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예년보다 따뜻한 가을 어느 날, 방찬우 성악가와 신찬미 음악감독을 만났다. 방찬우 성악가는 어린 시절 질병으로 인해 언어발달 시기를 놓쳐 지적장애를 얻게 되었지만, 언어치료 이후 음악적 재능을 발견하여 현재는 바리톤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성악가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오랜 시간을 함께해온 신찬미 음악감독이 있다. 신찬미 음악감독은 방찬우 성악가의 반주자로, 음악감독으로, 또 음악적 영감을 나누는 동료로 그와 함께해오고 있다. 오랜만의 인터뷰 탓인지 두 사람의 얼굴에서 긴장한 기색이 엿보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질문과 답을 주고받고 의견을 물어가며 서로의 공백을 채워주는 모습에서 지금까지 호흡을 맞춰온 시간이 그려졌다.
두 분은 처음에 어떻게 만나게 되셨나요?
방찬우고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음악 콩쿠르에 나가게 되었는데, 신찬미 음악감독님이 반주를 해주었습니다.
신찬미어릴 때 같은 교회를 다녀서 서로의 부모님이 먼저 알고 지내셨어요. 많은 음악인이 그렇듯이 저도 처음엔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며 음악을 시작했고, 예술고등학교 시절에는 성악을 전공했어요. 그래서 성악가를 이해하는 것이 조금 더 수월했고, 방찬우 성악가가 성악으로 입시를 준비할 때 필요한 것들도 도와줄 수 있었던 거죠.
방찬우 성악가님은 원래 음악에 흥미가 있었나요? 어떻게 성악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방찬우어렸을 때부터 클래식 음악을 좋아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제가 절대음감이라고 음악을 시키셨어요. 이후 변성기가 되었는데 성악가의 좋은 목소리로 변성되었다는 말을 주변에서 들으며 성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첫 시작은 주변의 권유였지만, 이제는 한 성악가로서 치열하게 무대를 준비한다. 연주회를 앞둔 2, 3주부터는 매운 음식, 밀가루, 탄산음료도 절제할 만큼 목 관리는 물론이고, 성악곡의 주된 가사인 독일어를 잘하기 위해서 2년 넘게 독일어 학원에 다녔을 만큼 열성적이다.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이 궁금한데요. 방찬우 님만의 음악 색깔을 표현하기 위해 특별히 중점에 두는 것이 있나요? 곡을 받은 이후 어떤 과정으로 무대를 준비하시나요?
방찬우저는 언어를 늦게 시작한 탓인지 발음이 좋지 않아 정확한 발음으로 노래하려 노력하고, 감정 표현을 위해 작곡자의 의도나 곡의 내용도 파악하려고 합니다. 발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음정과 집중력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다음에 박자를 맞추고, 가사를 외워야 합니다. 성악곡의 대부분이 이탈리아어와 독일어이다 보니, 발음 같은 경우 음악을 들으며 매번 될 때까지 반복하면서 연습합니다.
무대를 준비할 때 선곡하는 기준도 궁금합니다. 특별히 좋아하는 곡이 있나요?
방찬우보통은 교수님이 추천해 주신 곡들을 들어보고, 좋다고 느껴지는 곡을 위주로 선택합니다. 지금은 벨리니 오페라 《청교도》 중 〈Ah! per sempre io ti perdei(아! 당신을 영원히 잃었네)〉라는 곡을 가장 좋아합니다.
지금까지 많은 무대와 공연을 해오셨을 텐데, 두 분이 함께한 공연이나 최근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방찬우지난 2023년 10월에 했던 펠리체예술단의 오케스트라와 함께했던 《마술피리》 갈라 콘서트가 가장 기억에 남았습니다. 오케스트라를 좋아해서 너무 좋았습니다.
신찬미함께한 무대 중 가장 기억나는 좋았던 순간은 최근에 했던 대한민국장애인예술경연대회 ‘스페셜 K’에요. 《마술피리》 아리아를 준비했는데, 본선 당시 무대에 올라가기 직전에 한 번만 더 맞춰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연습 장소를 따로 제공하지는 않아 몰래 다른 층의 연습실을 찾아 들어갔어요. 불 꺼진 연습실에서 잘 안되는 구간만 정말 짧게 연습하고 무대로 올라갔는데, 그전까지는 계속 안 됐던 부분을 방찬우 성악가가 너무 잘 해내는 거예요. 그래서 그 순간 결과도 좋지 않을까, 하고 느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 결과가 어땠죠? (웃음)
방찬우본선에서는 금상을 탔고 결선에서는 상임대표상을 받았어요.
2023년, 신찬미 음악감독은 충남 천안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예술단체 대표들과 함께 장애예술가 홍보콘텐츠 제작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팀 ‘트리니티(TRINITY)’를 결성했다. 음반 제작과 공연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로 방찬우 성악가를 지역사회에 알리고자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그 결과 《당신께 드리는 노래》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방찬우 성악가의 솔로 앨범 《당신께 드리는 노래》는 어떤 배경에서 탄생했나요?
신찬미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방찬우 성악가와 얘기를 나눴는데, 평소 부모님에 대한 마음이 되게 남다르기도 하고, 자기 독창회를 보러 와주는 사람들, 자기를 음악가로 응원해 주는 사람들을 위해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래서 앨범 이름을 《당신께 드리는 노래》라고 붙이고, 함께 진행했던 독창회도 같은 이름으로 기획했어요. 그때 우리가 어떤 노래를 선곡했었죠?
방찬우〈Vaghissima sembianza(아름다운 그대 모습)〉, 〈Widmung(헌정)〉, 그리고 〈Ein Madchen oder Weibchen(애인 혹은 결혼할 여자들)〉.
신찬미맞아요. ‘Widmung’는 ‘헌정’이라는 뜻이거든요. 말 그대로 ‘당신께 드리는 노래’인 거죠. 그리고 방찬우 성악가가 《마술피리》 아리아인 〈Ein Madchen oder Weibchen(애인 혹은 결혼할 여자들)〉를 표현하는 능력이 정말 뛰어나요. 이렇듯 방찬우 성악가가 재밌게 표현할 수 있는 곡과 잘 부를 수 있는 노래, 대중들도 많이 들어본 곡을 고루고루 골랐습니다. 또 무대 사이사이에 인터뷰도 준비해서 방찬우 성악가의 삶과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도록 공연을 진행했습니다.
방찬우 성악가님은 처음 공연을 제안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떨리지 않았나요?
방찬우저는 좋았어요. 노래할 때는 안 떨리는데, 인터뷰할 때는 좀 떨릴 때도 있었어요.
신찬미공연을 준비할 때도 방찬우 성악가만이 낼 수 있는 색깔로 노래를 들려줄 때 감동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현장에서는 그 이상의 감동이 있었어요.
앨범과 공연을 준비하면서 서로가 가지고 있는 음악적 장점은 어떤 것이 있다고 느끼셨어요?
신찬미방찬우 성악가의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목소리죠. 성악가에게는 목소리가 제일 중요하잖아요.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도 절대 부인할 수 없지만, 가지고 있는 소리가 원석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소리를 가진 것이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아요.
성공적인 무대 뒤에서는 신찬미 음악감독의 섬세하고 꼼꼼한 지도가 있었다. ‘트리니티’는 방찬우 성악가를 세상에 알리고, 그의 활동에 또 다른 지평을 열어주는 계기가 된 프로젝트였다. 단순히 음악 활동만 해왔다면 이런 프로젝트를 기획하기까지가 쉽지 않았을 텐데, 음악감독 외에도 발달장애인과 청소년 대상 예술교육 등 음악 분야를 폭넓게 아우르며 활동해 오던 배경을 알게 되면 그의 행보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신찬미 감독님은 고등학교 시절에는 성악을 공부하다가 대학에서는 지휘를 전공으로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신찬미저는 한 가지만 집중적으로 하기보다는 여러 가지를 다양하게 하면서 점점 거시적으로 확장해가는 성격인데, 그런 성향을 알아봐 주신 성악 선생님이 ‘지휘’ 공부를 권유해 주셔서 선택하게 되었어요. 반주를 오래 하면서 솔로보다는 합창과 합주 활동을 계속해 온 것이 연결된 것 같기도 하고요.
음악 분야에서 뮤지컬, 오페라 음악감독, 예술교육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데, 그중 가장 지속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신찬미저는 하나의 개념 속에 대비를 이루는 것들이 재미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뮤지컬과 오페라가 음악극이라는 장르에 속하지만 아주 많이 다른 것처럼요. 대조되는 가운데 균형감이 느껴지는 것이 좋아서, 순수예술과 대중성을 모두 가져가는 방향으로 활동하는 편입니다. 그렇지만 저의 개인적인 선호나 취향을 떠나서 계속 지속하려고 하는 것은 예술교육이에요. 예술교육이 공교육 안에서 내실화되어야 방찬우 성악가 같은 성악가들과 동료 예술가들이 계속 활동을 해나갈 수 있을 테니까요. 예술가들이 활동하기 위해서는 관객이 있어야 하는데, 관객이 있게 하는 본질적인 일이 예술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이야기인 것 같아요. 예술교육 안에서도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할 때와 장애인을 대상으로 할 때 달라지는 것들이 있을 것 같아요. 대상에 따라 음악적 표현을 끌어내는 자기만의 방식이나 노하우가 있나요?
신찬미장애인을 대상으로 예술교육을 할 기회가 많지는 않아서 노하우라고 할 것까진 없지만, 늘 갖고 있던 생각 중 하나가 예술교육에는 사각지대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에요. 전에 방찬우 성악가도 작년까지 활동했던 ‘사운더블예술단’에서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음악교육을 진행했었는데, 처음엔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 시간을 통해 지적장애에 대해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전문가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고요. 지적장애인과 비장애인은 음악교육의 목표 자체가 달라요. 지적장애인은 음악교육을 통해 표현하고 감각적인 것들을 풍부하게 경험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음악적 기량을 높이는 것보다 장애에 대한 이해, ‘사람’에 대한 이해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마지막으로 두 분이 갖고 있는 음악적 목표가 궁금합니다.
신찬미저는 행정가이자 예술가, 두 가지 역할을 다 가져가고 싶어요. 인생 선배님들은 하나만 잘해도 벅차다고 하시지만, 저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으로 생각해요. 이 마음의 근원이 어디서 나왔나 생각해 보면, 사람은 절대 혼자서 살 수 없고, 함께 살아가야 하잖아요. 예술가가 아무리 뛰어난 기량을 갖고 있어도 그걸 수용할 관객이 없으면 안 되는 것처럼. 그래서 제도적으로도 예술가들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일에 조금이나마 더 참여하고 싶고, 동시에 음악가로서 활동도 최대한 유지하고 싶어요.
방찬우저의 노래를 듣는 분들이 위로와 희망을 얻을 수 있도록 항상 준비된 모습으로 진심으로 노래하려고 합니다. 콩쿠르에 계속 도전하려고 하고, 계속 노래할 수 있도록 공연 기회가 많이 주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방찬우 성악가는 현재 ‘미라클 보이스 앙상블’(LS 일렉트릭)에서 활동하며 장애인식개선 교육, 초청공연, 클래식 공연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다. 합창단 활동은 공연할 기회가 많이 주어졌으면 좋겠다던 그의 목표를 이루는 것은 물론이고, 방찬우 성악가가 갖게 된 첫 직장이기도 하다. 처음으로 직장에 소속되면서 자신감을 찾았고 행복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세상은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는 신찬미 음악감독의 말이 떠올랐다. 인터뷰 내내 그들이 음악을 대하는 태도에서 따뜻함이 묻어나와 방찬우 성악가와 신찬미 음악감독의 목표가 이뤄질수록 나도, 우리도 모두가 더 행복한 음악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 제목 : 바리톤 방찬우 청산에 살리라! 나는 수풀 우거진 청산에 살으리라 나의 마음 푸르러 청산에 살으리라 이봄도 산허리엔 초록빛 물들었네 세상 번뇌 시름 잊고 청산에서 살리라 길고 긴 세월 동안 온갖 세상 변하였어도 청산은 의구하니 청산에 살으리라 이봄도 산 허리엔 초록빛 물들었네 세상 번뇌 시름 잊고 청산에서 살리라 길고 긴 세월 동안 온갖 세상 변하였어도 청산은 의구하니 청산에 살으리라
방찬우
백석대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천안에서 솔리스트 활동을 이어가다가 2024년부터 LS일렉트릭에서 후원하는 ‘그린보이스(미라클 보이스앙상블)’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모차르트콩쿠르, 전국장애인콩쿠르 등에서 수상했다. 음악 앨범으로 《당신께 드리는 노래》가 있다.
신찬미
한국예술종합학교 지휘과를 졸업하고 뮤지컬, 오페라, 연극에서 음악감독으로 활동하고, 청소년 대상 예술교육을 해오고 있다. 가까운 곳에서 가까이하고 싶은 예술콘텐츠를 제공한다는 모토로 ‘예술연구소 가까이’를 설립하여 지역연계형 예술향유 프로그램을 제작하였으며, 2024년 현재는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에서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행정가로 활동 중이다.
박다현
작곡가이자 예술교육가(Teaching Aritst)로 활동 중이다.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던 작고, 소음이라 여겨지는 소리들 속에서 음악과 이야기를 발견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서울문화재단 TA를 시작으로 음악교육의 여러 방식을 탐구해오며, 2021년부터 단체 ‘움직이는세상’과 함께 〈Noise:불확실한 산책길〉 등 소리와 낯선 감각으로 일상을 탐색하는 다양한 예술교육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운영 중이다.
bornfre9@naver.com
사진.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자료 사진.신찬미
2024년 12월 (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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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찬우 성악가와 신찬미 음악감독의 이야기를 들으니 너무 따뜻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