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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음광장] 장애인 캐스팅을 부탁해

장애와 장애 없음을 연기하기

  • 문영민 장애예술연구자
  • 등록일 2021-03-05
  • 조회수409

배우가 무대에서 맡는 역할은 자신과 유사한 것일 수도, 극단적으로 다른 것일 수도 있다. 자신과 유사한 역할을 맡는다면 배우는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발굴해서 캐릭터의 디테일을 만들어낼 것이고, 전혀 다른 역할을 맡는다면 자신과 캐릭터의 차이를 연구하고 다른 인물을 만들어내도록 노력할 것이다. 자신의 경험을 자원으로 다양한 캐릭터에 몰입하고 변신할 수 있는 것이 ‘배우’라는 직업이 가지는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배우로 처음 연극무대에서 섰던 2010년, 〈춤추는 휠체어〉라는 공연에서 스케이트 선수였다가 사고를 당해 장애인이 된 소녀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3년 후 〈테레즈 라캥〉이라는 공연에서는 고아로 자라 남편을 살해하고 남편 친구와의 사랑을 욕망하는 테레즈가 되어 무대에 섰다. 두 공연에서 모두 미숙한 연기의 배우였지만, 한번은 장애인으로의 경험이 자원이 되는 캐릭터를, 한번은 현재의 나와 다른 몸과 감정의 캐릭터를 연기했다.

두 영화에서 장애를 가진 캐릭터를 장애가 없는 배우들이 연기한다.
(좌) 영화 <형> 포스터 / (우) 영화 <나의 특별한 형제> 포스터

그러나 많은 연극 무대에서,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장애를 가진 배우는 장애가 없는 역할을 거의 맡지 못할 뿐 아니라 장애를 가진 역할도 맡지 못한다. 마치 엘리자베스 시대에 여성이 무대에 서지 못해 남성이 여성 배우를 연기하거나, 19세기에 백인이 검게 분장을 하고 흑인 캐릭터를 연기하던 것과 유사하다. 많은 대중매체에서 장애인 캐릭터를 비장애인 배우가 연기하고 있다. 최근 장애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영화를 살펴보면, 영화 <형>에서는 과거 유도선수였던 시각장애인 역할을 비장애인인 도경수 배우가 연기했고, 영화 <나의 특별한 형제>에서는 지체장애를 가진 형과 발달장애를 가진 동생 역할 역시 장애가 없는 신하균 배우와 이광수 배우가 연기했다. 서구의 장애운동가들은 백인이 흑인 역할을 연기하는 오래된 전통을 ‘블래킹업(blacking up)’이라고 부르는 것과 유사하게,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연기하는 것을 ‘크리핑업(cripping up)’이라고 부르며 비판한다. 한국의 대중매체와 공연예술 작품에서도 크리핑업이 만연하다.

장애인 배우들은 크리핑업에 대항하여 장애를 가진 역할을 연기하기 위해 투쟁하는 동시에, 장애가 없는 역할을 맡기 위해서도 싸워야 한다. 장애인 배우에게 장애를 가진 역할만을 맡게 한다면, 그것 자체도 장애인 배우의 역량 개발을 박탈하는 차별일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가장 전문적으로 트레이닝 받은 역량 있는 장애인 배우조차 장애를 가진 캐릭터를 맡지 못한다. 장애를 가진 배우는 장애를 가지고 살아온 경험과 지혜를 자원으로 장애인 역할을 가장 잘 연기할 수 있는 배우이다. 바라봄을 당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일상생활에서 활동 보조인을 이용하는 것은 어떤 경험이며, 만성적인 통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장애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접근성 문제를 마주할 때 장애인이 어떤 벽을 느끼는지…. 장애인 배우는 장애인으로 사는 삶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다. 장애인 배우가 장애인 역할을 더 많이 맡을 수 있게 되기를, 그리고 대중매체와 연극무대가 장애를 가진 배우의 몸과 언어를 더 잘 수용할 수 있는 환경으로 변화하기를 바란다.

장애인 배우는 전통적으로 비장애인 배우가 맡던 역할에도 접근하기 힘들다. 그 이유는 장애인 배우의 역량이나 예술 환경 접근성의 제한보다 좀 더 복잡한 문제이다. 장애와 관련 없는 공연에서 장애인 배우가 등장하고, 만약 그 내러티브 속에서 장애가 제대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면, 작품을 만나는 관객이 혼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관객은 희곡에서 장애를 메타포로 읽곤 한다. 오이디푸스의 실명이 단순히 시각장애를 갖게 되는 행위가 아니라, 단죄, 운명의 무게로 관객에게 받아들여지는 것과 같다.

2014년 장애문화예술연구소 짓의 연극 공연 〈테레즈 라캥〉에서
장애가 드러나지 않는 캐릭터 ‘테레즈’를 연기했다.
[사진제공] 장애문화예술연구소 짓

나는 2017년 여름 성수연 배우와 〈불편한 입장들〉이라는 공연을 준비하면서 공연 내에서 10분 정도 짧은 희곡을 연기하기로 했다. 여성 두 명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희곡 작품을 찾다가, 두 자매가 등장하는 장 주네의 희곡 「하녀들」을 찾아 그 일부를 연기하였다. 희곡에서 두 자매는 집주인인 마담이 없는 동안 마담과 하녀를 연기한다. 나는 「하녀들」을 이전에 읽어본 적이 없었고, 여배우 두 명이 연기하기 좋은 작품이라고만 생각했다. 공연이 끝나고 공연 후기를 살펴보니, 관객은 마담과 하녀를 연기하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배우의 관계에서 다양한 메타포를 찾아냈다. 장애가 희곡 내에서 장애물이나 비극으로 해석될 여지가 없을 때, 관객은 장애에 다양한 메타포를 부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알게 되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장애를 가진 삶을 다채로운 각도로 바라볼 정도로 관객의 관점도 다양해졌다고 생각한다. 무대에서 표현되는 장애인 배우의 몸이라는 무거운 메타포를 관객이 잡아낼 수 있다면, 장애인 배우가 장애인 역할뿐 아니라 장애를 가지지 않는 역할도 좀 더 수월하게 연기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참고자료]
• Sandahl, C., “Why Disability Identity Matters: From Dramaturgy to Casting in John Belluso’s Pyretown”. Text and Performance Quarterly, 28(1–2), 225–241, 2008.

문영민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대학원에서 장애인 공연예술, 장애정체성, 장애인의 몸, 장애인의 건강 불평등을 연구하고 있다. 프로젝트 극단 0set 소속으로 공연 <연극의 3요소> <불편한 입장들> <나는 인간> 등의 공연에 창작자로 참여하여 연극으로 장애인의 공연 접근성 문제를 알리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saojungym@daum.net

상세내용

배우가 무대에서 맡는 역할은 자신과 유사한 것일 수도, 극단적으로 다른 것일 수도 있다. 자신과 유사한 역할을 맡는다면 배우는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발굴해서 캐릭터의 디테일을 만들어낼 것이고, 전혀 다른 역할을 맡는다면 자신과 캐릭터의 차이를 연구하고 다른 인물을 만들어내도록 노력할 것이다. 자신의 경험을 자원으로 다양한 캐릭터에 몰입하고 변신할 수 있는 것이 ‘배우’라는 직업이 가지는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배우로 처음 연극무대에서 섰던 2010년, 〈춤추는 휠체어〉라는 공연에서 스케이트 선수였다가 사고를 당해 장애인이 된 소녀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3년 후 〈테레즈 라캥〉이라는 공연에서는 고아로 자라 남편을 살해하고 남편 친구와의 사랑을 욕망하는 테레즈가 되어 무대에 섰다. 두 공연에서 모두 미숙한 연기의 배우였지만, 한번은 장애인으로의 경험이 자원이 되는 캐릭터를, 한번은 현재의 나와 다른 몸과 감정의 캐릭터를 연기했다.

두 영화에서 장애를 가진 캐릭터를 장애가 없는 배우들이 연기한다.
(좌) 영화 <형> 포스터 / (우) 영화 <나의 특별한 형제> 포스터

그러나 많은 연극 무대에서,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장애를 가진 배우는 장애가 없는 역할을 거의 맡지 못할 뿐 아니라 장애를 가진 역할도 맡지 못한다. 마치 엘리자베스 시대에 여성이 무대에 서지 못해 남성이 여성 배우를 연기하거나, 19세기에 백인이 검게 분장을 하고 흑인 캐릭터를 연기하던 것과 유사하다. 많은 대중매체에서 장애인 캐릭터를 비장애인 배우가 연기하고 있다. 최근 장애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영화를 살펴보면, 영화 <형>에서는 과거 유도선수였던 시각장애인 역할을 비장애인인 도경수 배우가 연기했고, 영화 <나의 특별한 형제>에서는 지체장애를 가진 형과 발달장애를 가진 동생 역할 역시 장애가 없는 신하균 배우와 이광수 배우가 연기했다. 서구의 장애운동가들은 백인이 흑인 역할을 연기하는 오래된 전통을 ‘블래킹업(blacking up)’이라고 부르는 것과 유사하게,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연기하는 것을 ‘크리핑업(cripping up)’이라고 부르며 비판한다. 한국의 대중매체와 공연예술 작품에서도 크리핑업이 만연하다.

장애인 배우들은 크리핑업에 대항하여 장애를 가진 역할을 연기하기 위해 투쟁하는 동시에, 장애가 없는 역할을 맡기 위해서도 싸워야 한다. 장애인 배우에게 장애를 가진 역할만을 맡게 한다면, 그것 자체도 장애인 배우의 역량 개발을 박탈하는 차별일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가장 전문적으로 트레이닝 받은 역량 있는 장애인 배우조차 장애를 가진 캐릭터를 맡지 못한다. 장애를 가진 배우는 장애를 가지고 살아온 경험과 지혜를 자원으로 장애인 역할을 가장 잘 연기할 수 있는 배우이다. 바라봄을 당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일상생활에서 활동 보조인을 이용하는 것은 어떤 경험이며, 만성적인 통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장애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접근성 문제를 마주할 때 장애인이 어떤 벽을 느끼는지…. 장애인 배우는 장애인으로 사는 삶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다. 장애인 배우가 장애인 역할을 더 많이 맡을 수 있게 되기를, 그리고 대중매체와 연극무대가 장애를 가진 배우의 몸과 언어를 더 잘 수용할 수 있는 환경으로 변화하기를 바란다.

장애인 배우는 전통적으로 비장애인 배우가 맡던 역할에도 접근하기 힘들다. 그 이유는 장애인 배우의 역량이나 예술 환경 접근성의 제한보다 좀 더 복잡한 문제이다. 장애와 관련 없는 공연에서 장애인 배우가 등장하고, 만약 그 내러티브 속에서 장애가 제대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면, 작품을 만나는 관객이 혼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관객은 희곡에서 장애를 메타포로 읽곤 한다. 오이디푸스의 실명이 단순히 시각장애를 갖게 되는 행위가 아니라, 단죄, 운명의 무게로 관객에게 받아들여지는 것과 같다.

2014년 장애문화예술연구소 짓의 연극 공연 〈테레즈 라캥〉에서
장애가 드러나지 않는 캐릭터 ‘테레즈’를 연기했다.
[사진제공] 장애문화예술연구소 짓

나는 2017년 여름 성수연 배우와 〈불편한 입장들〉이라는 공연을 준비하면서 공연 내에서 10분 정도 짧은 희곡을 연기하기로 했다. 여성 두 명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희곡 작품을 찾다가, 두 자매가 등장하는 장 주네의 희곡 「하녀들」을 찾아 그 일부를 연기하였다. 희곡에서 두 자매는 집주인인 마담이 없는 동안 마담과 하녀를 연기한다. 나는 「하녀들」을 이전에 읽어본 적이 없었고, 여배우 두 명이 연기하기 좋은 작품이라고만 생각했다. 공연이 끝나고 공연 후기를 살펴보니, 관객은 마담과 하녀를 연기하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배우의 관계에서 다양한 메타포를 찾아냈다. 장애가 희곡 내에서 장애물이나 비극으로 해석될 여지가 없을 때, 관객은 장애에 다양한 메타포를 부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알게 되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장애를 가진 삶을 다채로운 각도로 바라볼 정도로 관객의 관점도 다양해졌다고 생각한다. 무대에서 표현되는 장애인 배우의 몸이라는 무거운 메타포를 관객이 잡아낼 수 있다면, 장애인 배우가 장애인 역할뿐 아니라 장애를 가지지 않는 역할도 좀 더 수월하게 연기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참고자료]
• Sandahl, C., “Why Disability Identity Matters: From Dramaturgy to Casting in John Belluso’s Pyretown”. Text and Performance Quarterly, 28(1–2), 225–241, 2008.

댓글(1)

2021-04-07 10: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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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있어요 연예 창작자 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