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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관계의 기술: 기꺼이 기어이 기대어》 사전 워크숍 〈둥지의 풍경〉 짓고 잇고 만나고 설레는

  • 김정태 시각장애인 현장영상해설사·도슨트
  • 등록일 2026-04-22
  • 조회수 24

리뷰

나에게 모두미술공간은 자주 만나지 못해도 늘 안부가 궁금한 친구 같은 곳이다. 신청해 둔 사전 워크숍이 있던 날, 오랜만에 서로 일정이 맞은 친구를 만나러 가듯 언덕을 오르는 발걸음이 신났다. 모두미술공간에 가려면 광역버스로 고속도로를 달리고 한강을 건너 노선의 끝자락인 회차 지점에 내려서도 10분은 더 걸어야 한다. 2시간은 여유를 두고 집을 나서야 마음이 바쁘지 않지만, 그래도 한 번에 갈 수 있는 버스가 있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할 만큼 마음의 거리는 가깝다. 서울역 맞은편 거대한 서울스퀘어 건물의 주차장이 자리한 별관 작은 엘리베이터를 오르며, 처음 방문했을 때 입구를 헤맸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난해 《예담화경》 전시에 도슨트로 참여했고,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접근성매니저 양성과정’ 교육도 이곳 모두미술공간에서 수료했다

낯설게 마주하기

‘워크숍이니 오늘도 세미나실로 가면 되려나?’ 익숙한 걸음으로 복도를 지나는데, 눈에 들어온 전시장 풍경이 무척 낯설었다. 전시 중이거나 전시 준비를 위해 설치하는 모습은 봤지만, 1, 2 전시실이 가벽 하나 없이 훤히 뚫린 모습은 처음이었다. 광활하게까지 느껴지는 공간 안쪽에 몇몇 사람이 듬성듬성 자리해 무언가 하고 있다. 분명 여유 있게 도착했는데 늦은 건가? 누군가 아는 척해주기를 바라며 서성이니, 워크숍에 왔냐고 물으며 다가온 분이 작은 상자들이 있는 곳으로 이끌었다. 상자를 고르고 시작하면 된다는 짧은 속삭임도 이미 집중하고 있는 다른 참가자들에게 방해가 될 것 같은 분위기다. 일단 얼른 대답은 했지만, 예상하지 못한 전개다. 으레 신청자 명단을 확인하고 정시가 되면 인사와 안내가 있을 거로 생각하며 별다른 마음의 준비 없이 온 나는 살짝 당황스러웠다. 일정이 가능한 것 자체가 반가워 ‘모두 is 뭔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신청했으니 뭘 해도 좋다는 생각이었지만, 워크숍 공지글에서 이 ‘상자’들이 분명 흥미를 끌긴 했다.

〈둥지의 풍경〉

  • 서로 다른 상자 중 마음에 드는 나만의 상자를 하나 골라봅시다.
  • 상자 속에는 실, 종이, 알맹이와 밀랍 덩어리, 특정 장면을 연상시키는 문구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다른 참여자들과 재료를 교환하거나 연결하며 이동, 대화, 소리내기 등을 할 수 있습니다. 또는 현장에 비치된 재료를 활용해 기존 구조에 기대거나 일부를 더할 수 있습니다.
  • 만들어진 연결 속에서 서로의 위치와 관계를 느끼고 경험해 봅니다.

‘이렇게 작은 상자들이었구나’ 엉성한 만듦새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상자 안에 든 게 무엇이든 그 재료로 ‘나만의 터’를 만들어야 한다니 신중해야 한다. 하지만 마음과 다르게 눈길을 잡아챈 분홍색 상자에 자석처럼 손이 닿았다. 나의 인생 초반부, 분홍이 유치하고 빨강이 촌스럽던 세월이 꽤나 길었던 터라 아직은 소심한 ‘내적 핑크 선호인’이지만, 그 순간 인정해 버렸다. ‘나 핑크 진짜 좋아하네….’

중요한 건 내용물이다. 살짝 설레며 상자를 열었는데, ‘망한 건가….’ 바람 빠진 공 모양의 털 뭉치 두 개다. ‘이걸로 뭘 만들라는 거지’ 하는 난감함에 조몰락거렸는데, 어라! 이 녀석 구르지도 않게 생긴 공이 아니라 털실 뭉치였다. 그러니 두 개가 아니라 족히 수십 미터는 될 풍족한 재료다! ‘핑크야, 고마워!’ 그 다음으로 부재료들을 모아놓은 곳으로 이동해서 이리저리 눈을 굴렸다. 필기구나 채색 도구들과는 딱히 접점이 없다. 그러다 건져 올린 마스킹테이프. ‘이거다!’ 싶었다.

느슨하고 촘촘하게

이제 나만의 터를 잡아야 한다. 넓은 전시장 삼면의 멀리 떨어진 구석 자리엔 이미 누군가 터를 잡고 있다. 뭘 하는지 알 수 없을 만큼 프라이버시를 보장하는 자리지만 아쉬운 마음이 들진 않았다. 큰 고민 없이 선택한 나만의 터는 전시장 출입구가 있는 벽 아래다. 오른쪽에는 출입문, 왼쪽에는 부재료들이 있는, 각종 편의시설로의 접근이 쉬운 최적의 입지에 채광까지 완벽하다. 흡족한 마음으로 벽에 기대앉아 가장 먼저 한 일은 베개 만들기였다. 부재료가 아닌 게 분명한 방석을 어디선가 구해다 돌돌 말고 마스킹테이프로 양쪽을 고정했다. 그러는 동안 마음속에서 나에 관한 질문이 시작됐다.

‘나만의 터를 누구나 지나다니는 길목에 잡았네? 내가 꽤 개방적이 된 건가? 아니면 현실적이 된 건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제일 먼저 베개부터 만들다니, 허리디스크 이후 이제 내 몸을 돌보는 게 생활화되었나? 아주 바람직한데!’

나를 위한 베개와 누군가를 위한 방석을 나란히 둔 나만의 터 위에, 나의 둥지를 짓기 위해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였다. 사실 마스킹테이프를 손에 넣는 순간부터 구상한 바가 있었다. 벽으로 자리 잡은 것도 지형지물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삼각 형태의 반쪽 피라미드 같은 그물 집이다. 먼저 벽과 바닥이 만나는 곳에 마스킹테이프로 실 끝을 고정한 후, 층고를 생각하며 실을 당겨 중심이 될 곳을 벽에 고정했다. 다시 바닥을 향해 내려온 실로 간격을 넓힐 땐 바닥 타일을 기준 삼겠다는 것도 재빠르게 세운 나의 계획 안에 포함돼 있었다. 벽의 꼭짓점과 바닥 사이를 빠른 손놀림으로 왕복하며 공간을 넓혀가는 동안, 머릿속에서 내 또래라면 누구에게나 각인되어 있을 〈맥가이버〉의 주제곡이 들렸던 걸 보면, 아마도 이 아이디어의 효율성에 꽤 취해있었나 보다. 그리고 그 시간에도 나를 향한 질문이 멈추지 않았다.

‘그래, 그래도 역시 조금은 가려야 했던 거지?’
‘실이 넉넉했다면 간격을 더 촘촘하게 했으려나?’
‘나는 나만의 시간과 공간이 중요하고 소통도 중요한 사람인가?’

둥지는 신기할 정도로 아늑했다. 서울 한복판 금싸라기 땅에 자가라도 마련한 듯 애착이 갔다. 전시장 바닥인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만들어 둔 베개를 베고 누웠을 즈음, 누군가 다가와 내 집 기둥(?) 하나에 꼼지락거리며 (감히) 실을 묶는다. “뭐하시는….” 의아해 물으니, 세상 무해한 얼굴로 웃으며 대답했다. “연결하고 싶어서요. 그래도 되죠?” “아! 그럼요!” 나는 멋쩍게 웃어 보였다. 다가올 《관계의 기술》 전시의 사전 워크숍인 것도 잊고, 신나게 ‘내 집 마련’에만 몰두했구나 싶었다. 나도 ‘연결’이란 걸 해야 하는 건가 싶어 눈치를 살피는데, 마침 모두 함께 자연물을 수집하러 밖으로 나간다고 한다.

함께 걷고 연결하며

모두미술공간에서 창으로 내다보이는 서울스퀘어 뒤쪽에는 오래된 교회와 작은 뜰이 있다. 반대편 도로의 거대한 도심과는 비현실적으로 대조되는, 시간이 멈춘 듯한 자연 공간이다. 이곳으로 연결된 출입문을 이용하려면 사원증이 있어야만 한다. 정기적으로 이곳을 방문할 때도 부럽게 바라보기만 했던 곳이다. 일행을 따라 특권을 누리듯 처음으로 뜰에 내려섰다. 일렬로 늘어선 참가자 중엔 마이크를 들고 소리를 모으는 이도 있었다. 이 워크숍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고 참가한 사람은 나뿐인 건가 싶었다. 교회 방문객 중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내던 중년 남성이 “퍼포먼스 중인가요?” 하고 물으셨다. 누군가는 이 순간이 오늘 중 가장 인상 깊다며, 마이크에 속삭이듯 되풀이해 녹음하기도 했다. “퍼포…퍼포…퍼포먼스…스스스” ‘소리가 중요한 거였나?’ 나는 이 워크숍의 정체에 대해 여전히 갸우뚱 추리하면서도, 눈으로는 일단 나의 둥지에 어울릴 만한 자연물을 열심히 수색했다. 그러다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정확한 하트 모양의 돌멩이를 발견해 전시장으로 의기양양 돌아왔다. 둥지 입구를 하트 돌로 장식하며 생각했다. ‘득템! 하트에 핑크에. 아주 봉인 해제하는 날이네’ 작가가 건넨 메모지에 ‘단단한 사랑’이라는 촌스러운 이름을 적어 돌멩이에 붙여줬다.

어느덧 워크숍의 기류가 사뭇 달라졌다. 적막 대신 여러 소리가 움직인다. 참가자들은 손에 든 도구로 계속 소리를 만들며 거닐기도 하고, 입으로 소리를 내기도 했다. 집들이 다니듯 이웃의 터를 방문하는 걸 보며, 누구라도 함께 올 걸 그랬나 싶기도 했다. 나도 무언가 소리를 보태야 할 것 같아 전시장에 가운데 매달려 있는 종을 소심하게 흔들어 보다 다시 나만의 터로 찾아들었다. 신기하게도 금세 마음이 편했다. ‘역시 집이 최고인가’ 생각하며 워크숍 마무리에서 나눌 만한 생각들을 정리했다.,

오랜만에 몸을 움직여 집중한 시간 내내, 나와의 대화가 멈추지 않았기에 둥지를 통해 새삼 깨닫게 된 나에 대해 할 말이 꽤 많았다. 다른 참가자들과의 교류도 나눔 자리를 믿고 미뤘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하나둘 자리를 떠난다. 끝났으니 가면 된단다. 마무리 역시 예상을 빗나가고 만다. ‘왜 섭섭하지? 나 말하는 거 좋아하나?’

짧았던 서울 자가 소유의 미련에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을 때, 작가로부터 믿기지 않는 놀라운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이 결과물들이 본 전시에 재설치된다는 것이다! ‘작가님, 진작 알려줬다면 기울어진 비대칭을 참고 넘기지 않았을 텐데요. 완벽주의에서 벗어났다며 나 자신을 칭찬하지도 않았을 텐데요’ 이미 늦었고, 이것 역시 나다. 뻔하지 않았던 워크숍처럼, 전시에서는 또 어떤 예상치 못한 전개가 기다리고 있을까? 나를 닮은 둥지는 무엇과 관계 맺으며 어떤 이야기를 담게 될까? 나에 대해 먼저 아는 것이 기꺼이 기어이 기댈 수 있는 관계의 첫걸음이라는 것을 느끼며, 곧 개막될 전시를 설레며 기대하고 있다.

  • 미술관 전시실의 회색 바닥과 하얀 벽을 배경으로 불규칙한 모양의 돌덩이와 마른 나뭇가지가 놓여 있다. 그 뒤로 얇은 털실이 부채꼴 모양으로 벽과 바닥을 연결하며 촘촘하게 뻗어 있다.

    〈둥지의 풍경〉 워크숍 전경 (사진. 김정태)

  • 어두운 실내에서 두 여성이 마이크를 사이에 두고 등을 진 채 앉아 있다. 왼쪽 여성은 녹색 사각형 물건을 양손으로 들고 있으며, 오른쪽 여성은 회색 직사각형 물건을 오른손에 쥐고 마이크를 향해 있다. 배경에는 앉아 있는 또 다른 사람의 실루엣이 흐릿하게 보인다.

    〈둥지의 풍경〉 워크숍 전경

  • 어두운 회색 바닥에 아이보리색 패딩을 입은 여성이 무릎을 꿇고 앉아, 푸른색 그림이 그려진 작은 상자를 양손으로 잡고 있다. 바닥에는 다양한 크기와 색상의 상자, 주황색 양초, 작은 화분, 털실 뭉치 등 여러 물건이 놓여 있다.

    〈둥지의 풍경〉 워크숍 전경

둥지의 풍경

둥지의 풍경

모두미술공간|2026.3.5., 3.28.|모두미술공간

2026 모두공감기획전 《관계의 기술: 기꺼이 기어이 기대어》(2026.4.16.~5.23.) 연계 사전 워크숍 〈둥지의 풍경〉은 마음과 언어, 서로 다른 몸과 경험이 만나 변화하는 관계의 장면을 탐구하는 관객 참여형 프로그램이다. 상자 속의 고유한 재료를 통해 나만의 터를 만들고, 보이지 않는 길을 내어 서로의 영역을 잇다 보면 어느덧 우리만의 풍경이 만들어진다. 느슨하지만 촘촘하게 흐르는 여정 속에서 서로에게 기꺼이 기대어 보는 특별한 감각을 경험해 본다. 참여 작가: 김보라, 송하정, 오다솜

· 사전 워크숍 : 이음온라인 [문화소식]

김정태

김정태

도슨트, 시각장애인을 위한 현장영상해설사. 시각장애인의 볼 권리를 위한 모든 곳에서 현장영상해설(Live Visual Description)을 제공하고, 공공재로서의 미술을 위해 매개자로 소통한다. 한국시각장애인현장영상해설협회와 서울시립미술관, 백남준아트센터, 성남큐브미술관 등 공립미술관에서 활동 중이다.
· 인스타그램 @docent_tae

사진 제공.필자, 모두미술공간

2026년 4월 (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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