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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이음

'언씽킹 씨어터' #1에 붙임

이음광장 장소와 기억 그리고 홀로코스트

  • 문승현 작가
  • 등록일 2021-08-12
  • 조회수1663

독일 베를린에는 홀로코스트 추모공원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에게 살해당한 희생자를 추모하는 것이다. 그 큰 돌무더기들이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 잊지 않겠다는 듯 관을 닮은 직육면체의 육중한 콘크리트들이 한 사람이 걸어 다닐 정도의 틈을 벌리고 빼곡히 늘어서 있다. 천백만 명이 넘는 희생자의 숫자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 보이는 기념물이긴 하지만 어느 시각에서든 보는 이를 압도한다. 이 기념비의 원래 명칭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기념물(Denkmal für die ermordeten Juden Europas)’에는 그들이 기념하고자 하는 것에 관한 몇 가지 맹점이 있다. 그것은 홀로코스트 희생자를 규정하는 방식과 희생자 그 자체다.

1941년과 1942년 나치가 가스실을 갖춘 수용소에서 유대인과 집시에 대한 대규모 학살을 시작하기 전, 1939년 10월 ‘T-4 프로그램’이라는 신체적·정신적 장애인을 안락사시키는 대규모 학살 프로그램이 독일 장애인을 대상으로 자행되었다. 독일 민족의 ‘우수성과 순수성을 위협하는 자들로서 사회에 아무 쓸모없는’ 이들을 독일 대중은 떠올리고 싶지 않아 했고, 히틀러는 전쟁을 일으키며 그것을 이용했다. 전쟁은 “불치병을 가진 자들을 제거할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이라고 말한 히틀러는 독일인을 향해서도 학살을 실행했다. 결국 그것은 유대인 학살의 모델이 되었다. T-4프로그램은 나치에 의해서 전쟁범죄에 대한 죄의식을 제거하는 데 이용되었는데, 1941년 독일 내에서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프로그램을 공식적으로 종료할 때까지 수용소에서 일할 독일 친위대 훈련 프로그램으로 활용되었다.

당시 독일 파시스트와 나치의 시각에서 장애인과 퀴어, 정신적·신체적 약자는 독일 사회에서 제거되어야 할 불순물이었다. 그리고 그와 대조를 이루는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기념물’은 장애인의 접근을 거부하고 있다. 독일의 장애인 단체들이 낸 홀로코스트 추모공원의 장애인 접근권에 관한 소송에서 독일 법원은 장애인 단체들에 패소를 결정했다. 독일과 유럽의 장애인은 전쟁 기간 중 공식적으로 7만 명 이상, 비공식적으로는 20만 명 이상이 사회에 아무 쓸모없는 불순물로 간주되어 제거되어야 했다.

누군가 이 20만 명에 대한 홀로코스트, 대학살을 기억하고 추모해야 한다면 어떤 기념물이 필요할 것인가. 예술가이자 인권활동가 페트라 쿠퍼스(Petra Kuppers)는 베를린 홀로코스트 추모공원이 휠체어 장애인의 접근을 거부하는 것에 대해 시위하는 대신 그 자신이 기념비가 되기로 한다. 그의 작업 영상 서두에서 그는 “우리는 삶의 기념비를 위한 새로운 조각을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라고 했다. 그러나 페트라의 퍼포먼스 <저니 투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인 베를린(Journey to Holocaust Memorial in Berlin)>(2011)은 통제할 수 없는 생명 현상의 본질에 관한 사유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강제된 반성을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몸 일부를 내어주는 행동을 통해서 내 사유 너머에 있는 통제된 생각을 해체하는 데 있는 듯하다.

장애인 학살이라는 사건을 통해서 근대 권력이 극단적으로 보여준 사유의 식민성은 생명과 사회의 존재 방식을 통제하는 동시대의 자본 권력의 복합체로 계승되고 있다. 이것은 구분과 배제를 공고히 하며 생활과 몸의 환경과 구조를 경직시킨다. 페트라의 방법론 ‘에코소마(ecosoma)’는 몸을 기반으로 몸 너머의 것들과 상호 연대하고 확장하며 기존의 관습으로부터 이탈해 나간다. 그것은 내가 언급한 바 있는, 환경과 구조로서의 건축을 기존의 구조로부터 이탈시켜 특수한 몸의 장소성을 얻는 작업이 출현해야 한다는 논지와 유사한 관점이다.

이 글은 필자가 페트라 쿠퍼스의 화상 강연에 오프라인 관객으로 참석한 단상이다. 아르코예술극장은 개관 40주년을 기념해 창작공간 발굴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창작공간 레지던시 [브릭 브리크 플랫폼(Brick-Break Platform)]을 진행했는데, 아고라 연계 프로그램 ‘언씽킹 씨어터#1’은 ‘장애문화 공연의 안, 밖, 표면’을 주제로 페트라의 강연과 필자가 패널로 참석한 라운드테이블이 있었다. 이미 허명진 무용평론가의 글(웹진 [이음] 22호, 생명 정치 현장에서 다시 생각하는 장애)을 통해 적확하게 리뷰되었다는 점을 감안해 몇 가지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저니 투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인 베를린
[출처] 유튜브 OlimpiasCulture 바로가기

문승현

문승현 

미술작가, 기획자, 공연예술 연출가, 옐로우닷컴퍼니 대표. 협성대학교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2000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마음, 하늘을 바라보다》(2012), 《Soul Face》(2013), 《침묵 속 이야기를 그리다》(2018) 등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뇌성마비 시각예술작가의 모임 아티스트 그룹 ‘날’에서 활동했으며, 잠실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로 활동했다. 〈선의 리듬〉 〈점점 퍼지다〉 〈21° 11′〉 《흐르는 벽으로 대화하기》 등 여러 공연과 전시에서 퍼포머, 연출, 기획, 음악으로 참여했다. 저서로 시집 『고해소 앞에는 등불이 켜져 있다』가 있다.
sellars@nate.com

사진 제공. 필자

문승현

문승현 

미술작가, 기획자, 공연예술 연출가, 옐로우닷컴퍼니 대표. 협성대학교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2000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마음, 하늘을 바라보다》(2012), 《Soul Face》(2013), 《침묵 속 이야기를 그리다》(2018) 등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뇌성마비 시각예술작가의 모임 아티스트 그룹 ‘날’에서 활동했으며, 잠실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로 활동했다. 〈선의 리듬〉 〈점점 퍼지다〉 〈21° 11′〉 《흐르는 벽으로 대화하기》 등 여러 공연과 전시에서 퍼포머, 연출, 기획, 음악으로 참여했다. 저서로 시집 『고해소 앞에는 등불이 켜져 있다』가 있다.
sellars@nate.com

상세내용

독일 베를린에는 홀로코스트 추모공원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에게 살해당한 희생자를 추모하는 것이다. 그 큰 돌무더기들이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 잊지 않겠다는 듯 관을 닮은 직육면체의 육중한 콘크리트들이 한 사람이 걸어 다닐 정도의 틈을 벌리고 빼곡히 늘어서 있다. 천백만 명이 넘는 희생자의 숫자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 보이는 기념물이긴 하지만 어느 시각에서든 보는 이를 압도한다. 이 기념비의 원래 명칭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기념물(Denkmal für die ermordeten Juden Europas)’에는 그들이 기념하고자 하는 것에 관한 몇 가지 맹점이 있다. 그것은 홀로코스트 희생자를 규정하는 방식과 희생자 그 자체다.

1941년과 1942년 나치가 가스실을 갖춘 수용소에서 유대인과 집시에 대한 대규모 학살을 시작하기 전, 1939년 10월 ‘T-4 프로그램’이라는 신체적·정신적 장애인을 안락사시키는 대규모 학살 프로그램이 독일 장애인을 대상으로 자행되었다. 독일 민족의 ‘우수성과 순수성을 위협하는 자들로서 사회에 아무 쓸모없는’ 이들을 독일 대중은 떠올리고 싶지 않아 했고, 히틀러는 전쟁을 일으키며 그것을 이용했다. 전쟁은 “불치병을 가진 자들을 제거할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이라고 말한 히틀러는 독일인을 향해서도 학살을 실행했다. 결국 그것은 유대인 학살의 모델이 되었다. T-4프로그램은 나치에 의해서 전쟁범죄에 대한 죄의식을 제거하는 데 이용되었는데, 1941년 독일 내에서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프로그램을 공식적으로 종료할 때까지 수용소에서 일할 독일 친위대 훈련 프로그램으로 활용되었다.

당시 독일 파시스트와 나치의 시각에서 장애인과 퀴어, 정신적·신체적 약자는 독일 사회에서 제거되어야 할 불순물이었다. 그리고 그와 대조를 이루는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기념물’은 장애인의 접근을 거부하고 있다. 독일의 장애인 단체들이 낸 홀로코스트 추모공원의 장애인 접근권에 관한 소송에서 독일 법원은 장애인 단체들에 패소를 결정했다. 독일과 유럽의 장애인은 전쟁 기간 중 공식적으로 7만 명 이상, 비공식적으로는 20만 명 이상이 사회에 아무 쓸모없는 불순물로 간주되어 제거되어야 했다.

누군가 이 20만 명에 대한 홀로코스트, 대학살을 기억하고 추모해야 한다면 어떤 기념물이 필요할 것인가. 예술가이자 인권활동가 페트라 쿠퍼스(Petra Kuppers)는 베를린 홀로코스트 추모공원이 휠체어 장애인의 접근을 거부하는 것에 대해 시위하는 대신 그 자신이 기념비가 되기로 한다. 그의 작업 영상 서두에서 그는 “우리는 삶의 기념비를 위한 새로운 조각을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라고 했다. 그러나 페트라의 퍼포먼스 <저니 투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인 베를린(Journey to Holocaust Memorial in Berlin)>(2011)은 통제할 수 없는 생명 현상의 본질에 관한 사유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강제된 반성을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몸 일부를 내어주는 행동을 통해서 내 사유 너머에 있는 통제된 생각을 해체하는 데 있는 듯하다.

장애인 학살이라는 사건을 통해서 근대 권력이 극단적으로 보여준 사유의 식민성은 생명과 사회의 존재 방식을 통제하는 동시대의 자본 권력의 복합체로 계승되고 있다. 이것은 구분과 배제를 공고히 하며 생활과 몸의 환경과 구조를 경직시킨다. 페트라의 방법론 ‘에코소마(ecosoma)’는 몸을 기반으로 몸 너머의 것들과 상호 연대하고 확장하며 기존의 관습으로부터 이탈해 나간다. 그것은 내가 언급한 바 있는, 환경과 구조로서의 건축을 기존의 구조로부터 이탈시켜 특수한 몸의 장소성을 얻는 작업이 출현해야 한다는 논지와 유사한 관점이다.

이 글은 필자가 페트라 쿠퍼스의 화상 강연에 오프라인 관객으로 참석한 단상이다. 아르코예술극장은 개관 40주년을 기념해 창작공간 발굴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창작공간 레지던시 [브릭 브리크 플랫폼(Brick-Break Platform)]을 진행했는데, 아고라 연계 프로그램 ‘언씽킹 씨어터#1’은 ‘장애문화 공연의 안, 밖, 표면’을 주제로 페트라의 강연과 필자가 패널로 참석한 라운드테이블이 있었다. 이미 허명진 무용평론가의 글(웹진 [이음] 22호, 생명 정치 현장에서 다시 생각하는 장애)을 통해 적확하게 리뷰되었다는 점을 감안해 몇 가지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저니 투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인 베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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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승현

문승현 

미술작가, 기획자, 공연예술 연출가, 옐로우닷컴퍼니 대표. 협성대학교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2000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마음, 하늘을 바라보다》(2012), 《Soul Face》(2013), 《침묵 속 이야기를 그리다》(2018) 등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뇌성마비 시각예술작가의 모임 아티스트 그룹 ‘날’에서 활동했으며, 잠실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로 활동했다. 〈선의 리듬〉 〈점점 퍼지다〉 〈21° 11′〉 《흐르는 벽으로 대화하기》 등 여러 공연과 전시에서 퍼포머, 연출, 기획, 음악으로 참여했다. 저서로 시집 『고해소 앞에는 등불이 켜져 있다』가 있다.
sellars@nate.com

사진 제공.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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