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디아 소리
미술관입니다. 여러분은 삭다라는
단어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시나요?
오래되어 변해서 썩은 것처럼 되다.
얼굴에 생기를 잃다라는 뜻뿐만 아니라
발효되어 맛이 들다. 긴장이나 화가
풀려 마음이 가라앉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무지개처럼 여러 의미를
품은이 단어와 같이 소멸을 마주한
다양한 마음들을 느낄 수 있는 전시를
준비했습니다. 국립 현대 미술관
서울에서 열리는 소멸의 시약 상는
미술에 대하여입니다.
오래 남기기 위해 붙드는 일보다 더
잘 분해하는 법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썩을 수밖에 없는 운명 대신
무엇도 남기지 않기로 한 작품들의
단단한 발걸음을 따라가 볼까요?
전시실 안으로 첫 발을 내디면
바닥으로 2에서 3cm 정도 살짝
내려앉는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곧
발 전체를 감싸는 기분 좋은 푹신함이
느껴집니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작가
아사드 라자의 흡수는 네오소일이라고
불리는 인공 토양으로 전시장 바닥
전체를 채워든 작품입니다. 바닥
전체가 짙은 황토색의 흙그로 혀 있어
커다란 운동장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매일 도심을 거며 느끼던 딱딱함은
사라지고 발등까지 덮을만큼 거대한
양의 흙은 마치 돼지의 부드러운
살처럼 느껴집니다. 전시장 한쪽
구석에는 농기구들이 세워져
있습니다.이 도구들의 주인은 바로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선발된
도시농부 경작자들입니다.
이들은 전시 기간 동안 내오 소위를
돌보고 관찰하며 분석합니다. 전시장
구석에 자리한 도구를 등에 매고 흙
위로 물을 골고로 뿌리는 모습은 마치
씨를 뿌리고 논과 밭을 일구는
농부처럼 보입니다. 이제 손을 뻗어
바닥에 흙을 한눈 쥐어 볼까요? 저는
조금 건조하고 거칠거칠할 거라고
예상했지만 굉장히 촉촉했습니다. 살짝
서늘한 느낌의이 토양은 커피찌꺼기,
택배 상자, 이면지 같은 서울에서
수집한 폐기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흙을 만질 때 중간중간 하얀색
종이들이 눈에 띄기도 하고 고운
입자들 사이 거칠거칠한 촉감이 느껴질
때도 있어요. 폐기물들은 미세물과
반응하며 분해되고 점점 비혹한
토양으로 변해갑니다.이 과정은 죽음이
생을 위한 물질을 세상에 배출하는
것처럼 느껴져 소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흥미롭기도이 네오
소일은 원하는만큼 가져갈 수 있다고
해요. 흙을 밟으며 전시의 일부가 된
것 같아서 신기했는데 즐겁게 관람한
작품의 일부를 집으로 가져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모래사장과 잘 어울리는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작가 세실리아
빌쿠냐의 조각 연작
프레카리오스입니다.
프레카리오스는
스페인어로 불확실한 위태로운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이 작품은
칠내의 바닷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작가는 모래사장에서 준은 물건들로
손바닥 만한 크기에 작은 조각을
만들었습니다.
형태가 단순한 다섯 개의 조각은
전시장 벽을 따라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먼저 첫 번째 작품 낮은
하늘입니다. 연한 베이지색의 얇은
나무막대 여러 개가 작은 나무판 위에
꽂혀 있습니다. 막대기들은 길이가
서로 다르고 겉면에는 빨간색과 파란색
물감이 부분적으로 칠해져 있습니다.
끝이 뾰족하게 다듬어진 막대기들은
멀리서 보면 연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저는 특히 빨갛게 칠해진
가느다란 막대기를 보며 어쩐지
스크류바 아이스크림이 떠올랐습니다.
다음은 나선형 못입니다. 테이프와
전선으로 칭침 감겨진 금속 조각
하나가 외롭게 홀로서 있습니다. 빨간
테이프 위로 빨갛고 얇은 전선이
단단히 고정되어 있지 않고 느슨하게
감겨 있습니다. 다음 작품은 작은
벽입니다. 얇은 직사각형 나무 판자
하나가 혼자서 있습니다. 손으로
만지면 거칠거칠한 나무결이 느껴질 것
같습니다. 그다음 작품은 가파른
삼각형입니다.
길고 뾰족한 직각 삼각형 모양의 나무
조각이서 있고 맨 꼭대기에는 주황색
플라스틱 조각이 구름처럼 가볍게 걸려
있습니다. 저는이 모습을 보며 높이
솟은 잠실 롯데타워가 떠올랐습니다.
마지막 작품은 발사나무 십자가입니다.
모형 비행기를 만들 때 사용하는
가볍고 얇은 나무가 바로
발사나무인데요. 길이가 같은 얇은
나무 조각을 십자가 모양으로 교차해서
중심을 잡고 양쪽 끝은 더 짧은 나무
조각들로 묶여 있습니다. 나무들은
모두 실로 느슨하게 묶여 있어서 작은
파도만 스쳐도 금세 무너질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이 작품은 서로에게
기대야만서 있을 수 있는 존재처럼
느껴집니다. 금세 사라질 것 같은
작고 연악한 것들의 아름다움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들이었습니다.
향냄새를 맡으면 조금 차분해지는듯한
기분이 들지 않나요? 다음 작품은
특유의 분위기로 관람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여다함 작가의 향연입니다.
향을 피우는 잔치라는 뜻을 가진
작품으로 전시장 안에는 은은한
향냄새가 퍼져 있습니다. 뜨개로 만든
거대한 향로 위에 향 하나가 타고
있습니다. 하얗고 두꺼운 뜨개실로
만든 향로는 매끈한 원형이 아닌
굴곡진 곡선을 입체적으로 쌓아올린
형태입니다.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모양의 향로는 만지면 부들부들한
촉감이 느껴질 것 같아요. 커다란
뱀이 몸을 둥글게 말고 있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뜨개질로 만들어낸이
향로가 질서를 보여준다면 향로 안에서
타고 있는 향의 연기는 무질서를
보여줍니다. 공중으로 자유롭게
흩어지는 연기가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지 않나요? 다음 전시실로 향하기
전에 잠시 전시 마당의 정원으로 나가
볼까요? 문을 열고 나가면 화하게
내리는
향냄새를 씻겨 줍니다. 여기에는 아주
귀여운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요.
바로 고사리 작가의 초사람입니다.이
작품은 성인 남성의 주먹보다 조금 큰
풀뭉치 두 개를 눈사람처럼 위아래로
쌓아 만들어졌습니다.
미술관에서 제거한 잡초를 모아 만든
작품입니다. 당연한 듯 소멸되는
잡초를 소중하게 모아 만든이 작품은
이곳뿐만 아니라 전시장 내부와 미술관
입구의 화단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구석구석 숨어 있는 초사람을 찾는
작은 재미도 함께 느껴 보시길
바랍니다.
이제 초사람을지나 촉각 지도의 안내에
따라 다음 전시실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앞에 전시실이 어두운 무체
세계의 분위기였다면 이번 공간는 밝고
알록달록한 분위기입니다. 작가 에드가
칼레의 고대 지식 형태의 메알이 작품
덕분이죠.이 이 작품은 과태말라의
카치켈 부족이 조상을 기리는 전통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전시장 바닥에
서로 다른 모양과 크기에 돌덩이
수십개가 놓여 있습니다. 규칙적으로
나열되어 있지는 않지만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져 있는이 돌덩이들의
크기는 대략 성인 팔뚝 정도입니다.
울퉁불퉁한 돌 위에는 다양한 과일과
채소가 올려져 있습니다. 사과, 배,
블루베리, 파인애플, 수박, 자몽,
그리고 감자, 호박, 가지 같은
채소와 먹고 남은 옥수수 심도
보입니다. 어떤 돌 위에는 두 개,
어떤 돌 위에는 다섯 개 이상이 놓여
있습니다. 일부 과일은 잘려 있어
속살과 단면이 늘러나 있습니다. 그
단면을 통해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변해 가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파인애플에 가까이 다가가니 특유의
달콤한 향이 느껴지네요. 눈으로 보는
것뿐만 아니라 냄새와 질감까지
상상하게 만드는 작품이었습니다.
다양한 감각을 통해 소멸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던 오늘의 전시
어떠셨나요? 전시장을 나왔지만
손바닥에는 흙의 미세한 먼지가
옷깃에는 잔잔한 향내음이 남아
있었습니다. 저는 불편한 감정은
버리고 좋은 감정만 남기고 싶을 때가
많아요. 그래서 어떤 기억들은 점점
더 빠르게 지워 버리곤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제 안에 남은 것은
무언지 정말로 있기는 한 건지
무엇보다 진짜 내 것이 맞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습니다. 무엇도
오래 남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저는
왜 그렇게 서둘러 지우고 있었을까요?
이제는 애쓴 것들이 사가는 시간을
잠시 머물게 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소멸은 어떤
의미인가요? 지금까지.
이 전시는 결국 사라집니다ㅣ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ㅣ배리어프리 전시 해설
눈으로 보지 않아도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해설했습니다. 눈을 감고 여러분만의 작품을 그려보세요. 화면 구성 및 자막은 저시력장애인을 위해 크고 밝게 구성했습니다.
• 전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
• 글: 전초롱
• 목소리: 정지우, 유희수, 최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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