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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이음 아트포트 2025 : 예술로 이어지는 여기에서》 우선과 의무 사이에서, 머뭇대면서도 한 걸음 더

  • 황바롬 문화예술기획자
  • 등록일 2025-06-18
  • 조회수 47

리뷰

무엇을 우선할까

2025년 4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으로부터 장애예술인의 예술시장 진입을 돕는 《이음 아트포트 2025》 행사의 창작지원 프로그램에 강연자로 참여해 줄 것을 제안받았다. 이 요청을 흔쾌히 수락하며, 나는 ‘이 강연을 들을 분들이 장애예술인으로 한정되는지,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나 들을 수 있는지’를 우선 물었다. 강연 주제를 ‘포트폴리오 제작과 업데이트의 필요성’으로 좁힌 이후로도 강연 구성이나 진행 방식에 대해 고민했지만, 장애 유무보다는 ‘(자고로) 예술인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한다’라는 암묵적 대전제를 두고 김소라 작가와 함께 사례 중심으로 강연을 준비했다.

5월 19일부터 5월 24일까지 6일간의 전시 일정에 맞추어 매일 하나씩 예술인 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었다. 나와 김소라 작가가 진행을 맡은 ‘나와 함께 성장하는 포트폴리오 만들기’ 외에도 ‘예술인을 위한 저작권 이야기’(이일호 교수), ‘살아있는 작가노트 작성법’(김유미 학예연구사), 전문 비평가들과 함께하는 ‘1:1 포트폴리오 리뷰’(홍경한, 오가은, 백기영), 그리고 예술도 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토크 프로그램 ‘이렇게도 할 수 있었네’(최선영 기획자)가 마련되어 있었다. 전반적으로 ‘장애예술’에 특정하기보다 예술인으로서 알아두면 좋을 정보나 경험담에 초점을 둔 프로그램이었다. 묘하게 한결 편해진 마음가짐으로 강연 진행을 위해 모두미술공간으로 향했다.

누가 우선일까

5층 행사장으로 가는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네댓 명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고 내 뒤로 전동휠체어를 탄 사람이 대기 줄에 다다랐을 때, 마침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던 앞 사람들이 줄지어 타고, 나는 아차 싶은 마음에 전동휠체어 뒤로 물러났지만, 그는 이런 일이 익숙하다는 듯 ‘어차피 (나는) 못 타니, 먼저 타라’고 손짓했다. 지하부터 탑승한 사람들까지 있어 엘리베이터는 이미 반 이상 차 있었고 아무리 봐도 전동휠체어가 들어가기엔 공간이 부족해 보였다. 잠시 머뭇대던 나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탔고, 문이 닫혔다. 엘리베이터가 매끄럽게 상승했다. ‘이게 무슨 일이지? 뭔가 잘못됐다. 분명 잘못됐어. 아니, 내가 잘못한 거지, 방금.’ 우왕좌왕한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정리되기도 전에 몸이 먼저 행사장에 도착했다.

말끔한 입구 앞에는 카드 뉴스에서 보았던 빨강, 노랑, 파랑 캐릭터들이 익숙한 미소로 사람들을 반기고 있었다. 엑스 배너와 안내 화살표에도 씩, 리플렛과 공간 안내도에도 씨익. 리플렛을 챙겨 들고 전시장을 지나 강연이 진행될 커뮤니티실로 향하는 길목에는 ‘포트(PORT, 항구)’라는 콘셉트에 맞추어 장애예술인 지원제도와 이음아트플랫폼 이용 방법을 안내하는 부스, 저작권 및 법률 상담 부스, 그리고 예술활동증명 절차를 돕는 부스가 마련되어 있었다. 담당자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강연 자료를 담은 노트북을 빔프로젝터에 무리 없이 연결하고, 대기실로 자리를 옮기다가 마주쳤다. 결국 다음 엘리베이터를 타고 행사장에 이제 막 도착한, 아까 그 뒷사람을. 밝고 친절하게 웃는 얼굴들 사이에서 나는 어쩐지 울고 싶어졌다.

아직 먼 제도와 현실 사이

평일 낮이었음에도 프로그램 사전 신청자들로 공간이 가득 찼다. 강연 후반부에는 형식이나 분량이 제한된 포트폴리오 안에 자유롭고 방대한 창작 세계관을 어떻게 집약적으로 담아내야 할지 어려움을 느껴왔던 예술인들의 공감대가 구체적인 질문들로 이어졌다. 예술인의 삶은 언뜻 자유로워 보이지만 사실상 수많은 형식과 절차, 제도 안에서 한정된 예산과 기회를 직접 건져내야 하는, 거친 바다로 떠나는 출항과 같다. 《이음 아트포트》는 바로 이런 어려움에 대해서 특히 장애예술인들이 예술활동의 흐름을 넓히고 연결할 수 있도록 ‘이음아트플랫폼’을 기반으로 장애예술인의 창작물 전시, 장애예술인 지원제도 연계, 예술인 대상 강연 프로그램, 기관 매칭 지원 등 지원 체계를 소개하는 등대 역할을 하는 행사였다.

행사 운영 전반에서 접근성을 높이는 환경 조성을 위해 강연 프로그램에는 실시간 문자통역이 제공되었고, 전시장에는 수어해설 영상, 필담 코너 등이 마련되었다. 장애예술인 50명의 작품 100점은 전문 큐레이터가 ‘동물과 나’, ‘현실과 초현실’, ‘일상에서’ 등 12개 주제로 전시했는데, 작품마다 QR코드가 삽입된 캡션을 통해 작품 설명과 구매 정보를 곧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2023년 3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장애예술인 창작물 우선구매제도’를 알리고 활성화하기 위한 시도이자, 이번 행사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기도 하다. 해당 제도는 ‘권장’ 사항인 한편, 국가기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설치한 문화시설(공연장, 미술관)은 장애예술인의 문화예술 활동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의무적으로 구매해야 한다. 이음아트플랫폼 홈페이지에서 해당 제도와 이용 방법을 자세히 알아볼 수 있으며, 자료실에 있는 「창작물 가격 책정을 위한 참고 자료 모음집」은 현재 예술시장에서 통용되는 다양한 기관과 협회의 자료가 첨부되어 있어 자기 창작물에 판매 금액을 책정하기 어려운 신진 예술인도 참고할 만하다.

다음 여정으로 가기 위해 우선할 이야기들

《이음 아트포트》 행사가 끝난 지 2주가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나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주저했던 그 순간을 자꾸만 떠올린다. 만약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엘리베이터에 탄 사람들에게 사람 좋게 씩 웃어 보이며 양보나 배려를 요청해야 할까? 아니면 단호한 표정으로 전동휠체어 이용자가 ‘우선’ 타야 하니 모두 내려달라고 말할까? 아니면 또다시 나도 쏙, 타버리고 말 것인가? 인제 와서야 하등 의미 없는 반복 재생을 머릿속에서 이어가다 보니 문득, 내가 임산부 배지를 달고 임산부 배려석 앞에 서 있어도 한 번 쓱 쳐다보고 말던 무표정한 익명의 얼굴들이 스쳐 지나간다. 누군가는 꼭 들으란 듯, 대놓고 쑥덕대기도 했다. “배려석이지 의무석이 아니잖아.”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교통약자석까지 가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배려, 권장, 우선, 의무. 같은 두 글자 단어지만, 그 무게는 꽤 다르게 다가온다.

《이음 아트포트》에서 소개된 장애예술 활성화를 위한 제도를 비롯하여 모두예술극장, 모두미술공간과 같은 장애예술 전문 공간이 국내에 처음 등장하고, 장애예술인을 위한 법령이 하나둘 제정되고 있지만, 아직 실질적인 효과를 체감하거나 제도가 충분히 마련되었다고 느끼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을 우선할지 규정하고, 제도화하고, 지키지 않을 경우 페널티를 주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 구성원들 사이 녹슬고 끊어진 마음의 연결고리를 재정비하는 일일 것이다.

이번 행사에서 인상 깊었던 것 역시 제도 안내에만 머물지 않고 창작자와 수요자, 예술과 정책 사이를 연결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는 점이다. 다만 이러한 제도가 사회에 정착되고 실효성을 가지려면 예술가의 삶과 작업의 맥락에 대한 ‘우선적인’ 관심과 행동이 함께 맞물려야 할 것이다. 서로에 대한 진심 어린 관심을 표현할 수 있는 자리가 지속적으로 열릴 때, 그리고 나보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의 공간이 충분히 마련될 때, 비로소 진짜 ‘우선’이 사회 안에서 자연스럽게 작동할 수 있지 않을까. 머뭇대지만 머무르지 않고 계속 나아가기를 바라며, 모두의 순항을 빈다.

  • 오른쪽 벽에 행사 소개와 상세 프로그램이 쓰여있고, 그 밑에 길게 놓인 테이블에는 색약 보정 안경, 필담 코너, 수어해설 영상 태블릿 등이 놓여 있다. 왼쪽 벽에는 작품 배치도와 12개 주제가 쓰여있다.

    전시장 입구의 행사 소개 코너

  • 작품들을 배경으로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설명하고 있다.

    전시 작품 앞에서 작품 설명을 하는 작가와 도슨트

  • 넓은 공간의 벽과 가벽을 따라 작품들이 나란히 걸려 있다. 오른쪽에는 허리 높이의 단 위에 조각상이 놓여 있다.

    전시장 전경

  •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스크린에 영사된 자료로 강의를 하고 있다. 화면에는 ‘포트폴리오 관련 동향 “왜, 지금, 포트폴리오 일까”’라고 쓰여 있다. 옆에는 문자통역 모니터가 있다.

    강의 ‘나와 함께 성장하는 포트폴리오 만들기’

이음 아트포트 2025

이음 아트포트 2025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2025.5.19.~5.24.|모두미술공간

《이음 아트포트 2025》는 장애예술인의 창작물 유통 활성화를 지원하는 복합문화 프로그램이다. 장애예술인 50인의 미술작품 100점을 전시하고, 창작자의 역량 강화를 위한 예술인 교육 프로그램, 판로 확대를 위한 기관 맞춤형 작품 정보 제공, 장애예술인 지원 제도 및 플랫폼 이용 안내 지원 부스 등을 운영했다. 예술장터의 역할을 하는 이번 행사는 2023년 3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장애예술인 창작물 우선구매제도’를 활성화하고 장애예술인이 문화예술 유통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장애예술 창작을 활성화하는 이음아트플랫폼 사업이다.

이음온라인 문화소식
이음아트플랫폼 홈페이지

황바롬

문화예술기획자, 광명문화재단 비상임이사(2023~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회화·판화 전공), 국제대학원(한국문화 전공)을 졸업하고 다수의 문화예술기관에서 실무를 경험했다. 행정 언어와 예술 현장의 간극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2020년에 문화예술기획사 바인드 아트랩(baind artlab)를 설립한 이후 주로 시각예술 분야 종사자들과 함께 창작의 ‘과정’을 조명하는 전시와 워크숍, 세미나 등을 기획했다. 포용적이고 수평적인 관계 맺기를 추구하며, 사소한 대화나 일상적인 장면들 속에서 예술적인 순간을 발견할 때 즐거움을 느낀다.
b_a_ind@daum.net
· 인스타그램 @b_a_ind

사진 제공.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025년 5월 (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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