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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대중문화 콘텐츠 속 장애 읽기 더디고 느려도, 조금씩 앞으로

  • 백수정 대중문화비평활동가
  • 등록일 2026-04-22
  • 조회수 109

트렌드

대중문화는 시절 문화다

대중문화는 지금 우리가 무엇을 보고 웃고 울며, 무엇에 공감하고, 무엇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가를 담는다. 그래서 지금 우리와 마주하는 시절 문화다. IMF 이후에는 생존과 가족 해체 이야기가, 팬데믹 이후에는 고립과 관계 단절, 회복 이야기가 드라마와 예능은 물론 영화, 연극, 소설, 전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콘텐츠를 채웠듯 말이다. 최근에는 12·3 비상계엄과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는 전쟁을 지나며, 다시 생존과 공존, 정의에 관한 이야기가 중심에 놓이고 있다. 견디고 버티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지며, 지난 한 해에는 가족 중심, 특히 아버지 중심 서사가 많은 공감을 얻었다. 시절은 이렇게 대중문화의 언어로 번역되어 축적된다.

그렇다면 대중문화 속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어떤 시절을 지나고 있을까. 여전히 장애 캐릭터를 장애배우가 연기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장애배우를 배우로 인정하지 않는 차별 역시 존재한다. 무엇보다 장애 캐릭터 자체의 등장 빈도가 낮은 데다, 설령 등장하더라도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주체라기보다 누군가에 의해 목소리가 ‘들리는’ 존재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자기결정에 기반해 능동적으로 삶을 꾸려가기보다는, 도움을 받거나 의존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인물로 재현된다. 이처럼 장애를 가진 인물들은 여전히 ‘시절 밖’에 머물러 있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지난 2025년만 보더라도 장애배우는 주류 영화나 드라마에서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콘텐츠 속 장애 캐릭터 역시 사고로 장애를 입은 뒤 삶의 의지를 잃고 가족의 짐으로 살아가는 인물(드라마 〈러브 미〉)이거나, 모든 문제를 장애 탓으로 돌린 채 사회의 책임과 권리를 자선의 영역으로 밀어 넣는 이야기(드라마 〈프로보노〉)로 반복되었다. 또한 장애 뒤에는 언제나 보호와 돌봄의 대상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고(드라마〈샤이닝〉, 영화 〈청설〉 등 장애를 소재로 한 모든 콘텐츠), 사랑과 관계, 삶의 통과의례 속에서도 우려와 의심의 시선은 물론, 혐오와 조롱의 시선까지 감내해야 하는 현실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시선을 강화할 여지를 남기는 설정과 태도가 그려지기도 한다(영화 〈우리 둘 사이에〉). 이처럼 장애는 보이는 듯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존재로, 시절의 이야기에서 주변부에 머물거나 극적 장치로 소비된다. 이러한 재현 속에서, 이 시절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사회적 위치를 가늠하게 되는 지점은 씁쓸함을 남긴다.

최근 몇몇 콘텐츠에서 이런 흐름에 균열을 내는 변화가 보인다. 적은 수이지만, 기존과는 다른 시선에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콘텐츠들이 주목받기 시작했고, 그 안에서 장애를 가진 인물들도 이 시절의 일원으로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장애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과 익숙한 구현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콘텐츠들이 여전히 다수이지만, 한편에서는 이전과는 다른 좋은 흐름이 시작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 글에서는 이런 변화의 중심이 된 근래 화제작들을 돌아보며 변화의 흐름을 짚어보려 한다. 단, 보도, 시사, 다큐멘터리는 포함하지 않았으니 대중문화의 전체 추이로 볼 수 없음을 밝힌다.

드라마 속에서의 변화

장애는 약점도 장점도 아닌 정체성 중 하나라는 시선

지난해 드라마 중 이 시절의 잠망경 같은 드라마를 꼽으라면 단연코 〈미지의 서울〉이다. 쌍둥이 미지와 미래의 삶을 교환하며 청년 세대의 불안과 고립, 직장 내 괴롭힘과 비정규직 차별 등을 담았다. 무엇보다 장애와 다름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시선과 구조적 차별을 담으며 우리를 시절 안으로 끌어들인다.

이 드라마 속 장애를 가진 이호수와 이충구의 캐릭터에는 장애를 자기 정체성 중 하나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분명한 변화다. 그랬기에 업계 톱3 로펌에서도 승소율이 가장 높고 성공한 변호사로 휠체어 탄 이충구가 등장하고, 청각장애를 가진 직장 동료이자 후배 변호사인 이호수와 일을 두고 대결 구도를 형성하며 치열하게 논쟁하는, 그동안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투 샷이 연출될 수 있었다. 이충구는 최신형 전동휠체어를 타고 턱없는 입구와 자동문이 설치된 로펌 사무실을 자유자재로 드나들며 이 설비들이 장애인을 얼마나 자유롭게 하는지를 시각화하는 주체이자, “이 식당엔 휠체어를 탄 손님들은 안 오나 보죠?”라며 장애 차별과 불의에 목소리를 내는 장애 캐릭터로, 현실성과 사회성을 담은 메시지의 주체가 된다.

그래서인지 〈미지의 서울〉에서 이호수와 이충구의 장애는 사회생활에서나 직장 생활에서 약점으로도 강점으로도 읽히지 않는다. 이는 분명 장애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 또는 ‘서번트 신드롬’을 가진 예외적인 천재로서만 그리는 기존 서사에서 나아간 점이다. 장애를 단순히 갈등 소재로 삼지 않고 생활인이자 직장인으로서 사람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제작진의 의지로도 읽히며, 결국 현실에, 시절에 발을 디딘 인물이 된 것이다.

장애를 가진 빌런의 출현

장애를 가진 빌런들을 드디어 한국 드라마에서도 볼 수 있게 됐다. 지난해 상반기 SBS에서 방송한 드라마 <귀궁>은 그런 점에서 반가운 작품이었다. 사극 속 ‘악귀’라는 설정 탓에 시청자는 이들의 장애를 의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극에는 세 명의 장애를 가진 빌런이 등장한다. 맹청의 판수 ‘풍산 아구지’는 시각장애를, ‘팔척귀’는 화상장애를, ‘외다리귀’는 신체절단장애를 지니고 있다. 이들의 탄생 배경에는 불평등한 사회 구조, 즉 신분제에 의한 억압과 차별이 자리한다. 그렇기에 이들의 분노와 폭주는 ‘감히’라는 말로 상징되는, 위계와 불평등에 맞서는 저항의 방식으로 읽힌다.

물론 드라마가 장애와 악을 연결해 온 익숙한 설정, 이를테면 흉터나 절단된 신체를 불길하거나 위협적인 존재로 암시하는 방식, 혹은 장애를 악의 원인으로 환원하는 서사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 다른 지점이 있다. 피해 당사자가 빌런으로 등장하고, 자신을 만들어낸 사회 구조를 집요하게 묻고 발화한다는 점이다. 왕 앞에서도 굽히지 않는 오만하고 꼿꼿한 태도의 악귀들, 알 때까지 묻고 외치며 행동하는 그들의 모습은 현실에서 투쟁하는 장애인권활동가들의 모습뿐 아니라 질문과 투쟁방식과도 닮았다. 그렇기에 귀족 중심 사회의 불합리와 부조리를 향한 이들의 외침은, 오늘의 지하철과 거리, 광장에서 장애인들이 던지는, ‘왜 이 사회는 비장애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는가’ ‘그 구조가 어떻게 장애를 만들고 또 억울한 죽음을 낳아왔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져 되돌아온다. 여전히 투명 인간처럼 살아가도록 배제와 분리를 강요받는 시민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다른 시절의 이야기로 환기하는 드라마 〈귀궁〉. 그 시도가 반갑고, 대중문화의 급진적 변화를 여는 작은 단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조심스럽게 얹어본다.

“희서 덕에 지금의 자유가 있는 거야”

드라마 〈샤이닝〉에서 재회 후 “지금은 괜찮아?”라고 묻는 연인 모은아에게 주인공 연태서가 건넨 말이었다. 이 말은 드라마를 관통하는 말이기도 하다. 태서는 열아홉 살 때 사고로 부모를 잃고 동생 희서가 장애를 입은 이후, 가족의 생계를 짊어진 채 살아간다. 대학 시절 내내 학원 강사와 과외 알바로 버텨내고 연인에게 이별을 통보받는 순간에도 현실을 거스를 수 없다. 졸업 후 대기업에 취직해 프로그래머로 일하며 해외 발령 기회를 얻지만, 연로한 조부모와 장애를 가진 동생에 대한 책임 앞에서 결국 전철 기관사로의 이직을 선택한다. ‘부양과 돌봄은 누구의 몫인가’라는 질문을 태서의 삶의 궤적에 실어 드러내면서도 끝내 그 책임을 가족에게 귀속시키고 장애를 보호와 돌봄의 범주로 인식시키는 결말은, 여전히 대중문화가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시절의 인식과 한계를 드러낸다. ‘역시 시절 문화구나’ 했다.

그럼에도 연희서라는 인물은 기존 드라마 속 장애 캐릭터와는 분명히 다른 결을 지녔다. 그는 형의 자유와 행복을 지지하며, 조부모를 돌보는 일 또한 자기 몫이라 받아들이는 청년이다. 극 중 누구보다 긍정적이고 자존감이 높으며, 자기 삶과 행복의 주체가 자신임을 인식하고 그것을 실현해 나가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희서 덕에 지금의 자유가 있는 거야.”라는 말은 단순한 가족애의 표현을 넘어서, 장애를 가진 사람을 보호와 돌봄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던 기존의 시선, 이 시절 인식에 조금씩 균열을 내는 하나의 단초로 기능한다. 한편, 본방송 시청률은 0%대에 가까웠지만, 입소문을 타고 OTT, 특히 넷플릭스에서 글로벌 화제작이 되었다. 레거시 매체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OTT 중심으로 재편되는 시청 환경의 변화를 드러낸 드라마이기도 하다.

예능에서의 변화

보통의 청춘으로 함께하고 있다

2025년 8월, SBS 예능 〈동상이몽2_너는 내 운명〉에 서은혜 작가와 조영남 부부가 출연해 신혼 이야기를 전했다. 장애를 가진 연예인을 제외하면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한 첫 장애 당사자 게스트라는 점에서 의미있고, 이날 방송도 당일 전체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물론 프로그램 자체의 높은 인기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토크 예능의 특성상 게스트의 인지도와 호감도가 시청률과 밀접하게 연결된다는 점에서 서은혜 작가를 향한 대중의 관심과 호응을 실감하게 한다. 이들이 화제의 중심에 서고, 팬덤이 형성되며 노출이 확대되는 현상을 두고 ‘이용’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관심과 가시화는 장애 정체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넓히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특별한 존재’가 아닌 평범한 이웃으로 바라보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일터에서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며, 아이를 낳을지 고민하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보통의 청춘으로서 말이다.

발달장애 청춘들의 연애 프로그램 〈내 마음이 몽글몽글-몽글상담소〉(이하 몽글상담소)의 등장도 반갑다. 그동안 호주의 〈러브 온 더 스펙트럼〉이나 뉴질랜드의 〈다운 포 러브〉를 보면서, 우리는 언제쯤 이런 콘텐츠를 만들고 또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을까 부러워했는데, 예상보다 빠르게 현실이 된 셈이다. <몽글상담소>는 방송 전 우려 반, 기대 반이었는데 첫 방송을 보며 우려의 시선은 완전히 거둬내고 기대감으로 벅찼다. 해외 콘텐츠에서 낯설면서도 부럽던 그것, 당사자들의 목소리로 일하고 싶고, 사랑하고 싶다고 외치는 것,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일하고 연애하고 사랑하는 이야기가 평범한 청춘 서사로 자연스럽게 그려진 그 장면과 이야기들이, 〈몽글상담소〉에서도 그대로 재현되는 것이다. 나의 시절에서는 영원히 존재하지 않을 것 같던 장면 장면이 말이다. 그 자체로도 충분히 뭉클한 변화다. 그렇다. 마지막 회 엔딩에서 보여주듯, 그들은 보통의 청춘으로서 이 시절을 함께 살아간다. 일하며 사랑하고 관계를 맺으며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동시대의 청춘으로.

〈몽글상담소〉는 완성도에 더해 화제성과 대중 반응, 시청률에서도 의미 있는 결과를 보여줬다. 첫 방송에서 1.5%로 동 시간대 지상파 1위를 기록했고, 이후에도 전반적으로 1%대를 유지하며 종영했다. 최근 예능에서 ‘1%대 시청률’은 단순히 높고 낮음의 문제가 아니다. 콘텐츠가 과잉된 시청 환경에서 ‘무엇이 선택되는지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된 시대’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무엇보다 출연자들이 유명인이 아니었는데도 이 정도의 화제성과 반응을 끌어냈다는 것은 ‘대중의 장애 수용의 4단계’ 중 3단계, 즉 ‘다르지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으로 이동하는 흐름으로 읽힐 수 있겠다. 물론 이러한 해석은 계층과 상황에 따라 인식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전제를 포함한다.

영화 속에서의 변화

장애여성의 임신과 출산의 자기결정권을 말하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이 시절은 매 순간 ‘할 수 있을까?’ ‘괜찮을까?’라는 의심과 우려의 시선 속에서 살아가게 하며, 그 시선은 종종 무례한 질문으로 확인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친구의 결혼식 날 비가 오면, “네가 꼭 가야 하니?” “그 친구도 네 사정(장애)을 아니까 못 가도 이해할 거야”라며 극구 만류 한다. 이 무례한 걱정에 발끈하면 돌아오는 말은 늘, “다 너를 걱정해서 그래” “다칠까 봐 그래” “힘들까 봐 그래”라는 말이다. 이 대화는 대개 이렇게 끝난다. “다치든 말든 상관 안 할 테니, 네 마음대로 해” 이처럼 자신의 결정과 의지를 온전히 존중받지 못한 채 스스로 접어야 하는 순간이 얼마나 많은지.

이러한 경험은 장애여성의 삶에서, 특히 임신과 출산 문제에서 첨예하게 드러난다. 영화 〈우리 둘 사이에〉는 바로 이 지점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사랑과 관계, 그리고 그 사이에서 마주하게 되는 임신을 통해 한 여성의 선택이 어떻게 주변의 시선과 언어에 의해 흔들리는지를 보여준다. 장애여성의 현실을 겹쳐보면, 그 흔들림의 강도는 훨씬 더 크고 깊다. 비장애 여성에게도 임신과 출산은 수많은 질문과 간섭 속에 놓이는 일이지만, 장애여성에게는 그 시작부터 ‘가능한가’라는 의심의 시선에서 “아이를 가질 수 있어?” “키울 수는 있어?” “그게 너한테 맞는 선택일까?”라는 질문과 맞닥뜨리게 된다. 사람들은 ‘걱정돼서’라고 말하지만, 실은 선택의 자격 자체를 묻는 말들이다. 문제는 이러한 시선이 단순히 말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는 의료 시스템, 가족의 태도, 사회적 지원 체계까지도 이 의심을 전제로 작동할 때, 장애여성의 임신과 출산은 ‘축복받아야 할 삶의 과정’이 아니라 ‘허락받아야 할 문제’로 전환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장애여성이 자신의 몸으로 재생산권과 자기결정권을 말하며, 이제는 세상이 답해야 할 때가 아닌가 질문을 던진다.

아쉬운 것은, 이 개인의 결정권이 쉽게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을 드러내기 위해 선택한 극단적인 상황 전개와 그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은진의 급격한 태도 전환이다. “맞아, 임신과 출산이 저렇게 힘들지”라는 공감으로 이어지기보다 “장애 때문이야” “왜 저렇게까지 하면서 아이를 낳아야 하지?”라는, 가장 경계해야 할 의문의 여지도 남겼다. 이는 영화의 의도와는 다른 해석을 가능하게 하며, 결국 이 시절이 가진 익숙한 시선의 그림자를 완전히 걷어내지 못한 한계로도 읽힌다.

타인을 통해 ‘들리는’ 사람에서, 자신의 목소리로 ‘외치는’ 사람으로

하루에도 수백만 개의 영상 콘텐츠가 쏟아지는 이 시절, 이러한 변화는 아직 일부 콘텐츠에서 포착되는 흐름에 불과해 일시적이고 미미한 변화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시도들이 축적되며 결국 보편으로 자리 잡는 것이 아닐까. 세상에 갑작스럽게 이루어지는 변화는 없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짚어보고 조금이라도 확장될 수 있도록 알리고 말을 보태는 일 또한 지금 필요한 태도다.

이들 콘텐츠를 관통하는 가장 큰 변화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목소리로, 행동으로, 눈빛으로, 몸으로, 각자의 방식과 언어로 자신의 이야기와 시선을 드러낸다. 이처럼 대중문화 속에서 발언권을 갖는다는 것은 단순한 ‘등장’을 넘어 존재감을 획득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존재감은 자연스럽게 대중매체에 ‘평범한 청춘’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가능성을 열었다. 이러한 변화는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장애를 둘러싼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 온 시간, 다양한 영역에서 이어져 온 움직임, 특히 문화와 예술을 통해 장애인권과 차별 철폐를 외쳐 온 현실의 축적이 지금의 변화를 가능하게 했다. 비록 더디더라도, 그 시간은 방향을 만들고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이와 동시에,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여전히 장애 캐릭터를 비장애 배우가 연기하는 관행이 반복되고, 장애 당사자 배우의 부재가 이어진다. 여기에 더해, 장애인 연극에 대한 무지와 폄하에서 비롯된 차별적 발언과 이에 맞선 1인 시위는 우리가 어디쯤에 서 있는지를 되묻게 한다. 현실에서도, 대중문화 콘텐츠 속에서도 시절 밖에 선 사람이라는 인식은 여전히 존재하며, 그 그림자는 과연 언제쯤 완전히 걷히게 될까?

백수정

백수정

어릴 적 친구였던 TV가 일이 되어, 다른 관점과 시각으로 대중문화를 읽고 쓴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방송모니터 자문위원, 서울YMCA 어린이영상문화연구회 부회장으로 다양한 미디어 모니터링 활동을 펼치고 있다. 『언론인을 위한 장애인권 길라잡이』를 함께 썼고, 디지털 언론매체 [함께걸음]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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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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