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뷰
어떤 연출가는 그랬다. 무대 뒤에서 객석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작품의 성공 여부를 알 수 있다고. 장면에 몰입한 관객의 몸은 자연스럽게 무대 쪽으로 기울어지고, 그렇지 않을 땐 그 반대인 의자 등받이 쪽으로 푹 무너진다. 관객의 뒷모습은 말한다. “이거 재밌다!” (혹은 그 반대)
어린이 관객이 많았던 〈이상하고 아름다운 하얀 숲〉의 마지막 회차 공연. 낯선 공간에 적응하느라 잠시 소란스럽던 시간이 지나자, 관객들의 작은 몸이 약속이라도 한 듯 무대 위 하얀 숲을 향해 나란히 기울어졌다. 한 방향으로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작고 반짝이는 뒷모습들. 그 풍경이 보여준 예고를 믿을 수밖에.
공연 내내 마음속에 ‘예쁘다’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무대가 예뻤고, 조명이 예뻤고, 의상과 소품이 예뻤고, 음악이 예뻤다. 극을 감싸는 모든 요소가 조화로워 모든 파트에 섬세한 정성을 기울인 것이 보였다. 예쁘다는 표현이 그저 감탄으로 좁게 이해되지 않기를 바란다. 예쁘다는 건 시각적으로 보기 좋은 사물이 가진 속성이나 그 조화가 아니라, 작품이 그리는 장면과 관객인 나 사이에 일어난 감각적인 사건이자 결의 맞닿음이니까. 이 직관적인 감탄은 시청각적 완성도 때문만이 아니라, 극이 들려주는 이야기 본연의 깊이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창작꿈터 놀이공장 〈이상하고 아름다운 하얀 숲〉
완벽한 지도를 가진 아이를 찾던 여우 ‘미호’가 소녀 ‘연이’를 찾아온다. 연이의 지도는 눈이 아니라 손끝과 귀, 발바닥의 감각으로 완성한 지도다. 둘은 요술로 서로의 눈을 바꾸고 하얀 숲으로 떠난다. 세상을 처음 보게 된 연이는 도리어 혼란에 빠지고, 눈을 빌려준 미호는 연이의 방식으로 길 찾는 법을 배운다. 본다는 것과 안다는 것이 결코 같은 말이 아님을, 극은 설명 대신 체험으로 보여준다.
연이가 만든 완벽한 지도에는 정작 색이 하나도 칠해져 있지 않다. 그럼에도 그 지도가 완벽한 이유는 손끝과 발바닥으로, 몇 번이고 넘어지며 체득한 진짜 길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보기 좋게 정돈되어서가 아니라, 무언가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꼭 들어맞아 있다는 안도감. 그 들어맞음의 단단한 감각이 아름다움으로 연결된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하얀 숲〉은 ‘모두를 위한 뮤지컬’이라 소개하듯이, 장애와 비장애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관객이 한 공간에서 함께 호흡하도록 설계된 배리어프리 공연이다. 이 작품이 지닌 가장 탁월한 점은 ‘뜨개질 할머니’라는 인물을 서사의 중심에 필연적으로 배치했다는 데 있다. 할머니는 하얀 숲의 문을 지키고 미호의 꼬리를 매만지는 핵심 인물이자, 극 전체를 여는 목소리다. 동시에 무대 위 상황을 자상하게 들려주는 해설자 역할을 겸한다.
통상 무장애 공연에서 음성해설은 극 외부에 얹힌 폐쇄형 수신기 속 목소리로, 서사와 분리된 기능적 층위로 존재하기 쉽다. 그러나 이 작품은 해설자의 자리에 처음부터 서사에 필요한 인물을 앉힘으로써 접근성이라는 기능과 서사라는 본체를 하나로 엮어낸다. 할머니가 “이것은 화롯불 소리, 이것은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라 말할 때, 그것은 시각장애 관객을 위한 안내이자 동시에 극이 본래 건네려던 다정한 대사가 된다. 접근성을 나중에 덧붙이지 않고 이야기의 구조 안에 자연스럽게 심어둔 이 논리적인 결합이 이 작품을 ‘모두를 위한’ 무대에 가깝게 만든 이유일 것이다.
창작꿈터 놀이공장 〈이상하고 아름다운 하얀 숲〉
숲으로 향하는 길은 고난의 길이지만 또한 성장의 길이다. 그 길 위에서 아이들은 해골처럼 보이지만 향기로운 꽃을, 후각을 잃은 곰을, 눈도 코도 없지만 온몸으로 세상을 느끼는 거미를 만난다. 자신을 “쓸모없다”라며 자책하던 곰은 아이들의 도움으로 꿀단지를 찾은 뒤 “다음엔 혼자서도 찾을 자신이 생겼다”라고 말한다. 진정한 도움이란 대신 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해낼 힘을 되찾아주는 과정임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거울 연못에서 연이는 남들이 ‘파랗다’라고 말하기에 파랗다고 믿어왔던 색 대신, 자신이 실제로 느낀 색을 처음으로 솔직하게 꺼내놓는다. 연못의 색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앞에 선 사람이 무엇을 느꼈느냐에 따라 매번 다르게 채워진다. 여우 미호 역시 언니들이 정해준 ‘탐스러운 꼬리’의 기준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수용한다. 타인의 기준을 좇는 대신 스스로 느낀 바를 솔직하게 말하는 용기. 극은 ‘색’과 ‘꼬리’라는 서로 다른 상징으로 이 메시지를 다정하게 반복한다.
결말부의 정서 역시 깊고 섬세하다. 눈이 서서히 어두워지는 할머니가, 자신은 언젠가 ‘냄새’가 되어 숲에 남을 것이라 담담히 말하는 장면은 깊은 울림을 준다. 미호는 언니들에게 돌아가는 대신 숲에 남아 뜨개질을 배우기로 하고, 연이는 미호가 지켜보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 혼자 마당을 걸어 나간다. 서로의 삶을 살아주는 대신, 각자 몫의 걸음을 남겨두는 이 마지막 선택은 극 전체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와 닮았다. “그 색의 이름은 추억입니다”라는 마지막 내레이션은 관객 저마다의 가슴속에 서로 다른 빛깔로 내려앉는다.
라이브 연주와 뜨개질 할머니의 내레이션이 만들어내는 리듬, 넝쿨과 그물로 구현된 숲의 촉각적 물성, 무대의 정지와 변화가 이루는 균형까지. 〈이상하고 아름다운 하얀 숲〉은 저마다 다른 감각으로 세상을 통과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정성껏 풀어냈다. ‘아름답다’라는 말은 원래 ‘자기다움’을 뜻한다고 했다. 그 의미가 극을 감상하는 내내 마음속을 조용히 따라다녔다. 가장 직관적이고 정직한 감상이 마음 깊이 들어앉는다.
창작꿈터 놀이공장 〈이상하고 아름다운 하얀 숲〉

이상하고 아름다운 하얀 숲
창작꿈터 놀이공장|2026.7.24.~7.26.|모두예술극장
모두를 위한 뮤지컬. 눈이 아닌 온몸으로 느끼는 무대. 뜨개질 할머니가 무대 위 스토리텔러로 활약한다. 청각·촉각·리듬을 중심으로 한 감각 체험형 무대로, 소녀 연이와 여우 미호의 감각 교환을 통해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느끼는 낯섦과 아름다움을 어린이의 언어로 풀어낸다. 같은 공간, 같은 이야기, 모두를 위한 한 편의 공연으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별도 회차 없이 같은 공간에서 함께 관람한다. 서로 다르게 감각하지만 동일한 이야기와 감동을 나누는 유니버설 디자인 공연이다.
작·작사 구도윤, 작곡 민찬홍, 연출 홍성연, 출연 강나리 이다혜 박찬양 김정민 박현서
∙ 공연정보 : 이음온라인 [문화소식]

허영균
1도씨와 온도들을 운영하며(2014~현재), 박재용과 함께 리서치 밴드 NHRB의 프론트맨으로 활동 중이다. 퍼포먼스성을 기반으로 하는 여러 창작 활동을 모두 공연의 일부로 보고 극장, 공연, 출판을 중심으로 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을 한다. 삼일로창고극장 운영위원, 웹진 [예술경영] 편집위원, 문학도서관 소전서림 총괄 기획, 웹진 [온전], 예술경영지원센터의 [더아프로 THEAPRO] 편집장 등을 거쳤다. 공연이란 무엇보다 하는 사람에게 가장 좋은 삶의 도구라는 믿음으로, 인간술로서의 공연예술을 생각한다. 예술과 공연의 도구들을 쪼개어, 사람들에게 삶의 재료로 나누어 주려고 한다.
y0ung9yun@gmail.com
· 1도씨와 온도들 홈페이지
사진 제공.창작꿈터 놀이공장(촬영. 최기홍)
2026년 8월 (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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