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조명
그 태생부터 발레는 음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유지해 왔다. 안무와 실연에서 주옥같은 선율과 리듬에서 받는 영감이 상당한 만큼, 음악을 제대로 듣지 못한 채 춤을 만들고 춘다는 것은 어려운 작업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청각장애를 지닌 무용가가 무대 위에서 관객을 감동하게 만든다는 것 자체가 가늠하기 힘든 노력과 인내를 방증한다. 그녀의 예술가적 가치는 잘 들리지 않는 상태로 무용계에 진입했다는 데만 있지 않다. 자신의 감각적 조건을 받아들이면서 음악과 움직임, 언어와 소통, 장애와 비장애의 관계를 끊임없이 재정립해 왔다는 데 있다. 자기만의 고유한 감각을 통해 음악과의 새로운 하모니를 담은 춤을 실현한다는 점에서 순도 높은 예술적 행보를 보여준다.
음악을 시각으로, 다시 움직임으로
1988년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난 고아라는 생후 4개월 무렵에 감각신경성 난청으로 청력을 잃었고 보청기를 통해 제한적으로 소리를 인지한다. 일곱 살 때부터 발레를 시작했고, 중학교 2학년 때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 발레 아카데미에서 연수한 바 있으며, 덕원예술고등학교와 경희대학교 및 동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이를테면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재원이다.
발레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음악에 관한 그녀만의 탐구와 실천을 확인할 수 있다. 음악의 선율을 섬세하게 들을 수 없다 보니 박자를 세면서 교수자의 입 모양과 몸짓을 관찰하여 동작을 익히고,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바닥의 진동이라든가 손을 통해 전신으로 전해지는 감각까지 깨우치며 새로운 방식의 분석적 습득 방식을 구축해 갔다.
이처럼 고아라는 음악을 시각화하여 기억에 담아낸 뒤, 끊임없이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 자기만의 신체 감각으로 변환해 가는 과정을 거쳐 발레리나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수많은 콩쿠르에 참가하여 비장애 무용수들과 경쟁하면서, 우리나라 대표 콩쿠르 중 하나인 한국발레콩쿠르에서 대상까지 거머쥐었다는 것은 그동안 그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값진 성취다.
틀을 깨고 새로운 창작으로 세상과 소통하며
20대의 고아라는 클래식 발레의 정형화된 구조 속에서 점차 한계를 느끼게 되었다. 자기만의 고민과 장애 정체성 그리고 현실에 대한 자각 등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좀 더 확장적인 표현 방식을 추구할 수밖에 없었다. 자유로운 동작성과 표현력에 강점을 지닌 현대무용을 포용하며 그 해결책을 찾아냈다. 이후 본격적으로 창작을 시작하면서 자신의 예술적 방향성을 한층 넓고 짙게 펼쳐 보이게 된다.
본격적인 첫 창작으로 꼽을 수 있는 〈가지 않는 길〉(2016)은 남들이 이미 걸어간 길을 재현하기보다 자신만의 경험으로 새로운 경로를 만들겠다는 선언으로 다가온다. 이듬해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KIADA)에서 선보인 〈어떤 불편함, 또는 그 사이 어딘가〉를 통해서는 일상에서 누구나 경험하지만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불편함’이라는 감정을 자신의 독무로 풀어냈다. 이러한 ‘불편함’을 해결해야 할 문제로 바라보기보다는 타인과 공존하기 위해 마주해야 하는 감각으로 받아들이며, 언어로 설명되지 않은 감정을 몸짓으로 시각화하였다. 한 발에는 토슈즈를 신고 다른 발은 맨발로 춤추며 발레의 정형성에서 벗어나 현대무용으로 확장해 가는 과정을 은유하기도 했다.
2018년 평창동계패럴림픽 폐회식을 장식한 〈꽃이 된 그대〉는 고아라의 삶에서 또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제행사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등장한 그녀는 존재 자체로 장애예술의 아이콘처럼 새겨졌다. 특히 전문성과 예술성을 갖춘 수준 높은 춤으로 전 세계적으로 눈도장을 찍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서른이 된 고아라에게 그동안의 노력과 인내의 결실이자 앞으로 더욱 넓고 짙게 나아갈 수 있는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는 무대였다. 다음 해에는 대한민국장애인문화예술대상 대통령 표창을 받으면서 사회적으로 더욱 주목받았다.
〈가지 않은 길〉(2016)
〈어떤 불편함, 또는 그 사이〉(2017)
A.R.A 무용단 창단으로 한층 짙어진 창작활동
고아라의 작업은 2022년 A.R.A 무용단 창단으로 또 한 차례 확장되었다. A.R.A는 ‘All Real Artists’의 약자로 ‘세상의 모든 예술가를 위하여’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장애예술가가 창작의 중심이 되는 무용단을 지향한다. 이는 개인 무용가 고아라의 성공을 넘어 동료 장애예술가들과 지속 가능한 창작 기반을 만들려는 실천인 셈이다. 이후 대표작 두 개가 연달아 발표되었다는 점만 보더라도 A.R.A의 창단이 갖는 의미를 찾을 수 있다.
2023년 발표한 〈ㅐ서 ㅆ어〉와 그 확장 버전인 〈ㅐ서 ㅆ어Ⅱ〉는 청각장애인이 대화에서 중요한 단어를 놓치고 문장의 끝부분만을 불완전하게 듣는 경험에서 출발한다. 작품의 제목 자체가 탈락된 언어의 흔적이다. 생략된 소리는 단순한 결손으로 남지 않는다. 무용수들은 불완전한 문장을 상황과 표정, 몸짓으로 추론하고, 그 과정에서 하나의 문장이 여러 의미로 갈라지는 가능성을 드러낸다. 이듬해 확장 버전에서는 난청인과 농인 무용수가 추가되어 고아라 개인의 체험이 서로 다른 청각장애인의 감각과 언어로 넓어졌다.
〈DEAFREQUENCY〉(2024)는 전문가들과의 교류 속에서 미디어아트와의 융복합을 성공적으로 이뤄내며 장애예술의 주체성과 감각의 확장을 강렬하게 보여준 퍼포먼스다. 이 작품은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등 삶의 중첩 상태를 통해 다양한 가능성을 확인해 가는 과정을 다룬다. 특히, 양자물리학의 ‘중첩과 관측’ 개념을 차용해 삶의 양면성을 풀어낸 점이 돋보이고, 청각적 요소를 진동과 시각, 움직임으로 번역해 제시했다. 이를 통해 장애를 결핍이 아닌 새로운 감각을 발전시키는 가능성으로 증명하며, 혼돈에서 조화로 나아가는 몸의 여정을 통해 깊은 인상을 남긴다.
다층적으로 듣는 감각된 신체로 나아가는
고아라의 작가적 성취는 들리지 않음에도 끊임없이 음악과 함께 작업을 펼쳐왔다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들리지 않는다는 조건으로부터 음악과 춤의 관계를 다시 정의하면서 감각의 차이를 새로운 안무 원리로 전환했다는 점에서 더욱 큰 가치를 찾을 수 있다. 여기서 그녀의 춤추는 몸은 시선과 진동, 기억과 촉각을 통해 세계를 다층적으로 듣는 ‘감각된 신체’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고아라의 예술세계는 ‘감각의 번역’으로 특징될 수 있다. 중저음과 같은 특정 음역을 느끼면서 세계관, 신념, 삶과 같은 소재를 자기만의 감각을 담은 춤으로 형상화하는 것이다. 좀 더 섬세하게 보고 좀 더 많이 느끼면서 이러한 감각을 번역하는 과정을 통해 춤을 만들어간 것이다. 고아라에게 춤이란 “세상을 듣는 또 하나의 방식이자, 보이지 않는 감각을 다시 몸으로 풀어내 세상에 건네는 언어”인 셈이다.
〈ㅐ서 ㅆ어〉(2023, 2024)
〈DEAFREQUENCY〉(2024)
〈LANGRAPHY〉(2024)
〈MoTune〉(2025)

고아라
무용가, 안무가. A.R.A 무용단 대표. 덕원예술고등학교 무용과 및 경희대학교 무용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 발레아카데미(구 볼쇼이발레학교) 연수에 참여했고, 빛소리친구들 객원, K-Wheel Dance Project 창단 멤버이다.
2007년 창작 발레 〈강아지 똥〉을 시작으로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으며, 현대무용으로 영역을 넓혀 2016년부터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선보였다. 2022년 A.R.A(All Real Artists) 무용단을 설립하여 예술적 지평을 더욱 확장했다. 주요 안무 및 출연작으로 〈가지 않는 길〉(2016), 〈어떤 불편함, 또는 그 사이〉(2017), 〈복선(foreshadow)〉(2018), 〈너의 이름은〉(2019), 〈모노, 스테레오, 서라운드〉(2019), 〈내게서 온 사람〉(2022), 〈~ㅐ서, ~ㅆ어〉(2023, 2024), 〈LANGRAPHY〉(2024), 〈DEAFREQUENCY〉(2024), 〈MoTune〉(2025) 등이 있다. ‘듣다 프로젝트’(아트엘, 2019~2021) 등 다매체 협업 연구와 창작활동도 활발하게 했다. 자신의 예술적 도전과 삶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소리없이 나빌레라〉(2024)에 출연하기도 했다.
2018년 평창동계패럴림픽 폐회식 공연에 참여했고, 2019 제14회 대한민국 장애인문화예술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장애예술인 문화예술 활동 지원위원회 1기 위원(2021~2024)으로 활동했다.
juliaballet@naver.com

심정민
무용평론가이자 비평사학자. 한국춤평론가회 회장과 고려대학교 연구교수를 역임한 바 있으며 여러 대학에 출강하고 있다. 현재 월간 무용전문지 [춤]에 고정 지면을 가지고 있으며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울문화재단, 예술경영지원센터, 한국예술인복지재단, 국립극장, 예술의전당 등에서 심의·평가·자문 등을 맡아왔다. 저서로 『무용비평과 감상』(2020)과 『춤을 빛낸 아름다운 남성 무용가들』(2019) 외 다수가 있다.
21critic@naver.com
사진 제공.고아라 무용가
썸네일 정보.〈모노, 스테레오, 서라운드〉(2019)
2026년 9월 (79호)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제공하는 자료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 4유형 : 출처표시,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의 조건에 따라 이용이 가능합니다.
댓글 남기기
이전글 보기
다음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