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연극을 보러 극장에 갑니다. 생각해보면 아주 오래 전의 관객들은 지금처럼 연극을 보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거대한 그리스 극장의 맨 뒤에 앉아 있었다고 상상해봅시다. 배우의 표정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는 바람과 객석 사이에서 흩어집니다. 모든 말을 정확히 알아들을 수도 없었을 겁니다. 어쩌면 연극은 원래부터 완전히 도달하지 않는 매체였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일부만 듣고, 일부만 보고, 나머지는 각자의 자리에서 받아들이며 공연을 경험해왔는지도 모릅니다.
언제부터 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연극에서 듣기는 보기보다 한 박자 늦게 도착했습니다. 우리는 먼저 무대 위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고, 그 다음에야 그것이 무슨 말을 하는지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잘 들리게 하는 일’은 대개 기술의 문제였습니다. 배우가 발성에 더 신경을 쓰거나, 디자이너가 EQ를 만지거나, 더 좋은 마이크를 사용하는 식으로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듣기 자체에 대해서는 별로 묻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원래 보이지 않는 목소리에 익숙합니다. 라디오를 듣고, 팟캐스트를 듣고, 전화를 받고, 보이스 메시지를 듣습니다. 가끔은 얼굴보다 목소리를 먼저 믿기도 합니다. 사실 듣는다는 건 좀 이상한 일입니다. 안 보이는데도 “거기 누가 있구나” 하고 받아들여 버리는 일이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들리는 것이 진짜인지 잘 모릅니다. 사실 생각보다 대충 믿고 삽니다. 전화 너머의 말 없는 숨소리도 믿고, 벽 너머의 인기척도 믿고, 뒤에서 헛기침만 해도 신경 쓰이잖아요. 청취라는 게 그런 일 같아요. 진짜에 도달하는 일이 아니라, 도달하지 않는 것을 진짜로 받아들이는 일. 만들어진 것을 듣는 게 아니라, 듣는 일이 만드는 일.
오디오 연극 연작1 산책하기 좋은 날은 그 사이를 다시 다뤄보려는 작업입니다. 이 연작에서 발화자는 자주 보이지 않습니다. 소리는 도달하지만, 그것이 어디서 오는지 끝내 확인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라이브와 녹음은 섞이고, 가까움과 멀어짐은 계속 어긋납니다. 잘 들리게 만드는 기술보다, 완전히 도달하지 않는 상태에서도 왜 계속 듣게 되는지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정보를 정확하게 수신하는 일이 아니라, 불완전한 채로도 누군가 거기 있다고 받아들이고, 관계를 함께 만들어가는 작업이 될 것입니다.
<산책하기 좋은 날>
2026.05.28(목) - 30(토)
송파 글마루도서관 숲속극장 (서울 송파구 충민로 120 지하1층)
목금 19:30 금토 16:00
• 원작 오한기
• 구성연출 정인혁
• 드라마터그 김상훈
• 배우 김중엽, 전혜인
• 오퍼레이터 김보우
• 디자인 최정화
• 기획 박이분, 전강채
• 제작 음이온(ummeeeonn)
• 협동 서울왕립극단
• 주최·주관 전혜인
• 후원 송파구, 송파문화재단
2026 송파 문화예술 활성화 지원사업 선정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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