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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극연습 프로젝트 〈연극연습6. 역할연습 - 29길〉 함께 만들어가는 길

  • 유연주 연극평론가
  • 등록일 2025-06-18
  • 조회수 50

리뷰

세월호 참사 이후 연극에서 달라졌다고 체감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창작자들의 안전에 대한 인식이다. 소외되는 이 없는 안전을 위해 마련한 안내 멘트부터 입장 시 관객의 발밑을 신경 써주는 마음씨, 공연을 긴장하지 않고 편안히 볼 수 있도록 세팅한 조명과 음향까지. 피난 후 최종 집결지에 대한 안내 멘트까지 나오고 나면 짧게는 몇 분에서 십몇 분이 지나 있기도 하다.(주1) 그 누구도 안내 멘트가 길다고 항의하는 법이 없다. 그 시간은 우리가 함께 안전하게 공연을 즐기고 안전하게 집에 돌아가길 기원하는 때다. 그동안 나는 기도를 할 때가 많다. 진작 이런 장치가 마련되어서 우리와 함께 있었어야 하는, 지금은 스물아홉이 되었을 이들의 평안함을 위해.

연극연습 프로젝트 〈29길〉은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시민들이 장애나 젠더 등을 이유로 소외되지 않을 수 있도록 마련된 자리였다. 〈29길〉 공연 안내 문자도 그렇게 세심했다. 참여자들의 안전을 놓고 저울질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결연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기후 위기를 보여주듯 날씨는 험궂어지기 시작했고, 공연은 결국 실내에서 낭독공연 형태로 진행되었다. 여기부터 우리의 안전을 위한 노력의 시작이었다.

공연에 앞서 받은 종이에는 “올해 29살인 당신은 기억교실에서 누군가의 꿈을 적어 옵니다.”라고 적혀 있다. 단원고 4.16기억교실을 돌면서 그들의 꿈에 귀 기울이라는 명령이다. 나는 “나의 꿈은 목수”라고 적은 친구의 자리를 한참 들여다보고 머물렀다. 손과 몸 쓰는 일에 재능과 관심이 없는 나는 나와 다른 꿈을 가진 이 학생이 너무 궁금했다. 이 사람은 못을 잘 박을까? 번번이 못을 휘어지게 박는 나와는 다른 사람이 궁금했다. 이 사람은 2014년 4월 17일, 18일, 19일…, 그리고 2025년 4월에는 무얼 하고 있을까? 지금쯤 꿈을 이루었을까? 이 사람은 어떤 가구를 만들까? 꿈은 여전히 그대로일까? 다른 꿈은 무얼 꾸고 있을까? 우리가 잃어버린 어떤 세계가 얼마나 크고 무한한 가능성으로 가득했는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리고 나오는 길에 벽에 걸린 달력에서 4월 15일부터 한 칸 한 칸 적힌 “수·학·여·행”을 보고 “학”이란 글자에서 한참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약속된 시간이 되어 로비로 돌아오니 공연 준비가 되어 있었다. 비록 비바람 때문에 이동하며 공연을 관람할 수는 없었지만, 창작자들의 열띤 노력 덕분에 적극적으로 상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관객 중 자원자는 지시문을 읽고, 배우는 대사를 하는 식이다. 우리는 기억교실부터 고잔초등학교 운동장, 텃밭공동체 정자, 원고잔공원 언덕을 올라 오솔길로 마음을 옮긴다. 길을 건널 때, 차가 다가올 때, 공사장 앞을 지날 때, 세심하게 참여자들의 안전을 살피는 창작자들의 모습이 마음에 담긴다. 그렇게 숲을 빠져나가던 길 끝 계단에서 모두 멈춰 선다. 휠체어로는 갈 수 없는 길이다.

이 글을 처음 구상할 때 제목은 ‘함께 걷는 길’이었다. 그러다가 ‘걷다’라는 동사가 휠체어를 탄, 혹은 다리를 쓰지 않고 움직이는 이들에게 맞지 않는 단어라는 걸 깨닫고 한참을 고민했다. 우리가 함께 이동하는 것을 묘사할 언어가 무엇이 있을까?(주2) ‘가다’ ‘나아가다’ ‘전진하다’ ‘이동하다’ ‘움직이다’ 등등. 그러다가 우리가 이동하는 게 핵심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우리는 가다가 돌아올 수도 있고, 가다가 길을 바꿀 수도 있고, 가다가 가지 않을 수도 있으며, 또 길을 길이 아니라 정의할 수도 있다. “휠체어 탄 사람에게 계단은 길이 아니에요.” “못 가는 길이라면 길이 아닌 거죠.” 이 공연에서 우리는 길의 정의를 바꾸었다. 그리고 “안전하게 구르”는 길을 찾아 다시 돌아간다. 함께 길을 찾고, 또 만들어가는 것, 바로 이것이 이 작품의 모티프가 된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 인권선언’의 기초가 아닐까.

잠시 간식을 나눠 먹으며 휴식을 취한 뒤 4.16 인권선언을 큰 소리로 낭독한다. “함께 손을 잡자. 함께 행동하자.” 그렇다. 여기는 함께 행동하기 위하여 모인 자리다. 낭독을 마친 후 다시 관객과 배우들은 함께 대본을 읽어 나가며 여기에서 저기로 이동하는 상상을 한다. 건설 현장 앞에서는 “백 번 외치는 안전보다 한 번 실천하는 안전!”을 함께 외치고, 단원고, 맨션촌, 화정천을 지나 놀이터에서는 송창식의 〈우리는〉을 합창하고, 화정천에서는 마법 같은 비눗방울 속에서 즐겁게 논다.

마침내 다다른 ‘4.16 생명안전공원’의 터. 공원 착공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눈물과 땀을 흘렸는지 보아왔기에 더 소중한 공간이다. 0set 프로젝트의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2024) 공연에 참여한 신호성 엄마 정부자는 “생명안전공원은 살아 숨 쉬는 공간, 추모 문화를 바꾸는 공간, 산 자와 죽은 자가 같이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 되면 좋겠어요.”라고, 조은정 엄마 박정화는 “생명안전공원 들어서서 우리 아이들이 다 모였을 때 우리가 그 공간에서 노래도 하고 난타 북도 가져가서 좀 실컷 두드려도 보고 그런 상상 해요.”(주3)라고 이야기한다. 그 상상을 이 공연에서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합창단 지보이스(G_voice)와 함께 실현한다. 우리의 존재 자체를 축복해주는 지보이스의 〈콩그레츄레이션〉을 듣고 합창하면서 정말 “좋은 일이 생”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비록 벚꽃이 만개한 길을 지나진 않았어도, 상상 속에서 더 멋진 벚꽃을 만났고 더 멋진 공원에서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 함께한 이들이 만들어준 아름다운 소풍이었다. 소풍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꿈을 품고 함께한 시간이었다. 그랬다, 봄이었다. 한없이 찬란한 봄 같던 사람들이 떠난 지 열한 해가 흘렀고, 이들은 우리 마음속에서 스물아홉 청년이 되었다. 이 공연에서 나는 적어도 한 사람의 꿈을 마음에 심었다.

  • 몸에 우주비행사, 고양이, 화가, 선생님, “고양이, 새벽 등의 이름표를 붙인 배우들이 휠체어를 타거나, 안전모를 쓰거나, 두 손을 모아 소리치거나, 깃발을 든 채 줄지어 앞으로 움직인다.
  • 관객들 앞에서 가슴에 “자유”라고 쓰인 이름표를 붙인 배우가 우쿨렐레를 매고 한 팔을 옆으로 쭉 뻗은 채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
  • 관객들 사이 사이에 들어간 배우들이 버블건으로 크고 작은 비눗방울을 뿜어내고, 관객이 즐거운 표정으로 바라본다.
  • 노란색 악보를 든 지보이스 합창단이 노래하는 모습이 뿌옇게 보이고, 객석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배우의 휠체어에 꽂힌 깃발에 쓰인 “소풍”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보인다.
주1.여기는 당연히, 극장’의 최근 공연 〈미수습〉(2025)에서는 베트남어로 된 안내가 등장하기도 했다. 베트남어 안내는 세월호에서 ‘미수습’된 베트남 피해자를 위한 것이다.
주2.평론가 양근애는 ‘0set 프로젝트’의 〈걷는 연극〉에 대한 리뷰에서 “‘걷는다’는 말은 두 다리를 이용하여 걸을 수 있는 능력을 특권화하거나 장애를 배제한 말이 아니라 여기서 저기로 자기만의 속도와 보폭으로, 자신의 이동수단을 통해 자리를 옮겨가는 행위를 통칭”하며 “‘걷는 연극’은 찢어진 세계를 이어 앞으로 나가는 일”이라고 정의 내린 바 있다. 그런 정의에도 동의하지만, ‘걷다’라는 동사를 대체할 언어를 찾아보았다. 이 공연에서는 ‘구르다’도 함께 사용하고 있다. (양근애, 「찢어짐에 저항하는, ‘걷는 연극’」,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4.10.30.)
주3.0set 프로젝트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홈페이지
연극연습6. 역할연습 〈29길〉

연극연습6. 역할연습 〈29길〉

경기도교육청 4.16생명안전교육원|2025.4.12.~4.13 | 단원고 4.16기억교실, 4.16생명안전교육원

“봄날의 주말, 안산을 산책합니다. 스물아홉 살이 꿈꾸었을 모습, 기대했을 세상을 상상합니다. 스물아홉을 대신해 우리가 가야 할 길, 만들어야 할 길을 내딛습니다.” 4.16문화예술공연 프로젝트 일환으로 진행된 〈29길〉은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고 4.16 인권선언을 통해 4.16의 의미를 돌아본다. 연극연습 프로젝트 제작, 고주영 기획, 설유진 총연출했고, 극단 907×극단 애인, 지보이스 합창단이 함께했다.

이음온라인 [문화소식]
연극연습 프로젝트 페이스북 theater.practice

유연주

연극평론가.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연극을 꿈꾼다.
likegoethe@nate.com

사진 제공.ⓒ연극연습 프로젝트 (촬영. 혜영)

2025년 5월 (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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