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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하는 순간② 곳

이음광장 처음 가는 길이 혼자여도 괜찮은 날

  • 장근영 작가
  • 등록일 2021-11-09
  • 조회수1004
  • 필자가 흰지팡이를 사용하여 보행하고 있다.

작년 가을이었다. ‘0set(제로셋)프로젝트’의 공연 <관람모드: 만나는 방식>을 볼 기회를 얻었다. 그것도 혼자서 말이다. 솔직히 시각장애인이 되기 전에도 혼자 공연 보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눈이 안 보이기 시작하면서는 아예 있을 수도 없는 일이 되었다. 생각도 하지 않은 일상이었다. 그런데 배리어프리로 진행되는 이 공연은 전철역에서 공연장까지의 이동도 지원해 준다고 하니 가보고 싶었다.

자연스러운 관람모드

10월이었다. 나에게는 적당히 쌀쌀한, 그렇게 춥지 않은 날씨였다. 퇴근하고 천천히 혜화역으로 향했다. 퇴근 시간에는 모든 전철노선이 그러하지만 특히 당고개행 4호선은 정말 지옥철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이동하는 것이 모두 느렸다. 환승계단에서도, 전철을 타는 플랫폼에서도 눈이 보이는 비장애인이나 나나 모두 같이 느리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웃기게도 그 느림이 내게는 되려 편했다. 천천히 사람들의 움직임 속도에 맞춰 내가 가야 하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전철은 만원이었지만 다행히 혜화역에서 내리는 사람이 많아 내리는 것도 그 인파에 묻혀 천천히 내릴 수 있었다. 혜화역 1번 출구 앞에서 공연 관계자가 극장까지 안내해준다고 하였다. 혜화역 1번 출구는 2번 출구와 반대편이다. 그리고 에스컬레이터가 있다. 몇 번 와본 적이 있긴 하지만, 능숙하게 다닐 만큼 익숙한 곳은 아니라서 조심히 이동했다.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가 전철 출구 오른편에서 기다렸고, 약속한 시각이 되자, 감사하게도 연출인 신재 님이 직접 나와 공연장까지 함께 해주었다.

공연은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옆의 주차장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시각장애가 있는 나를 위해 한 스태프는 앉을 자리를 안내해준 뒤, 내가 바라보고 있는 곳을 기준으로 공간을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공연에서 농인 유현주 배우의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수어통역사 한 분이 나와 동행하였다. 수어통역사는 유현주 배우가 수어로 하는 이야기와 내가 눈으로 볼 수 없는 공연의 부분을 설명해주었다. ‘만나는 방식’은, 뇌병변장애가 있는 홍성훈과 농인 유현주 그리고 비장애인이지만 몸에 통증이 있었던 박하늘이 서로의 방식으로 소통에 관해 이야기하는 공연이었다. 혜화동1번지 주차장에서부터 골목길을 지나 음악이 나오는 가게도 지나고, 횡단보도도 건너 이음센터 5층 공연장까지 이동했다. 이동이 있는 공연이었고 어쩌면 나와는 소통이 어려울 수 있는 농인 배우의 이야기까지, 나는 수어통역사의 해설과 안내로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

자립과 의존 사이

장벽은 사전적 의미로 “가리어 막은 벽”이란 말이다. 당신은 일상을 살면서 어떤 장벽이 있는가. 중도 시각장애를 갖게 되면서 나는 일상이 달라졌다. 늘 가야 하는 동네 마트나 약국, 회사 가는 길, 복지관 가는 길은 눈이 조금 더 보일 때부터 다닌 곳이라 특별히 훈련하지 않아도 그 주변의 지형지물을 알기에 흰지팡이로 혼자 갈 수 있다. 하지만 낯선 곳, 자주 가지 않는 곳은 나에게는 장벽이 된다. 눈이 보인다면 그냥 가면 되는 그 장소들이 이제는 나에게 묵직한 버거움을 주는 미션이 된다.

“도움을 받으면 되지!”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립을 덕목으로 생각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물든 그런 사람이라 그런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의존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나쁘게 보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다. 장애인은 다 똑같은 사람이 아니다. 다 자신만의 생각과 삶의 방식을 가진 각각의 개인이다. 그러하기에 나는 장애가 있고, 같이할 때는 같이, 혼자할 수 있을 때는 혼자 하는 자유로움을 원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혼자, 독립적으로 일상을 누리는 것 자체가 장벽이라는 것이다. 이동과 정보에 대한 접근의 어려움,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가지고 있는 장애인을 바라보는 묘한 구분선.

시각장애를 갖고 마주한 세상은 물리적 환경에서부터 인식까지 확연한 구분선으로 나를 시험에 들게 한다. 장애가 있기에 도움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이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내가 혼자 하고 싶다고 하니, “모든 것을 혼자 다 하고 싶어 하는가 보다.” 하고 나의 의도를 오해할 수 있다. 나는 동행 없이 시설을 이용하고, 공연을 관람하고, 물건을 구입하고, 단순한 길을 걷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혼자 가는 길에 <관람모드: 만나는 방식>의 공연에서처럼 나의 장애를 자연스럽게 바라봐주고 나에게 필요한 방법과 도구를 제공해주는 것. 어쩌면 이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특별한 것으로 바라본다. 이유는 단순하다. 세상이 장애가 없는 사람을 중심으로 만들어져 왔기에 다수와 다른 방식으로 누리는 소수의 모습이 특별하고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다. 나는 이 지점이 너무 힘들다. 오늘 처음 가는 그 길이 그리고 그 공간이 나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 날은 올까?

“여길 어떻게 찾아 왔어요?” 회사 앞 약국에 처음 갔을 때의 일이다. 나이 지긋한 목소리의 약사님이 못볼 것을 봤다는 듯, 정말 신기한 일을 겪고 있다는, 그 느낌을 온전히 담아 높은 톤의 목소리로 나에게 한 첫 말이었다. 낯선 곳을 혼자 찾아가는 일은 나에게 엄청난 버거움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낯선 이, 즉, 여기에 등장하기 힘든 사람이 찾아온 낯선 상황에 놀라워한다. 처음 약국에 흰지팡이로 들어온 나를 신기하게만 보던 그 약사님은 그 후로 내가 사려는 약에 대해 박스 크기며 약의 정보를 얼마나 꼼꼼히 설명해주시는지 모른다. 여유 있을 때는 문도 열어주신다.

나는 이 지점이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서로를 마주함에 낯설다고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는 것. 그리고 서로를 자연스럽게 마주하는 순간 말이다. 물리적인 장벽의 해소는 그 지점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본다. 서로 마주하는 순간, 단 한 번 한 순간의 경험이라도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지점이 될 것이다. 혜화동의 어느 극장이라도 서로 다른 모습, 다른 생각을 가진 다양한 이들이 함께 누리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는 그 시간, 나의 묵직한 버거움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그 날, 그때를 기다려본다.

장근영

장근영 

장애인식개선 강사로 활동하며, 장애인 당사자로 시설접근성 및 공연 배리어프리 자문활동을 하고 있다. 2020년에 자전적 시각장애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집 『어쩌려고 혼자 다녀?』를 출간하였고, 2022년 연극 <비추다 : 빛을 내는 대상이 다른 대상에 빛을 보내어 밝게 하다>를 공동창작하고 출연하였다.
zzangkku9902@naver.com

사진제공. 필자(본문), 0set프로젝트(썸네일)

장근영

장근영 

장애인식개선 강사로 활동하며, 장애인 당사자로 시설접근성 및 공연 배리어프리 자문활동을 하고 있다. 2020년에 자전적 시각장애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집 『어쩌려고 혼자 다녀?』를 출간하였고, 2022년 연극 <비추다 : 빛을 내는 대상이 다른 대상에 빛을 보내어 밝게 하다>를 공동창작하고 출연하였다.
zzangkku9902@naver.com

상세내용

  • 필자가 흰지팡이를 사용하여 보행하고 있다.

작년 가을이었다. ‘0set(제로셋)프로젝트’의 공연 <관람모드: 만나는 방식>을 볼 기회를 얻었다. 그것도 혼자서 말이다. 솔직히 시각장애인이 되기 전에도 혼자 공연 보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눈이 안 보이기 시작하면서는 아예 있을 수도 없는 일이 되었다. 생각도 하지 않은 일상이었다. 그런데 배리어프리로 진행되는 이 공연은 전철역에서 공연장까지의 이동도 지원해 준다고 하니 가보고 싶었다.

자연스러운 관람모드

10월이었다. 나에게는 적당히 쌀쌀한, 그렇게 춥지 않은 날씨였다. 퇴근하고 천천히 혜화역으로 향했다. 퇴근 시간에는 모든 전철노선이 그러하지만 특히 당고개행 4호선은 정말 지옥철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이동하는 것이 모두 느렸다. 환승계단에서도, 전철을 타는 플랫폼에서도 눈이 보이는 비장애인이나 나나 모두 같이 느리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웃기게도 그 느림이 내게는 되려 편했다. 천천히 사람들의 움직임 속도에 맞춰 내가 가야 하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전철은 만원이었지만 다행히 혜화역에서 내리는 사람이 많아 내리는 것도 그 인파에 묻혀 천천히 내릴 수 있었다. 혜화역 1번 출구 앞에서 공연 관계자가 극장까지 안내해준다고 하였다. 혜화역 1번 출구는 2번 출구와 반대편이다. 그리고 에스컬레이터가 있다. 몇 번 와본 적이 있긴 하지만, 능숙하게 다닐 만큼 익숙한 곳은 아니라서 조심히 이동했다.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가 전철 출구 오른편에서 기다렸고, 약속한 시각이 되자, 감사하게도 연출인 신재 님이 직접 나와 공연장까지 함께 해주었다.

공연은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옆의 주차장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시각장애가 있는 나를 위해 한 스태프는 앉을 자리를 안내해준 뒤, 내가 바라보고 있는 곳을 기준으로 공간을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공연에서 농인 유현주 배우의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수어통역사 한 분이 나와 동행하였다. 수어통역사는 유현주 배우가 수어로 하는 이야기와 내가 눈으로 볼 수 없는 공연의 부분을 설명해주었다. ‘만나는 방식’은, 뇌병변장애가 있는 홍성훈과 농인 유현주 그리고 비장애인이지만 몸에 통증이 있었던 박하늘이 서로의 방식으로 소통에 관해 이야기하는 공연이었다. 혜화동1번지 주차장에서부터 골목길을 지나 음악이 나오는 가게도 지나고, 횡단보도도 건너 이음센터 5층 공연장까지 이동했다. 이동이 있는 공연이었고 어쩌면 나와는 소통이 어려울 수 있는 농인 배우의 이야기까지, 나는 수어통역사의 해설과 안내로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

자립과 의존 사이

장벽은 사전적 의미로 “가리어 막은 벽”이란 말이다. 당신은 일상을 살면서 어떤 장벽이 있는가. 중도 시각장애를 갖게 되면서 나는 일상이 달라졌다. 늘 가야 하는 동네 마트나 약국, 회사 가는 길, 복지관 가는 길은 눈이 조금 더 보일 때부터 다닌 곳이라 특별히 훈련하지 않아도 그 주변의 지형지물을 알기에 흰지팡이로 혼자 갈 수 있다. 하지만 낯선 곳, 자주 가지 않는 곳은 나에게는 장벽이 된다. 눈이 보인다면 그냥 가면 되는 그 장소들이 이제는 나에게 묵직한 버거움을 주는 미션이 된다.

“도움을 받으면 되지!”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립을 덕목으로 생각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물든 그런 사람이라 그런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의존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나쁘게 보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다. 장애인은 다 똑같은 사람이 아니다. 다 자신만의 생각과 삶의 방식을 가진 각각의 개인이다. 그러하기에 나는 장애가 있고, 같이할 때는 같이, 혼자할 수 있을 때는 혼자 하는 자유로움을 원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혼자, 독립적으로 일상을 누리는 것 자체가 장벽이라는 것이다. 이동과 정보에 대한 접근의 어려움,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가지고 있는 장애인을 바라보는 묘한 구분선.

시각장애를 갖고 마주한 세상은 물리적 환경에서부터 인식까지 확연한 구분선으로 나를 시험에 들게 한다. 장애가 있기에 도움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이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내가 혼자 하고 싶다고 하니, “모든 것을 혼자 다 하고 싶어 하는가 보다.” 하고 나의 의도를 오해할 수 있다. 나는 동행 없이 시설을 이용하고, 공연을 관람하고, 물건을 구입하고, 단순한 길을 걷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혼자 가는 길에 <관람모드: 만나는 방식>의 공연에서처럼 나의 장애를 자연스럽게 바라봐주고 나에게 필요한 방법과 도구를 제공해주는 것. 어쩌면 이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특별한 것으로 바라본다. 이유는 단순하다. 세상이 장애가 없는 사람을 중심으로 만들어져 왔기에 다수와 다른 방식으로 누리는 소수의 모습이 특별하고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다. 나는 이 지점이 너무 힘들다. 오늘 처음 가는 그 길이 그리고 그 공간이 나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 날은 올까?

“여길 어떻게 찾아 왔어요?” 회사 앞 약국에 처음 갔을 때의 일이다. 나이 지긋한 목소리의 약사님이 못볼 것을 봤다는 듯, 정말 신기한 일을 겪고 있다는, 그 느낌을 온전히 담아 높은 톤의 목소리로 나에게 한 첫 말이었다. 낯선 곳을 혼자 찾아가는 일은 나에게 엄청난 버거움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낯선 이, 즉, 여기에 등장하기 힘든 사람이 찾아온 낯선 상황에 놀라워한다. 처음 약국에 흰지팡이로 들어온 나를 신기하게만 보던 그 약사님은 그 후로 내가 사려는 약에 대해 박스 크기며 약의 정보를 얼마나 꼼꼼히 설명해주시는지 모른다. 여유 있을 때는 문도 열어주신다.

나는 이 지점이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서로를 마주함에 낯설다고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는 것. 그리고 서로를 자연스럽게 마주하는 순간 말이다. 물리적인 장벽의 해소는 그 지점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본다. 서로 마주하는 순간, 단 한 번 한 순간의 경험이라도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지점이 될 것이다. 혜화동의 어느 극장이라도 서로 다른 모습, 다른 생각을 가진 다양한 이들이 함께 누리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는 그 시간, 나의 묵직한 버거움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그 날, 그때를 기다려본다.

장근영

장근영 

장애인식개선 강사로 활동하며, 장애인 당사자로 시설접근성 및 공연 배리어프리 자문활동을 하고 있다. 2020년에 자전적 시각장애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집 『어쩌려고 혼자 다녀?』를 출간하였고, 2022년 연극 <비추다 : 빛을 내는 대상이 다른 대상에 빛을 보내어 밝게 하다>를 공동창작하고 출연하였다.
zzangkku9902@naver.com

사진제공. 필자(본문), 0set프로젝트(썸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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