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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음새 날다① 전시 《말은 쉽게 오지 않는다》 관람기

이음광장 모두에게 공평한 무장애 전시

  • 이음새 1기 우연수
  • 등록일 2022-01-11
  • 조회수1062

지난 12월 초 대학로 이음센터 2층 이음 갤러리에서 진행되는 2021 무장애예술주간 디자인 전시 《말은 쉽게 오지 않는다》를 관람했다. 꼼꼼히 찾아보지 않으면 장애 예술을 접하기 힘들다는 것을 실감했다. 장애 예술에 관심이 있고 혜화역에 자주 갔는데도 이음센터가 거기 있는지 몰랐다.

전시 제목에서는 두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첫째,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말을 너무 쉽게 해서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런데 그 쉬운 말이 쉽게 오지 않는다고 한 이유가 무엇일까. 둘째,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 쓰는 ‘음성 기호’인 말을 소재로 무장애 전시가 가능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누구에게든 언어는 쉽게 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어 모두에게 공평했다.

갤러리는 하나의 따뜻하고 커다란 백지 같았다. 백지에는 까만 글씨로 가득 차 있었다. 먼저 이 전시에 참여한 그래픽 디자이너의 이름을 훑어보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 시인의 시(「꽃」)처럼 그들의 이름은 내가 힘써 불렀을 때 작가가 되었다.

  • 홍은주 , 김형재 〈표제와 형식〉

  • 김뉘연 , 전용완 〈O O OO O O OOO O OO, O O O O O O OOO OO.〉

(홍은주, 김형재) 그다음으로 보이는 것은 긴 컴퓨터 프로그램이었다. ‘마크업 언어’라고 한다. 흔히 코딩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보인다. 무장애예술주간은 이렇게 만들어졌구나. 독특하면서도 기계적이고 단정한 인사였다. 그리고 이것을 다시 한번 음성으로 들을 수 있었다.

(김뉘연, 전용완) 18세기 프랑스 철학자 드니 디드로는 『백과전서』를 편찬하면서 시각장애인 수학 교수였던 니콜라스 손더슨이 임종을 앞두고 홈스 목사와 나눈 대화를 기술했다. “하지만 그건 당신과 당신처럼 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증거가 됩니다.” 뒤에 말이 더 있는데, 문제는 이것이 점자로 변환되어 액자 속에 있다는 것이다. 시각장애인도, 시각장애인이 아닌 사람도 읽을 수 없는 글, 연결이 끊겨 아무에게도 전달되지 못하는 말은 그저 거기 존재하면서 “그동안 너무 쉽게 읽고 말했지? 궁금하지?” 틈새 사이로 쏘아붙이는 듯하다. 뒤에 오는 말이 궁금해 조만간 도서관에 가보려고 한다.

  • 신해옥 〈개별꽃 황주영과 COM/한주원을 위한 도구 시그니처 1–4〉
    사진 출처. 《말은 쉽게 오지 않는다》 전시 코멘터리 영상 바로가기(링크)

이 전시의 가장 큰 장점이 드러난다. 능동적으로 무엇이든 만질 수 있고 움직일 수 있다는 것. (신해옥) 널브러진 커다란 페이지들은 온몸을 다 써야만 읽을 수 있다. 말은 쉽게 오지 않는다. 사진을 따라 여러 시선으로 힘껏 노력해 보시길 바란다. 그렇게 해보았음에도 내용이 온전히 다가오지는 않았다. 쉽게 얻어지는 것은 없다.

  • 이정은, 카이 피사로위츠 〈Figure A to Z〉

  • 티슈 오피스 〈무엇과 결합하시겠습니까?〉

(이정은, 카이 피사로위츠) 원 모양의 공간을 가진 화면이 보인다. 마우스를 이리저리 움직이면 어떤 ‘형체’가 만들어지고, 부족한 인공지능 시스템은 이것에 나름의 답을 내놓는다. 마구잡이로 그린 선 하나를 가지고 ‘아이스 캔디’를 외치는 여성의 목소리는 웃음을 자아낸다. 선문답 같아 기분이 묘해진다. 장애인의 생활을 돕는 인공지능이 만들어지면 초기에는 꼭 이럴 듯하다. “나는 녹차를 마시고 싶어.” “산책하러 나갈까요? 옷을 준비할게요.”

(티슈 오피스) 다음 컴퓨터는 선택을 요구한다. ‘무엇과 결합하시겠습니까?’ 별로 결합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다. 중고차와 설산, 십자말풀이와 돈 같은 것들. 이것을 다시 다른 언어로 번역하며 ‘나’를 표현하는 문장이 만들어진다. 겨우 선택은 했지만 빙글빙글 돌아가고 때때로 번쩍이며 관련 없는 단어들을 읽는 행위를 방해하는 화면에 약이 올랐을 때쯤 결론이 눈에 들어온다. 인생의 중간에 부자가 되건 중고차를 타게 되건 나는 언제나 물이다. 모두는 언젠가 물로 돌아가는 존재다.

  • 정사록 〈네모들〉
    사진 출처. 《말은 쉽게 오지 않는다》 전시 코멘터리 영상  바로가기(링크)

(정사록) 벽을 따라가다 뒤돌아보면 한가운데 책상과 의자가 있다. 책상 위에는 나뭇조각들이 있다. 나뭇조각에는 장애인 관련 기관 100여 곳의 정보가 있다. 사각형을 보면 쌓고 싶어진다. 나뭇조각을 한데 모으려고 노력하다가 문득 이 단체들이 쌓여 ‘무장애’를 위해 애쓰고 있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작가들은 “세부에 대한 지엽적인 관심이 자신의 작업과 직업, 그리고 이를 둘러싼 환경을 조금씩 변화시킬 수 있음을 경험”했다고 한다. 장애인은 분명 한국 사회에서 소수자의 위치에 있다. 마치 디자인이라는 커다란 범위 안의 그래픽 디자인처럼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디자이너들이 변형한 글자들을 꼼꼼히 살펴보고 어떤 의미가 있을지 오랜 시간을 들여 파악하듯, 땅속에서 깨지고 닳은 유물의 파편을 꺼내 조심스럽게 흙을 털어내고 깊이 들여다보듯 인간이 인간을 따뜻하고 믿음직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세상을 살아가며 뒤틀리고 상처 입은 사람들이라도 몸과 마음의 장애물 없이 서로에게 가닿을 수 있지 않을까.

우연수

우연수

고려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날씨와 상관없이 언제나 매끄럽고 단단하다는 이유로 미술관과 박물관을 좋아한다. 역사와 예술은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는 과정이라 어렵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끊임없이 배우며 글을 쓰는 신출내기이다. 2021년 이음온라인 서포터즈 ‘이음새’ 1기로 활동했다.
wooys914@naver.com

[참고자료] 디자인 전시 <말은 쉽게 오지 않는다> 정보 바로가기(링크)
사진 제공.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촬영. 박수환)

이음새

이음새 

이음온라인 서포터즈 ‘이음새’는 이음온라인의 콘텐츠를 널리 확산하여 장애 예술을 알리며 이음온라인과 독자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이음새가 제작한 홍보 콘텐츠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블로그 ‘이음새 공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음새 공간 바로가기(링크)

상세내용

지난 12월 초 대학로 이음센터 2층 이음 갤러리에서 진행되는 2021 무장애예술주간 디자인 전시 《말은 쉽게 오지 않는다》를 관람했다. 꼼꼼히 찾아보지 않으면 장애 예술을 접하기 힘들다는 것을 실감했다. 장애 예술에 관심이 있고 혜화역에 자주 갔는데도 이음센터가 거기 있는지 몰랐다.

전시 제목에서는 두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첫째,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말을 너무 쉽게 해서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런데 그 쉬운 말이 쉽게 오지 않는다고 한 이유가 무엇일까. 둘째,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 쓰는 ‘음성 기호’인 말을 소재로 무장애 전시가 가능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누구에게든 언어는 쉽게 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어 모두에게 공평했다.

갤러리는 하나의 따뜻하고 커다란 백지 같았다. 백지에는 까만 글씨로 가득 차 있었다. 먼저 이 전시에 참여한 그래픽 디자이너의 이름을 훑어보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 시인의 시(「꽃」)처럼 그들의 이름은 내가 힘써 불렀을 때 작가가 되었다.

  • 홍은주 , 김형재 〈표제와 형식〉

  • 김뉘연 , 전용완 〈O O OO O O OOO O OO, O O O O O O OOO OO.〉

(홍은주, 김형재) 그다음으로 보이는 것은 긴 컴퓨터 프로그램이었다. ‘마크업 언어’라고 한다. 흔히 코딩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보인다. 무장애예술주간은 이렇게 만들어졌구나. 독특하면서도 기계적이고 단정한 인사였다. 그리고 이것을 다시 한번 음성으로 들을 수 있었다.

(김뉘연, 전용완) 18세기 프랑스 철학자 드니 디드로는 『백과전서』를 편찬하면서 시각장애인 수학 교수였던 니콜라스 손더슨이 임종을 앞두고 홈스 목사와 나눈 대화를 기술했다. “하지만 그건 당신과 당신처럼 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증거가 됩니다.” 뒤에 말이 더 있는데, 문제는 이것이 점자로 변환되어 액자 속에 있다는 것이다. 시각장애인도, 시각장애인이 아닌 사람도 읽을 수 없는 글, 연결이 끊겨 아무에게도 전달되지 못하는 말은 그저 거기 존재하면서 “그동안 너무 쉽게 읽고 말했지? 궁금하지?” 틈새 사이로 쏘아붙이는 듯하다. 뒤에 오는 말이 궁금해 조만간 도서관에 가보려고 한다.

  • 신해옥 〈개별꽃 황주영과 COM/한주원을 위한 도구 시그니처 1–4〉
    사진 출처. 《말은 쉽게 오지 않는다》 전시 코멘터리 영상 바로가기(링크)

이 전시의 가장 큰 장점이 드러난다. 능동적으로 무엇이든 만질 수 있고 움직일 수 있다는 것. (신해옥) 널브러진 커다란 페이지들은 온몸을 다 써야만 읽을 수 있다. 말은 쉽게 오지 않는다. 사진을 따라 여러 시선으로 힘껏 노력해 보시길 바란다. 그렇게 해보았음에도 내용이 온전히 다가오지는 않았다. 쉽게 얻어지는 것은 없다.

  • 이정은, 카이 피사로위츠 〈Figure A to Z〉

  • 티슈 오피스 〈무엇과 결합하시겠습니까?〉

(이정은, 카이 피사로위츠) 원 모양의 공간을 가진 화면이 보인다. 마우스를 이리저리 움직이면 어떤 ‘형체’가 만들어지고, 부족한 인공지능 시스템은 이것에 나름의 답을 내놓는다. 마구잡이로 그린 선 하나를 가지고 ‘아이스 캔디’를 외치는 여성의 목소리는 웃음을 자아낸다. 선문답 같아 기분이 묘해진다. 장애인의 생활을 돕는 인공지능이 만들어지면 초기에는 꼭 이럴 듯하다. “나는 녹차를 마시고 싶어.” “산책하러 나갈까요? 옷을 준비할게요.”

(티슈 오피스) 다음 컴퓨터는 선택을 요구한다. ‘무엇과 결합하시겠습니까?’ 별로 결합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다. 중고차와 설산, 십자말풀이와 돈 같은 것들. 이것을 다시 다른 언어로 번역하며 ‘나’를 표현하는 문장이 만들어진다. 겨우 선택은 했지만 빙글빙글 돌아가고 때때로 번쩍이며 관련 없는 단어들을 읽는 행위를 방해하는 화면에 약이 올랐을 때쯤 결론이 눈에 들어온다. 인생의 중간에 부자가 되건 중고차를 타게 되건 나는 언제나 물이다. 모두는 언젠가 물로 돌아가는 존재다.

  • 정사록 〈네모들〉
    사진 출처. 《말은 쉽게 오지 않는다》 전시 코멘터리 영상  바로가기(링크)

(정사록) 벽을 따라가다 뒤돌아보면 한가운데 책상과 의자가 있다. 책상 위에는 나뭇조각들이 있다. 나뭇조각에는 장애인 관련 기관 100여 곳의 정보가 있다. 사각형을 보면 쌓고 싶어진다. 나뭇조각을 한데 모으려고 노력하다가 문득 이 단체들이 쌓여 ‘무장애’를 위해 애쓰고 있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작가들은 “세부에 대한 지엽적인 관심이 자신의 작업과 직업, 그리고 이를 둘러싼 환경을 조금씩 변화시킬 수 있음을 경험”했다고 한다. 장애인은 분명 한국 사회에서 소수자의 위치에 있다. 마치 디자인이라는 커다란 범위 안의 그래픽 디자인처럼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디자이너들이 변형한 글자들을 꼼꼼히 살펴보고 어떤 의미가 있을지 오랜 시간을 들여 파악하듯, 땅속에서 깨지고 닳은 유물의 파편을 꺼내 조심스럽게 흙을 털어내고 깊이 들여다보듯 인간이 인간을 따뜻하고 믿음직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세상을 살아가며 뒤틀리고 상처 입은 사람들이라도 몸과 마음의 장애물 없이 서로에게 가닿을 수 있지 않을까.

우연수

우연수

고려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날씨와 상관없이 언제나 매끄럽고 단단하다는 이유로 미술관과 박물관을 좋아한다. 역사와 예술은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는 과정이라 어렵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끊임없이 배우며 글을 쓰는 신출내기이다. 2021년 이음온라인 서포터즈 ‘이음새’ 1기로 활동했다.
wooys914@naver.com

[참고자료] 디자인 전시 <말은 쉽게 오지 않는다> 정보 바로가기(링크)
사진 제공.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촬영. 박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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