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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지선 바이올리니스트 현 위에는 노력을, 활에는 희망을 담으며

  • 송현민 음악평론가
  • 등록일 2026-01-21
  • 조회수 48

인터뷰

피아노 학원 옆방에서 새어 나온 한 줄의 소리. 다섯 살 김지선이 바이올린을 발견한 순간은 그렇게 시작됐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시립교향악단 무대에서 만난 또 다른 바이올린 소리를 듣고, 마음을 어루만지는 소리를 “나도 내고 싶다”라고 결심했다.
한빛맹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 미국 맨해튼 음악대학을 거쳐 귀국한 김지선은 독주와 실내악 무대를 꾸준히 이어가고,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10곡을 완주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자신만의 레퍼토리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동시에 한빛예술단 활동과 대학원 공부를 병행하며,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넘어 함께 연주하고 배우는 가능성을 현장에서 증명 중이다.

  • 김지선 바이올리니스트가 작은 탁자에 기대어 서서 양손으로 바이올린을 몸에 가까이 잡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탁자 위에는 연두색 이파리의 식물 토분이 놓여 있다.

    김지선 바이올리니스트

4개 현 위에 다짐과 인생을 얹으며

바이올린과 첫 만남은 어땠나요?

5살 때였어요. 동네 학원에서 피아노를 배웠는데, 옆방에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신기해서 선생님께 무슨 소리인지 물었더니 그게 바이올린 소리였어요. 피아노와 함께 틈틈이 배웠죠.

어떤 점이 매력적이었나요?

피아노는 건반을 대충 눌러도 소리가 나는데, 바이올린은 작은 손으로 현을 짚어야 해서 손가락이 아팠던 기억밖에 안 납니다. (웃음)

전공을 하기로 마음 먹었을 때는 언제인가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시립교향악단 공연을 보러 갔는데, 한수진 바이올리니스트가 차이콥스키 협주곡을 연주했어요. 바로 앞에서 그 소리를 들으며 ‘나도 저렇게 마음을 어루만지는 소리를 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를 계기로 바이올린을 본격적으로 공부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공을 하겠다 하니 주위의 반응은 어떠했나요?

아버지는 ‘용기’를 주셨고, 임가진 선생님(서울시향 제2 바이올린 수석)은 ‘현실’을 알려주셨어요. 선생님께서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내 인생을 결정했다”라며, “그때부터 하루에 5시간씩 연습했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무더운 여름날에도 부단히 연습했어요.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부지런한 연습 앞에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느꼈어요.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며

한국예술종합학교를 거쳐 미국 맨해튼 음대에서 배운 건 점자악보를 손끝으로 읽고, 암보로 머릿속에 구조를 세우며, 연주 홀의 울림과 동료의 숨으로 무대를 맞추는 방식 등의 테크닉만이 아니었다. 김지선의 유학 경험은 연주법의 확장뿐만 아니라 음악을 대하는 전반적인 태도의 변화를 만들었다.

맨해튼 음대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의 느낌과 뉴욕에서 겪은 ‘첫날의 풍경’을 회상한다면?

맨해튼 음대 합격 소식을 들었지만, 코로나19로 2021년 상반기는 온라인 수업을 듣고 그해 9월에야 뉴욕에 갈 수 있었어요. 여러 학교를 검토한 끝에, 장애 학생을 대하는 태도와 지원 시스템이 가장 인상적인 곳이 맨해튼 음대였습니다. 입학 시험장에서 심사위원들이 “So beautiful!”이라며 긴장을 풀어주던 분위기도 기억에 남아요. 막상 뉴욕에 도착했을 때는 설렘보다 두려움이 컸지만, 첫 만남에서 켈리 홀-톰킨스 교수님이 “건강하게 와줘서 고맙다”라고 말해 주셨고, 그 한마디에 이곳에서 잘 버틸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교육 환경을 비교할 때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이었나요?

한국에서는 지적받으며 단점을 고쳐 나가는 수업이 중심이어서, 사실 자존감이 낮아졌던 기억이 있어요. 물론 이를 통해 단점을 고쳐 나가기도 했지만 말이죠. 반면 맨해튼 음대에서는 교수님과 친구들이 장점과 단점을 항상 함께 이야기해 줍니다. “이 소리는 너무 아름다우니 더 살려보자” 같은 말과 함께 보완점을 덧붙이는 방식이었죠. 그런 한마디 한마디가 제게 큰 힘이 됐습니다.

학우들과 함께 한 오케스트라 수업은 어땠나요?

한국에서는 시각장애인이 오케스트라 활동에 참여하기 쉽지 않은 분위기여서, 저 역시 도전하기보다 스스로 물러서는 경우가 많았어요. 지휘자와의 눈 맞춤 문제나 특별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이유 때문이었죠. 반면 맨해튼 음대에서는 제가 주저하자 “같이 해야지”라며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었어요. 친구들은 숨소리로 합류 신호를 알려주거나, 암보를 진심으로 칭찬해 주는 등 각자의 방식으로 도와줬고요. 그 경험을 통해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함께 연주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고, 한국 음악계도 언젠가는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길 기대하게 됐습니다.

  • 김지선 바이올리니스트가 한 손에 활을 들어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다.

손끝으로 악보를 읽고, 손끝으로 소리를 빚어내며

공연을 준비할 때 악보와 음악을 어떻게 익히나요?

여러 방식이 섞여 있어요. 먼저 음원을 들으며 작품의 큰 흐름과 제가 자유롭게 표현할 지점을 가늠합니다. 그다음 점자악보로 악상기호를 살펴 손끝으로 기본 틀을 잡고, 이후 구조와 악상을 외웁니다. 연습할 때는 전체를 반복하기보다 핵심 테크닉이 들어간 부분에 집중하고요. 그렇게 음악 전체를 완성해 나가요.

무대 위에서 공연장의 크기, 관객석의 공기, 다른 연주자의 호흡을 듣거나 느끼는 본인만의 방식이 있을까요?

시력이 조금 남아 있어 조명이 강하면 눈부신 느낌은 받지만, 주로 소리로 이 모든 걸 느껴요. 특히 연주 홀의 울림이 중요한데요. 그만큼 울림이 좋은 공간에서는 저도 모르게 연주를 더 즐기게 됩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 시절에 김현미 교수님께서 “지선이는 소리가 잘 울리는 공간에 가면 더 즐기는 아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정말 그런 것 같아요. 관객의 규모와 분위기는 박수와 환호성으로 느껴요. 다른 연주자와의 호흡도 그들의 숨소리와 활의 움직임을 귀로 듣고, 반응하며 맞춰갑니다.

2024년 9월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시리즈인 〈To B〉를 처음 선보였고, 2025년 11월에 시리즈의 세 번째 무대를 올렸죠. 총 4회의 시리즈로 베토벤의 소나타 전곡을 완주할 예정인데, 왜 베토벤의 작품을 꼽았는지 궁금합니다.

많은 분이, 베토벤도 청력을 잃은 장애예술가였으니, 같은 장애가 있는 사람으로서 선택한 거냐고 물으세요. 그런데 그런 이유보다는 베토벤의 음악이 저의 성격과 많이 닮아 있는 것 같아요. 〈봄〉이라는 별칭으로 잘 알려진 〈바이올린 소나타 5번〉을 연주할 때는, 그 선율이 제 이야기를 대신해 주는 것 같고, 곡에 담긴 온기가 저를 많이 위로해 줬어요. 소나타 3번이나 4번에서는 저의 발랄한 면이 돋보이고, 소나타 8번 2악장을 통해 제 내면의 깊은 고민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그의 소나타 10곡을 쭉 들여다보면 한 사람의 삶 전체가 담겨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전곡을 완주하는 과정 자체가 나의 삶을 함께 돌아보는 여정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베토벤의 작품을 선택했습니다.

10년 뒤, ‘김지선의 대표 레퍼토리’나 떠오르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어떤 모습이길 바라나요?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을 마친 뒤에는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들을 다시 깊이 있게 다뤄보고 싶어요. 어릴 때 많이 연주한 곡이라, 지금의 제가 만나는 브람스의 음악이 어떻게 다를지 궁금하거든요. 10년 뒤에도 이처럼 음악과 작품을 통해 삶을 새롭게 계속 읽어가는 바이올리니스트로 기억되고 싶어요.

함께 만드는 소리로 다음을 준비하며

김지선은 혼자 빛나는 연주자이기보다, 함께 만드는 음악의 가능성을 믿는 바이올리니스트다. 한빛예술단에서 체득한 경험과 존중의 시스템, 글과 작곡으로 확장된 감각, 그리고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와 교육자로서의 꿈까지. 그의 음악은 무대 위에서 끝나지 않고, 다음을 향해 조용히 나아가고 있다.

한빛예술단 활동을 통해 장애예술단체의 시스템을 오래 경험해 오셨습니다. 한빛예술단 안에서 특히 ‘이것만큼은 다른 단체들이 배워가면 좋겠다’라고 느끼는 지점이 있을까요?

공식 입단은 유학 후였지만, 한빛예술단과의 인연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였어요. 현악 앙상블과 오케스트라를 경험했고, 중·고등학생 때는 악장도 맡았죠. 한빛예술단의 가장 큰 장점은 ‘음감과 창의성이 뛰어난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점이에요(웃음). 시각장애인이라고 해서 모두 음감이 뛰어난 건 아니지만, 한빛 단원들은 특히 상상력이 풍부해요. 음악동화 〈조금은 특별한 피노키오〉를 준비하며 대본에 없는 소리를 제안하는 등 아이디어가 끊이지 않았고, 그 덕분에 무대가 훨씬 살아났어요. 이러한 능력과 상상력을 존중하고 살려주는 시스템이야말로, 한빛예술단이 다른 단체들과 구별되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악 외 특별한 취미나, 김지선이라는 사람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줄 수 있는 일상이 있을까요?

삶의 대부분이 음악이지만, 글 쓰고 책 읽는 걸 좋아해요. 예전에는 판타지 소설을 써보기도 했고, 요즘은 에세이처럼 생각을 기록해 둡니다. 가끔은 곡도 쓰는데, 앙상블 곡 〈가을〉은 계절을 냄새와 소리로 느끼며 떠올린 외로움을 담은 작품이에요. 바순·바이올린·피아노 편성의 〈With You〉는 좋아했던 사람을 떠올리며 쓴 곡인데, 누군가 “제목이 딱 〈With You〉다”라고 말해줘서 그렇게 이름 붙였죠. 글과 음악 속에서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시간이 제겐 소중한 취미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우선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시리즈의 완주가 목표예요. 다음 무대에서는 베토벤의 ‘아름다움’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프로그램으로 관객과 만날 예정입니다. 현재는 교육대학원에서 음악교육을 공부하며 ‘좋은 가르침’이란 무엇인지 고민 중이에요. 자존감을 높여주는 음악, 가능성을 키워주는 교육. 또 언젠가는 프로 교향악단의 단원이 되어 무대에 서고 싶어요. 이러한 저의 모습을 통해 후배들에게는 자신감을 주고, 사회에는 장애인 인식 개선을 위한 좋은 사례가 될 거라 믿습니다.

  • 김지선 바이올리니스트가 검은 배경의 무대에서 붉은색 민소매 의상을 입고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다.

    김지선 바이올린 독주회 〈To B〉 연주 장면

  • 〈Carmen Fantasy, Op.25 카르멘 환타지〉
    바이올린 김지선, 피아노 이재혁
    영상 출처. ART HANBIT

김지선

김지선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와 음악원(예술사)을 졸업했고, 국내 시각장애 바이올리니스트로서는 최초로 미국 맨해튼 음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화경향음악콩쿠르, 선화음악콩쿠르, 일본 도쿄 헬렌켈러 음악콩쿠르, 벨라 뮤직 페스티벌 콩쿠르 등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했다. 미국 카네기홀, 케네디센터 등의 초청연주와 서울시립교향악단과의 협연 등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빛트리오 J와 한빛예술단 단원이고, 한빛맹학교 음악전공과에 출강 중이다.
lordlove630@gmail.com

송현민

송현민

음악평론가. 월간 [객석] 편집장.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공부했고, ‘한반도의 르네상스’를 주장했던 음악평론가 박용구론으로 제13회 객석예술평론상을 수상했다.
bstsong@naver.com

사진.이재범 라무팜스튜디오 실장 andy45a@naver.com

2026년 1월 (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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