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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음새 날다② 연극 <나인프리다> 관람기

이음광장 내 안의 프리다를 위로하는 마주침

  • 이음새 1기 김아영
  • 등록일 2022-01-14
  • 조회수890
  • 연극 <나인프리다>의 한 장면

‘2021 무장애예술주간:No Limits in Seoul’을 통해 선보인 연극 <나인프리다>는 케이트 오라일리(Kaie O’Reilly)의 희곡을 무대화한 작품으로, 장애인 배우들을 중심으로 배리어프리 접근방식을 반영했다. 화가 프리다 칼로의 인생과 그림을 소재로 고대 마야-아즈텍의 전통에 따라 프리다가 죽음을 향해 떠나는 여정을 유쾌하게 그려낸다.

연극은 프리다 칼로가 갖고 있던 다양한 소수자성과 그의 예술이 지닌 이야기를 무대 위 6명의 프리다가 전해주면서 진행된다. 그중 2명의 배우는 휠체어를 타고, 또 다른 2명의 배우는 수어를 사용한다. 수어통역사 1명이 무대를 오가며 함께 공연한다. 공연장 안 세 벽면에서는 영상과 사진, 자막이 제공되고, 이야기를 전하듯 음성해설도 진행된다.

관객은 입장하며 꽃으로 장식된 머리띠를 건네받아 착용한다. 공연장은 촛불과 화려한 장식, 꽃으로 가득하다. 배우들 역시 관객의 것과 같은 머리띠를 쓰고 무대를 누비며 춤을 추고 있다. 공연의 시작부터 우리 모두 ‘프리다’가 된다는 것을 실감케 한다.

공연은 전반적으로 꽤 거칠었다. 여기서 거칠다는 건, 형식이 그러했다는 의미다. 공연 중 사용되었던 영상이, 배우의 몸이, 잘 짜여 부드러운 느낌이 아니라 사포질이 덜 된 듯한 느낌이었다. 그 자연스러움과 거침없음이 좋았다. 배우와 무대 전체가 내뿜는 에너지가 좋았다. 망자의 축제인 이 공연이 완벽하게 매끄러웠다면 오히려 어색했을 것이다.

같은 대사를 두 배우가 동시에 연기한다. 한 명은 발화로, 또 다른 한 명은 수어로. 둘은 무대에서 서로 맞은편에 서 있다. 왠지 모르게 수어를 하는 배우에게 계속 시선이 갔다. 다른 배우의 발화를 귀로 들으며 보고 있다 보면 두 배우의 언어가 합쳐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수어를 배우지 않았는데도 수어가 자연스레 받아들여졌다고 해야 할까. 몰입감이 컸다. 비장애인 관객으로서 음성해설과 수어 통역을 역으로 경험함과 동시에, 어떤 언어가 선행된 것인지 경계가 모호해졌다. 무대에서 수어를 사용하는 배우의 공연을 더 자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통역이라는 장치가 아닌 그 자체로 연극일 수 있는 공연을.

프리다는 자신을 ‘다친 것이 아니라 부서졌다’라고 표현했다. 자신의 신체를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말하는 장면을 황철호 배우가 했는데, 그가 정말 프리다로서 말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휠체어에 앉아 그만의 목소리로 발화하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프리다가 가졌던 고통이 더욱 짙게 느껴졌다. 이음새 활동을 하며 황철호 배우가 참여한 공연을 일전에 본 적이 있는데, 그가 가지고 있는 매력과 힘을 다시 한번 느꼈다. 황철호 배우가 연기함으로써, 그의 말을 거침으로써 표현되는 것들이 있다.

공연 초반에 프리다들이 눈을 피하지 않고 관객을 응시한다는 내레이션이 나오는데, 공연 후반에 각 프리다들이 관객의 앞에 가까이 앉아 눈을 맞춘다. 내 앞에도 한 프리다가 마주 앉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서로를 응시했다. 그때 그 찰나의 순간은 강렬했고, 그 눈빛에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나 역시 한 명의 프리다로서, 나를 마주하고 있는 프리다와 하나가 되어 교감하고 있었다.

“기억이 점점 희미해져”라고 말하던 프리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프리다들과 함께 자신의 삶을 복기했고, 그 기억의 끝인 마지막 전시장까지 다다랐다. 자신의 고통이 시작되던 순간부터 오랜 시간 이어져 온 고통을 다시 톺아보기란 쉽지 않은 과정이었을 테다. 공연은 조심스럽게 관객을 무대로 이끌어 망자의 축제를 함께하며 마무리되었다. 꽃을 올리고, 박수를 치고 원을 그리는 동안, 프리다 칼로의 삶이, 짙은 일자 눈썹과 웃음기가 도는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 옆에서 그의 삶을 이야기했던 프리다들, 그리고 또 다른 프리다들을 생각했다.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 이 여정의 끝에서 모두가 평안할 수 있기를, 웃을 수 있기를.

김아영

김아영

한국어문학을 전공했다. 차별과 장벽이 없는 세상을 꿈꾸며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다. 공연예술 분야를 서성이고 있는 기획자(이길 바라는 사람). 2021년 이음온라인 서포터즈 ‘이음새’ 1기로 활동했다.
goodayeong@gmail.com

[참고자료]연극 <나인프리다> 정보 바로가기(클릭)
사진제공.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촬영. 박수환)

이음새

이음새 

이음온라인 서포터즈 ‘이음새’는 이음온라인의 콘텐츠를 널리 확산하여 장애 예술을 알리며 이음온라인과 독자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이음새가 제작한 홍보 콘텐츠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블로그 ‘이음새 공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음새 공간 바로가기(링크)

상세내용

  • 연극 <나인프리다>의 한 장면

‘2021 무장애예술주간:No Limits in Seoul’을 통해 선보인 연극 <나인프리다>는 케이트 오라일리(Kaie O’Reilly)의 희곡을 무대화한 작품으로, 장애인 배우들을 중심으로 배리어프리 접근방식을 반영했다. 화가 프리다 칼로의 인생과 그림을 소재로 고대 마야-아즈텍의 전통에 따라 프리다가 죽음을 향해 떠나는 여정을 유쾌하게 그려낸다.

연극은 프리다 칼로가 갖고 있던 다양한 소수자성과 그의 예술이 지닌 이야기를 무대 위 6명의 프리다가 전해주면서 진행된다. 그중 2명의 배우는 휠체어를 타고, 또 다른 2명의 배우는 수어를 사용한다. 수어통역사 1명이 무대를 오가며 함께 공연한다. 공연장 안 세 벽면에서는 영상과 사진, 자막이 제공되고, 이야기를 전하듯 음성해설도 진행된다.

관객은 입장하며 꽃으로 장식된 머리띠를 건네받아 착용한다. 공연장은 촛불과 화려한 장식, 꽃으로 가득하다. 배우들 역시 관객의 것과 같은 머리띠를 쓰고 무대를 누비며 춤을 추고 있다. 공연의 시작부터 우리 모두 ‘프리다’가 된다는 것을 실감케 한다.

공연은 전반적으로 꽤 거칠었다. 여기서 거칠다는 건, 형식이 그러했다는 의미다. 공연 중 사용되었던 영상이, 배우의 몸이, 잘 짜여 부드러운 느낌이 아니라 사포질이 덜 된 듯한 느낌이었다. 그 자연스러움과 거침없음이 좋았다. 배우와 무대 전체가 내뿜는 에너지가 좋았다. 망자의 축제인 이 공연이 완벽하게 매끄러웠다면 오히려 어색했을 것이다.

같은 대사를 두 배우가 동시에 연기한다. 한 명은 발화로, 또 다른 한 명은 수어로. 둘은 무대에서 서로 맞은편에 서 있다. 왠지 모르게 수어를 하는 배우에게 계속 시선이 갔다. 다른 배우의 발화를 귀로 들으며 보고 있다 보면 두 배우의 언어가 합쳐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수어를 배우지 않았는데도 수어가 자연스레 받아들여졌다고 해야 할까. 몰입감이 컸다. 비장애인 관객으로서 음성해설과 수어 통역을 역으로 경험함과 동시에, 어떤 언어가 선행된 것인지 경계가 모호해졌다. 무대에서 수어를 사용하는 배우의 공연을 더 자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통역이라는 장치가 아닌 그 자체로 연극일 수 있는 공연을.

프리다는 자신을 ‘다친 것이 아니라 부서졌다’라고 표현했다. 자신의 신체를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말하는 장면을 황철호 배우가 했는데, 그가 정말 프리다로서 말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휠체어에 앉아 그만의 목소리로 발화하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프리다가 가졌던 고통이 더욱 짙게 느껴졌다. 이음새 활동을 하며 황철호 배우가 참여한 공연을 일전에 본 적이 있는데, 그가 가지고 있는 매력과 힘을 다시 한번 느꼈다. 황철호 배우가 연기함으로써, 그의 말을 거침으로써 표현되는 것들이 있다.

공연 초반에 프리다들이 눈을 피하지 않고 관객을 응시한다는 내레이션이 나오는데, 공연 후반에 각 프리다들이 관객의 앞에 가까이 앉아 눈을 맞춘다. 내 앞에도 한 프리다가 마주 앉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서로를 응시했다. 그때 그 찰나의 순간은 강렬했고, 그 눈빛에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나 역시 한 명의 프리다로서, 나를 마주하고 있는 프리다와 하나가 되어 교감하고 있었다.

“기억이 점점 희미해져”라고 말하던 프리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프리다들과 함께 자신의 삶을 복기했고, 그 기억의 끝인 마지막 전시장까지 다다랐다. 자신의 고통이 시작되던 순간부터 오랜 시간 이어져 온 고통을 다시 톺아보기란 쉽지 않은 과정이었을 테다. 공연은 조심스럽게 관객을 무대로 이끌어 망자의 축제를 함께하며 마무리되었다. 꽃을 올리고, 박수를 치고 원을 그리는 동안, 프리다 칼로의 삶이, 짙은 일자 눈썹과 웃음기가 도는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 옆에서 그의 삶을 이야기했던 프리다들, 그리고 또 다른 프리다들을 생각했다.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 이 여정의 끝에서 모두가 평안할 수 있기를, 웃을 수 있기를.

김아영

김아영

한국어문학을 전공했다. 차별과 장벽이 없는 세상을 꿈꾸며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다. 공연예술 분야를 서성이고 있는 기획자(이길 바라는 사람). 2021년 이음온라인 서포터즈 ‘이음새’ 1기로 활동했다.
goodayeong@gmail.com

[참고자료]연극 <나인프리다> 정보 바로가기(클릭)
사진제공.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촬영. 박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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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17 15:2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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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로는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는 본 적이 없어 아쉽네요ㅠㅠ 저도 기회가 된다면 꼭 보고 싶은 베리어프리 공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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