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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비장애 예술가가 함께 예술 작업을 해나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만남은 어떻게 이뤄지고,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으며 어떻게 이어질까? 작업 동료로서 함께 일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서로에게 어떤 예술적 시너지를 주고받았는지 서면 인터뷰에 담아본다.
두 분이 함께 작업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어디서 어떻게 만나셨나요?
양대은0set(제로셋) 프로젝트의 공연 〈관람모드: 보는 방식〉에서 처음 성훈 님을 만났어요. 찾아보니 2019년이네요. 와우, 말도 안 돼…. 저는 스태프로, 성훈 님은 창작과 출연으로 참여했어요. 저는 성훈 님이 있었던 삼일로창고극장의 공연장 공간 안에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밖에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요. 아무튼 관객이 오가는 타이밍을 체크하는 일을 했습니다. 한 명의 관객이 공간에 들어서면 성훈 님은 구글 공유 문서를 띄우고 관객과 즉석에서 소통했는데요. 그때마다 날리던 드립이 심금을 울렸습니다. 스크린에 영사된 대화 내용을 찍어 단톡방에 공유하며 함께 “ㅋㅋㅋㅋ”를 치던 시간이 인터뷰 덕에 기억났습니다. 성훈 님이 예전에 썼던 시를 관객에게 보여주던 순간도 좋았어요. 모니터로 보며 조용히 읊조렸어요. 첫 질문이 함께 작업한 계기였죠? 온전히 0set 프로젝트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제로셋!
홍성훈〈관람모드: 보는 방식〉은 “극장은 누구에게 열려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프로젝트예요. 처음 만날 당시, 대은 님은 워크숍 참여자이자 공연 스태프였고, 저는 퍼포머였어요. 처음엔 대은 님이 배우인 줄 몰랐습니다. 만남을 이어가면서 대은 님이 배우인 것을 알았어요. 그것도 엄청 웃긴 배우라는 걸. 대은 님의 작업에 대해 흥미가 생겼습니다. 〈관람모드: 보는 방식〉의 마지막 공연 날이 생각납니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을 배웅한 뒤 조명이 꺼진 무대에 다시 들어왔을 때, 제가 너무 기쁜 나머지 소리를 빽 지르며 휠체어로 춤을 췄어요. 그러자 대은 님도 합세해서 같이 춤을 췄던 광경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공연 이후 대은 님과는 배우와 스태프, 배우와 배우, 배우와 관객, 관객과 스태프의 관계로 만남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동료로 함께 작업한 것이 좋은 작품이나 성취로 돌아왔나요?
홍성훈대은 님과 배우 대 배우로 함께 작업한 작품으로 영화 〈원더〉(2024)와 낭독공연 〈크립스〉(2025)가 있습니다. 〈원더〉에서는 대학 시절 함께 소설가를 지망했던 친구 관계로 나왔는데요. 살짝 자랑하자면, 영화 〈원더〉가 올해 가치봄영화제의 ‘PDFF경쟁’ 부문에서 대상을 받았습니다. 영화제에서 상을 받아서가 아니라, 영화를 찍으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함께 호흡 맞추는 것이 수월했습니다. 또한, 일로 만나는 것뿐 아니라 사적으로 만나서 놀기도 하는데요. 그런 시간이 쌓여 연기가 아닌 ‘찐 호흡’이 나온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서로 호흡이 잘 맞았던 것은 신뢰가 기반이 되고, 그 신뢰는 서로 조심스러운 태도에서 나오기 때문인 듯합니다. 저희는 서로 존댓말을 주고받는 사이예요. 존댓말을 사용해도 친밀감을 쌓는 데 전혀 지장이 없고요. 오히려 서로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태도가, 너무 사적인 관계에 치우치지 않고 일정한 선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밑바탕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양대은마침 이 인터뷰 섭외 연락을 받은 날, 〈원더〉가 상을 받았어요. 〈원더〉는 0set 프로젝트의 신재 님이 쓰고 연출한 작품인데요. (이 자리를 빌려 축하드립니다!) 제가 비싼 카메라 앞에서 뭘 한 건 〈원더〉가 처음이라 걱정도 앞서고 긴장도 됐는데, 성훈 님과 처음으로 함께 연기할 수 있어서 다소 들뜨기도 했습니다. 촬영 후 2년 만에 영화관에서 〈원더〉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재밌더라고요. 성훈 님과 원더의 연기도, 감독님 편집도 다 너무 좋았습니다.
혹시 작업 과정에 어려움을 느꼈던 적이 있나요? 어떻게 돌파하셨나요?
양대은흠, 이 질문이 제일 어려운 것 같은데요. 연극이든 영화든 만들다 보면 ‘어라? 하, 이것 참 알쏭달쏭한데?’ 하는 상황이 돌연 등장하는데요. 그때마다 성훈 님이랑 장난을 치면서 자칫 경직될 수 있는 마음을 풀었던 것 같아요. 적어도 저는 그랬습니다. 저도 제가 왜 이렇게나 매사에 우스갯소리를 늘어놓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성훈 님이 잘 받아주어 신나고 흥이 났었죠. 그러고 보니 감사합니다, 성훈 님. 앞으로 제가 무리수를 던지면 그냥… 잘 받아주세요!
홍성훈지금 생각나는 어려움은 역시 〈원더〉를 찍을 때인데요. 대은 님이 몸살 기운이 있어서 촬영 내내 힘들어했던 기억이 납니다. 공연 현장과는 다르게 영화는 주어진 시간 내에 촬영을 마쳐야 해서 더욱 타이트하게 진행됐어요. 대은 님은 영화 촬영이 처음이라 많이 힘들어했는데, 뭔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서 괜히 웃어 보이기만 했습니다. 그때 개인적으로 많이 속상했어요. 제가 동료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나에게 주어진 몫을 성실하게 해내면서 동료를 다독이는 것입니다.
두 분은 ‘일로 만난 사이’를 넘어 뭔가 함께 도모할 만한 관계가 되었나요? 어떻게 해야 서로 좀 더 신뢰할 만한 관계를 만들 수 있을까요?
홍성훈사실 대은 님과는 뭔가를 함께 도모한다기보다는 서로의 작업을 응원하는 사이입니다. 대은 님이 공연을 하면 가서 보고, 공연이 끝나고 나서 서로 안부를 주고받습니다. 꼭 무언가를 같이 하지 않아도, 서로를 응원해 주는 것만으로도 신뢰할 만한 관계를 만드는 데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양대은종종 흥미롭다고 생각한 분들과의 협업을 꿈꿉니다. 같이 작업하는 게 제일 재밌는 놀이이기도 하고요. 성훈 님이 썼던 에세이 형식의 연재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글로 뭔가 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뭉게뭉게 피어올라 난데없이 연락했어요. ‘이거다!’라고 할 만한 거리 없이 세월이 이렇게나 흘렀는데, 그사이에 예상치도 못한 작업을 여럿 했네요. 이참에 성훈 님이랑 하면 재밌을 거리를 생각해 봐야겠어요. (성훈 님께 묵혀둔 희곡 있는지 물어봤는데, 없다고 하네요. 그럼 다른 걸 또 생각해 보겠습니다.)
작업하면서 서로에게 배운 점이나 함께 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양대은올해 초에 강보름 님이 연출한 낭독공연 〈크립스〉를 마치고 관객과의 대화 시간이 있었어요. 창작진과 함께 논의했던 이야기들, 관객들과도 이어서 함께 나누고픈 흥미로운 질문이 많이 나왔어요. 〈크립스〉가 쓰인 1965년의 캐나다와 2025년의 한국에 꽤 큰 간극이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희곡 속에서 유일하게 예술을 하는(그림을 그리는) 인물인 톰에 관한 이야기에서 질문이 나왔는데, 성훈 님의 답변이 인상적이었어요.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오늘날 한국의 장애예술계와 장애인 창작자의 위치성과 고민을 다루는 방식에 속으로 감탄했었죠. 저렇게 섬세하고 논리정연하다니. 앞으로 성훈 님의 대답을 더 많이 목격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어요. 그리고 앞서 말한 것처럼, 성훈 님의 텍스트가 탐나요. 다만 언제 쓰일지 모르기 때문에 앞으로도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함께 작업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홍성훈대은 님을 보면서 항상 느끼는 것은, 자기 이야기와 감정을 찾으려고 부단한 노력을 한다는 거예요. 글방 글쓰기 모임에 참여해서 본인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기도 하고, 쓴 글을 가지고 작은 서점에서 낭독공연을 열기도 합니다. 그런 대은 님을 보면서, 저도 제 이야기를 열심히 찾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또,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대은 님과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고 싶습니다. 저는 재미있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 실제로는 재미없는 사람이어서, 유머가 있는 사람을 늘 부러워하는데요. 대은 님과 같은 무대에 선다면 어떤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지 기대됩니다.
영화 〈원더〉 촬영 현장의 모니터 화면으로 성훈과 대은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제공. 홍성훈
연극 〈관람모드: 보는 방식〉에 함께한 사람들
사진제공. 0set 프로젝트영화 〈원더〉 스틸컷
사진제공. 신재

양대은
종종 배우 종종 스태프로 살아가고 있다. 최근에는 〈노아의 나라〉, 〈초록빛 목소리〉, 〈엔들링스〉에서 연기했다.
daeeunnim@gmail.com
∙ 인스타그램 @danpppppu

홍성훈
장애인운동 활동가. 공연을 보고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하고 가끔 공연과 영화에 출연한다. 연극 〈관람모드: 만나는 방식〉 〈내가 말하기 시작할 때〉 〈일+일+일=삶〉, 낭독공연 〈크립스〉, 영화 〈원더〉 등에 참여했다.
sunghun8786@naver.com
사진 제공. 양대은, 홍성훈
2025년 10월 (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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