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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향으로 열어가는 사랑의 세상

이음광장 예술의 향기는 나눌수록 아름답다

  • 이영미 서예가
  • 등록일 2021-11-04
  • 조회수823

우연히 한국화단의 거장인 운보 김기창 화백에 대한 정보를 접하게 되고 그것을 계기로 붓을 잡은 이래, 올곧고 줄기차게 묵향의 한길을 걸어왔다. 여기에는 여성과 장애의 이중 질곡으로 인한 차별과 그로 인한 장벽과 제한이 사회 곳곳에 존재했던 사회 환경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 그 시대에는 사회차별이 만연한 속에서 그것 말고는 집중할 것이 많지 않았다. 그러한 불평등을 극복하고 제도권에서 성공하고 싶은 마음 말고도, 특이체질로 태어나 자유롭고 건강하게 다니기 어려운 점, 부친의 사업 부도와 말기암 투병으로 인해 급격히 기울어진 가세도 한몫했다. 여성장애인이 교육을 지속적으로 받는데 빈곤, 건강, 환경, 접근성, 경제력 등의 어려운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나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문방사우인 지필묵연만 있으면 한 곳에 자리 잡고 하루종일 집중할 수 있고, 지속할 수 있는 서예와 서화에 매료되었다. 어느 정도 실력이 갖추어지니 작가 등단에도 도전하게 되었다.

간절히 사무치게 찾으면 빛이 보이고 그 빛을 따라가면 길이 보인다는 말처럼, 서른두 살의 어느 날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청년작가를 선발한다는 소식을 우연히 접했다. 선발되면 서예박물관에서 전시할 기회를 주니 작가로 등단하는 셈이다. 사실 등단하고 싶다는 성취의 욕망보다는 장애와 차별로 인한 암울한 아픔을 잊고 온몸의 세포 하나까지 무아지경으로 몰입하고 싶어 도전하였다. 선발전에 참가하기 위해 새벽 첫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갔다. 경연은 아침 9시에 시작해서 오후 6시까지 진행되었는데, 옛날 과거시험처럼 종일 바닥에서 자리 잡고 앉아 대형작품 4개를 서로 다른 서체로 창작하고 임서해야 했다. 응시장에는 나처럼 혼자 온 사람 특히 여자는 거의 없었고, 장애인도 오직 나 혼자였다. 첫 대회 때는 사전준비가 미흡하여 낙방했고 두 번째도 세 번째도 낙방했다. 무거운 벼루가 들어간 지필묵연 가방을 메고 새벽차를 타고 올라갔다가 밤에 다시 내려오는 세월이 거듭되었다. ‘칠전팔기’라고들 하지만, 나는 여덟 번째도 낙방했다.

마지막 응시 기회가 있는 서른아홉 살의 그해에는 집을 떠나 혼자 살아야 하는 큰 아픔이 있었다. 집도 가족도 없이 외롭게 생존하고자 사투를 벌이며 삶의 격랑에 휩쓸려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합격의 기약도 없고, 응시하면 낙방하는 그 쓰라린 길을 또 가야 하는지 많이 망설여졌다. 고심 끝에 마음을 다잡고 용기를 냈다. 그래야 내 마음의 바다에서 최선을 다했노라고 스스로 당당해질 수는 있으니까. 마지막 응시에 나온 명제의 글귀는 이문열 소설의 한 문장이었다. ‘예술가가 위대한 것은 그 창작에 관한 결과보다는 도전하는 불굴의 정신’이라는 내용이었는데 그 문장을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작품에 혼신의 기운을 쏟았다. 마지막 도전의 결과는 합격이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지방이 아닌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전시를 했다.

  • 등단 전시(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그다음 해에는 첫 개인전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혼자만의 성취로 삼기에는 아까워서 한국농아미술협회 회원 20여 명을 청주에 초대하고 충청지역의 장애인들도 참석해 한자리에 모여 성황리에 개최하였다. 그리고 주성대학교 사회교육원에 무료 서예반을 개설하여 충청권의 장애인 수강생들을 지도하기 시작하였는데, 그들에게 서예를 지도하다 보니 열악한 장애 인권 특히 여성장애인의 인권실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예술의 길을 잠시 멈추고 충북여성장애인연대를 창립하고, 가족과 지역사회의 폭력에 힘들어하는 여성장애인의 인권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기 위해 청주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를 설립하였다. 그렇게 문화예술의 길만 줄기차게 가던 삶이 문화예술, 인권, 복지 이렇게 삼분되어 10년 가까이 개인전을 하지 못하였다. 열심히 인권단체 활동을 하여 단체가 법인이 되고 지자체의 지원으로 운영 걱정 없이 될 즈음 미련 없이 대표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해에 두 번째 개인전을 개최하였고 이후 올곧게 창작과 후진 양성에 매진하여 매년 또는 격년으로 개인전을 개최했다. 갤러리나 미술관뿐만 아니라 충주, 보은, 공주 등 지역의 특수학교, 복지관, 국립법무병원 등으로 ‘찾아가는 전시’를 진행했다. 올해 10월에는 인사동에서 12번째 개인전 《묵향으로 열어가는 시서화 일치의 세상》을 성황리에 마쳤다.

예술의 길에서 중요한 것은 창작을 통해 표현하고 작품을 지역사회와 공유하면서 공감대를 높이는 것이다. 예술이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하거나 장애인 후배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의미가 있지만, 예술을 직접 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도 무척 중요하다. 서예의 힘으로 나는 올바른 의지를 북돋우며 고난을 극복해 왔고, 다시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누는 힘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 역시 중견작가로서의 개인의 삶에 그치지 않고, 경제적 어려움과 장애 편의의 어려움으로 예술을 접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이들에게 꾸준히 예술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 이영미, <마음이 사무치면>, 2021, 화선지에 수묵채색, 34x34cm

  • 이영미, <괜찮아>, 2021, 화선지에 수묵채색, 63x54cm

이영미

이영미 

서예가, 문화예술기획자, 여성 활동가, 사회복지사. 원광대학교 동양학 대학원 서예 문화학과를 수료하고, 서울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사) 및 사회복지(석사)를 공부했다. 서력 47년의 서예가로 지금까지 총 12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충북여성장애인연대를 창립하고, 청주시 여성장애인 성폭력상담소를 설립·운영하며 한국여성장애인연합 공동대표를 역임하였다. 청주시노인종합복지관과 청주시 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근무하고 2020년 정년퇴임하고 현재 근원 서화연구원을 운영하고 충북여성장애인연대 이사, 다사리학교 운영위원으로 있다.
aom360@hanmail.net

사진제공. 필자

이영미

이영미 

서예가, 문화예술기획자, 여성 활동가, 사회복지사. 원광대학교 동양학 대학원 서예 문화학과를 수료하고, 서울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사) 및 사회복지(석사)를 공부했다. 서력 47년의 서예가로 지금까지 총 12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충북여성장애인연대를 창립하고, 청주시 여성장애인 성폭력상담소를 설립·운영하며 한국여성장애인연합 공동대표를 역임하였다. 청주시노인종합복지관과 청주시 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근무하고 2020년 정년퇴임하고 현재 근원 서화연구원을 운영하고 충북여성장애인연대 이사, 다사리학교 운영위원으로 있다.
aom360@hanmail.net

상세내용

우연히 한국화단의 거장인 운보 김기창 화백에 대한 정보를 접하게 되고 그것을 계기로 붓을 잡은 이래, 올곧고 줄기차게 묵향의 한길을 걸어왔다. 여기에는 여성과 장애의 이중 질곡으로 인한 차별과 그로 인한 장벽과 제한이 사회 곳곳에 존재했던 사회 환경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 그 시대에는 사회차별이 만연한 속에서 그것 말고는 집중할 것이 많지 않았다. 그러한 불평등을 극복하고 제도권에서 성공하고 싶은 마음 말고도, 특이체질로 태어나 자유롭고 건강하게 다니기 어려운 점, 부친의 사업 부도와 말기암 투병으로 인해 급격히 기울어진 가세도 한몫했다. 여성장애인이 교육을 지속적으로 받는데 빈곤, 건강, 환경, 접근성, 경제력 등의 어려운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나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문방사우인 지필묵연만 있으면 한 곳에 자리 잡고 하루종일 집중할 수 있고, 지속할 수 있는 서예와 서화에 매료되었다. 어느 정도 실력이 갖추어지니 작가 등단에도 도전하게 되었다.

간절히 사무치게 찾으면 빛이 보이고 그 빛을 따라가면 길이 보인다는 말처럼, 서른두 살의 어느 날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청년작가를 선발한다는 소식을 우연히 접했다. 선발되면 서예박물관에서 전시할 기회를 주니 작가로 등단하는 셈이다. 사실 등단하고 싶다는 성취의 욕망보다는 장애와 차별로 인한 암울한 아픔을 잊고 온몸의 세포 하나까지 무아지경으로 몰입하고 싶어 도전하였다. 선발전에 참가하기 위해 새벽 첫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갔다. 경연은 아침 9시에 시작해서 오후 6시까지 진행되었는데, 옛날 과거시험처럼 종일 바닥에서 자리 잡고 앉아 대형작품 4개를 서로 다른 서체로 창작하고 임서해야 했다. 응시장에는 나처럼 혼자 온 사람 특히 여자는 거의 없었고, 장애인도 오직 나 혼자였다. 첫 대회 때는 사전준비가 미흡하여 낙방했고 두 번째도 세 번째도 낙방했다. 무거운 벼루가 들어간 지필묵연 가방을 메고 새벽차를 타고 올라갔다가 밤에 다시 내려오는 세월이 거듭되었다. ‘칠전팔기’라고들 하지만, 나는 여덟 번째도 낙방했다.

마지막 응시 기회가 있는 서른아홉 살의 그해에는 집을 떠나 혼자 살아야 하는 큰 아픔이 있었다. 집도 가족도 없이 외롭게 생존하고자 사투를 벌이며 삶의 격랑에 휩쓸려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합격의 기약도 없고, 응시하면 낙방하는 그 쓰라린 길을 또 가야 하는지 많이 망설여졌다. 고심 끝에 마음을 다잡고 용기를 냈다. 그래야 내 마음의 바다에서 최선을 다했노라고 스스로 당당해질 수는 있으니까. 마지막 응시에 나온 명제의 글귀는 이문열 소설의 한 문장이었다. ‘예술가가 위대한 것은 그 창작에 관한 결과보다는 도전하는 불굴의 정신’이라는 내용이었는데 그 문장을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작품에 혼신의 기운을 쏟았다. 마지막 도전의 결과는 합격이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지방이 아닌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전시를 했다.

  • 등단 전시(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그다음 해에는 첫 개인전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혼자만의 성취로 삼기에는 아까워서 한국농아미술협회 회원 20여 명을 청주에 초대하고 충청지역의 장애인들도 참석해 한자리에 모여 성황리에 개최하였다. 그리고 주성대학교 사회교육원에 무료 서예반을 개설하여 충청권의 장애인 수강생들을 지도하기 시작하였는데, 그들에게 서예를 지도하다 보니 열악한 장애 인권 특히 여성장애인의 인권실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예술의 길을 잠시 멈추고 충북여성장애인연대를 창립하고, 가족과 지역사회의 폭력에 힘들어하는 여성장애인의 인권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기 위해 청주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를 설립하였다. 그렇게 문화예술의 길만 줄기차게 가던 삶이 문화예술, 인권, 복지 이렇게 삼분되어 10년 가까이 개인전을 하지 못하였다. 열심히 인권단체 활동을 하여 단체가 법인이 되고 지자체의 지원으로 운영 걱정 없이 될 즈음 미련 없이 대표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해에 두 번째 개인전을 개최하였고 이후 올곧게 창작과 후진 양성에 매진하여 매년 또는 격년으로 개인전을 개최했다. 갤러리나 미술관뿐만 아니라 충주, 보은, 공주 등 지역의 특수학교, 복지관, 국립법무병원 등으로 ‘찾아가는 전시’를 진행했다. 올해 10월에는 인사동에서 12번째 개인전 《묵향으로 열어가는 시서화 일치의 세상》을 성황리에 마쳤다.

예술의 길에서 중요한 것은 창작을 통해 표현하고 작품을 지역사회와 공유하면서 공감대를 높이는 것이다. 예술이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하거나 장애인 후배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의미가 있지만, 예술을 직접 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도 무척 중요하다. 서예의 힘으로 나는 올바른 의지를 북돋우며 고난을 극복해 왔고, 다시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누는 힘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 역시 중견작가로서의 개인의 삶에 그치지 않고, 경제적 어려움과 장애 편의의 어려움으로 예술을 접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이들에게 꾸준히 예술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 이영미, <마음이 사무치면>, 2021, 화선지에 수묵채색, 34x34cm

  • 이영미, <괜찮아>, 2021, 화선지에 수묵채색, 63x54cm

이영미

이영미 

서예가, 문화예술기획자, 여성 활동가, 사회복지사. 원광대학교 동양학 대학원 서예 문화학과를 수료하고, 서울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사) 및 사회복지(석사)를 공부했다. 서력 47년의 서예가로 지금까지 총 12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충북여성장애인연대를 창립하고, 청주시 여성장애인 성폭력상담소를 설립·운영하며 한국여성장애인연합 공동대표를 역임하였다. 청주시노인종합복지관과 청주시 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근무하고 2020년 정년퇴임하고 현재 근원 서화연구원을 운영하고 충북여성장애인연대 이사, 다사리학교 운영위원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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