그려놓은 얼굴처럼 사라질지도 모른다”라는 미셸 푸코의 말이 그냥 경고가 아니라 점점 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되어가는 지금, 과연 언제까지 인간이 세상의 절대 중심이라는 생각으로 완벽한 인간에 대한 환영을 이어갈 수 있을까.

  • 흰색 레오타드를 입은 공연자 여섯 명이 어두운 무대 바닥에 나란히 엎드리거나 몸을 웅크린 채 밀착해 있다. 가장 오른쪽의 한 명만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나머지 공연자들은 머리를 숙이거나 서로 몸을 맞댄 채 바닥에 가깝게 자리하고 있다.

    극단 타이헨 〈브레인〉 ⓒ 옥상훈

몸의 리토르넬로, 인간과 세상을 다시 소환하다

〈브레인〉에서는 이제껏 인간의 영토 바깥으로 내몰렸던 몸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더 늦기 전에 스스로 인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것을 제안하고 있다. 휴머니즘의 인간은 이상적인 것도 아니고 객관적 통계의 평균이나 중간치도 아니며, 오히려 자신들을 포함해 모든 존재를 함부로 평가하고 통제하고, 정해진 위치에 할당하는 폭력에 다름 아니었다는 것을 말이다. 〈브레인〉은 모든 이분법의 틀을 넘어 횡단하면서 스스로 주체성의 틀과 영역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놓쳐서는 안 되는 중요한 질문에 기대어 내 안에 여러 답이 하나둘 쌓여가는 중에, 어느 순간 무대와 객석 사이 천장 어디쯤에서 김만리의 휘어진 척추와 닮은 거대한 형상이 내려와 걸린다. 인간을 더 많이, 더 멀리 볼 수 있고 더 높은 곳과 가까이 있는 정신 그 자체로 세상 한가운데에 똑바로 꽂아 세운 직립보행에 대해 생각해 본다. 하지만 공연은 바로 이어 무대 후방 스크린에 경추, 요추 등을 확대해 보여주면서, 인간의 몸을 이상적으로 절대화한 척추는 그냥 하나의 척추가 아니라 그 안의 보이지 않는 다양한 입자들을 통해 비로소 만들어진 것이 아니겠냐고 질문한다. 그 질문은 이어 인간의 최신 생산물인 기술·기계로도 이어진다. 컴퓨터, 인공지능 등 그 무엇이 되었든 간에, 모든 기계도 유리와 플라스틱, 알루미늄으로 덮여 있는 외골격 이면에 성형플라스틱 키와 컨트롤러, 디스크 드라이브, 실리콘 웨이퍼, 플라스틱 리본 케이블 등 수많은 물질이 다양한 형상과 질감으로 존재하는 하나의 복합체이다. 〈브레인〉은 여기에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인 듯한 사운드를 포갰다. 이로써 공연은 척추, 기계와 마찬가지로 식물과 동물 등 모든 비인간, 비유기체 존재들 역시 절대 인간 중심적 관점으로 접근하고 판단할 수 없는 무수한 다른 존재의 합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순간 어두운 무대가 가이아의 자궁처럼 다가왔다.

공연 내내 여덟 명의 몸은 어떤 합을 향해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중력에 대응해 각자가 자기 몸이 가진 고유의 에너지와 리듬을 공간에 새기면서, 바로 이 차이 하나하나가 다름 아닌 춤이고, 다름 아닌 공동체가 아니겠냐고 질문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오로지 저 먼 곳, 저 높은 곳을 향했던 나의 시선과 감각이 아래로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높고 낮음 같은 위계는 없다. 모두가 평평하게 존재하면서, 자신들의 몸으로, 자기가 가진 고유한 리듬으로 움직이면서 서로 엮이는 게 진짜 세상이다. 〈브레인〉은 그렇게 거듭 무대에 쌓은 질문을 통과하며 천천히 몸을 일으켜 두 다리로 서는 김만리를 비롯한 두 배우의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진정한 존재는 무엇인가, 인간은 이제 어떤 모습 어떤 태도로 이 세상에 마저 존재해야 하는가.

  • 어두운 무대 중앙 하단에 붉은색 레오타드를 입은 김만리 감독이 두 다리를 옆으로 뻗어 앉아 두 손을 앞에 모으고 있다. 무대 상단에는 구부러진 척추뼈 형태의 구조물이 천장에서 내려와 있다. 공연자와 구조물 사이의 공간은 완전한 어둠으로 채워져 있다.
  • 어두운 무대 위에 파란색 레오타드를 입은 공연자 여섯 명이 바닥에 엎드리거나 옆으로 누운 채 흩어져 있다. 무대 뒤쪽 상단에는 세로로 긴 직사각형 스크린이 매달려 있으며, 화면에는 청록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추상적 영상이 재생되고 있다. 무대 바닥에는 보라빛 조명이 깔려 있다.

극단 타이헨 〈브레인〉 ⓒ 옥상훈

장애예술이 품은 미학적이고 정치적인 힘을 발견하다

〈브레인〉은 그 안의 모든 존재를 낮고 느린 몸들의 리듬으로 하나하나 소환하면서, 곧게 선 몸으로 절대적인 지고의 가치를 향해 질주하는 인간의 환상에서 이제 그만 벗어나자고 제안하고 있었다. 그 제안에 나의 몸이 진심으로 반응한다. 맞다. 모든 존재는 똑같은 크기와 본성을 지닌 근본적인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모두는 동일한 채로 존재하는 듯해도 그 이상으로 다양한 존재로 구성된 열린 복합체다. 어느 하나의 관점과 가치로 판단할 수 없고 접근할 수 없다. 그러니 이제 더 늦기 전에 모든 인간 중심적 틀에서 벗어나, 세상을 향해, 인간 못지않게 세상을 구성하는 존재자들을 향해 다가가기로 하자. 장애예술이 가진 더 없이 미학적이면서 더 없이 정치적인 힘을 또 한 번 발견한다.

  • 파란색 레오타드를 입은 공연자 다섯 명이 진흙이 깔린 원형 무대 위에 있다. 한 명은 무릎을 꿇고 두 팔을 위로 뻗어 머리를 젖히고 있으며, 나머지는 서 있거나 바닥에 엎드린 채 각자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다. 공연자들의 몸과 무대 바닥에 진흙이 묻어 있고, 공중에도 진흙 파편이 흩뿌려져 있다.

    극단 타이헨 〈브레인〉 ⓒ 옥상훈

브레인

브레인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2026.5.15.~5.17.|모두예술극장

〈브레인〉은 일본의 신체표현 극단 타이헨이 43년간 축적해온 신체 탐구의 연장선에서 선보이는 신작으로, 뇌·신체·인공지능의 관계를 통해 ‘생명의 존엄’을 묻는 작품이다. ‘뇌가 신체를 통제한다’는 통념을 뒤집고, 신체를 우선에 두는 타이헨 고유의 철학을 심화하며, 뇌와 신체의 위계를 해체하고 하나의 유기적 존재로 사유하고자 한다. AI가 인간의 움직임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한계를 통해,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정상성’의 기준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AI 기술을 활용해 이 질문을 라이브 퍼포먼스로 구현하며, 기술과 효율, 속도를 중시하는 동시대 사회 속에서 인간과 생명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을 제안한다. 한편, 공연과 함께 43년 예술을 담은 아카이브 전시 《디바만리 D.Va.Man.Ri》도 연계 진행되었는데, 타이헨을 이끌어온 김만리가 32년간 발행해 온 잡지 『이마주(IMAJU)』를 전시의 척추로 삼았다.

∙ 공연정보 : 이음온라인 [문화소식]
∙ 전시정보 : 이음온라인 [문화소식]

이경미

이경미

연극학자, 연극평론가. 홍익대 교수. 고려대학교와 독일 뒤셀도르프 대학에서 공부했다. 기존의 경계를 넘어 하루가 다르게 확장해 가는 현대공연예술의 지형 변화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국내 창작자들의 작업을 미학적 차원에서 분석하고, 논문에서 리뷰까지 다양한 형태의 글쓰기로 실천하면서, 작업과 이론이 더 가깝게 상생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한 편의 좋은 공연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소중한 동력이라는 것을 굳게 믿고 있다.
purun8@naver.com

사진 제공.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026년 6월 (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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