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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예술 《비어있는 혹은 가득한》 리뷰

이음광장 오늘의 장소와 예술

  • 문승현 작가
  • 등록일 2021-10-19
  • 조회수956

필자는 장애와 건축이 만나는 접점을 설명하기 위해서 접근성이라는 개념에 유일한 권위를 부여하는 것을 경계한다. 이유는, 접근성 개념이 갖는 다중성에 있다. 접근성 개념은 물질적이고 사회적인 구조를 구체화하는 건축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그보다 훨씬 더 포괄적이다. 필자는 건축이 장애 예술의 발현으로서 접근성 개념의 완벽한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것을 목표로 작업하지 않았다. 필자가 올해 4월부터 8월까지 진행한 장소 특정적 다원예술 전시 공연 프로젝트 《비어있는 혹은 가득한》은 작년 《흐르는 벽으로 대화하기》에 이어 건축과 장애 예술이 교차하는 곳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담론을 중심으로 매체별 리서치를 하고 결과물을 도출해낸 작업이다. 온라인 상영으로 진행된 전시 공연을 리뷰한다.

  • 오로민경, <이곳에서, 먼 곳으로>, 가변설치, 혼합매체

작업은 건축이라는 형식적 완결성과 실용성에 저항하는, 느슨함과 불완전함을 추구하는 형식을 취했다. 어떻게 보면 그러한 형식은 주개념의 확고한 지도 아래 쓰여진 논리 정연한 논문이라기보다, 자동기술처럼 무작위로 기록되는 언어유희에 가까워 보일지도 모른다. 《흐르는 벽으로 대화하기》에서 구체화 되었던 김환 작가의 <이상(理想)한 평면도>는 무의식에 가까운 집단 이성의 기록이었다. 구성원에게 도시에 필요한 시설과 위치를 자유분방하게 토론하게 한 다음에, 실제로 도시의 평면도를 구성하게 하는 형식이었다. 건축과 도시의 평면도가 벽을 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착안한 작품이었지만 그 결과물은 추상표현주의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처럼 형식적 완결성과 작업 방향의 구체화 등이 결여된 작업의 한계는 분명하다. 메시지를 전달하지도 못하고 단일 미학을 표방하지도 못한다. 결과물에 대한 어떤 요구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작품은 메시지나 미학, 탐구의 결과물이 아니어도 현상 자체로 존재할 수 있다.

코로나19 방역정책으로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됨에 따라 온라인 공개로 진행되었던 《비어있는 혹은 가득한》은 사실상 실물로서 존재하지 못했다. 그것은 복제된 현상의 기록으로만 존재한다. 장소 특정적 프로젝트를 표방했지만 관객은 장소를 극히 제한적으로 복제된 영상, 곧 그것이 가상인지 아닌지도 불분명한 영상을 통해 경험해야 했다. 모든 경험은 각자의 사용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색상과 음향, 화질과 화면비, 심지어 재생속도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경험의 평균값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비어있는 혹은 가득한》은 그 이상의 다층적 장소 실험을 다룬다.

오로민경의 사운드 설치 작품 <이곳에서, 먼 곳으로>는 공간과 장소의 감각적 경험을 공감각적 장치로 구체화했다. 사운드 장치와 소리에 반응하는 특수 조명, 현장에서 채집한 오브제 중 산업용 선풍기가 돌아가는 소음 등은 하나의 지각작용에 특권을 부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김명신의 <에코> 역시 표면적으로는 여러 장소의 소음에서 움직임의 모티브를 가져온 듯하나 기저에 흐르는 에너지 또한 움직임의 본질로서 작용하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이에 반해 김경민과 김현하는 장소에서 구한 오브제를 가공하거나 그 자체를 작품화했다. 김현하의 <비어있는 혹은 가득한>은 장소를 제공한 공장에서 구한 파이프를 재가공해 정사면체로 집적(集積)하고 그 안에 무빙 조명을 설치해 움직임에 따라 달라지는 실루엣을 보여준다. 그것은 기하학적이고 상승하는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순간순간 변화하는 이미지처럼 장소에 대한 경험과 감각도 변화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관찰처럼 보인다. 그러한 관찰은 김경민의 <기기묘묘>에서 시청각적으로 팽창된다. 미디어 프로젝션 시퀀스 사이로 롤업되는 텍스트는 필자의 「반송불가」라는 시이며, 시가 함축하는 바와 같이 감각과 현상의 유한성, 언어의 절대성에 대한 회의를 이미지화한다. 김경민 작업 요소는 오로민경과 마찬가지로 공감각적이다. 김경민은 프로젝션 프로그램과 사운드 이펙터를 동시에 사용하며 미디어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프로젝션은 가로 4미터 세로 6미터 크기의 기계 운반용 받침대를 세워 스크린으로 사용했다.

이처럼 《비어있는 혹은 가득한》은 장소 개념에 대한 의미 실험을 다룬다. 그것은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창작의 장소, 예술의 장소에 대한 실험이기도 했다. 프로젝트 초기에 우리는 유니버셜 디자인으로 권위가 부여되고 제도화된 공간에 대해 장애 예술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장소성을 실험하는 것에 관심을 두었다. 그러나 우리는 곧 우리가 감각하고 있는 장소의 의미가 확장되고 달라질 수 있음을 직감했다. 장소 특정적이라는 수식어를 단 작업은 물론 장소를 기반으로 하는 다른 창작들, 예컨대 공연, 영상, 연극, 상연 위주의 많은 예술과 창작의 영역이 공간과 장소의 개념을 재해석해야만 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분 온라인 화상회의로 만들어지고 온라인으로 공개된 《비어있는 혹은 가득한》에 필자와 함께한 작가들, 그리고 시청자(?)들은 어제와 다른 오늘의 예술이 만들어지고 전달되는 과정을 함께했다. 그것은 이전과 다른 공동체 개념을 필요로 한다. 구체적 장소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 공동체는 구성원의 연합, 협업, 해체, 경쟁이 수시로 일어나면서 공동체를 해체한다. 이제 유·무형의 장소 개념을 가지고 장소의 확장을 꾀하는 공동체는 한계를 지니는 것이다. 우리의 작업은 장소를 감각의 현상으로 이해함으로써 공동체의 기반이 되는 장소가 아니라 개별자인 개인의 몸이 연합하고 협업하는 장소를 무한히 확장한다.

  • 김환, <이상(理想)한 평면도>, 2020, 900×160cm, Arcylic on canvas

  • 김경민, <기기묘묘 gigi-myomyo>, 미디어 프로젝션, 4×6m

  • 김현하, <비어있는 혹은 가득한>, 125×90cm, 금속난간연결부속, 조명

  • 김명신 안무 , 퍼포머 김명신 문승현, 18분

[참고자료]

  • 장소 특정적 다원예술 전시 공연 프로젝트 <비어있는 혹은 가득한> 전시정보 바로가기(클릭)
문승현

문승현 

미술작가, 기획자, 공연예술 연출가, 옐로우닷컴퍼니 대표. 협성대학교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2000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마음, 하늘을 바라보다》(2012), 《Soul Face》(2013), 《침묵 속 이야기를 그리다》(2018) 등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뇌성마비 시각예술작가의 모임 아티스트 그룹 ‘날’에서 활동했으며, 잠실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로 활동했다. 〈선의 리듬〉 〈점점 퍼지다〉 〈21° 11′〉 《흐르는 벽으로 대화하기》 등 여러 공연과 전시에서 퍼포머, 연출, 기획, 음악으로 참여했다. 저서로 시집 『고해소 앞에는 등불이 켜져 있다』가 있다.
sellars@nate.com

사진제공. 옐로우닷컴퍼니

문승현

문승현 

미술작가, 기획자, 공연예술 연출가, 옐로우닷컴퍼니 대표. 협성대학교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2000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마음, 하늘을 바라보다》(2012), 《Soul Face》(2013), 《침묵 속 이야기를 그리다》(2018) 등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뇌성마비 시각예술작가의 모임 아티스트 그룹 ‘날’에서 활동했으며, 잠실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로 활동했다. 〈선의 리듬〉 〈점점 퍼지다〉 〈21° 11′〉 《흐르는 벽으로 대화하기》 등 여러 공연과 전시에서 퍼포머, 연출, 기획, 음악으로 참여했다. 저서로 시집 『고해소 앞에는 등불이 켜져 있다』가 있다.
sellars@nate.com

상세내용

필자는 장애와 건축이 만나는 접점을 설명하기 위해서 접근성이라는 개념에 유일한 권위를 부여하는 것을 경계한다. 이유는, 접근성 개념이 갖는 다중성에 있다. 접근성 개념은 물질적이고 사회적인 구조를 구체화하는 건축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그보다 훨씬 더 포괄적이다. 필자는 건축이 장애 예술의 발현으로서 접근성 개념의 완벽한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것을 목표로 작업하지 않았다. 필자가 올해 4월부터 8월까지 진행한 장소 특정적 다원예술 전시 공연 프로젝트 《비어있는 혹은 가득한》은 작년 《흐르는 벽으로 대화하기》에 이어 건축과 장애 예술이 교차하는 곳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담론을 중심으로 매체별 리서치를 하고 결과물을 도출해낸 작업이다. 온라인 상영으로 진행된 전시 공연을 리뷰한다.

  • 오로민경, <이곳에서, 먼 곳으로>, 가변설치, 혼합매체

작업은 건축이라는 형식적 완결성과 실용성에 저항하는, 느슨함과 불완전함을 추구하는 형식을 취했다. 어떻게 보면 그러한 형식은 주개념의 확고한 지도 아래 쓰여진 논리 정연한 논문이라기보다, 자동기술처럼 무작위로 기록되는 언어유희에 가까워 보일지도 모른다. 《흐르는 벽으로 대화하기》에서 구체화 되었던 김환 작가의 <이상(理想)한 평면도>는 무의식에 가까운 집단 이성의 기록이었다. 구성원에게 도시에 필요한 시설과 위치를 자유분방하게 토론하게 한 다음에, 실제로 도시의 평면도를 구성하게 하는 형식이었다. 건축과 도시의 평면도가 벽을 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착안한 작품이었지만 그 결과물은 추상표현주의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처럼 형식적 완결성과 작업 방향의 구체화 등이 결여된 작업의 한계는 분명하다. 메시지를 전달하지도 못하고 단일 미학을 표방하지도 못한다. 결과물에 대한 어떤 요구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작품은 메시지나 미학, 탐구의 결과물이 아니어도 현상 자체로 존재할 수 있다.

코로나19 방역정책으로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됨에 따라 온라인 공개로 진행되었던 《비어있는 혹은 가득한》은 사실상 실물로서 존재하지 못했다. 그것은 복제된 현상의 기록으로만 존재한다. 장소 특정적 프로젝트를 표방했지만 관객은 장소를 극히 제한적으로 복제된 영상, 곧 그것이 가상인지 아닌지도 불분명한 영상을 통해 경험해야 했다. 모든 경험은 각자의 사용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색상과 음향, 화질과 화면비, 심지어 재생속도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경험의 평균값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비어있는 혹은 가득한》은 그 이상의 다층적 장소 실험을 다룬다.

오로민경의 사운드 설치 작품 <이곳에서, 먼 곳으로>는 공간과 장소의 감각적 경험을 공감각적 장치로 구체화했다. 사운드 장치와 소리에 반응하는 특수 조명, 현장에서 채집한 오브제 중 산업용 선풍기가 돌아가는 소음 등은 하나의 지각작용에 특권을 부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김명신의 <에코> 역시 표면적으로는 여러 장소의 소음에서 움직임의 모티브를 가져온 듯하나 기저에 흐르는 에너지 또한 움직임의 본질로서 작용하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이에 반해 김경민과 김현하는 장소에서 구한 오브제를 가공하거나 그 자체를 작품화했다. 김현하의 <비어있는 혹은 가득한>은 장소를 제공한 공장에서 구한 파이프를 재가공해 정사면체로 집적(集積)하고 그 안에 무빙 조명을 설치해 움직임에 따라 달라지는 실루엣을 보여준다. 그것은 기하학적이고 상승하는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순간순간 변화하는 이미지처럼 장소에 대한 경험과 감각도 변화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관찰처럼 보인다. 그러한 관찰은 김경민의 <기기묘묘>에서 시청각적으로 팽창된다. 미디어 프로젝션 시퀀스 사이로 롤업되는 텍스트는 필자의 「반송불가」라는 시이며, 시가 함축하는 바와 같이 감각과 현상의 유한성, 언어의 절대성에 대한 회의를 이미지화한다. 김경민 작업 요소는 오로민경과 마찬가지로 공감각적이다. 김경민은 프로젝션 프로그램과 사운드 이펙터를 동시에 사용하며 미디어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프로젝션은 가로 4미터 세로 6미터 크기의 기계 운반용 받침대를 세워 스크린으로 사용했다.

이처럼 《비어있는 혹은 가득한》은 장소 개념에 대한 의미 실험을 다룬다. 그것은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창작의 장소, 예술의 장소에 대한 실험이기도 했다. 프로젝트 초기에 우리는 유니버셜 디자인으로 권위가 부여되고 제도화된 공간에 대해 장애 예술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장소성을 실험하는 것에 관심을 두었다. 그러나 우리는 곧 우리가 감각하고 있는 장소의 의미가 확장되고 달라질 수 있음을 직감했다. 장소 특정적이라는 수식어를 단 작업은 물론 장소를 기반으로 하는 다른 창작들, 예컨대 공연, 영상, 연극, 상연 위주의 많은 예술과 창작의 영역이 공간과 장소의 개념을 재해석해야만 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분 온라인 화상회의로 만들어지고 온라인으로 공개된 《비어있는 혹은 가득한》에 필자와 함께한 작가들, 그리고 시청자(?)들은 어제와 다른 오늘의 예술이 만들어지고 전달되는 과정을 함께했다. 그것은 이전과 다른 공동체 개념을 필요로 한다. 구체적 장소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 공동체는 구성원의 연합, 협업, 해체, 경쟁이 수시로 일어나면서 공동체를 해체한다. 이제 유·무형의 장소 개념을 가지고 장소의 확장을 꾀하는 공동체는 한계를 지니는 것이다. 우리의 작업은 장소를 감각의 현상으로 이해함으로써 공동체의 기반이 되는 장소가 아니라 개별자인 개인의 몸이 연합하고 협업하는 장소를 무한히 확장한다.

  • 김환, <이상(理想)한 평면도>, 2020, 900×160cm, Arcylic on canvas

  • 김경민, <기기묘묘 gigi-myomyo>, 미디어 프로젝션, 4×6m

  • 김현하, <비어있는 혹은 가득한>, 125×90cm, 금속난간연결부속, 조명

  • 김명신 안무 , 퍼포머 김명신 문승현, 18분

[참고자료]

  • 장소 특정적 다원예술 전시 공연 프로젝트 <비어있는 혹은 가득한> 전시정보 바로가기(클릭)
문승현

문승현 

미술작가, 기획자, 공연예술 연출가, 옐로우닷컴퍼니 대표. 협성대학교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2000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마음, 하늘을 바라보다》(2012), 《Soul Face》(2013), 《침묵 속 이야기를 그리다》(2018) 등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뇌성마비 시각예술작가의 모임 아티스트 그룹 ‘날’에서 활동했으며, 잠실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로 활동했다. 〈선의 리듬〉 〈점점 퍼지다〉 〈21° 11′〉 《흐르는 벽으로 대화하기》 등 여러 공연과 전시에서 퍼포머, 연출, 기획, 음악으로 참여했다. 저서로 시집 『고해소 앞에는 등불이 켜져 있다』가 있다.
sellars@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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