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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되어 누구와 만날까

이음광장 퍼레이드 진진진

  • 다이애나랩 
  • 등록일 2021-07-21
  • 조회수607

다이애나랩이 기획한 프로젝트의 대부분이 그렇지만, <퍼레이드 진진진>도 설명을 하려면 좀 복잡하다. 이 프로젝트에는 너무 많은 맥락과 너무 많은 사람이 연결되어 있다. ‘다이애나랩’이나 ‘퍼레이드 진진진’이라는 이름이 있기 훨씬 오래전 이야기부터 꺼내야 한다.

2011년부터 현재까지 서울에서 운영 중인 ‘인포숍카페별꼴’이라는 공간에서는 ‘진(zine) 만들기’ 워크숍과 전시를 꽤 오래 해왔다.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고 특히 휠체어가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어떤 프로그램이나 전시를 열어도 자연스럽게 장애인과 비장애인 통합이 되곤 했다. 인포숍카페별꼴 매니저들은 프로그램을 열기 전에는 항상 ‘여기에 함께 있을 수 없는 사람이 누구일까’를 생각하며 기획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진 만들기 워크숍에는 항상 다양한 사람이 모였고, 참여자들은 프로그램이 끝나고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어딜 가서 이런 사람들과 만날 수 있겠어요.”

장애가 있는 사람도 그렇게 말했고, 장애가 없는 사람도 같은 말을 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디자이너이거나 시각예술가이거나, 연극을 하거나, 아무튼 서울이나 외국에서 거주해온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가진 20~30대, 아니면 시설에서 평생을 보낸 50대, 한글을 모르는 사람, 컴퓨터를 모르는 사람, 스마트폰을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 등이었다. 그중에는 또 다양한 성별, 성 정체성, 장애, 국적, 출신 지역, 나이 등을 이유로 차별받아본 적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섞여 있기도 했다.

“아주 다른 배경을 가진 각기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 평등한 입장에서 한곳에 있을 수 있을까?”

“왜 그런 순간이 그토록 드문 것일까?”

이것이 우연히 인포숍카페별꼴에 왔다가 워크숍 참여자가 되고, 주최자가 되고, 다시 참여자가 되었던 우리의 질문이었다. 왜 우리는 서로 평생 단 한 번도 이렇게 만날 수가 없는 사람들이었을까.

왜 우리가 이런 질문을 공유하게 되었는지, 이유를 한 가지로 들 수는 없다. 언젠가 경험했던 차별의 기억이라든지 소수자로서의 정체성, 타자를 어떻게 만날 것인가에 대한 각자의 문제의식에서부터 취향, 좋아하는 노래, 어떤 감각에 이끌리는 것까지 너무도 다양한 이유가 있을 테니까. 처음에 우리가 이끌렸던 것은 서브컬처(subculture)와 진(zine)이었던 것 같다. 서브컬처에 이끌렸던 어떤 마음이나 정체성이 모여서 공통적인 어떤 것을 만들게 되었던 게 아닌가 싶다. 우리가 진(주1)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이 다른 어떠한 권위 없이 자유로운 개인의 표현을 보장하는 매체였기 때문이다. 진을 만들고 나누는 순간에는 모두가 진스터(zinester)로서 자신이 만든 진에 대한 온전한 권리를 가질 수 있었다. 기존의 권위에 의해 평가받지 않을 수 있는 나의 창작물. 그것은 누가 이래라저래라할 수 없는 최소 단위의 ‘외침’이자 그것을 밖으로 퍼트릴 수 있는 ‘미디어’ 같은 것이었다. 그것이 비록 제대로 된 한글이나 음성언어가 아니어도 말이다. 한글을 틀리게 써서 만든 진이더라도 다른 누가 나에게 그것을 지적할 수는 없다. 책이 아니라 진의 세계에서는 그렇다.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는데 당신이 왜? 대체 어떤 기준으로?’

진을 만든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허락받거나 잘했다고 인정받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의 진을 읽거나 다른 진과 교환하는 것, 진스터끼리의 교류는 동등한 개인들 사이의 연대와 같다. 진의 세계에서는 선배도 선생님도 오빠도 언니도 없이 오직 진스터만이 있으니까. 그리고 그건 열심히 배우고 수련을 거쳐 되는 것이 아니라 당장이라도 A4 종이를 찢어 무언가를 휘갈겨 쓰고 다른 이에게 전하는 순간 바로 완성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중증발달장애인 수업을 기획해보지 않겠냐고 다이애나랩 멤버들 중 두 명이 처음 제안받았을 때(주2), 우리는 자연스럽게 진을 떠올렸던 것 같다. 글자가 아닌 이미지만으로 무언가를 표현하는 낱장 짜리 종이일 때조차 그것은 미술작품이나 예술작품이 아닌 진이었다. 미술이라는 단어를 쓰는 순간 우리는 미술이 정한 권위와 촘촘한 위계의 세계, 가치 있음과 없음, 팔린다 팔리지 않는다, 잘한다 못한다가 너무도 분명한 세계에서 도저히 벗어날 길이 없는 것처럼 보였고...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평생을 살다 이제 막 지역사회로 나오기 시작한 이들에게 비장애인 중심으로 짜여진(그렇지만 비장애인에게조차 힘든) 세상의 룰을 애써 가르치고 싶지 않았다. 가르칠 수도 없었지만 가르치기도 싫었다. 세상은 이러이러한 거니까 규칙을 잘 따라야 해, 그게 비록 자신을 고통스럽게 옥죄는 것이라도 말이야, 라는 말을 정말로 싫어했던 우리가 어떻게 그걸 다시 가르칠 수 있을까? 좀 많이 폭력적인 방식으로 굴러가고 있는 세계에 이제 막 들어선 이에게 무언가를 새롭게 알려주어야 한다면... 그것은 제안하거나 가르치거나 초대하는 입장이 되는 비장애인인 우리의 권위를 최대한 낮추고, 순간이나마 그 권위가 사라지는 것이 가능한 것이어야 했다. 그리고 동시에 ‘선생님’으로 불리는 우리를 포함해 참여하는 모두가 하나의 동등한 개인으로서 있을 수 있는 순간이어야 했다. 그 순간이 비록 계속 이어지지 않고 아주 짧게 지나가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종이를 펴놓고 각자 좋아하는 진을 그리고 만들었다. 복사도 하고 잘라 붙이기도 하고 색칠도 하면서 그 시간을 보냈다. 서로 만든 것을 나눠 가지기도 하고 교환하기도 하고 벽에 붙이거나 스크랩북에 끼워 모으기도 하면서 즐거워했다. 우리는 그렇게 노들야학 진 수업 교사 중 일부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진 수업 참여자로서 진을 그려왔다. 늘 같이 앉아서 만든 것은 아니지만, 같이 앉아서 각자의 표현을 지속하는 순간만이 우리를 평등하게 있을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순간을 몹시 사랑했다.

몇 년이 지나 우리는 그렇게 만든 각자의 진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그게 <퍼레이드 진진진>이었다.

 

주 1: 진은 개인이나 작은 그룹이 기획, 집필, 편집, 디자인, 인쇄, 유통까지의 전 과정을 스스로(DIY) 하는 출판물을 말하지만, 예외가 너무도 많기 때문에 딱히 진의 정의를 내리기는 힘들다. 진을 매거진으로 볼 수는 없지만, 어떤 진은 시리즈처럼 보이는 잡지의 형태이기도 하다. 물론 아닌 것도 많다. 진은 낱장의 인쇄물부터 두툼하게 제본된 것까지 크기와 형태가 매우 다양하다. 1부를 인쇄하기도 하고 1000부를 인쇄하기도 한다. DIY 방식이 아니라 작은 출판사를 만들어 제작하는 사람도 있다. 보통 ISBN(국제표준도서번호)을 가지고 있지 않으나, 아주 드물게 ISBN이 있는 것도 있다. 한국에서는 진을 ‘아트북’의 형태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고, 운동권 ‘찌라시’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다. 그냥 독립출판물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가 진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것이 이윤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순수한 자기표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많이 팔아 더 많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라면 굳이 그것이 진이어야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순수한 자기표현을 위해서라면, “누구나 하고 싶은 말이 있고, 그것은 다른 사람이 절대로 대신해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라면 그것은 진이어야만 한다. 우리는 적어도 그렇게 믿었다.

주 2: 당시에는 다이애나랩과 진 수업이 아무런 관련도 없었다. 현재 다이애나랩 멤버 중 일부가 진 수업에 참여하고 있지만, 진 수업에는 (당연하게도) 다른 다양한 교사가 함께한다. 써놓고 보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좀 어렵게 느껴지기도 할 것 같지만, 진 수업은 다양한 사람과 맥락이 교차하며 그 누구의 ‘것’도 아닌 형태를 유지한다. 노들야학에서 야학 학생을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때로 협의를 거쳐 다른 참여자가 오가기도 한다. 수업은 야학 담당자와 진 수업 교사들이 맡는다. 다이애나랩은 진수업이 <퍼레이드 진진진>을 하기 위해 필요한 잠깐의 이름 같은 것이었다.

사진·영상제공. 필자

다이애나랩 

사회적 소수자와 함께 하는 표현을 연구하고 실행하는 그룹이다. 미디어아트, 사운드아트, 텍스타일, 사진, 영상 등 개인 작업을 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만든 콜렉티브(collective)로 물리적인 공간부터 순간, 보이지 않는 공기까지 전체를 섬세하게 만드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dianalab00@gmail.com
필자 블로그 바로가기 : https://www.instagram.com/dianalab000/

상세내용

다이애나랩이 기획한 프로젝트의 대부분이 그렇지만, <퍼레이드 진진진>도 설명을 하려면 좀 복잡하다. 이 프로젝트에는 너무 많은 맥락과 너무 많은 사람이 연결되어 있다. ‘다이애나랩’이나 ‘퍼레이드 진진진’이라는 이름이 있기 훨씬 오래전 이야기부터 꺼내야 한다.

2011년부터 현재까지 서울에서 운영 중인 ‘인포숍카페별꼴’이라는 공간에서는 ‘진(zine) 만들기’ 워크숍과 전시를 꽤 오래 해왔다.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고 특히 휠체어가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어떤 프로그램이나 전시를 열어도 자연스럽게 장애인과 비장애인 통합이 되곤 했다. 인포숍카페별꼴 매니저들은 프로그램을 열기 전에는 항상 ‘여기에 함께 있을 수 없는 사람이 누구일까’를 생각하며 기획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진 만들기 워크숍에는 항상 다양한 사람이 모였고, 참여자들은 프로그램이 끝나고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어딜 가서 이런 사람들과 만날 수 있겠어요.”

장애가 있는 사람도 그렇게 말했고, 장애가 없는 사람도 같은 말을 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디자이너이거나 시각예술가이거나, 연극을 하거나, 아무튼 서울이나 외국에서 거주해온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가진 20~30대, 아니면 시설에서 평생을 보낸 50대, 한글을 모르는 사람, 컴퓨터를 모르는 사람, 스마트폰을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 등이었다. 그중에는 또 다양한 성별, 성 정체성, 장애, 국적, 출신 지역, 나이 등을 이유로 차별받아본 적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섞여 있기도 했다.

“아주 다른 배경을 가진 각기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 평등한 입장에서 한곳에 있을 수 있을까?”

“왜 그런 순간이 그토록 드문 것일까?”

이것이 우연히 인포숍카페별꼴에 왔다가 워크숍 참여자가 되고, 주최자가 되고, 다시 참여자가 되었던 우리의 질문이었다. 왜 우리는 서로 평생 단 한 번도 이렇게 만날 수가 없는 사람들이었을까.

왜 우리가 이런 질문을 공유하게 되었는지, 이유를 한 가지로 들 수는 없다. 언젠가 경험했던 차별의 기억이라든지 소수자로서의 정체성, 타자를 어떻게 만날 것인가에 대한 각자의 문제의식에서부터 취향, 좋아하는 노래, 어떤 감각에 이끌리는 것까지 너무도 다양한 이유가 있을 테니까. 처음에 우리가 이끌렸던 것은 서브컬처(subculture)와 진(zine)이었던 것 같다. 서브컬처에 이끌렸던 어떤 마음이나 정체성이 모여서 공통적인 어떤 것을 만들게 되었던 게 아닌가 싶다. 우리가 진(주1)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이 다른 어떠한 권위 없이 자유로운 개인의 표현을 보장하는 매체였기 때문이다. 진을 만들고 나누는 순간에는 모두가 진스터(zinester)로서 자신이 만든 진에 대한 온전한 권리를 가질 수 있었다. 기존의 권위에 의해 평가받지 않을 수 있는 나의 창작물. 그것은 누가 이래라저래라할 수 없는 최소 단위의 ‘외침’이자 그것을 밖으로 퍼트릴 수 있는 ‘미디어’ 같은 것이었다. 그것이 비록 제대로 된 한글이나 음성언어가 아니어도 말이다. 한글을 틀리게 써서 만든 진이더라도 다른 누가 나에게 그것을 지적할 수는 없다. 책이 아니라 진의 세계에서는 그렇다.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는데 당신이 왜? 대체 어떤 기준으로?’

진을 만든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허락받거나 잘했다고 인정받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의 진을 읽거나 다른 진과 교환하는 것, 진스터끼리의 교류는 동등한 개인들 사이의 연대와 같다. 진의 세계에서는 선배도 선생님도 오빠도 언니도 없이 오직 진스터만이 있으니까. 그리고 그건 열심히 배우고 수련을 거쳐 되는 것이 아니라 당장이라도 A4 종이를 찢어 무언가를 휘갈겨 쓰고 다른 이에게 전하는 순간 바로 완성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중증발달장애인 수업을 기획해보지 않겠냐고 다이애나랩 멤버들 중 두 명이 처음 제안받았을 때(주2), 우리는 자연스럽게 진을 떠올렸던 것 같다. 글자가 아닌 이미지만으로 무언가를 표현하는 낱장 짜리 종이일 때조차 그것은 미술작품이나 예술작품이 아닌 진이었다. 미술이라는 단어를 쓰는 순간 우리는 미술이 정한 권위와 촘촘한 위계의 세계, 가치 있음과 없음, 팔린다 팔리지 않는다, 잘한다 못한다가 너무도 분명한 세계에서 도저히 벗어날 길이 없는 것처럼 보였고...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평생을 살다 이제 막 지역사회로 나오기 시작한 이들에게 비장애인 중심으로 짜여진(그렇지만 비장애인에게조차 힘든) 세상의 룰을 애써 가르치고 싶지 않았다. 가르칠 수도 없었지만 가르치기도 싫었다. 세상은 이러이러한 거니까 규칙을 잘 따라야 해, 그게 비록 자신을 고통스럽게 옥죄는 것이라도 말이야, 라는 말을 정말로 싫어했던 우리가 어떻게 그걸 다시 가르칠 수 있을까? 좀 많이 폭력적인 방식으로 굴러가고 있는 세계에 이제 막 들어선 이에게 무언가를 새롭게 알려주어야 한다면... 그것은 제안하거나 가르치거나 초대하는 입장이 되는 비장애인인 우리의 권위를 최대한 낮추고, 순간이나마 그 권위가 사라지는 것이 가능한 것이어야 했다. 그리고 동시에 ‘선생님’으로 불리는 우리를 포함해 참여하는 모두가 하나의 동등한 개인으로서 있을 수 있는 순간이어야 했다. 그 순간이 비록 계속 이어지지 않고 아주 짧게 지나가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종이를 펴놓고 각자 좋아하는 진을 그리고 만들었다. 복사도 하고 잘라 붙이기도 하고 색칠도 하면서 그 시간을 보냈다. 서로 만든 것을 나눠 가지기도 하고 교환하기도 하고 벽에 붙이거나 스크랩북에 끼워 모으기도 하면서 즐거워했다. 우리는 그렇게 노들야학 진 수업 교사 중 일부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진 수업 참여자로서 진을 그려왔다. 늘 같이 앉아서 만든 것은 아니지만, 같이 앉아서 각자의 표현을 지속하는 순간만이 우리를 평등하게 있을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순간을 몹시 사랑했다.

몇 년이 지나 우리는 그렇게 만든 각자의 진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그게 <퍼레이드 진진진>이었다.

 

주 1: 진은 개인이나 작은 그룹이 기획, 집필, 편집, 디자인, 인쇄, 유통까지의 전 과정을 스스로(DIY) 하는 출판물을 말하지만, 예외가 너무도 많기 때문에 딱히 진의 정의를 내리기는 힘들다. 진을 매거진으로 볼 수는 없지만, 어떤 진은 시리즈처럼 보이는 잡지의 형태이기도 하다. 물론 아닌 것도 많다. 진은 낱장의 인쇄물부터 두툼하게 제본된 것까지 크기와 형태가 매우 다양하다. 1부를 인쇄하기도 하고 1000부를 인쇄하기도 한다. DIY 방식이 아니라 작은 출판사를 만들어 제작하는 사람도 있다. 보통 ISBN(국제표준도서번호)을 가지고 있지 않으나, 아주 드물게 ISBN이 있는 것도 있다. 한국에서는 진을 ‘아트북’의 형태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고, 운동권 ‘찌라시’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다. 그냥 독립출판물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가 진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것이 이윤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순수한 자기표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많이 팔아 더 많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라면 굳이 그것이 진이어야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순수한 자기표현을 위해서라면, “누구나 하고 싶은 말이 있고, 그것은 다른 사람이 절대로 대신해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라면 그것은 진이어야만 한다. 우리는 적어도 그렇게 믿었다.

주 2: 당시에는 다이애나랩과 진 수업이 아무런 관련도 없었다. 현재 다이애나랩 멤버 중 일부가 진 수업에 참여하고 있지만, 진 수업에는 (당연하게도) 다른 다양한 교사가 함께한다. 써놓고 보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좀 어렵게 느껴지기도 할 것 같지만, 진 수업은 다양한 사람과 맥락이 교차하며 그 누구의 ‘것’도 아닌 형태를 유지한다. 노들야학에서 야학 학생을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때로 협의를 거쳐 다른 참여자가 오가기도 한다. 수업은 야학 담당자와 진 수업 교사들이 맡는다. 다이애나랩은 진수업이 <퍼레이드 진진진>을 하기 위해 필요한 잠깐의 이름 같은 것이었다.

사진·영상제공.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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