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시작. 그 비극 동네 어르신들이 우리 집에 올마다
나보고 순하고 잘생겼다고 한마디씩 하고 갔다고 했다. 하지만 순한 것이
진짜 순한게 아니었다. 추석이 지나고 돌을 지나도록 아프기
전에는 엎드려 뱀리도 하고 손으로 사물을 잡으려고 하던 아이가 돌이
지난 몇 달이 되어도 엎드리지도 못하고 무엇을 줘도 잡지를 못했다고
했다. 어머니는 걱정되어 할머니께 물었다. 애가 왜 이래요? 어머니
애가 늦יח될 수도 있지. 뭘 그리 호둘갑을 뜨어? 마 일이나 하거라고.
날이 갈수록 나는 식물 인간처럼 동작이 없었고 엎드리지도 못하고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고 어머니가 일으켜 앉혀 놓아도 금방 넘어졌고
나중에는 손이 조금씩 틀어지자 그제야 어머니는 아차 싶어 그 의원을
찾아갔지만 이미 한 달 전에 이사를 가고 없었다. 나의 몸은 장애가
나타나 말은 물론 손가락 하나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장애인이 되고
말았다.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어린 시절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모든 아이들은 다 나와 같이 그렇게 커가는 줄 알았다.
가족이나 친척들이 병신이라는 말을 해도 그 뜻이 나쁜 말이라는 것만
무식적으로 느꼈을뿐 얼마나 비극적인 인생이라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 보내고 있는 사이에 어머니는 그 의원을 찾기 위해 보다리
장사꾼이 올정마다 수소문하려고 물어보기도 하고 오는 장사치들마다
밥도 먹여 보내면서 찾아봐 달라고 했지만 허사였다.
결국 땅을 치고 후회하며 할머니에게 원망도 했지만 나의 몸을 고칠 수는
없었다고 했다. 가 네살 때 아버지를 따라 대구로 이사오는 날 차 안에서 아버지가
어머니를 보고 나를 버릴 수만 있다면 버리고 오고 싶다고 했단다.
[음악] 다락방의 비밀.
요즘 건축 양식은 다양하고 살아가는 형태도 다양하여 문화적인 차이도
천차만별이지만 50년 6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집들은 한옥이 아니면 반양옥이었고 어쩌다가 슬레이트 집, 초과집이
많았는데 다락방은 어느 집이든 하나씩은 다 있었다.
하락방하면 전통적으로 부엌 위에 작은 공간인데 안방 쪽에 문이나 있고
그곳에는 쓰지 않는 물건을 넣어두기도 하지만 귀하고 소중한 물건이나 간식을
넣어두었다가 손님이 오면 그곳에서 간단한 다상을 차려내기도 하는
곳이었다. 구수한 애정감이 내 마음속에서 속기도
하고 조모님이 들려주는 앤 이야기 같은 정치가 느껴지기도 하는 곳이다.
또 한편으로는 아픔과 슬픔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나에게 다락방이란
암흑이었고 절망이었고 고통 속에서 죽음을 넘나드는 몸설이 처지는
몸부림의 현장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시인이 될 자격
요소를 하나도 갖추지 못했고 내일의 희망은 꿈에서도 가질 수 없었다.
문학인이라면 적어도 어릴 적부터 자연을 무대로 삼아 또래의 동무들과
마음껏 뛰놀았던 추억이라든가 아니면 정규 교육을 받은 풍부한 지식이
있다든가 또는 여러 가지 체험을 통하여 쌓인 재능과 깊은 철학이
있어야 한편의 글을 쓰고 폭넓은 표력을 갖추게 될 텐데 내게는 그런
기회가 전혀 주어지지 않았다. 어떤이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라 하면 열 번도 더
돌아가고 싶어 하는데 나는 두 번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온종일
있어도 인생에 대하여 앞날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 한 마디 나눌 사람이
없고 식구는 많았지만 어머니 외에는 그 누구도 나의 앞날에 대하여 관심
가져 준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어쩌다가 웃기라도 하면 울어도
시원차는 놈이 웃음이 나와라고 면박을 주기도 했다. 나에게는 어릴적
추억이라야 가족 사진 속에서도 찾을 수 없고 언제나 빠지는 나였다.
내 기억으로는 아주 어렸을 적에 큰 누나등에 엎혀 농학 놀이하는 곳을
구경간 것과 형들이 없고 동네 평상에서 놀아주는 것이 최고의
선물이었다. 그런 거 말고는 1년 가도 대문박 출입 한번 못 하고 그저
방이나 마루에서 화단을 바라보며 자연과 화초를 보는 것이 전부였다.
어쩌다 날씨 좋은 날은 어머니가 마당에 있는 평상 위로 데려다 주면
거기에 앉아서 흙을 만져 보기도 하고 꽃 향기도 맡으며 자연을 접하는게
고작이었고 혼자 놀이로 방에서 땅따먹기라든가 구슬치기를 하면서 적도
되었다가 아군도 되기도 하며 놀았다. 발가락으로 종이를 접어 배도 만들고
비행기도 만들고 바지고리도 만들며 놀았던 기억과 형제들이 귀가하면 잠시
같이 놀아주는 빛발엔 추억이 기억의 전부이다.
집안에 경사스러운 일이 있거나 낯선 손님이 오는 날이면 나는 언제나
바락방 신세를 졌다. 그중에서도 유별스럽게
서울 큰 자영이 오면 다른 가족들이 모여서 깔깔되거나 웅성이면서 확인
넘치는 소리를 들으며 자영이 돌아가는 그 시간까지 어둡고 침침한 타락방에서
지내야 했다.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며 왜 나만
일해야 하는가? 언제까지 일해야 하는가? 끝이 안 보이는 절망 속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돌파구가 보이지 않았고 마침내는이 다락방에 한번
들어온 운명은 다시는 빛을 볼 수 없는 운명으로 결정되어 버린 것 같아
더욱 몸설이 쳐졌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다른 사람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고 있는 것이 아닌지 그렇다면 빨리 돌려받고 싶다라고 외쳤고 더
이상 장난치지 말고 진짜 내 인생을 돌려 달라고 허공에다 애원했다.
그러나 아무리 애원을 하며 울어도 그것은 허상일 뿐이었다.
그러다가 하루는 다락방에서 추위에 떨다가 잠이 들었고 꿈을 꾸게
되었다. 내가 날아다니는 꿈이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게 정말
신나게 날아다니며 평소에 보지 못했던 초자연을 보면서 너무나 행복해 하는
나의 모습을 보았다. 그때부터 나에게 다락방은 슬프고 아픔이 설린 공간이나
괴로운 현실 세계가 아닌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열어가는 곳이 되었다.
그것은 나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이었고 그분이 장차 나로 하여금
시인으로 만들기 위한 준비 단계였다. 진정 사람 앞에서 쓸모 없는 나였지만
그분께는 가장 소중한 사람으로 거듭나게 되었고 지금도 그분의 사랑을
듬뿍받고 있기에 행복하다. 차가운 겨울 들판에 불안폭이 나지
않을 것 같은 현실이지만 아무 가망이 없어 보여도 그분의
생명력이 있는 땅에는 멀지 않아 파란 희망의 세싹들이 돋는다는 것을 나는
지금도 굳게 믿는다.
[음악]
삶의 모습.
어느 계절에서 아픔을 알았습니다. [음악]
어느 인생을 살면서 애절한 고통도 배웠습니다.
[음악] 그리고 무엇을 잃어버린 삶을 살면서
[음악] 인생의 진실을 깨달으면서 살아갑니다.
여기 가련한 봄, 얼빠진 봄이 왔습니다.
[음악] 우리들은 비항아리를 아는 채 투명한
미소를 담고 얇은 몸짓으로
봄을 맞습니다. [음악] 불편한 몸이락
버림받은 하날의 미랄 또 하나의 모성을 찾아 일어섭니다.
이렇게 밤새워 지은 정막 속에도
따흘린 보람 오늘야 만져봅니다.
일어서다
어서다. 수도산 기도원회에는 다양한 환자와
다양한 연령층이 함께 어우러져 생활하고 있고 직업과 신분도 말단
공무원으로부터 회사 고위급 직원까지 다양했다. 학교 선생님들은 폐병이 많았고
심지어는 교회 목사님 전도사님도 계셔서 다양했다. 어떤 사람은 형 누나 같고 어떤 분은
아버지 어머니 같이 다정다감했다. 어느 날은 암환자로 들어오신 분이
며칠 동안 고통스러워하더니 원장님의 집중 안수 기도를 받고
새벽에 피를 토하면서 까만 덩어리 몇 개를 토하고 나서 속이 시원해졌다는
말을 들었다. 그분 말로 원장님이 한 번 더 기도해 주시고 암이 나왔다고
하면서 병원에 가서 확인해 보라 하셨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밤
사이에 숨을 거둔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이런 것들을 목격하면서
믿음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기도가 뭔지도 몰랐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그냥 내 마음의 소원을 간절히 주문 외우듯이 했다.
시간날 때는 폐결력이 걸려오셔서 수양하시는 목사님이랑 내가 살아온
얘기도 하고 목사님도 성경 얘기를 들려 주시면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알아갔다. 또 환자 보호자로 있는 사람들은 내가 보좌도
없이 그곳에 있으니까 보기에 딱했는지 많이 신경을 쓰고 챙겨 주셨다.
그중에 장난기가 있는 청년이 나만 보면 내 흉내를 내면서 약을 올리기에
하루로는 목사님에게 편지를 써서 보여 드렸더니 목사님이 내가 발가락으로
글을 쓴 편지를 보시고 너무 신기해 하면서 사람들에게 자랑하는 바람에
사람들에게 주목받았다. 원장님도 나를 위해 기도를 더 해
주시며 응원의 말을 덧붙이셨다. 흥렬, 청년은 꼭 낳을 거야. 기도
많이 해. 그렇게 달퍼쯤 지나자 어느 날 기도하고 있는데 느낌에 다리에 힘이
생긴다는 느낌이 들어 아무것도 잡지 않고 몇 번 일어서는 시도를 해
보았다. 넘어지기는 해도 용기가 생겨 다시 일어서니까이
3초서 있어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는 바람에 균형을 잃고 주저 앉아
버렸다. 나도 믿기지 않아. 다시 도전해 일어서니 좀보다 더 쉽게
일어서지는 것이 아닌가? 너무 기뻐서 어머니가 빨리 오기를 기다리며 이게 진짜인가 싶어 놀랍기도
하며 신비롭기도했다. 중도산 중턱의 기도원이 있어 저
멀리서도 사람들이 오가는 것이 다 보였다. 아침 저녁으로 어머니가 못
오시면 형수님이 밥을 갖다 주시곤 했는데 그날도 어머니는 2단짜리
찬압을 보자기에 쌓아오셨지만 밥은 뒷전이고 내가 일어서는 모습을 빨리
보여 주고 싶어 어머니를 보자마자 이야기했다. 엄마 내가 일어섰어요.
참마리가 아이고 마녀라 애미 보는 앞에서 한번 일어나 보거레이.
나는 그 자리에서 몇 번 일어서다가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서 5초 정도
섰다가 좋아서 웃다가 주저 앉아 버렸다. 아이고 우리 만여가서는 것이
꿈만 같대. 우리 마녀만 낳는다 하 뭔 짓을 못
하겠니? 목사님을 보고 어머니는 감격한 듯
말하셨다. 선상님 우리가서는 거 봐십니까?
어머니는 눈물을 훔치며 나보다 더 좋아하셨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 아가 섰다면서 정말 기뻐하시고 눈물까지 쏟으셨다. 원장님이
달려오셔서 말했다. 황녀아 이제 다 나왔다. 걱정하지 마라. 전능하신
하나님이신데 너를 구원하시고 고쳐 주려고 여기 보냈으니 믿고 기도하자.
목사님을 보시면서도 이야기했다. 내가 야를 위해 기도해 보니 믿음이
대단합디다. 나는 아직 믿음이 무엇인지 믿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잘 모르는 상황인데 황당했다. 어쨌든 그 일로
많은 사람에게 관심거리가 되었고 희망의 상징이 되었다. 마치 성경에
나오는 안전뱅이를 고쳐 주신 예수님의 모습이 제연되는 현장을 실감하는 듯
그곳 사람들이 기뻐했다. 나는 아직이 일이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정도로
혼자 일어선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고이 순간이 오기를 얼마나 악수고대하며 간절히 기다려 왔는가.
비록 짧은 몇 초이지만 이어서는이 순간이 온 천하를 다 얻은 것 같아
기쁘고 감사하여 어머니 품에 안겨 기쁨의 눈물을 쏟았다. 이제 겨우
일어섰을 뿐이지만 그 얼마나 바라던 일인가. 어머니와 내가 꿈에서도 보고
싶어 했던 그 순간이 23년의 세월이 걸려서야 첫 돌전으로 돌아가
일어섰다. 그날 온종일 계속 일어나는 연습을 하면서 마치 첫돌 아이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고 며칠이 지나자 걸음말을 한 발 두 발 떼기
시작했다. 그렇게 원했던 순간 애하게 기다렸던 일이 내게도 일어났다.
비 맞고 가시는 뒷모습
누구나 어머니에 대한 추억은 다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슬픈
추억이든 아름답고 좋은 추억이든지간에 그래서 어머니 하면 눈물부터 핑돈다.
언제든지 내 텅빈 가슴을 채워 주셨던 어머니였다. 어려서부터 나 하나 때문에 온갖
고생을 하셨던 어머니지만 나는 거기에 부흥하지 못하는 불효자였다.
몇 달 만에 한 번씩 오실 적마다 김치와 밑반찬 몇 가지와 미숫가루와
용돈도 몇 푼 주시고 가셨다. 하루는 장대 같은 비가 쏟아지는 날인데도
여러 가지를 챙겨 오셨는데 얼굴이 많이 안 좋아 보여 물었다.
그 몸으로 뭐 하려고 오셨어요? 너 주려고 해 놓은 음식이라 빨리
갖다 줘야 먹을 거 아가? 그 말에 나는 눈물이 빙돌았다.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서 방황하고 있고 어머니 가슴에 아픔만
주면서 언제 이 터널을 벗어나게 될지 기약이 없는 생활 속에서 어쩌면
어머니 때문에 운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한심해 운 것일지도 몰랐다.
하루라도 빨리 뭔가 하나를 이루고 싶은데 아무리 허우적거려도
성과도 없고 이것이다라고 할 만큼 내보여 드릴 것이 없다는 것이 나를
더 슬프게 했다. 건장한 사람 같으면 벌써 내 나이라면 뭘 해도
바삐 움직이며 하고 있을 텐데 나는 지금 뭐 하고 있는가?
엄마 마음에 무거운 짐만 안겨 드리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에 자신에게
화가 나 견딜 수가 없었다. 그날따라 어머니 몸도 편치 않아 보였고 낡은
우산을 쓰시고 운동장을 걸어가시는 뒷모습을 보며 하염없이 울었다.
울다가 어머니가 보이지 않아 나도 따라 운동장에 있는 아이들 놀이터의 철제
계단에 앉아 장맛비를 한참 맞으며 울었다. 방으로 돌아와 아이들에게
미숫가루를 타 주니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와 개눈 감추듯이 먹는 모습에
나도 저들처럼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지적 장애를 가졌으면 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기도 했다. 그렇게 얼마간 미숫가루를 요긴하게 아껴 먹으며
아이들에게도 나눠주고 받은 용돈으로 아이들과 쓰기도 하고 외부 활동을
하다가 보면 한 달도 못 가 바닥이 났다.
어머니께 바치는 시.
아, 어머니, 당신의 사랑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의 빛깔로는 볼 수 없고 여러 개의 빛깔로도 말할 수 없는 그
가슴속 고요함이 피어오릅니다.
내 마음 깊은 곳까지 절여옵니다.
어머니 당신은 애통한 자식을 두셔서
그리도 검은 머리가 곧이 성성합니까?
내 검은 머리가 야속할 만큼 초조한 모습.
애굳은 세월의 파도를 연약한 아낙의 몸으로
다 막으시고 일구월심
나를 위한 당신의 사랑이야.
참 좋은 인연. 때마침 1994년부터
생활영어 붐이 일어났다. MBC 방송국에서 제작한 생활영어
교재 녹음 테이프와 책자가 한 세트당 48만 원이었다. 사서 공부를 하고
싶어 문의했더니 판매하는 여성이 왔기에 나의 사정 얘기를 듣고 1년
할부를 해 주면서 48만 원짜리를 반값에 해 주었지만 들을 수 있는
녹음기가 없어 큰 마음 먹고 오디오 세트까지 사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영어 공부였다. 영어라곤 알파벳밖에 모르는 내가 책을 보며 들으며
단어를 외워 간다는 것이 신났다. 그리고 그때는 계좌 이체가 활성화되지
않아 매월 판매한 여성이 와서 2만 원을 받아가면서 올 때마다 먹을 것도
사 오고 새로 나온 것이 있으면 갖다 주면서 인연이 되어 나중에는 자기가
몰고 다니는 지프차로 내가 한 번씩 집에 갈 일이 있거나 다른 곳에 볼
일이 있을 때 자기가 가는 길이 같은 방향이면 꼭 태워다 주고 가는
고마운 사람이었다. 결국 1년 동안 24만 원의 할부가 끝이 나도 봉사자로
인연이 이어졌고 나중에 알고 보니 나보다 한 살이 적어 친구이자
의동생이 되어 지금까지 친동생보다 더 많이 도움을 주고 있는 이가 경희다.
워낙 정이 많고 사교성이 있다 보니 사람들에게 사기도 몇 번 당했다고
하소연할 때 나도 서너 번 친했던 사람에게 돈을 빌려 주자 그 길로
발길을 끊어 버리는 사람도 있었고 결혼을 빙자하여 돈이 필요하다 하여
뜯어 가고는 자취를 감춰 버리는 것을 몇 번 당했다더라. 그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그때 경희가 소개한 분이 신덕 엔지니어링 박종환 사장님인데
1996년 1월 어느 날 내게 오셔서 국제
와이즈맨 클럽에서 봉사금 30만 원을 전해 주셨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꾸준히 매년 협회로 후원해 주셨고 몇 년 뒤에는 의형제를 맺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후원 회장을 맡아서 참 많은 것을 도와주시고 계신다.
무심결에 고개 돌려 눈길 닿은 곳에
당신은 향기 없는 목련꽃처럼 우뚝 서서
또 하나의 만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침 햇살에 핀 아지랑이 같은 미소로 내 마음 가득 빛이 되신 당신
맡을 수 없는 향기여서 더욱 애타는 여백입니다.
그리움으로 만들어진 연못에 당신은 연꽃으로 피어 더 절실하게
합니다. 만남을 여운으로 남기기엔
이미 너무 짙은 고백이었습니다.
기다리다 굳은 이제야 눈 녹이듯
봄날 새트는 꿈을 꾸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일찍 오셨으면 이처럼 붉게 물든 진홍색 깊은 맛을
만들진 못했을 것입니다.
오래 기다려온 보람을 넉넉히 만들어 주신
당신을 사랑합니다.
청혼의 결정. 지금까지 내 앞에 놓인 장애물은
하나님의 힘과 지혜를 주셔서 잘 극복했지만
결혼은 또 다른 성격이고 혼자의 의지로도 이를 수 없는 것이다.
인간에게 가장 큰 고뇌이고 중요한 길이고 상대방과 일치가 되어야
이루어지는 것인데 바람의 무게도 정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길도
예비하셨다. 조끼를 선물한 사건으로 미랄 식구들도
부러워하며 좋아했다. 나는 그때 청혼하기 시작했는데 자기는 사귀는
사람이 있다며 거절했다. 하지만 한 번도 사귀는 사람에 관한
얘기를 한 적도 없고 생활 속에서도 느껴지지 않았다. 매일 밤 채팅하느라
전등은 켜 놓고 채팅을 했지만 모니터 화면이 환해 창문에 커튼을 치고 있어도
밖에서 불빛이 비친다고 국장님과 목사님이 눈총도 주고 꾸중도
들었지만 그 산골짜기에서 소통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채팅밖에 없었다.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기회가 생길 때마다 청혼을
하다 보니 그녀도 어느 정도 마음의 동요가 생기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1월 중순이 넘어가는 어느 아침에 전화가 걸려와서 자기가 오고 싶은데
가도 되겠냐고 했다. 얼마나 좋던지 오라고 했더니 조금 있다가 전화가 또
와서 기다리지 말라는 말에 좀 실망한 마음으로 아침을 먹고 일을
하다가 화장실 간 사이에 그녀는 나를 놀라게 하려고 사무실 문 뒤에
숨어 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책상으로 가다가 인기척이 나기에
돌아보니 그녀였다. 얼마나 반갑고 좋은지 서로 껴안고
기뻐했다. 못 온다기에 실망했는데 왔네.
놀라게 하려고 그랬죠.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하면서 이야기도
하고 자연을 구경하면서 그날 네 번째 마지막 청혼을 하며 마음속으로
결심했다. 이번에 거절하면 더 이상 청혼하지 않고 내 갈 길을 다시
찾아야지 했는데 그녀는 조건을 제시했다. 아이들이 있는데 애들이
반대하면 못 하고 찬성하면 하겠다고 하고는 자기가 가지고 온 차에 나를
태우고 팔공산으로 드라이브를 했다. 그녀는 피곤했는지 내게 기대 잠을
자기에 나도 살짝 졸다가 깨니 저녁때가 되어 저녁으로 닭백숙을 시켜 먹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합주 연습 시간인데 안 오냐고 해서 급하게
공동체에 내려 주고 그녀는 포항으로 가 버렸다. 이것은 내 힘이나 지혜
능력으로는 안 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구하는 수밖에 없어
며칠을 고민하며 기도하다가 기도원에 가고 싶어 인터넷으로 기도원 몇 곳을
찾아 연락을 했다. 주 중 한 곳에서 와도 된다는 답을
듣고 같이 가 주겠느냐고 했더니 가겠다 하여 때마침 구정 설날이라
아침에 우리 큰형 집으로 오라고 했더니 와서 인사를 시키니 온
가족들이 얼마나 반겨 주는지 참 고마웠다.
그리고 경주로 가기 전에 포항에 자기가 살고 있는 아파트 근처에
갔더니 고등학교 1학년 딸아이가 거리낌 없이 처음 보는 나에게 친구랑
세배를 해서 깜짝 놀랐고 세뱃돈을 주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경주에 있는 기도원으로 향했다. 2박 3일을 기도로 부르짖고 눈물로 호소해
보니 마음이 평화로웠다. 그러고 나서 얼마간 뒤에 100일
아침 금식 기도를 시작하겠다 하니 자기도 같이 하겠다고 했다. 장사를
하면서 금식 기도하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함께 하겠다고 하니 고맙기도
하고 무언가 확신이 들었다. 결국 아침 6시에 전화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도하는 중에 발렌타인데이가 되었다. 그날 택배가 왔는데 그녀가
보낸 것이었다. 뜯어 보니까 하얀 골판지로 만든 2단짜리 케이크 상자를
예쁘게 만들어 그 속에 온갖 초콜릿과 사탕을 두 상자에 가득 담아 보냈다.
너무 놀라 전화를 했더니 상자는 딸이 만들었고 초콜릿은 자기가 사
보냈단다. 미랄에서도 난리가 났다. 목사님도 아직 이런 것 한 번도 못
받았다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한동안 화제거리가 되었고 미랄의 온 식구와
간사들 목사님이 둘러앉아 나눠 먹는 즐거움을 가졌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포항에서 적응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고 그녀에게 말했더니
그러자고 모시러 오겠다 하여 그녀의 집으로 가게 되었다.
당신이 있어
당신이 있어 작은 꽃잎에 담긴 행복도
놓칠 수 없습니다. 산길을 걸으며
삶의 향기를 맡아봅니다. 산새 가락에 스며드는 내 노래가
당신 귀전에 울려 퍼져 더없이 좋은 미로입니다.
당신이 있어 온 산과 포근한 이 순간
계곡마다 숨겨진 신비로움이 진실한 사랑에 맞추어
하루의 깊은 감동을 이제야 느껴 봅니다.
당신이 있어 마음 가득 채워지는
지금 여기가 천국입니다.
문학의 향기는 모 대학의 자연생명학을 연구하는 교수가
수업 중에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여러분은 나비가 꽃을 선택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꽃이 나비를 선택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교수의 질문에 한 학생이 대답했다. 교수님, 나비가 꽃을 선택해서 꽃으로
간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자 교수는 말했다. 그냥 보면
나비가 꽃을 선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꽃이 향기를 발산해서 자신을 드러냈기
때문에 나비가 그 향을 찾아간 것이라네.
실제로 꽃은 두 가지 향기를 가지고 있다. 해로운 곤충과 이로운 곤충을
구분하는 향기를 발산한다. 꽃의 향기는 바람결에 흩어지지만 때로는 사람도
꽃이 되어 저마다 향기를 피운다. 그동안 살아온 대로 걸어온 대로
생겨난 내면의 향기다. 오늘 하루 거울 속 나와 여러분의 얼굴은 어떻게
비치는가? 그리고 우리의 내면의 꽃 안에는 어떤 향기가 담겨 있는지
그것을 질문하는 문학상 공모의 취지이고 의미다. 꽃잎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았다. 그 향기가 세상에 남아 우리의 기억 깊은 곳을 찌르고
있었다. 하이바이 마마의 짧은 한 문장 속에
깊은 의미와 함께 삶의 지침을 말하고 있다. 예전에는 강건해야 80이라
했지만 지금은 강건하면 100년도 넘게 살 수 있는 시대이다. 하지만
오래 산다고 다 좋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쁘다고 말한다면 문제가
있다. 조물주가 사람에게 특별하게 주신 것은 생각하는 사고력과 말하는
표현력과 새롭게 만들어 갈 수 있는 창의력을 갖도록 하신 것이다.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 몇 달도 못 살고 세상을 떠난 신생아일지라도
그 나름 부모의 가슴에 깊은 향기가 남아 있고 치열한 전쟁의 현장 속에도
삶의 향기는 더 짙게 묻어나오는 것은 생명의 소중함을 극대화해 주는 인간의
근본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확인시켜 주는 것이리라. 평범한 일상과 잔잔한
강물 흐르는 듯 누구나 비슷한 환경이지만 그 속에서 각자의 모양과
특성은 있는 법이다. 생명문학 교수님의 질문이 꽃이 나비를 부르는 것이냐
아니면 나비가 꽃을 찾아오는 것이냐 하는 말은 생존의 향기와 관련된
문제다. 문학도 우리의 삶의 향기를 불어넣는 작업이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의 얘기를 들어 보면 희노애락이 없는 어르신은 아무도 없다. 다들
한결같이 하는 공통적인 얘기가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쓴다면 책 몇
권을 쓸 것이라 한다. 그 말은 맞겠지만 정작 그 글 속에 얼마나
감동과 교훈과 깊은 향기가 있느냐가 문제다. 올해로 우리 협회에서
민들레 문학상 공모를 26년째 하고 있다. 해마다 100여 명이 넘는
분들의 작품을 받고 있지만 하나도 비슷한 작품이 없고 모양과 색깔
향기도 다 다르다. 그만큼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라 하여도
다양한 표현과 창의성이 있고 생명의 가치관이 다양하고 호소력이 다르다.
나비나 벌이 꽃을 찾는 것과 꽃이 향기를 내어 나비와 벌을 부르는 이유는
생존의 법칙도 따른다. 문학도 죽은 사람을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살아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훨씬 더 감동과 호소력이 크다. 생명의 존엄성과
살아 있기에 아름다운 향기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협회 회장직을
수행해 오면서 참 많은 어려움도 겪었고 장애인 문학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도 한 통의
편지가 큰 용기와 희망을 전하는 것은 편지 한 통 속에 사랑의 향기가
가득하기 때문이고 목마른 자에게 한 줄기 생수와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듯이 희망도 향기도 없고 표현도 없는 것이 무덤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병들어 가고 있는 것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약점이라 여긴다. 생활 문화는 점점 고도화되어 가고 사람이 발명한
컴퓨터 AI 인공지능이 인간의 능력을 장악해 가는 시대에 인간의
전인성이 약화되어 가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정서와 따뜻한 정 그리고 깊은 사고력과 상상력으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문학의 향기다. 올해도 문학상 공모를 하면서
큰 기대를 갖는 것은 이런 맥을 이어 가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기에
유한한 삶의 이야기를 무한하고 풍부하며 생기발랄한 향기로운 문학 작품이
많이 응모되기를 기대해 본다. 반도체 칩 하나에 대백과사전 몇 권이
입력된다면 우리 두뇌 세포 하나는 반도체보다 열 배 스무 배가 넘는 것이
입력되는 세포가 2억 개가 넘게 살아서 움직이고 있다. 우리 두뇌야말로
우주 공간과 맞먹을 정도로 크고 방대하다. 이 방대한 세포를 가지고 있어
무한하다고 할 수 있고 무한한 가능성을 창의적으로 발휘한다면 대자연보다
더 위대한 작품을 쓸 수 있는 것이 사람의 능력이다. 조물주는 우리 인간을
창조하시고 자유의사를 주셨을 때부터 너희는 이것만 가지고 사용하라는 것이
아니고 풍요롭게 써도 못 다 쓰게 하셨다. 우리의 내면을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도록 하여 당신의 고유 권한을 침범하지 못하게 하신 것이다. 한때는
문학상 상금을 조달할 길이 없어 막막했던 순간도 있었고 협회 운영조차 할
수 없어 정말로 협회를 접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이런 문학의
향기를 저버릴 수 없었다.
안녕하세요. 책 읽어 드리는 집사
책을 접으며
백종환입니다. 오늘 낭독해 드린 책은 우리 장애
문인으로는 이미 널리 알려진 발가락 시인 이흥열님의
인생 이야기 『안은뱅이 꽃 향기』였습니다.
이흥열 작가는 17살 때 독학으로 글을 배워서 왼쪽 발가락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1991년 첫 번째 시집 『안뱅이 꽃』을
출판했습니다. 두 번째 시집은 지난 2014년에
『하늘 찾기』를 출판하면서 기성 시인이자 수필가로 활동해
오고 계십니다. 특히 1993년부터
한국 민들레 장애인 문학 협회를 창단해 지금도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장애인 문학 활성화와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계신
작가님이라고 설명드릴 수 있겠습니다. 오늘 낭독
들으셨는데 어떠셨는지요? 오늘도 잘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오늘 낭독해 드린 책은 우리 장애문인으로는 이미 널리 알려진 발가락 시인 이흥렬님의 인생이야기 『앉은뱅이꽃 그 향기』였습니다. 이흥렬 작가는 17세 떼 독학으로 글을 배워 왼쪽 발가락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여 1991년 첫 번째 시집 『앉은뱅이 꽃』을 출판했었죠. 두 번째 시집은 지난 2014년에 『하늘 찾기』를 출판하면서 기성 시인으로 수필가로 활동을 해 오시고 계시고요. 특히, 1993년부터 한국민들레장애인문학협회를 창단해서 지금도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장애인 문학 활성화와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영향을 끼친 작가님이다라고 설명드릴 수 있겠습니다. 오늘 낭독 들으셨는데, 어떠셨는지요? 오늘도 잘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제목: 앉은뱅이꽃 그 향기
저자: 이흥렬
출판사: 생각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