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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과 식민주의

이음광장 체제에 균열을 일으키는 대항의 미학

  • 문승현 작가
  • 등록일 2021-07-14
  • 조회수485
  • 대화2(Dialogue2) _162cm X 130cm. Acrylic on canvas. 2009.

차별금지법이 국회에서 다시 발의되었다. 그러나 이 법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이 법의 제정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특정 집단이나 개인이 아닌 고정된 체제의 ‘소비자’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자본주의가 됐든 국가사회주의가 됐든 말이다.) 나는 이들의 생각을 이념화하거나 사고를 체계화하는 것에 반대하므로 집단의 이념으로 부르지 않는다. 사실 이 생각의 연원은 인간 본성에 관한 근원적인 물음에 연결되어 있다. 집단무의식의 일부를 극단적으로 이용하는 체제는 무의식과 이성의 대립을 선동해왔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인 이러한 대립은 사회적 투쟁 상태를 정당화했다. 공동체 외부의 무도한 적으로부터의 방어 수단이었던 이성의 칼날을 공동체 내부를 향해 겨누고 혐오할 만한 대상으로 무의식에 가깝다고 자의적으로 해석된 제도, 풍습, 양식, 문화들을 제거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적을 굴복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소비되는 체제의 계속성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한 체제는 이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혐오의 정치학은 그것이 정치라는 너울을 쓴 채 체제의 계속성과 안정성만을 강화하려는 소비자들의 이해에 부합하는 생각과 말의 이미지화다. 그러므로 차별금지법이 갖는 미학적 의미는 결코 진부해지지 않는다.

우리는 법 제도가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장치이며 계약이라고 믿는다. 또한 규범적 구속과 통제된 권력 아래 역할을 다하면 소멸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계약관계와 권력관계의 단순성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국가와 법체계의 주요 소비자라는 사실에 둔감하다면 법은 사용되지 않는다. 차별금지법도 그렇다. 헌법상 기본권에 해당함에도 보편적 가치와 인류애를 옹호할수록 공동체에 종속되는 법제도는 스스로를 자기 가치의 생산자로 만들지 않는다. 그러므로 체제와 공동체에 안정성을 유지해주는 법제도는 무의식과 감정, 불안정한 집단의식, 규정되지 않는 소수를 사회적·보편적 가치 생산의 경계 바깥으로 밀어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차별금지법 제정은 체제와 공동체의 계속성과 안정성을 강화할 것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것이 아니라 법을 소비하여 체제와 공동체 정신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체제의 소비자인 우리는 체제의 옹호자인지도 모른다. 차별금지법에 반대하지 않아도 체제의 작은 균열에 불안해질 수 있다. 차별금지법만으로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사라지지 않으며 여전히 현상을 유지하려고 할 수도 있다. 장애인과 여성의 노동권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답보상태에 있는 것처럼, 장애인의 교육받을 권리에 대한 인식도 사적재산권의 장벽에 가로막혀 있다. 차별금지법이 성소수자에 대한 비과학적 미신에서 해방을 알리는 포고령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런 작은 균열에 우리는 불안해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경계 없는 체제의 영토에서 균열을 만드는 것이다. 차별금지법의 미학적 목표는 소수자 문화의 일반화, 보편화, 브랜드화, 메이저화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체제와 공동체 내부에서 균열을 일으켜 공고한 차별의 메커니즘을 해체하는 데 있다. 이 차별의 메커니즘을 우리는 식민주의라고 부르며, 그것을 확장하려는 시도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사건과 현상의 본질에 관한 사유와 통찰을 기반으로 한 미학과, 그러한 미학에 기초한 작품이 소수자 예술 또는 장애 예술로 차별의 메커니즘에 대항하는 미학이 되어야 한다.

사진 제공. 필자

문승현 

미술작가, 기획자, 공연예술 연출가, 옐로우닷컴퍼니 대표. 협성대학교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2000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마음, 하늘을 바라보다》(2012), 《Soul Face》(2013), 《침묵 속 이야기를 그리다》(2018) 등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뇌성마비 시각예술작가의 모임 아티스트 그룹 ‘날’에서 활동했으며, 잠실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로 활동했다. 〈선의 리듬〉 〈점점 퍼지다〉 〈21° 11′〉 《흐르는 벽으로 대화하기》 등 여러 공연과 전시에서 퍼포머, 연출, 기획, 음악으로 참여했다. 저서로 시집 『고해소 앞에는 등불이 켜져 있다』가 있다.
sellars@nate.com

상세내용

  • 대화2(Dialogue2) _162cm X 130cm. Acrylic on canvas. 2009.

차별금지법이 국회에서 다시 발의되었다. 그러나 이 법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이 법의 제정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특정 집단이나 개인이 아닌 고정된 체제의 ‘소비자’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자본주의가 됐든 국가사회주의가 됐든 말이다.) 나는 이들의 생각을 이념화하거나 사고를 체계화하는 것에 반대하므로 집단의 이념으로 부르지 않는다. 사실 이 생각의 연원은 인간 본성에 관한 근원적인 물음에 연결되어 있다. 집단무의식의 일부를 극단적으로 이용하는 체제는 무의식과 이성의 대립을 선동해왔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인 이러한 대립은 사회적 투쟁 상태를 정당화했다. 공동체 외부의 무도한 적으로부터의 방어 수단이었던 이성의 칼날을 공동체 내부를 향해 겨누고 혐오할 만한 대상으로 무의식에 가깝다고 자의적으로 해석된 제도, 풍습, 양식, 문화들을 제거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적을 굴복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소비되는 체제의 계속성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한 체제는 이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혐오의 정치학은 그것이 정치라는 너울을 쓴 채 체제의 계속성과 안정성만을 강화하려는 소비자들의 이해에 부합하는 생각과 말의 이미지화다. 그러므로 차별금지법이 갖는 미학적 의미는 결코 진부해지지 않는다.

우리는 법 제도가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장치이며 계약이라고 믿는다. 또한 규범적 구속과 통제된 권력 아래 역할을 다하면 소멸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계약관계와 권력관계의 단순성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국가와 법체계의 주요 소비자라는 사실에 둔감하다면 법은 사용되지 않는다. 차별금지법도 그렇다. 헌법상 기본권에 해당함에도 보편적 가치와 인류애를 옹호할수록 공동체에 종속되는 법제도는 스스로를 자기 가치의 생산자로 만들지 않는다. 그러므로 체제와 공동체에 안정성을 유지해주는 법제도는 무의식과 감정, 불안정한 집단의식, 규정되지 않는 소수를 사회적·보편적 가치 생산의 경계 바깥으로 밀어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차별금지법 제정은 체제와 공동체의 계속성과 안정성을 강화할 것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것이 아니라 법을 소비하여 체제와 공동체 정신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체제의 소비자인 우리는 체제의 옹호자인지도 모른다. 차별금지법에 반대하지 않아도 체제의 작은 균열에 불안해질 수 있다. 차별금지법만으로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사라지지 않으며 여전히 현상을 유지하려고 할 수도 있다. 장애인과 여성의 노동권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답보상태에 있는 것처럼, 장애인의 교육받을 권리에 대한 인식도 사적재산권의 장벽에 가로막혀 있다. 차별금지법이 성소수자에 대한 비과학적 미신에서 해방을 알리는 포고령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런 작은 균열에 우리는 불안해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경계 없는 체제의 영토에서 균열을 만드는 것이다. 차별금지법의 미학적 목표는 소수자 문화의 일반화, 보편화, 브랜드화, 메이저화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체제와 공동체 내부에서 균열을 일으켜 공고한 차별의 메커니즘을 해체하는 데 있다. 이 차별의 메커니즘을 우리는 식민주의라고 부르며, 그것을 확장하려는 시도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사건과 현상의 본질에 관한 사유와 통찰을 기반으로 한 미학과, 그러한 미학에 기초한 작품이 소수자 예술 또는 장애 예술로 차별의 메커니즘에 대항하는 미학이 되어야 한다.

사진 제공.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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