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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되어 누구와 만날까

이음광장 초대의 감각

  • 다이애나랩 
  • 등록일 2021-09-17
  • 조회수1437
  • ‘환대의 조각들’ 웹사이트의 메인 페이지.
    지도처럼 그려진 이미지 위로 ‘환대의 조각들’ 소개글과 프로젝트가 시간 순으로 나열되어있다. 각각의 프로젝트를 클릭하면 관련 정보를 수어, 한글, 영어, 큰글씨로 볼 수 있다.

‘환대의 조각들’은 다이애나랩이 기획해 2020년부터 진행 중인 공공예술 프로젝트다. 국내외 51명의 작가/팀과 함께 했다. 참여작가뿐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참여하거나 조력한 이들도 많기 때문에 ‘환대의 조각들’을 둘러싼 주요 네트워크는 80~90명 정도다. (와! 이렇게 많은 친구가 연결되어 있다니!)

누구를 어떤 이름으로 부를 것인가

‘참여작가’라고 편의상 말하지만 사실 작가이거나, 작가가 아니거나, 그 사이에서 방황 중이거나, 작가가 아닌 완전히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거나, ‘작가’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예 모르는 사람들로 환대의 조각들은 구성되어 있다. 처음에는 작가라는 말을 어색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 ‘참여자’로 명칭을 통일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때에는 작가로 부르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참여자가 되기도 했다.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은 맥락이었기 때문에, 맥락에 따라 그때그때 다르게 불렀다.

예를 들어 사회가 흔히 ‘소수자’라 부르는 정체성으로 구분되기 쉬운 사람의 경우, 특히 그 사람이 정규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고 또 엄청난 천재성으로 독보적인 작품 세계를 펼쳐본 일이 없는 경우, 사회에서 ‘예술가’로 부르는 부류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기 쉬울 때 우리는 왠지 그에게 ‘참여자’라는 말을 절대로 쓰고 싶지가 않다. 여기저기서 본인의 정체성 때문에 예술가들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존재가 되기 쉬운 사람들의 경우에는 특히.

또 다른 맥락에서, 기획자/참여작가 사이의 구분이 생기거나, 작가/스태프처럼 창작자와 창작자 아닌 사람의 구분이 위계로 이어지기 쉬운 경우, 그냥 모두 프로젝트 참여자로 부르기도 했다. 항상 주의 깊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어떤 맥락에서 어떤 위계가 생기는지다. 언제 누가 어떤 이름으로 불렸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그때그때 세심하게 살필 수밖에 없었다.

‘환대의 조각들’이라는 프로젝트에 관해 설명할 때면, 항상 이렇게 지엽적인 이야기가 길게 따라붙는다. 누구를 어떤 이름으로 부를 것인가, 왜 그렇게 부를 것인가부터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것이 어떤 위치에서 누구에게 연결되어 어떤 효과를 가지게 되는지를 끝도 없이 생각하게 하는 프로젝트다. 몇 문장으로 간단하게 이 프로젝트를 설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내내 우리 앞에는 풀리지 않는 질문들이 산더미처럼 와르르 쏟아졌다. 환대, 마이너리티, 로컬, 초연결, 반차별 등의 키워드를 가진 공공예술 프로젝트라는 것은 정말 복잡하게 얽힌 여러 맥락과 여러 질문과 실패한 사례만을 가지고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웹 플랫폼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의 ‘환대의 조각들’

‘환대의 조각들’은 2020년 참여작가 각자의 조각을 웹 플랫폼 ‘환대의 조각들 1444’에 모으고, 그것을 바탕으로 2021년에는 전시와 퍼포먼스 등 여러 형태로 ‘지역에 있는 접근성이 확보된 공간’에서 직접 뭔가를 해본다는(‘환대의 조각들 2021’) 큰 줄기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하는 일이 늘 그렇듯이 시작도 하기 전에 전제부터 뒤엎는 그런 질문들이 서로에게 쏟아졌는데, 이 경우에는 “웹 플랫폼에 절대로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그랬다.

참여작가 중에는 여성 홈리스 당사자로 활동하는 분이 있었다. 그는 인터넷을 능숙하게 다루고 가끔 SNS에 글도 남기지만, 자신의 주변 사람들 대부분이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지 못하는 상황을 지적했다. ‘환대의 조각들 1444’ 웹 플랫폼은 참여작가 중 몇 명이 모여, 가능한 한 거대 자본과 시스템을 벗어나는 방식으로 스스로 만든 것이었다. (물론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케이블을 우리가 직접 공사할 수는 없으므로, 어느 정도 타협을 보기는 했다) 웹 플랫폼을 제작하면서도 아주 많은 고민과 토론이 있었고 그 이야기는 따로 또 언젠가 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지만... 어쨌든 그것과 별개로 인터넷에 아예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대안적인 웹 플랫폼이 다 무슨 소용이냐는 문제 제기는 아주 적절했다. 실제로 중증발달장애가 있는 참여작가 22명 중에서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이고, 한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그보다 더 적었기 때문에, 조력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인터넷 회의나 수업을 할 수 있기는 했지만 스스로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배워 무언가를 업로드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우리에게는 이 질문이 너무 중요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풀리지 않는 이 문제를 아주 오래 붙들고 있었다. 괜찮은 해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환대의 조각들 1444’ 웹 플랫폼에는 텅 빈 폴더가 생겼다. 웹으로는 조각모음에 참여할 수 없는 참여작가들의 폴더였다. 인터넷에는 없는 사람들의 자리. 없기 때문에 그 부재가 인터넷 안에서는 드러나지도 않는 사람들의 자리. 아무리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것들. 우리는 데이터 대신 공원에 떨어진 나뭇잎에 정성 들여 그리고 쓴 진(zine)의 조각들을 항공우편으로 받았다. A4 용지에 엄청난 속도로 빠르게 그린 그림과 편지, 쪽지들을 빌렸다.

“웹 플랫폼에 절대로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계속해서 자석처럼 우리를 끌어당긴다. ‘환대의 조각들’을 진행하면서 그런 질문과 스무 번쯤 마주쳤던 것 같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질문을 던졌고, 함께 대답했다. 딱히 기획자라고 올바른 해답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런 문제는 같이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걸 했을 때 여기에 접근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웹 플랫폼이 대안이 될 수 없었던 어떤 부분을 오프라인에서 어떻게 풀어볼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 ‘환대의 조각들 2021’의 첫 번째 전시 《초대의 감각》을 만들게 되었다.

초대의 감각, 가장 멀리에 있는 사람에게

이 전시는 초대라는 단어를 둘러싼 여러 물음들, 누구를 초대할 것인가, 누가 초대할 것인가의 문제에서부터, 이 단어와 연결되는 다양한 쟁점들을 여러 감각을 통해 표현한다. 시각 이미지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누군가에게 시각 이미지로 만들어진 작품은 어떻게 번역되어 전달될 수 있을지, 사운드로부터 가장 먼 곳에 있는 관람객에게 사운드 작품은 어떻게 가 닿을 수 있을지. 이것은 오직 만져서만 알 수 있는 누군가의 마음이기도 하고,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누군가의 세계를 다른 감각으로 전달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전시를 통해 가장 멀리에 있는 사람을 초대하고, 가장 멀리에 있는 사람에게 초대받는 감각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초대의 감각》 전시 서문

이 전시는 참여작가들이 시각과 촉각, 청각, 후각 등의 감각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번역하듯 창작한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이면서, ‘초대’와 ‘환대’를 둘러싼 창작자와 관람객 각자가 가진 어떤 감각에 대해 생각해보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 전시를 시작으로 ‘환대의 조각들 2021’은 최소한의 전시 접근성 모델을 만들고 적용하게 되었다. 전시공간은 일단 ‘차별없는가게’이거나 차별없는가게 접근성 기준에 부합하는 곳이어야 했다. 《초대의 감각》이 열린 차별없는가게 탈영역우정국에는 휠체어와 유아차, 동물의 입장이 가능하고,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 성중립 화장실을 갖추었으며, LGBTQ+, 발달장애인 등을 차별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 공간이었다. 전시장 입구에는 전시장 전체를 묘사한 음성해설, 수어해설 화면, 점자로 된 리플렛, 큰글씨로 된 한글과 영어 리플렛이 놓였다. 전시장에는 매일 안내인이 상주했는데, 작품 설명을 해주는 도슨트가 아닌 ‘조력인(Accessibility Assistant)’의 개념이었다. 안내인이 수어통역사는 아니었기 때문에 필담이 가능하도록 노트나 스마트폰을 준비해두었다. 안내인은 모두 입술이 보이는 립뷰마스크를 착용하도록 했다.

작품은 창작 단계에서부터 “이 작품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해 어느 정도 고려를 한 상태로 만들어졌고, 수어해설 영상 QR이나 음성해설, 안내인의 설명, 진동이나 촉각을 이용해 작품에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장애가 있거나 다른 정체성을 가진 참여작가들도 있었는데, 모두 “이 작품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다른 감각의 작품 창작을 제안했을 때 재미있겠다며 별 무리 없이 받아들였다. 우리에게는, 소수자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항상 환대나 포용의 대상이 되는 것이 좀 이상했다. 그래서 좀 모자라고 이상해 보이는 우리라도 스스로 다른 사람들을 환대할 수 있는 창작을 하자고 생각했다.

《초대의 감각》 전시에는 벽에 걸린 작가의 노트를 관람객이 다른 관람객에게 큰소리로 읽어주어야 하는 작품도 있었고, 사진 속 인물이 자신의 모습을 음성으로 해설하는 작품도 있었다. 사진 속 소수자 피사체가 대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스스로를 설명함으로써 사진 너머의 다른 작품이 되는 순간은 정말 두근거렸다. 드로잉 작업을 하던 작가가 “시각장애가 있는 관람객은 이 작품을 어떻게 관람하나요?”라는 질문 앞에서 자신의 세계관을 음성으로 설명하기 시작했을 때, 그리고 그 작품을 시각장애가 있는 관람객이 와서 감상하는 순간을 보았을 때, 진동으로 느낄 수 있는 테이블 작품에 모두가 귀나 손이나 팔을 대고 느끼던 장면 하나하나를 우리는 정말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환대의 조각들 2021’은 《초대의 감각》 전시 이후 제주 강정마을 문화공간 비수기에서 전시 《항구로부터, 신호》를 열었고, ‘릴랙스드 퍼포먼스’ 3건을 상연했으며, 현재 서울에서 《당신을 향해 뻗은 선》이라는 전시를 열고 있다. 모두 《초대의 감각》의 접근성 모델을 적용하여 만들었다. 모든 행사는 ‘환대의 조각들 2021’ 웹사이트에서 수어, 자막, 음성, 큰글씨 한글, 영어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이후에는 이동하는 저상버스에서의 연극과, 제주돌핀센터에서 전시와 워크숍을 열 계획이다. 앞으로 풀리지 않는 질문들이 더 많이 쏟아지고 지난한 실패의 경험도 더 많아지겠지만 그만큼 같이 나눌 이야기도 많아질 것 같다. 환대의 조각들을 통해 초대하고 초대받는 과정에서 사소하고 중요한, 작은 이야기들을 더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항구로부터, 신호》 전시장 입구 모습과 점자리플렛.
입구 리셉션은 감귤선과장 선과기를 이용해 설치했고, 왼쪽부터 점자통합리플렛, 한글 큰글씨 리플렛, 영어 큰글씨 리플렛, 점자 많은 정보 리플렛이 놓여져있다. 화면에서는 전시 안내 사항에 대한 수어 영상이 나오고 있고, 음성은 별도의 스피커를 설치하여 전시장 전체의 맵과 작품 배치, 관람 안내 사항 등을 음성으로 나오게 했다. 입구에는 안내인이 항상 상주하고 있었다.

다이애나랩

다이애나랩 

사회적 소수자와 함께 하는 표현을 연구하고 실행하는 그룹이다. 미디어아트, 사운드아트, 텍스타일, 사진, 영상 등 개인 작업을 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만든 콜렉티브(collective)로 물리적인 공간부터 순간, 보이지 않는 공기까지 전체를 섬세하게 만드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차별없는 가게 인스타그램(링크)
환대의 조각들 인스타그램(링크)
dianalab00@gmail.com

다이애나랩

다이애나랩 

사회적 소수자와 함께 하는 표현을 연구하고 실행하는 그룹이다. 미디어아트, 사운드아트, 텍스타일, 사진, 영상 등 개인 작업을 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만든 콜렉티브(collective)로 물리적인 공간부터 순간, 보이지 않는 공기까지 전체를 섬세하게 만드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차별없는 가게 인스타그램(링크)
환대의 조각들 인스타그램(링크)
dianalab00@gmail.com

상세내용

  • ‘환대의 조각들’ 웹사이트의 메인 페이지.
    지도처럼 그려진 이미지 위로 ‘환대의 조각들’ 소개글과 프로젝트가 시간 순으로 나열되어있다. 각각의 프로젝트를 클릭하면 관련 정보를 수어, 한글, 영어, 큰글씨로 볼 수 있다.

‘환대의 조각들’은 다이애나랩이 기획해 2020년부터 진행 중인 공공예술 프로젝트다. 국내외 51명의 작가/팀과 함께 했다. 참여작가뿐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참여하거나 조력한 이들도 많기 때문에 ‘환대의 조각들’을 둘러싼 주요 네트워크는 80~90명 정도다. (와! 이렇게 많은 친구가 연결되어 있다니!)

누구를 어떤 이름으로 부를 것인가

‘참여작가’라고 편의상 말하지만 사실 작가이거나, 작가가 아니거나, 그 사이에서 방황 중이거나, 작가가 아닌 완전히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거나, ‘작가’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예 모르는 사람들로 환대의 조각들은 구성되어 있다. 처음에는 작가라는 말을 어색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 ‘참여자’로 명칭을 통일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때에는 작가로 부르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참여자가 되기도 했다.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은 맥락이었기 때문에, 맥락에 따라 그때그때 다르게 불렀다.

예를 들어 사회가 흔히 ‘소수자’라 부르는 정체성으로 구분되기 쉬운 사람의 경우, 특히 그 사람이 정규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고 또 엄청난 천재성으로 독보적인 작품 세계를 펼쳐본 일이 없는 경우, 사회에서 ‘예술가’로 부르는 부류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기 쉬울 때 우리는 왠지 그에게 ‘참여자’라는 말을 절대로 쓰고 싶지가 않다. 여기저기서 본인의 정체성 때문에 예술가들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존재가 되기 쉬운 사람들의 경우에는 특히.

또 다른 맥락에서, 기획자/참여작가 사이의 구분이 생기거나, 작가/스태프처럼 창작자와 창작자 아닌 사람의 구분이 위계로 이어지기 쉬운 경우, 그냥 모두 프로젝트 참여자로 부르기도 했다. 항상 주의 깊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어떤 맥락에서 어떤 위계가 생기는지다. 언제 누가 어떤 이름으로 불렸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그때그때 세심하게 살필 수밖에 없었다.

‘환대의 조각들’이라는 프로젝트에 관해 설명할 때면, 항상 이렇게 지엽적인 이야기가 길게 따라붙는다. 누구를 어떤 이름으로 부를 것인가, 왜 그렇게 부를 것인가부터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것이 어떤 위치에서 누구에게 연결되어 어떤 효과를 가지게 되는지를 끝도 없이 생각하게 하는 프로젝트다. 몇 문장으로 간단하게 이 프로젝트를 설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내내 우리 앞에는 풀리지 않는 질문들이 산더미처럼 와르르 쏟아졌다. 환대, 마이너리티, 로컬, 초연결, 반차별 등의 키워드를 가진 공공예술 프로젝트라는 것은 정말 복잡하게 얽힌 여러 맥락과 여러 질문과 실패한 사례만을 가지고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웹 플랫폼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의 ‘환대의 조각들’

‘환대의 조각들’은 2020년 참여작가 각자의 조각을 웹 플랫폼 ‘환대의 조각들 1444’에 모으고, 그것을 바탕으로 2021년에는 전시와 퍼포먼스 등 여러 형태로 ‘지역에 있는 접근성이 확보된 공간’에서 직접 뭔가를 해본다는(‘환대의 조각들 2021’) 큰 줄기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하는 일이 늘 그렇듯이 시작도 하기 전에 전제부터 뒤엎는 그런 질문들이 서로에게 쏟아졌는데, 이 경우에는 “웹 플랫폼에 절대로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그랬다.

참여작가 중에는 여성 홈리스 당사자로 활동하는 분이 있었다. 그는 인터넷을 능숙하게 다루고 가끔 SNS에 글도 남기지만, 자신의 주변 사람들 대부분이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지 못하는 상황을 지적했다. ‘환대의 조각들 1444’ 웹 플랫폼은 참여작가 중 몇 명이 모여, 가능한 한 거대 자본과 시스템을 벗어나는 방식으로 스스로 만든 것이었다. (물론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케이블을 우리가 직접 공사할 수는 없으므로, 어느 정도 타협을 보기는 했다) 웹 플랫폼을 제작하면서도 아주 많은 고민과 토론이 있었고 그 이야기는 따로 또 언젠가 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지만... 어쨌든 그것과 별개로 인터넷에 아예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대안적인 웹 플랫폼이 다 무슨 소용이냐는 문제 제기는 아주 적절했다. 실제로 중증발달장애가 있는 참여작가 22명 중에서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이고, 한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그보다 더 적었기 때문에, 조력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인터넷 회의나 수업을 할 수 있기는 했지만 스스로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배워 무언가를 업로드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우리에게는 이 질문이 너무 중요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풀리지 않는 이 문제를 아주 오래 붙들고 있었다. 괜찮은 해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환대의 조각들 1444’ 웹 플랫폼에는 텅 빈 폴더가 생겼다. 웹으로는 조각모음에 참여할 수 없는 참여작가들의 폴더였다. 인터넷에는 없는 사람들의 자리. 없기 때문에 그 부재가 인터넷 안에서는 드러나지도 않는 사람들의 자리. 아무리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것들. 우리는 데이터 대신 공원에 떨어진 나뭇잎에 정성 들여 그리고 쓴 진(zine)의 조각들을 항공우편으로 받았다. A4 용지에 엄청난 속도로 빠르게 그린 그림과 편지, 쪽지들을 빌렸다.

“웹 플랫폼에 절대로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계속해서 자석처럼 우리를 끌어당긴다. ‘환대의 조각들’을 진행하면서 그런 질문과 스무 번쯤 마주쳤던 것 같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질문을 던졌고, 함께 대답했다. 딱히 기획자라고 올바른 해답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런 문제는 같이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걸 했을 때 여기에 접근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웹 플랫폼이 대안이 될 수 없었던 어떤 부분을 오프라인에서 어떻게 풀어볼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 ‘환대의 조각들 2021’의 첫 번째 전시 《초대의 감각》을 만들게 되었다.

초대의 감각, 가장 멀리에 있는 사람에게

이 전시는 초대라는 단어를 둘러싼 여러 물음들, 누구를 초대할 것인가, 누가 초대할 것인가의 문제에서부터, 이 단어와 연결되는 다양한 쟁점들을 여러 감각을 통해 표현한다. 시각 이미지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누군가에게 시각 이미지로 만들어진 작품은 어떻게 번역되어 전달될 수 있을지, 사운드로부터 가장 먼 곳에 있는 관람객에게 사운드 작품은 어떻게 가 닿을 수 있을지. 이것은 오직 만져서만 알 수 있는 누군가의 마음이기도 하고,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누군가의 세계를 다른 감각으로 전달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전시를 통해 가장 멀리에 있는 사람을 초대하고, 가장 멀리에 있는 사람에게 초대받는 감각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초대의 감각》 전시 서문

이 전시는 참여작가들이 시각과 촉각, 청각, 후각 등의 감각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번역하듯 창작한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이면서, ‘초대’와 ‘환대’를 둘러싼 창작자와 관람객 각자가 가진 어떤 감각에 대해 생각해보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 전시를 시작으로 ‘환대의 조각들 2021’은 최소한의 전시 접근성 모델을 만들고 적용하게 되었다. 전시공간은 일단 ‘차별없는가게’이거나 차별없는가게 접근성 기준에 부합하는 곳이어야 했다. 《초대의 감각》이 열린 차별없는가게 탈영역우정국에는 휠체어와 유아차, 동물의 입장이 가능하고,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 성중립 화장실을 갖추었으며, LGBTQ+, 발달장애인 등을 차별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 공간이었다. 전시장 입구에는 전시장 전체를 묘사한 음성해설, 수어해설 화면, 점자로 된 리플렛, 큰글씨로 된 한글과 영어 리플렛이 놓였다. 전시장에는 매일 안내인이 상주했는데, 작품 설명을 해주는 도슨트가 아닌 ‘조력인(Accessibility Assistant)’의 개념이었다. 안내인이 수어통역사는 아니었기 때문에 필담이 가능하도록 노트나 스마트폰을 준비해두었다. 안내인은 모두 입술이 보이는 립뷰마스크를 착용하도록 했다.

작품은 창작 단계에서부터 “이 작품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해 어느 정도 고려를 한 상태로 만들어졌고, 수어해설 영상 QR이나 음성해설, 안내인의 설명, 진동이나 촉각을 이용해 작품에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장애가 있거나 다른 정체성을 가진 참여작가들도 있었는데, 모두 “이 작품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다른 감각의 작품 창작을 제안했을 때 재미있겠다며 별 무리 없이 받아들였다. 우리에게는, 소수자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항상 환대나 포용의 대상이 되는 것이 좀 이상했다. 그래서 좀 모자라고 이상해 보이는 우리라도 스스로 다른 사람들을 환대할 수 있는 창작을 하자고 생각했다.

《초대의 감각》 전시에는 벽에 걸린 작가의 노트를 관람객이 다른 관람객에게 큰소리로 읽어주어야 하는 작품도 있었고, 사진 속 인물이 자신의 모습을 음성으로 해설하는 작품도 있었다. 사진 속 소수자 피사체가 대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스스로를 설명함으로써 사진 너머의 다른 작품이 되는 순간은 정말 두근거렸다. 드로잉 작업을 하던 작가가 “시각장애가 있는 관람객은 이 작품을 어떻게 관람하나요?”라는 질문 앞에서 자신의 세계관을 음성으로 설명하기 시작했을 때, 그리고 그 작품을 시각장애가 있는 관람객이 와서 감상하는 순간을 보았을 때, 진동으로 느낄 수 있는 테이블 작품에 모두가 귀나 손이나 팔을 대고 느끼던 장면 하나하나를 우리는 정말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환대의 조각들 2021’은 《초대의 감각》 전시 이후 제주 강정마을 문화공간 비수기에서 전시 《항구로부터, 신호》를 열었고, ‘릴랙스드 퍼포먼스’ 3건을 상연했으며, 현재 서울에서 《당신을 향해 뻗은 선》이라는 전시를 열고 있다. 모두 《초대의 감각》의 접근성 모델을 적용하여 만들었다. 모든 행사는 ‘환대의 조각들 2021’ 웹사이트에서 수어, 자막, 음성, 큰글씨 한글, 영어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이후에는 이동하는 저상버스에서의 연극과, 제주돌핀센터에서 전시와 워크숍을 열 계획이다. 앞으로 풀리지 않는 질문들이 더 많이 쏟아지고 지난한 실패의 경험도 더 많아지겠지만 그만큼 같이 나눌 이야기도 많아질 것 같다. 환대의 조각들을 통해 초대하고 초대받는 과정에서 사소하고 중요한, 작은 이야기들을 더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항구로부터, 신호》 전시장 입구 모습과 점자리플렛.
입구 리셉션은 감귤선과장 선과기를 이용해 설치했고, 왼쪽부터 점자통합리플렛, 한글 큰글씨 리플렛, 영어 큰글씨 리플렛, 점자 많은 정보 리플렛이 놓여져있다. 화면에서는 전시 안내 사항에 대한 수어 영상이 나오고 있고, 음성은 별도의 스피커를 설치하여 전시장 전체의 맵과 작품 배치, 관람 안내 사항 등을 음성으로 나오게 했다. 입구에는 안내인이 항상 상주하고 있었다.

다이애나랩

다이애나랩 

사회적 소수자와 함께 하는 표현을 연구하고 실행하는 그룹이다. 미디어아트, 사운드아트, 텍스타일, 사진, 영상 등 개인 작업을 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만든 콜렉티브(collective)로 물리적인 공간부터 순간, 보이지 않는 공기까지 전체를 섬세하게 만드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차별없는 가게 인스타그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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