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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 〈인간에 대한 예의〉 돌봄을 사회의 몫으로!

  • 유연주 연극평론가
  • 등록일 2025-10-01
  • 조회수 161

리뷰

〈인간에 대한 예의〉는 활동지원서비스 제도가 부재하던 시기, 비극적 죽음을 맞이했던 태준을 조명하고 있다. 작가 송정아가 밝히고 있듯 태준은 실존 인물 조태광이고, 그와 같은 이들의 희생으로 이런 제도가 마련되어 장애인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조태광이라는 인물을 다룬 칼럼이 작가의 집필 동기가 되었던 것처럼, 극은 태준에 관한 기사를 접한 기자 덕환이 그에 대해 심층취재를 하면서 시작된다.

개인적이고 사적인 돌봄이 아닌 사회적 돌봄을

태준의 비극적인 죽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 이 극에서 더 중요한 것은 어머니에서 형으로 이어지는 가족 내 돌봄 문제다. 엄마는 건강이 점점 나빠지지만 혼자 있을 태준이 걱정되어 병원도 못 가고, 태준은 그런 엄마가 걱정이다. ‘내가 자식보다 하루라도 더 살아야 하는데…’ 하는 중증장애인 부모의 마음은 태준의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엄마의 건강은 점점 악화되고 그 바람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다.

엄마가 죽고 태준에게 남은 유일한 혈육은 형 태곤이다. 형은 비록 술을 마시면 가족들에게 행패를 부리지만, 가족 걱정을 많이 하고 특히 태준에 대한 책임감이 강한 인물로 그려진다. 형은 엄마의 죽음 이후 자기가 태준을 돌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가정이 있기에 쉽지 않다. 사실 태곤도 장애인이다. 그는 대학 때 데모에 참여했다가 고문을 당하여 후천적으로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되었다. 전과까지 생긴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막노동뿐인데, 그마저도 신체적인 조건 때문에 하기 어려운 상태다. 아내를 설득해서 태준을 데려오려고 하지만 실질적인 가장이자 태곤과 아이들의 보호자인 아내는 반대할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은 태준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에게 전가된 돌봄에 대해 관객이 비판적으로 사유하게 한다. 사회적인 안전망은 하나도 마련되지 않고 가족에게만 돌봄을 맡겼기 때문에 장애인의 가족은 최소한의 경제적 활동도 쉽지 않다. 그나마 태준의 어머니와 형의 대안이 되었던 것은 이웃과 자원봉사자의 돌봄이다. 특히 이장은 살뜰히도 태준네를 챙긴다. 어머니의 일자리를 알아보고, 건강도 챙기고, 이것저것 먹을 것도 나눈다. 자원봉사자를 알아봐 준 것도 바로 이장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사회적인 돌봄이다.

페미니스트 장애 철학자 에바 페더 키테이(Eva Feder Kittay)는, 인간은 기본적으로 의존적이며 우리는 모두 상호의존적이라고 규정한다. 어떤 인간이든 의존적인 시기가 있다. 그 시기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뿐이다. 의존이 그렇게 당연한 것이라면 돌봄 역시 당연해야 한다. 그렇기에 돌봄을 주고받는 관계인 돌봄 관계는 인간의 삶에서 가장 본질적이며, 돌봄 윤리는 사적이고 개인적인 영역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공적 영역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키테이가 주장하는 돌봄과 정의의 핵심 원칙이다.(주1) 만약 사회적·공적 돌봄이 제공되었다면 의존인인 태준은 활동 반경이 지금보다 훨씬 더 넓어지고, 돌봄 제공자(주2)인 어머니는 건강이 악화되기 전에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서 지금과는 크게 다른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상상해 보게 된다.

돌봄 제공자에게도 돌봄을

어머니는 돌봄 제공자로서 취약한 환경에 놓여있다. 아버지는 살아생전에는 술만 마시면 폭력을 행사했다. 어머니는 살림에 밭일까지 해도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불평등한 권력 관계 때문에 어머니는 점점 학대와 폭력에 취약하게 된다. 어머니의 돌봄을 받는 태준 역시 그런 취약한 환경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고 자기 때문에 아버지와 집에 매여있는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지도 못한다.

한편 형은 어머니가 안 계시면 본인이 태준의 돌봄 제공자가 되어야 하는 것에 부담이 있다. 자기 몸이 불편한 것도 문제지만, 태준을 돌봄으로써 경제적으로 더 취약한 상태에 놓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연쇄된 가족의 돌봄은 의존인인 태준과 그의 가족을 끝없는 경제적 궁핍으로 몰아넣는다. 여기에서 관객은 돌봄에서 ‘파생된 의존(derived dependencies)’에 대한 돌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즉, 돌봄 제공자인 어머니에게도 돌봄이 필요한 것이다.

키테이는 인간의 의존성과 취약성을 두 단계로 나눈다. 바로 ‘의존인의 의존성’과 ‘돌봄 제공자의 의존성’이다. 어머니의 태준에 대한 돌봄은 바로 돌봄 제공자의 의존인에 대한 돌봄인 1차 돌봄 단계다. 2차 돌봄 단계는 1차 돌봄 단계에서 파생된 것으로, 돌봄 제공자에 대한 돌봄이다. 어머니의 상황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돌봄 제공자는 노동으로 생계를 꾸려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렇기에 그를 돌봐줄 또 다른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키테이의 논의에 따르면 이때 돌봄의 의무는 ‘조달자(provider)’라고 칭하는 제3의 존재가 담당한다. 일반적으로 조달자는 가정에서 가장이라고 불리는 남성이 담당했다. 태준의 집도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조달자의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이런 조달자의 역할 역시 사적이고 개인적인 책임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공적인 책임으로 만들어야 한다.

아무리 동네 사람들이나 자원봉사자가 돕는다고 해도 돌봄은 개인이나 공동체의 선의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다. 그렇기에 1차와 2차 돌봄 단계 모두 잘 이행될 수 있도록 사회적인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결국 태준의 죽음은 사회와 국가가 자기 책임을 방기하여 벌어진 일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는 태준과 그를 돌보는 어머니의 죽음을 추모하면서 바로 이런 사회적 돌봄에 대한 논의를 끌어낸다.

영웅적이지도 비극적이지도 않은 삶이길

최근 돌봄에 대한 논의가 여기저기 진행되고 있지만 돌봄이 사회적인 의제로 논의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의존인인 장애인 자녀를 죽이고 자살하는 돌봄 제공자 부모의 이야기는 바로 며칠 전에도 뉴스에 나왔다. 가정 내 돌봄이 아직 당연하게 여겨지는 지금, 쉽지 않은 주제이긴 하지만 관객들에게 이 극의 메시지가 잘 전달되었을 것이라고 믿게 되는 것은 극단 휠의 안정된 공연 덕분이다. 배우들의 연기도 그렇고 무대 위에서 거추장스러운 부분 없이 잘 맞는 합은 극단 휠의 역사와 역량을 확인시켜 준다.

하지만 그 안정됨이 또 이 극의 단점이 되기도 한다. 슬프고 따뜻한 이야기 속에서 정작 주인공인 태준이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태준은 중증장애인으로 그가 거처하는 곳은 주로 이불 위이고, 그의 모든 행동은 이불 위에서 행해진다. 장애 때문에 신체 행동에 제약이 있긴 하지만, 어머니나 형과 대화하거나 다투는 그의 모습을 보면 단순히 나약하거나 순응적인 캐릭터가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만약 사회적 돌봄 제도가 잘 구축되어 있었다면 태준이 만나는 사람은 더 많아지고, 활동 반경은 더 넓어졌을 것이다.(주3)

장애인 당사자 작가이자 운동가인 일라이 클레어는 “혁명 이후 언젠가, 장애인들은 영웅적이지도 비극적이지도 않은 평범한 삶을 살 것이다.”(주4)라고 말했다. 더는 태준과 같은 이들의 희생이 영웅적이거나 비극적으로 그려지지 않았으면 한다. 그 대신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꿈을 꾸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고 싶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구성원들이 열심히 의견을 내고 토론하여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장애인들이 이룬 많은 성과는 장애인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장애 연구활동가 김도현은 “장애학이 추구하는 건 장애인을 위한 세상이 아니라, 누구도 뒤에 남겨지지 않는 해방의 공동체”(주5)라고 밝혔다. 그런 공동체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꿈꾸고 노력해서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 무대 위 노란 장판이 깔린 작은 평상 위. 태준이 자신의 무릎을 베고 옆으로 누워있는 어머니를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태준 옆에는 이불이 흐트러진 채 놓여있다.
  • 무대 중앙에 배우들이 나란히 앉아 관객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휠체어에 탄 이도 있고, 어깨동무를 하거나 웃고 있는 모습이다. 뒷의 스크린 자막에는 〈인간에 대한 예의〉라고 쓰여 있다.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 〈인간에 대한 예의〉 공연 장면

주1.이하 돌봄에 대한 논의는 에바 페더 키테이, 김희강·나상원 옮김, 『돌봄: 사랑의 노동』, 박영사, 2016 참조.
주2.키테이는 이를 ‘의존 노동자(dependency workers)’라고 칭한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좀 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돌봄 제공자’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주3.하지만 과연 현행 활동지원서비스 제도가 이 연극에서 논의하고 있는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는가는 의문이다. 기본적으로 제도에 너무나도 많은 맹점이 있다. 의존인과 돌봄 제공자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은 제도라는 태생적인 한계부터 신청 자격이 ‘6세 이상 65세 미만’이어서 서비스가 단절된다든가 하는 실질적인 문제까지, 개선을 위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주4.일라이 클레어, 전혜은·제이 옮김, 『망명과 자긍심』, 현실문화, 2020, 61쪽.
주5.김도현, 『장애학의 시선-누구도 뒤에 남겨지지 않는 세계를 향한 비전』, 오월의봄, 2025, 9쪽.
인간에 대한 예의

인간에 대한 예의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모두예술극장|2025.9.6.~9.7.

창단 20주년을 맞아 극단의 정체성과 창작 철학을 가장 잘 담고 있는 창작극으로, 실존 인물 조태광 씨의 비극적인 삶을 바탕으로 장애인의 현실과 사회적 무관심을 무대 위로 되살려낸 작품이다. 극단 휠은 장애배우의 개성과 장애 특성에 맞춘 배역 창조를 통해 장애 친화적이고 자연스러운 무대를 지향해 왔으며, 장애를 단지 극복의 서사가 아닌 인간 존재의 다양성과 사회적 공존의 문제로 재해석하고자 한다. 프로듀서·극작 송정아, 연출 신재훈, 출연 이근하, 이두환, 이승규, 이승희, 정유미, 정조준, 현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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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주

유연주

연극평론가.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연극을 꿈꾼다.
likegoethe@nate.com

사진 제공.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

2025년 10월 (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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