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서히 흐려지는 시력을 붙잡으며, ‘보는 것’과 ‘그리는 것’에 천착해 온 문귀화 작가. 미술 도구들을 모두 정리하려 했던 절망의 순간도 있었지만, 손끝의 감각으로 다시 일어서 ‘마음의 길’을 찾는다. 자신의 망막과 시신경 사진에서 발견한 찬란한 나무의 형상을 그리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록하는 문귀화 작가의 예술 세계와 그 단단한 고백을 만나본다.
미술채움공감에서 작가의 작품을 배경으로 앉아 있는 문귀화 작가
오늘 이곳 미술채움공감으로 인터뷰하러 오는 길은 어떠셨나요? 불편하지는 않았나요?
남편이 차로 데려다준 덕분에 편하게 도착했어요. 그런데 ‘오는 길이 어떠셨냐’라는 질문을 받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참 많은 생각이 스쳐 가네요. 어릴 적부터 눈 때문에 병원에 다녔지만, 한쪽 시력을 완전히 잃은 뒤부터는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불편함이 생겼거든요. 어딘가로 이동한다는 것 자체가 제게는 참 어려운 일이 되었어요. 좋아하던 등산도 혼자서는 갈 수 없게 됐고, 길 위의 볼라드에 걸리거나 주차장 턱이 보이지 않아 넘어진 적도 여러 번이에요. 그래서 길을 걸을 땐 저도 모르게 무릎을 20~30cm씩 높이 들어 올리며 걷곤 하죠. 오른쪽 시력은 없고 왼쪽도 절반 정도만 있다 보니 전봇대나 유리문에 부딪히는 건 일상이 되었고 저녁 산책조차 힘들어졌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오는 길이 어떠셨냐’라는 이 간단한 질문에 “날씨가 화창해서 기분이 좋네요” 같은 평범한 대답보다, 시각장애를 갖게 된 후 이동하는 게 얼마나 험난해졌는지를 먼저 떠올리게 됐어요.
전남 무안에 살고 계시는데요. 작업실이 따로 있나요? 작업은 어떻게 하세요?
제가 사는 곳은 무안의 조용한 바닷가 마을이에요. 예전에는 어장이 꽤 컸던 곳이고, 규모가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전통 방식인 ‘지주식 김’을 생산하는 몇 안 되는 곳이죠. 바람이 세차게 불고 햇빛도 강렬하지만, 자연경관만큼은 정말 멋진 곳이에요. 이렇게까지 깊은 시골에 들어와 살게 될 줄은 몰랐어요. 한동안 아침에 집 밖을 나설 때면 깜짝깜짝 놀라곤 했습니다. “우리 동네 경치가 이렇게나 아름답다니!”하고 말이죠. 한편으로는 슈퍼마켓 하나 없는 곳이라, 급하게 두부나 콩나물 하나가 필요해도 차를 타고 한참을 나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어요.
작업실은 따로 마련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 집에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시력 문제도 있고 장소의 제약도 있다 보니, 넓은 공간이 필요한 커다란 작업을 하기는 어려워요.
작가님은 미술이 아닌 다른 분야를 먼저 공부하셨는데요. 어떻게 그림을 그리게 되었나요? 그전의 공부가 작업세계 구축에 어떤 밑거름이 됐는지 궁금합니다.
어린 시절 제 삶은 교회, 집, 학교, 그리고 병원이 전부였어요. 늘 그림을 꿈꿨지만, 시력이 나빠질 것을 걱정한 부모님의 반대로 그 길은 막혀버렸죠. ‘왜 내 병은 나아지지 않을까’라는 신앙과 현실 사이의 괴리는 너무나 큰 실존적 고민이었죠. 그 답을 찾고 하늘이 원하는 길을 걷다 보면 제 삶을 더 잘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 신학을 선택했어요. 하지만 그런 치열한 고민 속에서도 그림을 향한 마음만큼은 끝내 접을 수 없었어요. 결국 서른다섯이 되어서야 미대에 진학했죠.
신학을 공부했던 경험이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체감하지 못했는데 오히려 동료들이 제 작품에서 짙은 종교적 색채를 먼저 발견해 주었죠. 특히 ‘눈’을 주제로 작업하고 글을 쓰는 요즘의 과정은 일종의 기도와 같아요. 원 안에 즉흥적인 선을 끊임없이 채워 넣는 행위는, 답이 보이지 않는 삶 앞에서 신에게 무릎 꿇고 소망을 구하는 제 기도와 참 많이 닮아있거든요. 기도라는 건 내가 원하는 것을 얻었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삶에는 늘 끝나지 않는 고민과 걱정이 있고, 시간을 내어 기도한다는 건 ‘내가 온 삶으로 기도하고 있다는 걸 신에게 증명’하는 최소의 장치인 셈이죠. 제게는 작업도 그래요. 건강 때문에 겪는 갈등과 고통을 해소하고, 그 안에서 저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시각장애로 인한 어려움 때문에 질감이나 촉각을 활용한 작업을 많이 하시는데요, 주로 사용하는 재료나 기법을 소개해 주세요.
재료 선택에서 가장 먼저 고려하는 점은 눈에 자극이 없어야 한다는 거예요. 냄새가 강하거나 가루가 날리는 재료는 피합니다. 오른쪽 시력을 잃은 후 극심한 편두통을 안고 살다 보니, 세팅이나 정리가 복잡한 재료도 쓰기 어려워요. 언제든 바로 시작하고 바로 멈출 수 있는 수채화나 연필, 라이너 펜 등을 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실과 바늘, 천이라는 재료를 새롭게 발견했어요. 3년 전, 전시를 준비하며 저시력 장애인들이 작품을 손끝으로 감상할 수 있는 ‘배리어프리’ 기법을 고민하다 자수를 시작하게 됐는데, 의외로 수를 놓는 감각 자체가 제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실 작업은 눈에 자극이 덜해요. 바닥에 떨어진 물건도 손으로 한참 더듬어야 찾을 수 있는데, 수를 놓으며 바늘 끝을 찾으려 손끝을 세우는 제 모습이, 이처럼 ‘더듬거리는 일상’과 참 많이 닮아있다는 걸 느껴요. 결국 한 땀 한 땀 수 놓는 과정은 제 삶의 경험이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물인 셈이죠. 그래서 요즘은 이 ‘더듬거림’의 감각이 녹아있는 재료와 기법을 많이 쓰고 있어요.
문귀화 작가
작가님이 주로 다루는 주제와 작가님의 예술관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눈’이라는 신체 기관에 집중해요. 어린 시절부터 서서히 시력을 잃어온 과정과 30대 중반에 오른쪽 시력을 완전히 상실했던 드라마틱한 경험을 하나씩 풀어내고 있어요. 제게는 켜켜이 쌓인 감정들이 터져 나오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끊임없이 낯선 경험을 안겨주는 이 ‘눈’이란 무엇일까 고민하던 중, 병원에서 의무 기록을 모두 떼어본 적이 있어요. 판독조차 할 수 없는 용어와 망막 사진들을 보며 처음엔 내 병의 기록이라는 생각에 막막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그 기록들이 너무나 아름답게 다가왔어요. 특히 나무뿌리처럼 환하게 빛나는 시신경다발은 경이롭기까지 했어요.
그때부터 눈에서 자라는 나무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가지가 부러지고 밑동이 잘렸는데도 어떻게든 다시 성장해 내는 겨울나무들을 사진 찍고 그림 그렸죠. 눈 그 자체에 집중하며, 잘 보이지 않는 눈동자 주변으로 즉흥적인 선을 채우며. 또한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일상의 감각을 글로 기록하고 있어요. 제게 예술이란 몸의 한계를 직시하는 동시에, 그 안에서 발견한 생명력을 기록하는 일종의 수행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아끼는 작품도 망막에서 자라는 나무 작품인가요?
네, 가장 아끼는 작품은 눈을 그린 작품을 프린팅한 후, 그 위에 수를 놓은 〈마음의 길〉입니다. 신체적 여건상 오래 작업하기가 어려워, 3주 동안 온 에너지를 쏟아부어 귀하게 완성한 작품입니다. 사실 작년에는 시력과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어 작가의 삶을 완전히 포기하려고 했어요. 30년 넘게 다닌 병원에서 일을 줄이라는 권고를 받았고, 남은 시력마저 사라질지 모른다는 공포에 짓눌렸거든요. 전시 계획을 모두 취소하고 미술 도구까지 남에게 주려고 정리했을 정도였으니까요. 끝내지 못한 숙제 같은 중압감에서 벗어나고만 싶었어요. 그때 (지금 인터뷰하는) 고보연 작가님이 “한 작품이라도 좋으니 포기하지 말자”라며 제 손을 잡아주셨죠. 덕분에 ‘딱 하나만 더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자수 작업을 시작하게 됐죠. 〈마음의 길〉은 제게 작품 그 이상입니다. 스스로를 다잡게 해준 소중한 전환점이니까요.
예술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한 작가님만의 루틴이 있나요?
몸이 힘들어서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날에도, 자기 전 1시간 동안은 꼭 글을 씁니다. 사소한 일상을 비롯하여 장애를 바라보는 관점들을 기록하죠. 거창한 작업이 아니더라도 매일 나를 기록하고 마주하는 것, 그것이 제가 예술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 나가는 가장 단단한 힘입니다.
‘미술공감채움’의 문화예술교육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무언가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고보연 작가님과의 인연이 시작이었어요. 시력 악화로 작업을 고민하던 힘든 시기에 만났는데, 당시 작가님은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봉사하며 시각장애인을 위한 미술교육에도 관심을 두셨죠. 그 따뜻한 행보에 감명받아 보조강사로 발을 들이게 됐습니다. 그렇게 어린이와 정신장애인 회원들을 만나며 촉각책을 제작하고 해외 사례를 공부하며 전문성을 쌓아갔습니다. 사실 조현병이나 지적장애가 있는 분들과 수업할 때는 ‘우리의 소통을 어디까지 기억하고 공감해 주실까’ 하는 조심스러운 의구심이 늘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한 회원이 엽서에 빼곡히 적어 보내주신 편지에 큰 감동을 받았죠. 정신장애인의 인지 능력 저하에 대한 일반적 인식과는 달리, 그분은 저와 나눈 수업의 장면과 교감을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계셨거든요. 그때 깨달았어요. 병이 깊어져 기억은 흐려질지라도, 진심으로 마음이 만났던 순간의 감각은 절대 잊히지 않는다는 것을요. 그 경험은 예술교육가로 서는 가장 단단한 이유가 되었어요.
작가님이 체감하는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무는 미술의 힘’은 무엇인가요?
사실 저는 시각장애인이 된 후로 ‘경계를 허문다’라는 표현에 대해 생각이 좀 달라졌습니다. 시각장애인으로서 저에게 경계가 허물어진다는 것은 사물과 사람을 구별할 수 없는 혼돈이자 빛이 사라진 어둠 속으로 함몰되는 공포이기도 하거든요. 10년 넘게 한쪽 시력 없이 사는 삶에 적응하며 느낀 것은, 장애인에게는 오히려 자신의 독특한 삶과 세계를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자신만의 경계’가 절실하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흔히 경계를 없애는 것이 선이라고 믿지만, 장애 당사자에게 중요한 것은 ‘당당하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경계’, 그리고 ‘일방적 수혜자가 아닌 독립적 인격체로서 존중받는 경계’입니다. 비장애인이 당연하게 누리는 지극히 상식적인 삶의 울타리가 장애인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으니까요.
결국 미술의 역할은 경계를 무조건 허무는 것이 아니라, 그 경계가 ‘한계나 편견’이 되지 않도록 만드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의 삶이라는 독특한 경계 지점을 이해하고 학습할 수 있는 장이 더 많아져야 해요.
제 작업 또한 저만의 선명한 경계를 그어가는 과정이죠. 그 선들을 통해 비장애인이 저의 세계를 배우고, 서로의 다름을 ‘지워야 할 벽’이 아닌 ‘존중해야 할 고유함’으로 바라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질문을 통해 이런 본질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정말 반가웠습니다.
시각장애 예술인의 지속 가능한 활동을 위해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요?
시각장애인이라고 하면 흔히 검은 안경을 쓴 전맹의 모습만을 떠올리지만, 장애의 스펙트럼은 정말 넓습니다. 심지어 의사조차 “겉보기에 멀쩡한데 무슨 장애냐”라고 물을 정도로 우리 사회의 이해는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런 편견은 많은 장애인을 위축시키고 자신을 숨기게 만들어요. 저 역시 처음엔 “누가 나의 아픈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할까” 걱정했어요. 하지만 첫 개인전 이후, 제 삶의 변화와 적응 과정을 공유해 주어 고맙다는 피드백을 받으며 확신을 얻었어요. 장애가 숨겨야 할 약점이 아니라, 세상에 말을 거는 가장 솔직한 ‘작가적 정체성’이 된 것입니다.
지속 가능한 활동을 위해 우리 사회에 제안하고 싶은 것은 ‘당사자에게 계속 묻는 것’입니다. 지레짐작하기보다 “어떻게 작업하나요?”라고 물어봐 주세요. 그러면 저는 “안경을 벗고 종이에, 혹은 천에 바짝 붙어 손끝으로 더듬으며 그립니다”라고 답할 거예요. 이런 구체적인 경청이 시작될 때, 계단 끝에 노란색 유도선 하나를 긋고 점자블록 위의 적치물을 치우는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어요. 장애인 또한 욕망하고 불평하며 때론 불친절할 수도 있는 입체적인 인격체임을 말하고 싶고, 저도 꾸준히 이야기하며 세상과 더 깊이 연결되고 싶어요.
문귀화, 〈마음의 길〉, 35×35cm, 천에 자수, 2025
문귀화, 〈나무-꿈을 꾸다〉, 43×28cm, 종이에 수채, 2023

문귀화
신학대학 졸업 후 서양화과에 편입하여 미술을 공부했다. 2023년 개인전 《나무-꿈을 꾸다》를 개최했으며, 《예술과 치유-균열을 메우는 빛, 치유의 순간들》, 《열두 갈래의 길-빛을 모으는 시간》 등 다수의 기획전에 꾸준히 참여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미술공감채움에서 문화예술교육 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moonf2000@hanmail.net

고보연
‘여성에게서 나오는 미술 언어’를 탐구하며, 헌 옷과 천 등 버려지는 소재를 활용한 설치미술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군산에서 문화예술단체 ‘미술공감채움’을 운영하며 아동부터 노인, 장애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예술로 소통해 왔다. 예술의 공공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다수의 전시기획과 설치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koboyun@hanmail.net
사진.이재범 라무팜스튜디오 실장 andy45a@naver.com
자료사진 제공.문귀화 작가
2026년 4월 (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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