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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하는 순간① 눈부심

이음광장 눈부시게 아름답다, 눈을 감는다

  • 장근영 작가
  • 등록일 2021-10-13
  • 조회수1385

내 주변을 맴돌던 작은 입자들이 순식간에 뭉쳐져 내 눈앞에 나타났다. 하얗고 뽀얀 안개 뭉치 같았다. 학교에서 아로마 마사지 실습 중이었다. 손의 움직임을 따라가던 눈앞에 나타난 상황에 나는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순간적으로 숨이 멈춘 기분이었다. 머리를 흔들었다. 눈도 질끈 감았다. 다시 눈을 뜨니 그 안개 뭉치는 사라졌다. 하지만 그 안개 뭉치는 흩어져 날이 갈수록 내 눈앞에 자욱이 깔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옅었지만 점점 짙어졌다. 나는 짙은 안개 속에 살고 있다. 안개가 조금씩 짙어질 때마다 나는 달라진 상황에 적응해야 했다. 세상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시력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색의 구분도 밝은색과 어두운색 정도로만 구분되었다. 그리고 가장 힘든 것 중 하나는 눈부심이었다. 나에게는 이제 ‘눈부시게 아름답다’라는 말은 옛날 말이 되었다.

  • 어두운 배경에 흰색 밝은 조명 하나가 켜졌고 빛줄기가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

어두운 무대 위에 밝은 조명 하나가 켜졌다. 그 아래로 등장한 배우의 모습에 나는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흰색인지 베이지색인지 모를 밝은색의 상의를 입고 환한 조명 아래 선 그 배우의 모습은 나의 눈에 너무 자극적이었다. 조명과 상의의 밝음이 합쳐져 눈을 뚫고 들어오는데, 순간적으로 통증이 느껴졌다. 눈을 감고 순간의 자극을 가라앉히느라 배우의 대사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야맹증이 있어 어두울 때 특히 안 보였었는데, 이제는 밝은 것마저도 보기 힘들게 되었다.

통증을 동반하는 눈부심의 요소는 주변에 너무 많다. 우선 안과의 시력판. 나는 안과에 갈 때마다 시력판 조명을 끄고 검사하면 안 되냐고 물었다. 지금은 보이는 것도 없지만, 맨 윗줄 가장 큰 글자가 보일 때가 있었다. 근데 조명만 켜면 그 글자가 눈부시게 사라졌다. 의사에게 조명 때문에 안 보인다고 하니, “그래요?” 하며 미소만 짓던 것이 생각난다. 눈부셔서 안 보인다는데 왜 웃는지는 물어보지 않았지만, 우리나라 안과는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시력을 측정하는지 모르겠다. 또 눈부신 것은 전철역 스크린도어에 있는 큰 광고판이다. 전철은 타야겠고, 양쪽에서 광고판은 빛나고 있고, 눈을 감고 조명을 피해야 한다. 내가 자주 이용하는 전철에는 그런 광고판이 많지 않아 다행일 뿐이다. 또 빛나는 것이 식당의 메뉴판이다. 하얀색 바탕 조명에 글자가 적혀있는 메뉴판 말이다. 우리 동네 냉면집 메뉴판은 엄청 크다. 벽의 한가운데서 밝은 조명이 빛나고 있다. 난 그 식당을 갈 때마다 메뉴판을 등지고 앉아야 한다. 그 메뉴판을 보고 냉면을 먹으면, 속이 울렁거리기 때문이다. 검정이나 짙은 색 조명은 눈부심이 덜하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 보고 있으면 눈이 건조해진다. 즉각적인 자극은 없어도 힘들다는 것을 눈의 메마름으로 알 수 있다.

  • 뭉게구름이 있는 푸른 하늘에 태양이 밝게 빛나고 있다.

인위적인 조명은 그 색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개인적인 느낌은 이러했다. 하얀색, 노란색 빛은 화사함과 맑은 기분을 주었다. 그리고 푸르스름한 빛은 공포, 회색빛은 우울한 기분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하얀색 노란색과 같은 옅은 빛은 통증으로 인해 보기 싫은 빛이 되었고, 푸르스름한 색이나 회색의 짙은 조명은 비교적 편안하게 다가오는 빛이 되었다. 자연이 주는 빛도 그러하다. 예전에는 맑고 화창한 날이 참 좋았는데 지금은 흐린 날이 더 좋다. 눈을 뜨기가 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연이 주는 빛은 인위적인 조명과는 다른 면이 있다. 따스함이다. 추운 겨울을 지나고 푸른 하늘이 가까이 내려와 따스함을 안겨주는 봄의 햇살, 그 햇살은 눈이 아니라 피부로 마음으로 느끼는 햇살이다. 물론 눈으로 그 햇살을 마주하면 짙은 안개 속에서 눈부심으로 금세 지쳐버리게 된다. 하지만 눈을 감고 햇살을 온몸으로 느낄 때면 그 따스함과 포근함이 너무 좋다.

어느 날 안개 뭉치와 함께 나타난 나의 눈의 변화는 많은 것을 달라지게 하였다. 눈으로 보기 힘든 인위적인 조명은 피한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것들을 보려면 사람들에게 묻는다. 공연을 볼 때도 힘겨운 조명에서는 눈을 감는다. 그리고 귀로 듣는다. 자연의 빛은 피부와 마음으로 느낀다. 물론 눈은 감는다. 그렇다. 짙은 안개 속에서 달라진 나의 눈과 함께 나는 세상도 나만의 방식으로 다가가고 있다. 눈으로 보던 것을 멈추는 것은 뭔가 모를 허전함과 불안함을 준다. 하지만, 눈을 떴을 때 내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은 내가 다른 감각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해준다. 힘들고 어렵지만,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의 새로운 변화에 나를 맞춰가고 있다.

장근영

장근영 

장애인식개선 강사로 활동하며, 장애인 당사자로 시설접근성 및 공연 배리어프리 자문활동을 하고 있다. 2020년에 자전적 시각장애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집 『어쩌려고 혼자 다녀?』를 출간하였고, 2022년 연극 <비추다 : 빛을 내는 대상이 다른 대상에 빛을 보내어 밝게 하다>를 공동창작하고 출연하였다.
zzangkku9902@naver.com

사진출처. Pexels.com

장근영

장근영 

장애인식개선 강사로 활동하며, 장애인 당사자로 시설접근성 및 공연 배리어프리 자문활동을 하고 있다. 2020년에 자전적 시각장애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집 『어쩌려고 혼자 다녀?』를 출간하였고, 2022년 연극 <비추다 : 빛을 내는 대상이 다른 대상에 빛을 보내어 밝게 하다>를 공동창작하고 출연하였다.
zzangkku9902@naver.com

상세내용

내 주변을 맴돌던 작은 입자들이 순식간에 뭉쳐져 내 눈앞에 나타났다. 하얗고 뽀얀 안개 뭉치 같았다. 학교에서 아로마 마사지 실습 중이었다. 손의 움직임을 따라가던 눈앞에 나타난 상황에 나는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순간적으로 숨이 멈춘 기분이었다. 머리를 흔들었다. 눈도 질끈 감았다. 다시 눈을 뜨니 그 안개 뭉치는 사라졌다. 하지만 그 안개 뭉치는 흩어져 날이 갈수록 내 눈앞에 자욱이 깔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옅었지만 점점 짙어졌다. 나는 짙은 안개 속에 살고 있다. 안개가 조금씩 짙어질 때마다 나는 달라진 상황에 적응해야 했다. 세상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시력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색의 구분도 밝은색과 어두운색 정도로만 구분되었다. 그리고 가장 힘든 것 중 하나는 눈부심이었다. 나에게는 이제 ‘눈부시게 아름답다’라는 말은 옛날 말이 되었다.

  • 어두운 배경에 흰색 밝은 조명 하나가 켜졌고 빛줄기가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

어두운 무대 위에 밝은 조명 하나가 켜졌다. 그 아래로 등장한 배우의 모습에 나는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흰색인지 베이지색인지 모를 밝은색의 상의를 입고 환한 조명 아래 선 그 배우의 모습은 나의 눈에 너무 자극적이었다. 조명과 상의의 밝음이 합쳐져 눈을 뚫고 들어오는데, 순간적으로 통증이 느껴졌다. 눈을 감고 순간의 자극을 가라앉히느라 배우의 대사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야맹증이 있어 어두울 때 특히 안 보였었는데, 이제는 밝은 것마저도 보기 힘들게 되었다.

통증을 동반하는 눈부심의 요소는 주변에 너무 많다. 우선 안과의 시력판. 나는 안과에 갈 때마다 시력판 조명을 끄고 검사하면 안 되냐고 물었다. 지금은 보이는 것도 없지만, 맨 윗줄 가장 큰 글자가 보일 때가 있었다. 근데 조명만 켜면 그 글자가 눈부시게 사라졌다. 의사에게 조명 때문에 안 보인다고 하니, “그래요?” 하며 미소만 짓던 것이 생각난다. 눈부셔서 안 보인다는데 왜 웃는지는 물어보지 않았지만, 우리나라 안과는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시력을 측정하는지 모르겠다. 또 눈부신 것은 전철역 스크린도어에 있는 큰 광고판이다. 전철은 타야겠고, 양쪽에서 광고판은 빛나고 있고, 눈을 감고 조명을 피해야 한다. 내가 자주 이용하는 전철에는 그런 광고판이 많지 않아 다행일 뿐이다. 또 빛나는 것이 식당의 메뉴판이다. 하얀색 바탕 조명에 글자가 적혀있는 메뉴판 말이다. 우리 동네 냉면집 메뉴판은 엄청 크다. 벽의 한가운데서 밝은 조명이 빛나고 있다. 난 그 식당을 갈 때마다 메뉴판을 등지고 앉아야 한다. 그 메뉴판을 보고 냉면을 먹으면, 속이 울렁거리기 때문이다. 검정이나 짙은 색 조명은 눈부심이 덜하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 보고 있으면 눈이 건조해진다. 즉각적인 자극은 없어도 힘들다는 것을 눈의 메마름으로 알 수 있다.

  • 뭉게구름이 있는 푸른 하늘에 태양이 밝게 빛나고 있다.

인위적인 조명은 그 색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개인적인 느낌은 이러했다. 하얀색, 노란색 빛은 화사함과 맑은 기분을 주었다. 그리고 푸르스름한 빛은 공포, 회색빛은 우울한 기분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하얀색 노란색과 같은 옅은 빛은 통증으로 인해 보기 싫은 빛이 되었고, 푸르스름한 색이나 회색의 짙은 조명은 비교적 편안하게 다가오는 빛이 되었다. 자연이 주는 빛도 그러하다. 예전에는 맑고 화창한 날이 참 좋았는데 지금은 흐린 날이 더 좋다. 눈을 뜨기가 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연이 주는 빛은 인위적인 조명과는 다른 면이 있다. 따스함이다. 추운 겨울을 지나고 푸른 하늘이 가까이 내려와 따스함을 안겨주는 봄의 햇살, 그 햇살은 눈이 아니라 피부로 마음으로 느끼는 햇살이다. 물론 눈으로 그 햇살을 마주하면 짙은 안개 속에서 눈부심으로 금세 지쳐버리게 된다. 하지만 눈을 감고 햇살을 온몸으로 느낄 때면 그 따스함과 포근함이 너무 좋다.

어느 날 안개 뭉치와 함께 나타난 나의 눈의 변화는 많은 것을 달라지게 하였다. 눈으로 보기 힘든 인위적인 조명은 피한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것들을 보려면 사람들에게 묻는다. 공연을 볼 때도 힘겨운 조명에서는 눈을 감는다. 그리고 귀로 듣는다. 자연의 빛은 피부와 마음으로 느낀다. 물론 눈은 감는다. 그렇다. 짙은 안개 속에서 달라진 나의 눈과 함께 나는 세상도 나만의 방식으로 다가가고 있다. 눈으로 보던 것을 멈추는 것은 뭔가 모를 허전함과 불안함을 준다. 하지만, 눈을 떴을 때 내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은 내가 다른 감각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해준다. 힘들고 어렵지만,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의 새로운 변화에 나를 맞춰가고 있다.

장근영

장근영 

장애인식개선 강사로 활동하며, 장애인 당사자로 시설접근성 및 공연 배리어프리 자문활동을 하고 있다. 2020년에 자전적 시각장애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집 『어쩌려고 혼자 다녀?』를 출간하였고, 2022년 연극 <비추다 : 빛을 내는 대상이 다른 대상에 빛을 보내어 밝게 하다>를 공동창작하고 출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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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Pexel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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