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지역의 필요를 바탕으로, 지역을 삶과 예술의 터전으로 삼는 장애예술은 어떻게 가능할까. 경상 지역의 장애예술 지형과 현황을 짚어보고 현장의 경험을 나누기 위해 창작자로, 매개자로 대구, 부산을 거점 삼아 활동하는 세 분과 이음온라인 기획위원이 만났다. 경상 지역 장애예술의 현안은 무엇이며, 장애예술 생태계를 만들어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짚어본다.
개요
-
일시2025년 5월 30일 오후 2시
-
장소장애예술인창작공간 온그루
-
참석자 박연희 극단 함께사는세상 연출
창파 실험실 씨 아트디렉터・또따또가 센터장
홍승호 극단 에파타 단장
홍은지 공연예술가·이음온라인 기획위원
(앞줄) 홍승호 단장, 박연희 연출, (뒷줄) 홍은지 기획위원, 창파 아트디렉터
홍은지웹진 이음에서 2024년 10월부터 지역의 장애예술을 강원권, 충청권, 전라권, 제주권 등 권역별로 다루었고, 오늘 마지막으로 경상권 장애예술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려 한다.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창파서울에서 ‘통의동 보안여관’ 큐레이터로 활동하다가 부산에 내려와 활동한 지 딱 10년 되었다. 2018년부터 실험실 씨라는 그룹명으로 활동 중이고, 올해부터 원도심 창작공간 또따또가라는 작가 레지던시 공간 센터장을 맡고 있다. 부산에서는 지역의 생활사와 생태의 경계에서 예술 기획 작업을 해왔다. 2019년 ‘소요의 시간’ 프로젝트에 구족화가인 절친한 작가를 초대하게 되었고, 그 후 함께 활동하며 전시 발표나 책 작업을 했다.
홍승호농인 극단 에파타 단장을 맡고 있다. 국내에는 2025년 기준 약 30만 명의 농인이 있다고 하는데, 서로 정보도 부족하고 연결이 잘 안 된다. 그래서 오늘 함께 얘기 나눌 수 있어 기쁘다. 극단 에파타는 1993년에 창단해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올해 여기 장애예술인창작센터 온그루 입주작가로 선정되어 활동하고 있다.
박연희대구에서 연극을 하고 있다. 우리 극단 함께사는세상은 마당극 공연을 주로 하고, 저는 창작과 연출을 맡고 있다. 일상적으로 발달장애 청년들과 연극 교실을 하고, 그들과 함께 만든 공연을 축제 때 선보이며 관객을 만난다.
장애와 예술을 만난 순간
홍은지장애 당사자성을 가지고 예술 활동을 하거나, 장애예술가와 협업하거나, 장애인과 예술을 매개로 창작과 예술교육 등 다양한 활동을 해오셨다. 어떻게 장애예술 활동을 시작하셨는지 궁금하다.
창파오래 전부터 친구로 지내는 언니가 뇌성마비 중증장애가 있는 구족화가다. 맨날 전시된 작품들만 봤지, 어떤 과정으로 그림을 그리는지 직접 본 적이 없었다. 제가 부산에 내려와서 리서치 기반 예술 작업을 했는데, 사소한 개인의 이야기나 생태적인 것에 관심을 두게 되면서 그분을 제가 기획한 프로젝트에 초대하게 되었다. 장애를 넘어 뭔가 시도해 보겠다는 원대한 목표가 있었다기보다는, 친구와 함께 작업하고 싶은 마음에 가볍게 접근했던 거다. 둘 다 서울에 살 때는 잘 몰랐는데, 작가님이 저를 만나러 기차 타고 부산에 오는 것부터 넘어야 할 산이었다. 이동이 불편하니 늘 작업실에서만 그림을 그리다가 리서치를 하려고 숲이나 거친 길을 나서는 게 만만치 않았다. 여러 작가가 함께 다니며 리서치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기록하는 작업이었는데, 그분이 참여하면서 그룹 안에서 자연스럽게 교류하고 장애·비장애 경계를 와해시키는 게 있었다. 저 역시 그분의 작업 과정을 가까이에서 구체적으로 지켜보면서 다른 장애・비장애 작가와 어떻게 만날지, 관람객이 어떤 방식으로 작품을 바라보고 감각하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예술을 생산하는 주체나 발표되는 미술관이라는 장소가 대부분 비장애인 중심이고,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도 저시력부터 전맹까지 다양한데,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혹은 경험해 보지 않아서 모르는 거다. 작품을 만지는 걸로 과연 그 작품이 전달될까, 이런 고민을 했던 것 같다.
박연희2002년쯤 대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서 장애인·비장애인 연극동아리와 연극 공연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받고, 장애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만들고 공연을 올렸다. 이후 우리 극단에서 각색하고 수정해서 〈엄마의 노래〉라는 작품으로 10년 이상 공연했다. 그걸 계기로 지역에 있는 장애인복지관, 장애인인권단체 등에서 연극 수업을 해달라는 요청이 많이 들어와서 우리 단원들이 연극 수업을 나가게 된 것이 지금까지 쭉 이어지고 있다. 초기에는 거의 청소년 중심이었는데, 장애인활동보조인(활동지원사) 제도가 생기면서 성인 발달장애인, 중증 뇌병변장애인과도 연극 수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발달장애 청년들과의 작업을 문화예술교육으로만 끝내기 아쉬워 2015년 연말에 ‘함께사는 장애인연극제’라는 이름으로 축제를 열고 연극 공연을 올렸다. 우리 극단이 2015년에 소극장 함세상을 개관한 덕분이다. 그렇게 8년 정도 장애인연극제를 하다가, 2021년에 지역 시민들도 함께 공연 보게 하자고 확장하면서 ‘모두페스티벌’로 이름을 바꿔 진행한 게 올해로 4년 차다.
우리와 연극 수업을 하고 작업을 하던 뇌병변장애인 그룹이 주축이 되어 극단도 만들었다. 올해로 8년 차가 된 극단 놀노리패와 2년 차인 극단 해바라기로, 고유번호증을 발급받아 공연활동을 하고 있다. 거리예술축제 때 대명공연문화거리에서 우리 극단과 협업해 공연하기도 했다. 장애인인권단체와 협력하여 발달장애청년 자조모임에서 연극 수업을 하는데, 교육 기간이 끝난 후에도 계속 연극을 하고 싶어 하는 청년들은 우리 극단 내에 ‘조각보’라는 연극동아리를 만들어서 활동하고 있다. 작년 봄 ‘장애인차별 철폐의 날’ 야외 행사에서 거리공연을 하기도 했다.
홍승호1980년대 중반에 수어통역 봉사자들과 연극 모임을 만들어 공연을 올리면서 연극을 시작했고, 1993년에 오늘 수어통역을 해주시는 최요섭 선생 등 몇 명이 모여 공연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극단 에파타를 창단했다. 한 3년 정도 하다가 재정 사정이 안 좋아져 오랫동안 못하고 있다가, 2006년 서울에서 열린 장애인 나눔연극제에 참가해 첫 공연으로 〈배비장전〉을 올렸다. 한동안 휴지기를 갖다가 2023년에 다시 무대에 복귀했다. 극단 운영에 부침이 많고, 작업을 계속 이어 나가기 쉽지 않았다. 농인 중에도 연극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은데, 후원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다행히 수어통역을 도와주거나 작품 연출을 도와주는 분들이 있어서 잘 해보려고 노력 중이다.
홍은지최근 ‘2025 문화다양성 주간 - 포용의 바다, 부산’ 행사에서 신작 〈바람을 기억하는 방식〉을 선보였다. 공연 이야기와 온그루 입주작가로 참여하게 된 이야기도 궁금하다.
홍승호〈바람을 기억하는 방식〉은 한 사람 한 사람 자기 이야기로 만든 독백 형식의 작품이다. 연출님이 많이 도와줘서, 그동안에는 대본이 있는 작업을 하다가 자기 이야기로 만들고 창작해서 올렸다. 농인 배우 5명이 수어로 연기한다. 수어로만 표현하면 청인이 이해하기 쉽지 않아, 청인 배우 3명이 무대 한편에서 음성 통역으로 연기한다. 우리 공연에서는 자막을 사용하지는 않고 음성 통역만 한다. 우리의 주요 작품 중 하나인 〈배비장전〉도 같은 형식으로 공연했다. 사실 수어 연극은 농인 배우들이 수어로 표현하는 것도 어렵고, 청인 배우들이 수어에 맞춰 음성 통역을 하는 것도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런 형식을 취해야 청인도 수어 연극을 이해할 수 있고, 농문화나 농인 또는 청각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기본적으로라도 전달할 수 있다.
박연희 연출
홍승호 단장
창파 아트디렉터
홍은지 기획위원
지역에서 예술하기
홍은지청인에게는 농문화를 접할 드문 기회였을 것 같다. 세 분은 대구와 부산 등 경상 지역을 거점으로 활동하시는데, 장애예술과 지역사회가 연결되는 지점, 지역사회와 소통하면서 의미 있었던 경험이나 어려움이라면 어떤 게 있을까?
박연희제 경험에서 볼 때 대구 지역에서 장애예술을 함께하는 단체와 청년들은 “지역에서 함께 살자”, “세상 밖으로 나가자”라는 모토를 공유하는 것 같다. 특히 우리와 함께 축제를 만드는 인권단체들은 일상적으로 탈시설이라든지 주거권, 일자리, 이동권 등 기본적인 장애인 권리 운동을 많이 한다. 그러다 보니 공연을 준비하는 장애 당사자들도 이러한 활동에 동의하고 관심이 많다. 그래서 작품을 만들다 보면 일자리, 이동권, 나들이콜 등 자기 경험과 이야기로 장면을 만들기도 한다. 또 발달장애 청년들이 일자리 사업의 일환으로 매일 오전에 청소하러 와서 우리 극장뿐만 아니라 주변 골목까지, 대명공연문화거리 일대를 반짝반짝 깔끔하게 만드는 거다. 그리고 오후에는 다시 극장에 와서 연극 수업에 참여한다. 자기들이 깨끗하게 청소한 그 공간으로. 그런 일상에서의 활동이, 우리가 동네에서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홍은지정말 중요한 이야기다. 장애인 인권으로부터 시작해서 예술을 매개로 어떻게 세상과 만날 것인지에 대한 고민으로 쭉 이어지는 거로 보인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대명공연문화거리와 극단 함께사는세상이 있는 소극장 함세상과 주변이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알려주시면 좋겠다.
박연희대명공연문화거리는 계명대학교 주변으로 다양한 예술인들이 모여들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예술거리로, 소극장 14개 정도와 연극 연습실, 음악 연습실 등 연습공간 30여 개가 있어서 개별 공연도 하고 함께 축제를 열기도 한다. 대부분 소극장은 지하에 있어 접근성이 많이 떨어지는데, 다행히 소극장 함세상은 1층에 있다. 약간 특이점을 얘기하자면, 2022년 대구시에서 처음으로 ‘장애인 편의증진 공모사업’을 했는데, 2023년도에는 우리 동네가 선정되었다. 이동약자를 위한 개선사업으로 ‘문턱없는 동네극장, 무경계 실험극장, 포용적 예술극장’을 모토로 진행되었다. 그래서 소극장 함세상에 경사로와 자동문, 장애인 화장실을 설치할 수 있었다. 거리 일대 소극장과 연습실 입구에 점자 안내 간판을 만들어 달았고, 다른 2개 극장에도 장애인 화장실을 설치할 수 있었다. 이전에는 극장에 공연 보러 올 때 제일 불편했던 게 화장실과 출입문이었다. 전동휠체어를 타는 분들은 혼자 문 열기 어렵고, 화장실도 길 건너 장애인인권단체 건물을 이용해야 했다. 편의시설이 개선되어 물리적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휠체어 이용 관객이나 발달장애인 관객이 많이 늘어나서, 40% 정도가 장애인 관객이다. 이전에는 장애인 배우들도 작업하면서 서너 시간 볼일을 참아야 하고 연습 시간도 길어졌는데, 훨씬 편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홍승호자유롭게 활동을 펼칠 수 있고 만날 수 있는 공연문화거리가 조성되어 있다니 부럽다. 우리는 다른 장애에 비해 농인, 청각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이해가 아직 부족해서 활동에 어려움이 많다. 부산에서는 장애예술 정보를 얻기 쉽지 않고 청각장애인에게 접근성을 제공하는 공연도 찾기 어렵다. 의사 표현할 때도 수어통역을 거쳐야 하니 어렵다. 물론 요즘 젊은 청각장애인은 휴대전화를 잘 활용한다. 하지만 우리 극단 단원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고 디지털 기기 사용에 익숙하지 않다. 저 역시 연극을 한 게 30년이 넘고 나이가 60대 중반인데, 어디서 정보를 얻어야 할지 접근하는 게 쉽지 않다. 첫 장벽부터 막막한 거다. 다른 사람과 협력하거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수어통역을 동반해야 이런 것들이 가능해진다. 그래도 지금처럼 단계를 밟아 차츰차츰 해나가면 좋겠는데, 하다가 그만두게 되는 것도 결국 이런 어려운 상황과 연결되는 것 같다.
제가 수어 연극을 계속하고 싶었던 이유는 무대에서 관객을 앞에 두고 수어로 나의 감정을 표현했을 때의 감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저 자신보다는 농문화 발전을 위해 뭔가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젊은 농인 후배들에게도 그런 기회를 많이 주고 지원해 주고 싶은데, 중간층이 많지 않다. 잠깐잠깐 도움을 주는 게 아니라 꾸준히 우리와 함께할 전문가들이 있으면 좋겠다. 청각장애인들이 의사소통을 잘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많은 문제가 해결될 텐데.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찾고, 다른 장애인들과도 함께 작업할 방안을 찾아보고 있다. 그리고 올해나 내년에 일본의 농인 극단과 교류할 계획이 있다. 사실 1994년에 만남과 교류를 가진 적이 있었는데, 이후 이어지지는 못했다. 이번 계기로 국내만이 아니라 해외 교류도 해볼 생각이다.
홍은지워낙 모든 문화가 비장애인 중심으로 되어 있고, 또 최근에는 모든 정보가 디지털 기기 안에 들어가면서 세대별로 정보나 소통에 대한 접근에 어려움이 더 생긴 것 같다. 소극장 함세상 얘기에서도 그렇지만, 장애예술과 공간 접근성, 편의성은 떼려야 뗄 수가 없는 문제인 것 같다. 지역사회에서 장애예술이 어떻게 해야 잘 소통하고 잘 지낼 수 있을까 고민할 때, 첫 번째가 머물 수 있는 공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극단 에파타는 공간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홍승호사실 공간 문제가 쉽지 않다. 함께 작업하는 연출님의 소개로 올해 온그루에 입주할 수 있었던 것만 해도 운이 좋았다. 〈바람이 기억하는 방식〉도 여기서 같이 모이고 작업할 수 있어서 가능했다. 대부분 예술은 공공지원에 많이 의존하는데, 장애예술은 좀 더 절실한 것 같다. 우리도 지원서를 좀 더 열심히 써봐야겠다. (웃음)
창파말씀을 들어보니, 연극이나 무용처럼 직접적으로 몸이 만나는 공연예술 분야가 시각예술보다 훨씬 더 장애인 혹은 장애예술에 열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각예술 분야에서는 장애예술인과 비장애예술인 혹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만나는 시도가 문화예술교육을 빼고는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 것 같다. 현대 미술에서 장애라는 키워드를 사회적으로 바라보고, 장애 너머에 있는 관람객까지 흡수하고, 예술가들이 예술 언어 안에서 장애·비장애 주제를 논하는 시도도 비교적 최근이다. 장애예술인 창작공간 온그루가 생긴 게 2020년이고, 창작공간 두구도 2023년에 생겼으니, 장애예술인의 창작환경을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것도 최근에 자리 잡았다. 부산현대미술관이 ‘무장애 미술관’을 표방한 게 올해다.
정책 지원에도 어떤 흐름이 있다. 한 10년 전만 해도 재개발, 도시문제에 집중했었고, 배리어프리가 잠깐 얘기되기도 했다. 코로나 이후에는 기후 위기를 이야기하고. 모든 것들이 단발적이고 트렌드화되다 보니, 지역에서 거점 공간을 중심으로 기반을 갖추지 않으면, 창작자나 기획자 개인이 지속성을 가지고 풀어가기가 어렵다. 그래서 부산의 온그루와 창작공간 두구, 부산현대미술관의 무장애 미술관 시도는 매우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제게 울림을 주었던 부산현대미술관의 전시 《열 개의 눈》은 두 눈을 손가락 열 개에 비유하며 감각의 유동성이란 주제를 탐구하는 시도였다. 2024년에 시각예술가들이 6개월간 장애인·비장애인 워크숍을 하고 올해 전시로 발전시킨 작업인데, 장애인·비장애인이 서로 자극을 주고받으며 주제를 발전시킨 작업이 섬세하고 좋았다. 관계자의 말을 빌리면, 장애인 관람객이 이전보다 많아졌다고 한다. 전시를 본 관람객이 미술관에 바라는 바가 이전과는 결이 많이 달랐다고 해서 흥미로웠다. 예를 들면 비장애인의 시선으로는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미술관에서 당사자의 이야기와 경험을 수집해서 기록하고 가이드한다면 미술관과 예술의 문턱을 낮출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선과 속도를 맞추며, 함께 연결되기 위해
홍은지예술가나 기획자 개개인이 아무리 좋은 의도로 장애예술을 지향하더라도 분명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공공지원으로 토대를 마련해 주지 않으면 사실상 전환의 계기를 마련하기 쉽지 않다. 공공지원 혹은 지역사회와 만날 때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어떻게 해결해 보려 했는지 궁금하다.
박연희우리가 장애예술 활동을 하면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협력’이다. 모두페스티벌을 준비하면서 극단 함께사는세상 배우, 단원들이 교육과 연출 역할을 하고, 인권단체에 있는 발달장애 청년들이 함께 배우로 트레이닝 받는다. 연극 작업뿐 아니라 춤이나 미술, 영상 등 다양한 작업을 연결해서 전문가들과 협업하는 다양한 경험을 해보길 바라서, 미디어 아티스트와 장애인 극단을 매칭하고, 발달장애 청년들과 비보잉 그룹을 매칭해서 창작 작업을 진행했다. 결과적으로 공연은 관객과 잘 만났고 성과도 좋았다. 하지만 과정에서 전문 예술가들과의 소통에 조금 문제가 있었다. 단기 작업이다 보니 서로를 이해하고 친밀감을 느끼며 쌍방향 소통의 디테일을 챙기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던 거다. 비장애예술가들과 협업할 때는 좀 더 시간을 확보해야 소통하고 창작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감각의 언어들을 발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창파속도의 다름을 이해하고, 그 한계를 넘는 게 진짜 중요하고 어려운 것 같다. 우리도 구족화 작가를 초대해서 리서치 프로젝트를 진행했을 때 비로소 보이지 않았던 부분이 드러난 거다. 비장애 예술가들에게는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은 부분이었다. 그러면서 그 작가에게 속도를 맞추고 프로젝트 운영 기간도 조정했다. 여러 가지 요소가 사실 접할 기회가 없으면 상상만으로는 전혀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다른 몸 다른 감각을 가진 예술가와 작업하면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비장애 예술가들도 배울 수 있었다. 만나야 알 수 있고, 관계를 맺어야 그 문이 열린다.
홍승호두 분 말씀에 무척 공감한다. 특히나 농인에게 소통은 매우 중요하다. 비록 부침이 있고 여전히 불안정하지만, 우리와 함께해온 이들과 연결되면서 온그루에 입주할 수 있었고, 공연할 기회도 생겼다. 그렇게 조금씩 기회가 열리는 것 같다. 당장에 많은 것이 변화하기는 어렵겠지만, 차츰차츰 단계적으로 청인 중심의 소통을 벗어나 농문화 농인 사회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정보가 확산되고 인식이 더욱 개선되어야 한다. 이게 우리가 수어 연극을 하며 지역사회와 접점을 넓혀가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연희그래서 저는 전문 예술가와 장애인 당사자 배우들이 만나 창작 작업을 하려면, 장애에 대한 이해와 인식 개선 등에 기반한 매개자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연극뿐만 아니고 춤, 영상,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매개자 교육이 필요하다. 서울과 달리 지방에서는 관련 인프라나 활동을 거의 찾아보기 힘든데, 특히 지방에서 더욱 중요하고 필요하다. 공연할 때 근로지원사나 활동지원사의 조력을 많이 받지만, 직접적인 예술 창작과는 또 다른 부분이다. 예술창작 과정에서 장애 당사자들이 가지고 있는 예술적인 감각들을 끄집어낼 수 있는 매개자 교육이 필요하다. 장애 당사자가 예술교육에 참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2023년에 대구에 있는 한국파릇하우스에서 진행한 장애예술인 강사 양성 프로그램에 우리 극장의 발달장애 청년들이 3일간 수업에 참여했다. 주강사는 발달장애 예술인이었고, 비장애 예술인이 보조강사로 수업을 조력하고, 참여자들의 컨디션을 살펴주는 마음 티처까지, 이렇게 셋이 수업을 진행했다. 1시간 조금 넘는 수업이 전체적으로 매끄럽게 잘 진행되었고, 주강사로 참여한 장애예술인도 자존감과 긍지를 가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장애예술인의 기획 역량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 장애인 극단이 예술지원 공모 사업을 신청하고 선정되기가 쉽지 않다. 저희가 조력하는 장애인 극단 두 단체도 작년, 올해 계속 떨어졌다. 장애인 극단이 예술현장으로 나아가기까지 장벽이 너무 많다.
홍은지지금은 장애예술이 저변 확대라는 측면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장애 당사자가 자신의 고유성을 가지고 예술을 창조해 내고, 매개하고 안내하는 역할까지 어떻게 갈 것인지가 앞으로의 방향이 아닐까 싶다.
홍승호맞다. 농인의 소통을 수어통역사가 돕고 전문 예술가들이 조력해 주지만, 우리 자신도 창작자의 역할을 그려나가야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농문화의 특성을 예술에 잘 녹여내고,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홍은지마지막으로 향후 계획을 들어보고 싶다. 앞으로 해나가려는 일에 어떤 지원이 있으면 좋을지 상상해 보는 것도 좋겠다.
홍승호내년에는 지원사업 공모 신청을 해보려 한다. 작년과 올해는 아무것도 못 해서 아쉬웠다. 대본도 미리 준비해야겠다. 그리고 일본 농인 극단과의 교류도 기대된다. 오랫동안 활동해 온 전문 극단이라 우리가 배울 것도 많고, 일본 수어와 한국 수어가 비슷한 게 많아 오히려 소통에 어려움이 적다.
창파최근에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시각장애에 대해, 본다는 것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미학이나 미술사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서 자기의 감상을 나누는데 예술을 매개로 그런 소통이 이루어진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미술 공간이든 공공기관이든 무언가 의미를 찾고 인식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상에서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다양한 방식으로 허물 수 있는 접점이 많아지면 좋겠고, 그것을 위해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봤다. 가장 가까이는, 또따또가에 있는 예술가들과 온그루와 두구의 작가들이 만나는 자리를 만들어보면 좋겠다.
박연희올해 모두페스티벌에는 장애・비장애 어린이가 함께하는 창작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작년 축제 때 많은 시민과 함께 연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거리 퍼레이드를 했는데, 어린이 단체가 많이 참여했다. 그게 너무 좋아서 올해 어린이들과 창작 작업을 하게 되었다. 또한 작년 “Asia meets Asia” 공연에서 만난, 주로 움직임 퍼포먼스를 연출하는 일본과 부산의 연출가와 창작 협업을 할 계획이다. 올해 축제 주제가 ‘모두평등! 예술만세’인데, 일본 연출가와 우리 청년들이 이 주제로 어떤 작업을 해나갈지 기대된다. 극단 에파타와도 연결되면 좋겠다. 그리고 대구에도 공공의 장애예술 거점 공간이 생기는 상상을 해본다. 거기에서 창작 워크숍, 창작 아카데미, 매개자 교육 등이 마구마구 이뤄지면 좋겠다. 그리고 정말 바라는 게 하나 있다. 제가 모두예술극장에서 하는 공연이나 행사를 자주 보러 간다. 2023년과 2024년에도 라운드테이블이나 워크숍 공연을 거의 다 봤다. 최근에 〈젤리피쉬〉 공연을 봤는데, 그렇게 힘들게 만든 공연을 서울에서만 하고 끝내는 게 너무 아쉬웠다. 모두예술극장에서 기획하고 있는 국내우수작품, 해외초청공연이 지방거점으로 순회공연이 되어야 장애예술생태계가 선순환 확장될 수 있다고 본다. 더 많은 사람이 봐야 장애인과 장애예술에 관심을 갖고 인식도 바뀐다.
홍은지오늘 함께 나눈 이야기가 서로에게 열렬한 지지와 응원이 될 것 같다. 만나고 연결될 수 있는 공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짚어주셨다. 아주 작은 감각으로부터 경계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연결해 나가고 감지해 내고 일깨울 수 있을까, 예술 활동으로 서로에게 작용할 수 있을까, 여러 면에서 많이 생각하게 해주셨다. 제도가 서로를 분리하는 게 아니라 서로를 연결하고 소통을 가능하게 해주고, 더 열어주는 데 힘을 주었으면 좋겠다. 긴 시간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하다.
왼쪽부터 최요섭 수어통역사, 박연희 단장, 홍은지 기획위원, 창파 아트디렉터, 홍승호 단장

박연희
특수교육을 전공했고 마당극패 활동을 했다. 극단 함께사는세상에서 연극연출과 모두예술축제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1990년 창단한 극단 함께사는세상은 대구 지역을 기반으로 한 창작마당극 전문극단이다. 연극을 만들고 공연하는 과정, 관객과 소통하는 과정을 통해 따뜻한 공동체의식을 확산시키고자 노력한다. 2007년 장애인들과 연극 자조모임을 함께하며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었고, 장애인 극단 조각보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과 함께 〈엄마의 노래〉(2002), 〈괜찬타! 정숙아!〉 등의 작품을 선보였다. 2015년 문을 연 소극장 ‘함세상’은 예술의 공공성, 연극의 공공성을 지향하며 ‘문턱 없는 극장’이 되고자 하고, 누구나 연극 수업을 받을 수 있다. 2015년에 장애·비장애 경계 없는 축제를 지향하며 ‘함께사는 장애인연극제’를 시작했고, 2021년 ‘모두페스티벌’로 이어져 매년 축제를 이어가고 있다.
ilsimahn@daum.net
∙ 극단 함께사는세상 홈페이지
∙ 모두페스티벌 홈페이지

창파
실험실 씨 아트디렉터, 원도심창작공간 또따또가 센터장. 2016년부터 부산에 거주하며 한 장소에서 일정 기간 리서치하고 예술프로젝트로 발표해왔다. 2018년에는 박미라 포레스트 큐레이터와 함께 문화예술기획팀 ‘실험실 씨’를 만들어 문화와 생태의 경계를 넘어 다양한 이야기와 질문을 만들어간다. 지역, 예술, 자연을 키워드로 우리 삶의 숨겨진 공간을 탐색하고 미세한 이야기를 발견하여 창작을 도모하는 판을 기획하고 펼친다. 생활사·구술사·식물문화사를 토대로 사라져가는 주변 이야기를 찾아 생활에 밀착한 리서치 예술 콘텐츠를 기획하며 로컬 큐레이팅을 실천 중이다. 2025년 6기 원도심창작공간 또따또가 센터장을 맡고 있다. 아르코미술관 주제기획전 《일시적 개입》(2022) 참여작가이고, 김진주 작가와 《소요의 시간》, 개인전 《구봉산 그리고 수정산》(2021), 개인전 《마로니에 동·식물 관찰기》(2023) 등을 함께했다.
labc.changpa@gmail.com
∙ 실험실 씨 페이스북 LabC2018
∙ 실험실 씨 인스타그램 @labc.3f

홍승호
극단 에파타 단장, 배우.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극단 에파타는 연극을 매개로 청인 간의 소통과 공감을 확장하며, 문화예술을 통해 모두가 함께하는 세상을 만들어가고자 한다. 1980년대 후반 농인들의 자발적인 연극 모임에서 시작되었고, 1993년 창단 공연 〈내 영혼을 나에게〉를 올리며 정식 창단했다. 2006년 서울에서 개최된 장애인 나눔연극제에 참가해 〈배비장전〉 첫 공연을 올리고 전국적인 활동을 모색했지만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한동안 휴지기를 갖다가, 2023년 〈배비장전〉을 통해 다시 무대에 복귀해 새로운 도약을 시작했다. 2024년 창작공간 두구의 일곱번째 입주예술가, 2025년 장애예술인창작공간 두구 입주작가이다. ‘2025 문화다양성 주간-포용의 바다, 부산’ 행사에서 수어 연극 〈바람을 기억하는 방식〉을 공연했다.
Hongho1966@naver.com
∙ 극단 에파타 페이스북 Epatasign
∙ 온그루 홈페이지 극단 에파타 소개

홍은지
문화예술기획자, 연출가. 이음온라인 6기 기획위원. 전환의 계기로 작동하는 예술의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며 다양한 창작방식을 고안하는 것에 관심을 가진 공연예술 연출가.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신촌문화발전소 등에서 일했고, 얼라이브아츠 코모(alivearts como)에서 여러 분야의 아티스트와 함께 〈팰름시스트〉 〈벙어리시인〉 〈카페더로스트〉 등을 연출했다.
eufy6542@hanmail.net
수어통역. 최요섭 극단 에파타 수어연출
정리. 최순화 프로젝트 궁리 PD suna.choe@gmail.com
사진. 이재범 라무팜스튜디오 실장 andy45a@naver.com
2025년 5월 (63호)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제공하는 자료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 4유형 : 출처표시,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의 조건에 따라 이용이 가능합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