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시선
나는 일곱 살 때까지 역동적인 몸짓과 표정으로 소통했다. 글보다 그림을 읽었다. 듣고 말하기에 익숙지 않았기에 보이는 것에 집중했다. 엄마는 내가 더 잘 듣게 되기를 바라며 밤마다 그림책을 읽어주셨다. 하지만 나는 엄마의 입 모양보다 그림책 속 그림에 몰두했다.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는 등장인물의 행동과 표정, 배경색의 변화로 충분했다. 나는 엄마와 소통하는 것보다 그림책 속 등장인물과 대화하는 것이 좋았다. 엄마는 좀처럼 표정을 짓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마가 표정 없이 입만 옴죽거리면, 나는 오만가지 추측을 하며 엄마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소리가 없던 내 유년기의 교과서는 애니메이션이었다. 〈짱구는 못말려〉, 〈네모바지 스폰지밥〉, 〈패트와 매트〉, 〈월레스와 그로밋〉, 〈톰과 제리〉, 〈도라에몽〉, 〈아기공룡 둘리〉를 반복해서 봤다. 대사를 알아듣지 못해도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등장인물의 표정과 몸짓으로 기쁜지, 슬픈지, 화가 났는지, 장난을 치는지를 짐작했다. 사람의 표정과 몸짓을 오래 바라보는 습관이 자연스레 몸에 배었다.
일곱 살 무렵 인공와우를 착용한 학생들이 다니는 농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복지원에서 살았다. 언어치료와 청능훈련에 집중해 청력을 기르기 위한 결정이었다. 그곳에서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선생님의 입 모양이 아니라 처음 보는 또래 친구들의 ‘수어’였다. 그들은 현란하고 빠른 손놀림으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나는 그 움직임을 한참 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손으로 온전한 대화가 가능하다니,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뉴스 화면 아래의 동그라미 속 수어통역사를 본 적은 있었지만, 그것이 농인의 언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던 때였다.
수어로 대화하는 것은 내게 타인의 표정과 몸짓을 단순히 관찰하고 이해하려 애쓰던 단계를 넘어, 비로소 사람과 사람이 대등하게 연결되는 짜릿한 ‘소통’의 경험으로 다가왔다. 친구가 손끝을 부딪치며 내게 먼저 건넨 몸짓 하나에 어두웠던 나의 세계가 환해지는 듯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시절 농학교와 복지원은 수어보다 듣기와 말하기를 우선하는 곳이었다. 듣기와 말하기 훈련은 빽빽하게 계속되었고, 듣고 말하기를 익히는 데 방해된다며 수어 사용을 저지하는 선생님이 다수였다. 흐려져 가는 내 시각적 감각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일깨워 준 ‘그림’의 기억 덕분이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달리 표정이 다양한 분이셨다. 말보다 다정한 표정과 몸짓으로 먼저 다가와 주셨다. 아버지는 내 초상화와 토끼 그림을 그리고는 내게 보여주며, 정답은 없으니 물 흐르듯이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림을 그리면 된다고 말씀하셨다. 내 손에 연필을 쥐여주던 아버지의 마음은 내 유년기 중 가장 편안하고 안전한 언어였다. 음성으로 대화를 주고받는 사람들 틈에서 소외감을 느낄 때면 나의 가장 안락한 언어를 찾았다. 크레파스로 스케치북에 꽃과 나무, 토끼를 그렸다. 크레파스가 닳아서 더 이상 손에 쥘 수 없게 될 때까지 스케치북 면을 채우기도 했다.
이십 대 초반, 대구미술관에서 추상화를 바라보며 시를 창작했던 기억이 있다. 돌이켜보면 그림 노트에 습작 시를 적어 내려가던 그 순간부터, 내게 그림과 시는 언제나 하나였다. 오디즘 사회는 나에게 눈치 보기와 침묵을 강요했지만, 역설적으로 내 시각적 감각을 더욱더 날카롭게 만들었다. 그림책 속 등장인물의 표정을 읽던 아이는 이제 시집 속 활자의 결을 응시하고, 종이 위에 선을 긋던 손끝으로 시를 쓴다. 그림과 시는 소리라는 제약으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한다. 사람의 표정과 몸짓을 오래도록 바라보던 시선은 이제 시적 단어를 사유하는 깊은 눈이 되었다. 나는 앞으로도 이 벼려진 시각적 감각으로 그림의 세계를 모험할 것이다. 직접 그린 그림에서 시적 재료를 찾고, 내가 그린 그림의 움직임을 상상할 것이다. 음성 중심의 세상이 결코 침범할 수 없는, 오직 농시인인 나만이 펼쳐 보일 수 있는 ‘시선(視線)의 세계’를 향해서.
색연필로 그린 〈사랑에 빠진 토끼〉
상사병에 걸려 뜨겁게 열병을 앓는 나를 표현한 토끼의 초상이다. 내면에서 터져 나온 붉은 마음이 눈꺼풀을 대신해 하트로 가득 들어차고, 벼려진 검은 선의 경계는 폭발할 듯한 사랑의 열기를 단단히 감싸안고 있다.
아이패드로 유화 느낌을 내며 그린 〈두 유 라이크 케이크?〉
케이크는 더 이상 생일이나 특별한 날만을 위한 디저트가 아니다. 평범하고 지친 하루라도 케이크 한 입을 머금는 순간 마음이 녹아내리는 기쁨을 선사한다. 술 한 잔의 위로 대신 케이크 한 조각으로 마음을 다독이고 싶은 진솔한 마음을 담았다.

옥지구
1998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다. 슬픔을 억누르기 위해 유치한 장난을 연구하는 내향인. 현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재학 중이다. 시집 『어느 누구에게도 다정함을 은폐하기로』(출판사 핌, 2024), 일기 에세이 『어차피 삶은 이미 아름다워질 준비가 돼 있어』(부크크, 2024)를 출간했다.
ninexnain9@gmail.com
사진 제공.필자
2026년 8월 (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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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솔하여 아름다운 글 잘 읽었습니다. 옥지구 시인님이 펼쳐 나갈 세계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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