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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이 기댈 곳이 되어

이음광장 버티길 참 잘했다

  • 신강수 연극배우
  • 등록일 2022-02-18
  • 조회수597
  • 파란색 정장을 입은 신강수 배우가 어두운 배경 앞에 조명을 받으며 서있다.

안녕하세요. 제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작년에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났는데 올해 2회에 걸쳐 여러분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번엔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민하다가 가장 바빴던 지난 2021년을 돌아보는 시간과 함께 장애 예술이 나아가는 데 개인적인 바람을 적어보려고 합니다. 그럼 여러분의 소중한 시간을 잠시만 내어주세요.

꿈꾸던 무대 위에서

2021년은 장애 예술이 연극계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시기였던 것 같다. 장애인 배우들이 외부 프로덕션에 캐스팅되어 공연하고 비장애인 극단에서도 배리어프리 공연을 다수 올렸다. 공연예술 분야 인력지원사업에선 장애인 배우나 배리어프리 작업을 하는 단체에 유리한 기회를 줬던 점도 보였다. 그로 인해 장애 예술이 관객을 만날 기회가 많아졌고, 관객도 장애에 대해서 알아가는 한 해였다. 나 또한 배우로서 예전보다 다양한 작품을 만났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6편의 작품 36회 공연을 하며 특별하지도 특이하지도 않은, 장애가 없는 평범한 배역을 소화했다는 점이다. 사실 지금까지 공연을 해오면서 이런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그동안의 있었던 일들을 다 담을 순 없지만 간략하게라도 지금까지 버텨온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처음 2004년에 예술대학교에 들어가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엄청 반대했다. 이미 다른 대학교를 3년간 다니고 졸업 1년을 앞둔 상황에서 그만둔다 하고 비장애인도 힘든 예술을 장애인이 한다니 주변에선 내 행동을 어이없어했다. 그렇게 반대를 무릅쓰고 들어간 대학 생활도 사실 순탄하지 않았다. 동기보다 나이도 많았고 학교 특성상 체벌문화가 있어서 일주일에 한 번씩 군기를 잡는다며 기합과 체벌을 받아야만 했다. 그래도 장애인이라고 열외시키며 차별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런 일은 없었다. 그래서 더욱더 악으로 버텼나 하는 생각도 한다.

정작 대학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건 학교 특성상 한 달에 두세 번씩은 지방 축제나 학교 축제에 공연을 올리는 시스템이었다. 그래서 동기들과 밤을 새며 소품을 만들고 공연 연습을 했다. 그렇게 열심히 연습해서 올라간 첫 공연에 들었던 말은 “어? 난장이다!” 라는 말이었다. 관객들은 나를 배역의 인물로 보지 않고 장애인으로만 봤다. 그래서 웃어야 할 부분에서도 웃질 않았다. 그 후로 무대에 서면 트라우마가 생겼다. 그런 나에게 교수님은 배우보다는 작가를 해보라고 권했다. 하지만 나는 무대에 오르고 싶었다. 함께할 수 없다면 1인극 스탠드업 코미디를 만들겠다는 마음을 먹고 공부했다. 그리고 당시 KBS의 <폭소클럽>이라는 프로그램의 코미디언 오디션에 지원했다. 당당히 3차까지 갔지만 마지막엔 떨어졌다. 떨어진 이유는 사연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코미디를 공부하는 학생이어서 뽑을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뭔가 검증을 받은 느낌이어서 좋았다. 그 뒤로도 계속 스탠드업 코미디를 만들었다. 요즘에 스탠드업 코미디를 할 수 있는 것은 학창시절에서부터 만들어놓은 소스들 덕분인 것 같다.

나를 다시 알아가게 된 시간

그렇게 학창시절을 보내고 졸업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난장이, 드워프, 먼치킨, 요정 등 키 작은 역할뿐이었다. 특히 사람 역할을 해보고 싶어서 오디션을 봤지만 계속 떨어졌다. 그 당시 지원서만 거의 80개 넘게 썼던 기억이 있다. 생계를 꾸려야하니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이벤트 회사에서 함께 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그곳에서 내가 했던 역할은 피에로 분장을 하고 풍선 불어주는 일이었다. 그래도 돈을 벌면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어서 좋아했지만 월급날이 지났는데도 단장은 월급을 주지 않았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어린 왕자로 주인공 시켜준다면서 공연했지만 역시 돈을 받지 못했다. 그렇게 못 받은 돈이 오백만 원은 되는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을 때 운명처럼 장애인 극단에서 조연출을 뽑는다는 공고문을 봤다. 사회적기업이어서 월급도 준다는 말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지원했지만 떨어졌다. 비장애인으로 뽑는다는 것이다. 연출은 배우를 제안했고 나는 그 극단 배우가 되었다.

처음엔 매우 낯설었다. 그때까지 장애인을 거울로만 만나봤지, 실제로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같이 땀 흘리고 연습하면서 낯섦이 사라졌다. 극단에서 정말 많은 경험을 했다.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을 만났고 그들과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공연을 만들 수 있을까 계속 고민하며 많이 배웠다. 극단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장애’라는 벽을 극복해야만 했고 나의 핸디캡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들과 함께하면서 장애는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거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의 장애를 다시 알아가게 되었다.

벽이 기댈 곳이 되어줄 때

극단과의 계약 기간이 만료되자 또다시 생계를 위해서 일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장애 인력을 뽑는 일반 사무직에 취업하고 기회가 생길 때면 공연 활동도 병행했다. 그러다가 공연 도중 몸을 심하게 다쳐서 배우 일을 한동안 못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몸을 혹사하면서 이 일을 계속하려고 할까 고민을 하며, 이제 하나씩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나만의 작품을 남기고 그만두자는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준비했던 몇 가지가 있다. 나중에 나와 같은 장애를 가진 배우가 나왔을 때 그가 할 수 있는 저신장 장애인이 주인공인 대본을 하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희곡을 쓰고 희곡집 『급이 다르다』를 출간하게 되었다. 배우를 그만두기 전에 1인극은 꼭 한번 해보고 싶었기에 <작은 어른의 고백>이라는 작품을 만들어서 공연을 했다. 마지막으로, 나의 장애에 대해서 짧은 유머 에세이를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132cm 사용설명서』를 독립출판으로 출간하고 북콘서트까지 했다.

내가 원한 것을 다 했으니 이제 고향으로 내려가야겠다 다짐했는데 『132cm 사용설명서』가 반응이 조금 좋았다. 그 책을 계기로 김기일 연출을 만나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같이 했고, 그 공연을 본 다른 연출들도 같이 공연 하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서고 싶었던 KBS 코미디 프로그램에 섭외되어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게 되었고 어머니가 ‘장한 어버이상’을 받기까지 했다. 그때 연극계에서는 배리어프리에 관심이 생기면서 장애인 배우들이 주목을 받았고,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에 장애인 배우가 후보로 지명되기도 했다.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라는 말이 지금 딱 어울린다.

그동안 버티길 참 잘했다. 비장애인들 속에서 공연을 만들 때 장애는 나의 벽이었고 그 벽을 넘어서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 하지만 그 벽에서 뒤돌아서니 장애는 나에게 기댈 곳이 되어주었다. 난 지금도 열심히 내 장애에 기대며 살아가고 있다. 오랫동안 버텨준 모든 장애 예술가들에게 감사 드린다. 이제 시작이니 계속 버티며 예술하면 좋겠다.

신강수

신강수 

예원예술대학교 코미디연기학과를 졸업하고 1인 극단 ‘예술난장 걍’을 만들어, 희곡집 『급이 다르다』 출간하고 1인극 <작은 어른의 고백> 공연했다. 에세이집 『132cm 사용설명서』 출간하며 1인 창작자로서 자신의 장애를 가지고 다양한 장르에서 예술로 난장을 펼치며 걍(그냥) 즐기며 살아가고 있는 저신장 장애인이다. 이외에도 직장내 장애인인식개선 강사로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어떻게 자신의 장애를 직업으로 잘 팔아서 즐겁고 재미있게 만들지 고민하며 예술 활동을 한다.
sks419@nate.com

사진 제공. 엘리펀트룸 (박태양 촬영)

신강수

신강수 

예원예술대학교 코미디연기학과를 졸업하고 1인 극단 ‘예술난장 걍’을 만들어, 희곡집 『급이 다르다』 출간하고 1인극 <작은 어른의 고백> 공연했다. 에세이집 『132cm 사용설명서』 출간하며 1인 창작자로서 자신의 장애를 가지고 다양한 장르에서 예술로 난장을 펼치며 걍(그냥) 즐기며 살아가고 있는 저신장 장애인이다. 이외에도 직장내 장애인인식개선 강사로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어떻게 자신의 장애를 직업으로 잘 팔아서 즐겁고 재미있게 만들지 고민하며 예술 활동을 한다.
sks419@nate.com

상세내용

  • 파란색 정장을 입은 신강수 배우가 어두운 배경 앞에 조명을 받으며 서있다.

안녕하세요. 제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작년에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났는데 올해 2회에 걸쳐 여러분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번엔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민하다가 가장 바빴던 지난 2021년을 돌아보는 시간과 함께 장애 예술이 나아가는 데 개인적인 바람을 적어보려고 합니다. 그럼 여러분의 소중한 시간을 잠시만 내어주세요.

꿈꾸던 무대 위에서

2021년은 장애 예술이 연극계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시기였던 것 같다. 장애인 배우들이 외부 프로덕션에 캐스팅되어 공연하고 비장애인 극단에서도 배리어프리 공연을 다수 올렸다. 공연예술 분야 인력지원사업에선 장애인 배우나 배리어프리 작업을 하는 단체에 유리한 기회를 줬던 점도 보였다. 그로 인해 장애 예술이 관객을 만날 기회가 많아졌고, 관객도 장애에 대해서 알아가는 한 해였다. 나 또한 배우로서 예전보다 다양한 작품을 만났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6편의 작품 36회 공연을 하며 특별하지도 특이하지도 않은, 장애가 없는 평범한 배역을 소화했다는 점이다. 사실 지금까지 공연을 해오면서 이런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그동안의 있었던 일들을 다 담을 순 없지만 간략하게라도 지금까지 버텨온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처음 2004년에 예술대학교에 들어가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엄청 반대했다. 이미 다른 대학교를 3년간 다니고 졸업 1년을 앞둔 상황에서 그만둔다 하고 비장애인도 힘든 예술을 장애인이 한다니 주변에선 내 행동을 어이없어했다. 그렇게 반대를 무릅쓰고 들어간 대학 생활도 사실 순탄하지 않았다. 동기보다 나이도 많았고 학교 특성상 체벌문화가 있어서 일주일에 한 번씩 군기를 잡는다며 기합과 체벌을 받아야만 했다. 그래도 장애인이라고 열외시키며 차별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런 일은 없었다. 그래서 더욱더 악으로 버텼나 하는 생각도 한다.

정작 대학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건 학교 특성상 한 달에 두세 번씩은 지방 축제나 학교 축제에 공연을 올리는 시스템이었다. 그래서 동기들과 밤을 새며 소품을 만들고 공연 연습을 했다. 그렇게 열심히 연습해서 올라간 첫 공연에 들었던 말은 “어? 난장이다!” 라는 말이었다. 관객들은 나를 배역의 인물로 보지 않고 장애인으로만 봤다. 그래서 웃어야 할 부분에서도 웃질 않았다. 그 후로 무대에 서면 트라우마가 생겼다. 그런 나에게 교수님은 배우보다는 작가를 해보라고 권했다. 하지만 나는 무대에 오르고 싶었다. 함께할 수 없다면 1인극 스탠드업 코미디를 만들겠다는 마음을 먹고 공부했다. 그리고 당시 KBS의 <폭소클럽>이라는 프로그램의 코미디언 오디션에 지원했다. 당당히 3차까지 갔지만 마지막엔 떨어졌다. 떨어진 이유는 사연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코미디를 공부하는 학생이어서 뽑을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뭔가 검증을 받은 느낌이어서 좋았다. 그 뒤로도 계속 스탠드업 코미디를 만들었다. 요즘에 스탠드업 코미디를 할 수 있는 것은 학창시절에서부터 만들어놓은 소스들 덕분인 것 같다.

나를 다시 알아가게 된 시간

그렇게 학창시절을 보내고 졸업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난장이, 드워프, 먼치킨, 요정 등 키 작은 역할뿐이었다. 특히 사람 역할을 해보고 싶어서 오디션을 봤지만 계속 떨어졌다. 그 당시 지원서만 거의 80개 넘게 썼던 기억이 있다. 생계를 꾸려야하니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이벤트 회사에서 함께 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그곳에서 내가 했던 역할은 피에로 분장을 하고 풍선 불어주는 일이었다. 그래도 돈을 벌면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어서 좋아했지만 월급날이 지났는데도 단장은 월급을 주지 않았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어린 왕자로 주인공 시켜준다면서 공연했지만 역시 돈을 받지 못했다. 그렇게 못 받은 돈이 오백만 원은 되는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을 때 운명처럼 장애인 극단에서 조연출을 뽑는다는 공고문을 봤다. 사회적기업이어서 월급도 준다는 말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지원했지만 떨어졌다. 비장애인으로 뽑는다는 것이다. 연출은 배우를 제안했고 나는 그 극단 배우가 되었다.

처음엔 매우 낯설었다. 그때까지 장애인을 거울로만 만나봤지, 실제로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같이 땀 흘리고 연습하면서 낯섦이 사라졌다. 극단에서 정말 많은 경험을 했다.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을 만났고 그들과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공연을 만들 수 있을까 계속 고민하며 많이 배웠다. 극단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장애’라는 벽을 극복해야만 했고 나의 핸디캡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들과 함께하면서 장애는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거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의 장애를 다시 알아가게 되었다.

벽이 기댈 곳이 되어줄 때

극단과의 계약 기간이 만료되자 또다시 생계를 위해서 일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장애 인력을 뽑는 일반 사무직에 취업하고 기회가 생길 때면 공연 활동도 병행했다. 그러다가 공연 도중 몸을 심하게 다쳐서 배우 일을 한동안 못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몸을 혹사하면서 이 일을 계속하려고 할까 고민을 하며, 이제 하나씩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나만의 작품을 남기고 그만두자는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준비했던 몇 가지가 있다. 나중에 나와 같은 장애를 가진 배우가 나왔을 때 그가 할 수 있는 저신장 장애인이 주인공인 대본을 하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희곡을 쓰고 희곡집 『급이 다르다』를 출간하게 되었다. 배우를 그만두기 전에 1인극은 꼭 한번 해보고 싶었기에 <작은 어른의 고백>이라는 작품을 만들어서 공연을 했다. 마지막으로, 나의 장애에 대해서 짧은 유머 에세이를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132cm 사용설명서』를 독립출판으로 출간하고 북콘서트까지 했다.

내가 원한 것을 다 했으니 이제 고향으로 내려가야겠다 다짐했는데 『132cm 사용설명서』가 반응이 조금 좋았다. 그 책을 계기로 김기일 연출을 만나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같이 했고, 그 공연을 본 다른 연출들도 같이 공연 하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서고 싶었던 KBS 코미디 프로그램에 섭외되어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게 되었고 어머니가 ‘장한 어버이상’을 받기까지 했다. 그때 연극계에서는 배리어프리에 관심이 생기면서 장애인 배우들이 주목을 받았고,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에 장애인 배우가 후보로 지명되기도 했다.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라는 말이 지금 딱 어울린다.

그동안 버티길 참 잘했다. 비장애인들 속에서 공연을 만들 때 장애는 나의 벽이었고 그 벽을 넘어서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 하지만 그 벽에서 뒤돌아서니 장애는 나에게 기댈 곳이 되어주었다. 난 지금도 열심히 내 장애에 기대며 살아가고 있다. 오랫동안 버텨준 모든 장애 예술가들에게 감사 드린다. 이제 시작이니 계속 버티며 예술하면 좋겠다.

신강수

신강수 

예원예술대학교 코미디연기학과를 졸업하고 1인 극단 ‘예술난장 걍’을 만들어, 희곡집 『급이 다르다』 출간하고 1인극 <작은 어른의 고백> 공연했다. 에세이집 『132cm 사용설명서』 출간하며 1인 창작자로서 자신의 장애를 가지고 다양한 장르에서 예술로 난장을 펼치며 걍(그냥) 즐기며 살아가고 있는 저신장 장애인이다. 이외에도 직장내 장애인인식개선 강사로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어떻게 자신의 장애를 직업으로 잘 팔아서 즐겁고 재미있게 만들지 고민하며 예술 활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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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엘리펀트룸 (박태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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