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진(호호)
며칠째 꼼짝도 하지 않고 연잎 밑에 누워 있던 슈슈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난, 이제 날 수 없을 것 같아.’
루루가 젖은 몸을 말리며 슈슈에게 말했습니다.
“슈슈, 두려움이 네 날개에 올라타게 해서는 안 돼.
그럼 넌 두려움의 폭풍에 갇히게 될 거야.”
슈슈는 한참 동안 날개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한 차례 심호흡을 한 뒤 날갯짓을 해 보았습니다.
장애 감수성을 기르는 본격 문학 방송 . 을 시작합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DJ 호호 김효진입니다. 은 장애 감수성을 기르는 본격 문학 방송입니다. 우리 방송은 장애 문학인을 비롯해 장애와 관련한 다양한 분야의 작가를 소개합니다. 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 편견을 허무는 것이 우리 방송의 목적입니다. 저는 노지영 문학 평론가 노평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노평, 잘 지내셨나요?
○노지영(노평) 왜 그렇게 웃으면서 시작을? (웃음) 잘 지냈습니다.
○김효진(호호) 반갑습니다. 혹시 뮤지컬 좋아하시나요?
○노지영(노평) 뮤지컬 좋아하는데 볼 기회가 많지는 않죠.
○김효진(호호) 그렇죠. 최근에 저는 캐나다에서 온 조카가 <시카고>를 보고 싶다고 해서 정말 모처럼 예매를 하러 들어갔더니.
○노지영(노평) 그 비싼 것을.
○김효진(호호) 매진이 돼서 예매 불가더라고요. 굉장히 부지런해야 하나 봐요.
○노지영(노평) 그럼요.
○김효진(호호) 그 고가의 티켓조차도. 예매하기 어렵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고요.
○노지영(노평) 처음으로? (웃음) 앎이 참 부족하시군요.
○김효진(호호) 예전에는 제가 직접 하지 않고 같이 보고 싶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맡아서 주로 했는데 그렇게 어려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처음 본 뮤지컬은 <지하철 1호선>이었습니다.
○노지영(노평) 아. 그게 처음이었군요.
○김효진(호호) 제가 대학로 서점에서 일했던 적이 있었잖아요. 사회과학 서점.
○노지영(노평) 맞아요.
○김효진(호호) 그 대학로에 있던 학전 김민기 대표가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나셨잖아요. 뭐 옛 이상형이시라고요?
○노지영(노평) 네. 또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죠. 제가 누군가가 이상형을 물어보면 김민기, 김창환을 언급하곤 했었죠. 그래서 별세하시던 날 김민기 1집을 꺼내서 오랜만에 들어보면서 저 나름의 애도를 했는데 언제 들어도 좋더라고요.
○김효진(호호) 그분이 어떤 삶을 살았는 지에 대해서는 굳이 장황하게 얘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요.
○노지영(노평) 그래도 요새 다큐 3부작으로 사람들에게 너무 잘 알려지게 됐더라고요.
○김효진(호호) 네, 저도 굉장히 주의 깊게 봤습니다. 그리고 또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는데요. 그분이 2005년 <지하철 1호선> 공연할 때 수어 통역을 했더라고요.
○노지영(노평) 배리어프리 연극의 시작.
○김효진(호호) 무대 한쪽에 수어 통역사를 배치하고 스크린에 한글 자막도 띄웠다고 하는데요. 그때가 2005년이잖아요.
○노지영(노평) 청각 장애인 100명을 초청해서 그렇게 공연을 했다고 하죠.
○김효진(호호) 그런데 2005년이라면 장애 운동을 했던 저도 배리어프리에 대해서.
○노지영(노평) 생소하고.
○김효진(호호) 정말, 개념 정도나 알고 있지 실제로 그것을 적용하는 것을 거의 눈으로 본 적이 없었던 그런 시대거든요. 그런데 그걸 실행에 옮기셨더라고요.
○노지영(노평) 네. 선구적으로 실행에 옮기신 것들이 참 많죠?
○김효진(호호) 그러니까요. 20년 이상 앞서간 것 같고요. 특히 청각 장애인도 뮤지컬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굉장히 중요한데.
○노지영(노평) 그런데 음악이 중심이 되는 뮤지컬을 청각 장애인들한테 제공한다는 게 잘 실감이 나지는 않는데.
○김효진(호호) 그러니까요. 누구도 실감이 나지 않는데 실제로 수어 통역을…
○노지영(노평) 어떤 방식이죠? 음악의 진동을 몸으로 느끼고.
○김효진(호호) 그렇죠.
○노지영(노평) 그리고 자막, 수어 통역으로.
○김효진(호호) 하죠.
○노지영(노평) 내용 같은 것들을 제공하고.
○김효진(호호) 그렇죠. 그리고 진동.
○노지영(노평) 그다음에 수어 통역사의 몸짓 같은 것들로 분위기를 파악하고 그런 거겠죠?
○김효진(호호) 그래서 수어 통역사의 재능이 되게 필요한.
○노지영(노평) 연기죠, 수어 통역이라는 것도.
○김효진(호호) 그러니까요. 그래서 정말 같이 즐길 수 있었다고 하고요. 당시에 이미 이 수어 통역을 하기 전에 외국인을 위한 자막 서비스를 했대요. 그래서 한글 자막을 구동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고. 그러니까 이분의 인간관, 사람의 개념 안에는 외국인도 이미 들어 있었고 장애인도 이미 들어 있었던 것 같아요.
○노지영(노평) 관객의 지평 자체가 일반인들하고 되게 많이 달랐던 것 같아요.
○김효진(호호) 그러니까요. 우리가 최신 개념으로 장애를 정의할 때 사회와의 상호작용에 있어서 참여에 제약이 있는 사람, 이렇게 정의하거든요. 그런데 이것도 보면 사실은 앞선 개념이기는 하지만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데 김민기 씨를 생각하면 어쩌면 독재 정권하에서 엄청난 제약을 받은 사람.
○노지영(노평) 그렇죠.
○김효진(호호) 오히려 장본인이어서 또 장애에 대한 통찰도 남다르지 않았나. 그리고 뭐 통찰도 하는 것도 어려운데 실천으로까지 이어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서 다시 한번 이분의 철학과 인간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노지영(노평) 어떤 고정된 장르의 향유 방식을 새롭게 전환하는 시도들이 문화 예술계에서 더 활발하게 일어났으면 좋겠네요.
○김효진(호호) 그러니까요.
○노지영(노평) 우리 지난 회차에 이치가와 사오의 『헌치백』이라는 도서를 통해서 첫 책 애호가들의 어떤 오만으로서의 문학을 시각적으로만 그렇게 읽는 것, 홀로 책을 들고 읽을 수 없는 중증 장애인들에게는 그것이 얼마나 차별적인 것인지 이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요. 문학이라는 것도 시각 능력이나 홀로 책을 넘기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향유하는 특권적 장르로 내버려두지 말고 우리 팟캐스트처럼 다른 방식으로도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김민기를 통해서 더 들게 되는 것 같습니다.
○김효진(호호)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또 그분의 뜻을 되새기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노지영(노평) 김민기 선생님의 오랜 시도처럼 우리 도 장애 문학, 장애 예술의 진정한 ‘뒷것’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김효진(호호) 잠시 공지사항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은 이음온라인 콘텐츠 중 하나인데요. 이음온라인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장애문화예술원이 운영하는 장애 예술 전문 지식 플랫폼입니다. 이음 온라인은 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누구나 더 나은 문화 예술 정보와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도록 공연, 전시, 축제 등 문화 예술 소식과 다양한 형식의 예술 관련 콘텐츠를 수어 해설, 음성 해설 등 여러 접근성 정보를 포함해 제공하고 있습니다. 장애 예술의 현재가 궁금하다면 포털 사이트에 ‘이음온라인’을 검색해 보세요.
○김효진(호호) 첫 번째 순서는 인데요. 에서 여러분과 오늘 나눌 이야기는 ‘패럴림픽’에 대한 것입니다. 재미있게 보고 계시죠?
○노지영(노평) 저는 예년에 비해서 재미있게 보고 있지는 않은데 어제 잠시 저녁을 먹다가 신유빈의 경기를 봤었는데 심장이 쫄리더라고요.
○김효진(호호) 그러니까요.
○노지영(노평) 그래서 정말 선수들이 몸 관리만큼이나 멘털 관리라는 것이 스포츠에서 참 중요하구나, 뭐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 시절 여름을 보내고 있습니다.
○김효진(호호) 이번 패럴림픽을 앞두고 파리에 특사를 파견한 단체가 있어요.
○노지영(노평) 전장연이 들었더라고요.
○김효진(호호) 이분들의 주장은 패럴림픽이 억압을 은폐하고 지배 질서를 공고히 하는 데 일조한다는 거고요. 또 패럴림픽이 제국주의 식민지와 굉장히 연관이 있잖아요.
○노지영(노평) 그렇죠.
○김효진(호호)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
○노지영(노평) 모든 스포츠가 그렇죠.
○김효진(호호) 에이블리즘의 근간이 되는 유럽 중심주의 백인 우월주의가 있다. 그래서 이에 불복종하려는 저항의 표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는 건데요. 사실 패럴림픽이 에이블리즘을 재생산한다는 비판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어요.
○노지영(노평) 그렇죠. 국가 차원의 에이블리즘을 재생산하고 도덕적으로 번지르르한 말을.
○김효진(호호) 그렇죠.
○노지영(노평) 추상적으로 내세우면서 뒤에서는 장애인의 삶을 또 외면하게 하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아요.
○김효진(호호) 그렇죠. 우리나라에서도 35년 전에 88올림픽 개최되었을 때 노점상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장애인분들이 많으셨거든요. 이분들이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대거 쫓겨났어요. 그래서 일터를 잃어버린 거죠.
○노지영(노평) 맞아요.
○김효진(호호) 그래서 노점상들이 생존권을 외치면서 한 것이 장애인 운동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고요. 또 88올림픽 조직위원회 점거 투쟁, 이것도 장애인 운동의 시작이다, 어쩌면, 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가 의미 부여를 하고 있는데 그때 사실 패럴림픽을 반대한다. 또는 88올림픽을 반대한다고 주장했던 장애인들은 생존의 목소리. 우리의 생존권을 존중하라는 것도 있지만 또 군사 독재 정권에서 왜 3S 정책의 일환으로 올림픽을 이용하는 것에 대한 어떤 저항의 표현이기도 했었거든요.
그런데 또 88올림픽을 계기로 심신 장애자 복지법, 지금은 장애인복지법으로 개정됐는데 이게 제정된 것도 사실이에요. 왜냐하면, 패럴림픽을 치러야 하는데 외국의 장애인 선수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되면.
○노지영(노평) 국제 수준의 눈높이에 맞춰야 하니까.
○김효진(호호) 그렇죠. 편의 시설이 전혀 안 되어 있으니까 거리를 다닐 수도 없고 묵을 곳도 없고 이러다 보니까 법적인 정비가 필요했던 거죠.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제도적인 정비가 이루어진 그런 측면도 있고 이 장애인복지법이 생겼기 때문에 이후에 고용 촉진법 같은 장애 관련 법률들이 계속 제정될 수 있는 어떤 출발점이 됐던. 그래서 예전에는 장애인이 없는 존재처럼 취급됐다면 사회 구성원으로 비로소 들어가게 되는. 그래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고 할까요? 뭐 물론 그 권리를 보장받으려는 장애인들의 싸움은 지금도 현재 진행 중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저는 사실은 스포츠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흥미가 없고.
○노지영(노평) 그러실 것 같습니다.
○김효진(호호) 그래서 올림픽이 열렸다고 해서 특별히 열심히 보거나 그러지는 않고 가족이 볼 때 이제 곁눈질로 보는 정도인데 그때 아주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장애 극복 서사가 있어요.
○노지영(노평) 맞아요.
○김효진(호호) 그것에 대해서는 평소에 강도 높게 비판하는 사람 중의 하나인데 패럴림픽에 참가하는 장애인 선수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그들이 평소에 어떻게 살았고 패럴림픽이 장애인 선수들에게 어떤 의미인가. 그리고 이 장애인 선수들을 응원하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이런 점에도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노지영(노평) 맞아요. 우리가 에이블리즘 이데올로기에 희생당하는 인간의 예속성, 수동성 이런 걸 중심으로만 세계를 바라보면 그 속에 살아 숨 쉬는 구체적인 인간이 상실되기 쉬운 것 같아요.
○김효진(호호) 아무래도요. 그래서 이분들이 평소에 장애를 가졌기 때문에 어떤 삶이라는 무대 전체에서 완전히 배제당하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런데 장애인 스포츠는 비로소 함께할 수 있는, 참여할 수 있는 장이 될 수 있던 주목받을 수 있고 이 기회를 통해서 장애인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존재라는 게 부각되는 측면도 있고요. 또 하나는 장애인 스포츠가 패럴림픽 경기들의 규칙, 장치들이 굉장히 흥미로워요.
○노지영(노평) 그렇다면서요.
○김효진(호호) 다 아는 건 아닌데.
○노지영(노평) 원래 스포츠 관전할 때 그 규칙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가 스포츠의 흥미와 몰입도를 생산하는 중요한 요건인데요.
○김효진(호호) 그렇죠.
○노지영(노평) 그래서 지난번에, 지난 회에 출연한 허상욱 시인이 시각 볼링의 역량이 뛰어나서 전국대회에서도 수상을 했다고 하는데 저한테는 장애인 스포츠에 대한 규칙 같은 걸 잘 모르니까 대화에 제가 참여하기가 되게.
○김효진(호호) 그러니까.
○노지영(노평) 어렵더라고요. 그런데 장애인 스포츠의 다양한 장애인들 참여 가능한 흥미로운 규칙, 장치들이 가득하다고 그렇게 들어서 이 부분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김효진(호호) 같이 공부해 보아요. 이런 규칙들이 정상을 기준으로 비정상에 해당한다고 여겨지는 장애인들을 철저히 배제하는 현실의 논리와는 새로운 차원이잖아요. 그리고 하루아침에 마련된 기준이 아니라 오랫동안 논의를 통해서.
○노지영(노평) 그럼요.
○김효진(호호) 정교하게 다듬어진 기준이기 때문에 또 앞으로도 더 변화할 수 있는 기준이라서 저는 기본적으로 안티 에이블리즘이라는 게 정상이 뭐고, 비정상이 뭐냐. 그 기준 자체를 바꾸는. 아예 정상과 비정상이 따로 있지 않다고 이 기준 자체를 허무는 그런 운동이라면 패럴림픽이 실험적 장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노지영(노평) 그럼요.
○김효진(호호)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패럴림픽이 뭐 억압을 은폐하고 권력을 정당화하는. 사실 우리 일상이 억압이 은폐되는 공간이잖아요.
○노지영(노평) 그렇죠.
○김효진(호호) 그 권력은 늘 우월하고 그 권력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억압이 되고 그런 측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장애인들 선수들과 그 조력자들을 뜨겁게 응원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 점이 아닐까라고 생각을 해 봤습니다.
○노지영(노평) 맞아요. 제가 기사를 찾아봤더니 보치아라는 종목에서는 혼자 공 던지기 어려운 중증 장애인을 위해서 이렇게 공을 머리나 입에 문 막대를 통해서 굴릴 수 있는 다양한 보조 장치가 제공되고 보조인이 참여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보치아라는 종목도 저는 신선한데.
○김효진(호호) 그렇죠.
○노지영(노평) 그런데 경기 운영 방식이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래서 스포츠가 한 분야의 최고의 선수와 팀을 감별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게 아니라 누군가의 연결 관계 속에서 함께 서사를 써나가는 게임이라는 것도 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효진(호호) 그렇죠.
○노지영(노평) 그래서 그런 스포츠 서사가 섬세하게 디자인해 온 규칙들을 우선은 좀 많이 알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스포츠를 누릴 권리가 없었던 사람들에게 “당신들은 여기에서도 배제됐어” 이렇게 말하는 것도 물론 필요하지만, 패럴림픽 스포츠와 내가 어떻게 동행할 수 있고 향유할 수 있는지. 그리고 패럴림픽 스포츠가 기존의 엘리트 중심 스포츠의 대안 스포츠가 어떻게 되어 왔는지, 이런 것들을 각자가 가진 신체적 차원에서 먼저 감각할 기회를 만드는 게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김효진(호호) 제 주변에 시각 장애인 후배가 1명 있는데 그분의 어머니가 패럴림픽을 굉장히 재미있게 보신대요. 왜냐하면, 규칙이 비교적 쉽고 그다음에 함께하는 모습이 되게 보기 좋은 거예요. 그러니까 이분이 특별히 내 딸이 장애인이라서, 그런 개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로 스포츠를 즐기시더라는 거죠. 이걸 보면 패럴림픽 경기의 어떤 고유성, 또는 다른 앞서가는 측면 이런 측면에 대해서도 우리가 높이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노지영(노평) 그리고 감정적 연대를 할 수 있는.
○김효진(호호) 그렇죠.
○노지영(노평) 너무나도 중요한 계기인 것 같기도 해요.
○김효진(호호) 그런데 늘 장애 극복 서사에 대해서 우리가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건 오히려 극복이라는 이데올로기 때문에 장애, 비장애 사이의 간격을 더 넓혀 놓는 것 때문인 거지 사실은 이런 측면도 있다는 점에 많은 분이 주목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노지영(노평) 주목할게요. (웃음)
○김효진(호호) 그리고 우리 규칙에 대해서 같이 공부하고 앞으로 우리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노지영(노평) 그러니까요. 알겠습니다.
○김효진(호호) 다음 순서는 인데요. 오늘의 특별한 손님을 모시겠습니다. 시즌 5 세 번째 특별한 손님은 선영 작가입니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선영(딩기) 안녕하세요? 선생님.
○김효진(호호) 저희 프로그램에 나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먼저 을 보고나 듣고 계시는 분들게 인사 부탁드릴게요.
○선영(딩기)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청취자님들, 안녕하세요? 작가님과 평론가님 반갑습니다. 저는…
○노지영(노평) 저도요.
(일동 웃음)
○선영(딩기) 동화를 쓰는 선영입니다.
○노지영(노평) 짝짝짝.
○김효진(호호) 어서 오세요.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려 볼게요. 그리고 저희 방송에서는 이름 대신 닉네임으로 서로를 부르고 있거든요.
○노지영(노평) 공부하셨대요. 이미 듣고.
○김효진(호호) 오늘 방송에서 불리고 싶은 닉네임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제 닉네임은 호호이고요. 노지영 문학 평론가는 노평입니다.
○선영(딩기) 저는 2020년 월간 문학 동화로 등단하였고 2023년 첫 동화집 『너구리 마을의 이상한 편의점』을 펴냈습니다. 오늘 방송에서 불리고 싶은 닉네임은 딩기 요트에서 따온 딩기입니다. 딩기 요트는 물살과 바람의 힘으로만 움직이는 요트인데요. 그래서 돛단배와 비슷하지만, 돛단배와의 차이점은 바람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바람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지 궁금하시죠?
○김효진(호호) 네, 궁금해요.
○선영(딩기) 저도 아직 딩기 요트를 한 번도 타 보지 못했는데요. 그건 대거보드라는 장치가 바람을 거슬러 나아갈 수 있게 한다고 합니다. 저에게 문학은 딩기 요트에 장착하는 대거보드인 셈인 거죠.
(일동 웃음)
○노지영(노평) 오늘 스포츠 특집인가요? 올림픽 얘기하고.
○김효진(호호) 그러니까요.
○노지영(노평) 딩기 요트 얘기도 듣고.
○김효진(호호) 닉네임부터 심상치 않으시네요.
○노지영(노평) 그런데 딩기 요트를 잘 타려면 그냥 운 좋게 바람에 편승하는 게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그냥 바람, 조수의 흐름, 파도 등의 자연 현상을 잘 해석해야 한대요. 그래서 그런 외부 세계에 대한 선영 작가님만의 어떤 따스하고 깊이 있는 해석들이 또 진정한 내부의 동력으로 작용하니까 거친 세상에서도 순풍을 만나면서 이렇게 동화를, 좋은 동화를 저희에게 써주시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선영(딩기) 감사합니다.
○김효진(호호) 자기소개를 들으니까 우리가 요트에서 만나서 요트 위에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지 않을까, 막 이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노지영(노평) 간식 싸 올걸.
(일동 웃음)
○김효진(호호) 비록 비좁은 녹음실이지만 넓은 강물 위를 항해하는 마음으로 대화를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작년 10월에 출간된 딩기 님의 동화집 『너구리 마을의 이상한 편의점』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해요. 동화집을 펼쳐보면 작가의 말이 가장 먼저 읽는 이를 맞이하는데요. 제목이 ‘모든 하연이에게’입니다. 이렇게 시작하는 글이고요.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되길 바라지 않아. 네게 가장 소중한 네가 되길 바랄 뿐이야.' 이 두 마디가 사실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다고 보이는데요. 우리나라에서는 곧잘 어린이들에게 나중에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저도 엄청 많이 듣고 자랐어요. 그런데…
○노지영(노평) 그렇게 되셨잖아요.
○김효진(호호) 아유. 무슨 말씀을.
○노지영(노평) 말대로 이루셨나이다.
○김효진(호호) 그것 때문에 엄청 힘들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딩기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나에게 소중한 내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의미 있는 말로 다가와요. 문뜩 딩기 님은 나를 사랑하기 위해 어떻게 하셨는지. 또 어떻게 하고 계신지 궁금하고요. 또 작가의 말에서 ‘모든 하연이에게' 편지를 쓴 배경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노지영(노평) 실은 이 스튜디오 뒤편에서 하연이가 듣고 있습니다. 이모가 말을 잘하는지 안 하는지 검사하려고 지금 쫑긋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요. 기대하겠습니다.
○선영(딩기) 호호 님과 노평 님이 보시다시피 저는 왜소증을 갖고 있습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고요. 12살부터 외할머니께서 키워주셨는데요. 강이나 바다 연안을 벗어날 수 없는 딩기 요트처럼 키위주셨어요. 굉장히 잔잔한 강물에서 떠다녔고 풍랑 한 번 겪지 않고요. 저는 그냥 떠 있었어요. 그러다 어느 겨울 엄마가 병상에 계실 때 옆 침대에 있던 환자분이 저에게 꿈이 뭐냐고 갑자기 물었어요. 저는 문학소녀도 아니었는데 함박눈이 그때 쏟아졌거든요. 창밖을 보면서 작가가 꿈이라고 대답했어요. 동화로 작가의 꿈을 이루면서 유년의 저를 찾은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글을 쓰는 저를 사랑해요. 그리고 또 저를 사랑하기 위해서 글을 쓰고 있고요. 그리고 작가의 말에서 ‘모든 하연이에게' 편지를 쓰게 된 이유는 언제나 하연이가 지금처럼 저를 응원해 주고 있고요. 하연이는 마음속에 수평선을 갖고 태어난 아이였어요.
○김효진(호호) 수평선?
○선영(딩기) 어떤 의미에서 이렇게 말씀을 드리냐면요. 어떤 현상을 볼 때 다른 대상과 비교하지 않고 본질을 바라보는 시선을 지닌 아이거든요.
○노지영(노평) 와, 엄청 직관력이 뛰어난가 봐요.
○선영(딩기) 물론 아이니까 순수함은 당연히 갖추고 있지만 어쩌면 천성적으로 그런 시선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저와 놀이공원에 갔을 때였는데요. 장애인 주차 구역에 주차를 하는데 그때 하연이가 5살이었거든요. “이모, 장애인이 뭐야?" 이렇게 물었어요. 그런데 신비롭게도 그 물음 한 번으로 이모의 장애를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이모는 왜 키가 작은지. 자기가 지금은 갈수록 이모보다 커지고 있는데 그런 걸 좀 다른 시선으로 보지 않고 심지어 같이 이렇게 또 동행해서 어디를 가더라도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하연이 뒤에서 차를 기다리면 양보를 해주더라고요. 장애인을 조금 불편한 사람이구나, 이렇게 포용하는 하연이가 지금처럼 따뜻한 인간애를 지닌 아이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소망을 담아 하연이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어요.
○노지영(노평) 그걸 머리말에 배치하셨군요.
○김효진(호호) 하연이의 반응은 어땠나요?
○선영(딩기) 아, 하연이가.
○노지영(노평) 하연이는요. 제가 아까 물어봤거든요. 그랬더니 “모든 하연이에게 하지 말고 길하연이라고 했어야지."라고 자연의 고유성을 짚어서
○김효진(호호) 그러니까.
○노지영(노평) 이야기를 했다고 하지만 말씀을 듣고 나니까 ‘모든 하연이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면서 이 동화를 시작해 주신 것 같은데 하연이도 모든 이모에게 이제 어떤 식으로 자신이 생각하고 감각한 것들을 또 보여줄 수 있겠는가. 그런 것들을 또 계속 영감을 주는 그런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선영(딩기) 노평 님의 말씀이 정말 맞아요. (일동 웃음)
○노지영(노평) 저 인정받았어요.
○김효진(호호) 오, 축하해요.
○선영(딩기) 오늘 처음 뵀는데 정말 많은 것을 눈이 아닌 마음으로 봐주시는 것 같아요.
○김효진(호호) 그런데 저보다 미리 만나셔서 지금 두 분께서는 라포가 이미.
○노지영(노평) 속닥속닥.
○김효진(호호) 형성된 것 같아요. 제가 소외감이 느껴지네요.
○노지영(노평) 맞습니다. 이따가 밥도 먹을 거예요, 저희.
○김효진(호호) 저는 빼고요?
○선영(딩기) 그렇지만 제가 지난 방송을 들었거든요. 그래서 호호 님의 책을 읽고 왔습니다. 그래서 호호 님에 대한.
○노지영(노평) 라포 형성이 또 탑재가 됐다고.
○김효진(호호) 소외감을 느낀 저를 또 이렇게 배려해 주신다니 따뜻한 분이시네요.
○선영(딩기) 오늘 사인받으려고 준비해서 왔습니다.
○김효진(호호) 민망합니다.
○노지영(노평) 모든 효진이에게.
(일동 웃음)
○김효진(호호) 그러면 작품 이야기로 들어가 볼까요? ‘인형의 소원'이라는 작품이 동화 중에 가장 앞에 배치된 작품인데요. 동화집 순서를 정할 때도 고심을 많이 하잖아요. 독자분들이 이런, 이런 흐름으로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하는 게 있으셨는지요? 그리고 어떤 기준으로 동화집 순서를 정했는지도 궁금합니다.
○선영(딩기) 저에게 안타깝게도 그런 호기심이 없었던 것 같아요. 동화집의 순서의 기준은 없었지만, 동화를 쓰면서 신비로웠던 점은 저의 시간들이 평행으로 배치된 것 같아요. 단지 '인형의 소원'은 처음 쓴 작품이라서 맨 앞에 배치했어요. 애착 인형을 들고 잠든 조카를 보면서 저의 유년기가 떠올랐거든요. 그리고 각각의 작품들은 마치 어린 왕자가 여행했던 여러 행성처럼 제 유년기를 둘러싸고 있는 별들이라고 생각해요.
○김효진(호호) 문학적인 표현이시네.
○선영(딩기) 독자들도 이 동화집을 펼쳤을 때 더 밝게 빛나는 별이 눈에 띈다면 어디든 사뿐히 내려앉아 자신의 유년기의 별들을 돌아보는 여행을 함께 떠났으면 좋겠어요.
○김효진(호호) 와.
○노지영(노평) 제가 덧붙이기가.
○김효진(호호) 그러니까요.
○노지영(노평) 민망하게끔 말씀을 너무 잘해주셨네요.
○김효진(호호) 처음, 왜 가장 먼저 쓴 작품을 뒤에 배치하지 않나요? 약간 부끄러워서?
○노지영(노평) 맞아요.
○김효진(호호) 그런데 이례적이에요.
○선영(딩기) 그렇군요. 뭘 몰랐다는 게 오히려 좋았던 것 같아요.
○김효진(호호) 그러니까요.
○노지영(노평) 저는 단편 동화 ‘인형의 소원'이 제일 앞에 배치되고 마지막에 단편 동화 ‘정찰병 잠자리 슈슈'라는 작품으로 동화집이 끝나잖아요. 그래서 누군가에게 만들어진 이름 없는 인형으로 시작해서 슈슈라는 이름을 가진 바람을 타는 자유를 알게 된 한 생명으로 끝나거든요. 그래서 여기에서 인형이라는 게 애착 인형이라고도 말씀하셨지만, 인형을 만드는 엄마에 의해서 창조된, 여기에서는 아직 특별한 이름도 부여되지 않은 존재예요. 그래서 이 인형이라는 게 어쩌면 작가 선영 님이 창조하는, 딩기 님이 창조하는 동화 작품들을 상징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인간의 형상을 모방한 작은 인형이라는 그런 존재가 인간의 삶의 어떤 친구가 되어줄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소행성들을 우리가 여행하듯이 이렇게 책을 읽게 되잖아요. 그래서 따뜻한 관계가 슬픔을 대하는 서사 속에서 그래서 다른 캐릭터들은 점점 고유의 이름들을 또 갖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동화집의 흐름이 캐릭터들의 서사를 통해서 이름이 부여되는 느낌들이 있어서 저는 좋더라고요.
○선영(딩기) 노평 님의 말씀을 잘 담아서 다음 작품에 더 정진하겠습니다.
○노지영(노평) 정진은 매일 하시는 것을 또.
○김효진(호호) 그러니까. ‘인형의 소원'에 등장하는 인형에게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인형이 되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어요. 그러면서도 자유롭게 날 수 있는 참새를 부러워하죠. 동화는 인형이 밤을 무서워하는 아이에게 가면서 끝이 나는데요. 이 동화를 읽으면서 의무와 자유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람이 그려졌어요. 딩기 님이 생각하는 세상에 필요한 무엇이 무엇인지 궁금하고요. 이 세상에 어떤 마음들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선영(딩기) 호호 님께서 저의 내면의 꿈틀거리는 무의식을 읽어주신 것 같아요. 이번에 제가 ‘인형의 소원'을 다시 읽었는데요. 여기에서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소망은 어쩌면 유년 시절에 엄마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욕구가 인형에게 투영된 것 같아요.
○김효진(호호) 모든 아이들이 그렇지 않나요?
○선영(딩기) 그리고 엄마와의 관계에서 형성되지 못한 자율성을 갈망하며 엄마 참새와 어디든 함께 갈 수 있는 아기 참새를 부러워한 것 같아요. 어떻게 이번에 제가 써 놓고 다시 생각하게 되는 이런 경험을 했습니다.
○노지영(노평) 다시 보니까 이런 의미가? 이러면서.
저는 ‘인형의 소원'이라는 작품 보면서 유년의 자아 형성기에 애착 관계를 이겨내는 태도에 대해서 또 생각해 보게 되더라고요. 왜 우리 찰리 브라운이 나오는 만화 <피너츠> 같은 거 보면 라이너스라는 주인공이 애착 담요를 항상 가지고 있잖아요. 담요를 소지하지 않고 있으면 항상 불안해하는 블랭킷 증후군을 앓고 있거든요. 여기에서 담요라는 게 안정감을 보여주는 상징이잖아요. 자아 형성기에 항상 자신의 곁에 있어 주지 못하는 어떤 어머니와 같은 존재를 대체해서 담요나 인형이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늘 어머니와 같은 품속에서 살아갈 수 없는 게 인간 존재의 비극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유년에서부터 어떻게 인형 같은 다른 존재와 건강한 관계를 맺어가면서 엄마 없는 사회의 두려움을 이겨내는가가 저는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이라고 그렇게 또 생각하기도 하는데요.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하나라는 어른 아이뿐 아니라 그 인형이라는 삶도 엄마를 떠나서 자기 두려움을 이겨내는 존재로 또 그려지고 있고 그래서 내 곁에서 관계 맺는 삶을 모두가 그렇게 함께 두려움을 이겨내고 있는 존재하는 것도 알게 되고, 그래서 세상의 두려움이 또 견딜 만한 것이 된다는 거. 이런 것들을 ‘인형의 소원'이라는 작품이 보여주지 않고 있나.
○김효진(호호) 작가님의 어린 시절이 많은 사람에게 다가가면서 많은 사람의 내면이 되는 것 같아요. 지금 보니까 처음에 굉장히 뭐 의미를 확대해석해서 쓰신 게 아닌데 독자들이 이 작품을 읽으면서 의미가 점점 확대되고, 확장되는 이런 순간을 지금 경험하고 있네요.
○노지영(노평) 우와, 그럼 다음 작품도 한번 들어보면서.
○김효진(호호) 그러니까요. 이어서 표제작 『너구리 마을의 이상한 편의점』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볼까 해요. 이 제목은 어떻게 정해졌나요?
○선영(딩기) 평소에 조카하고 편의점 가는 걸 좋아하는데요. 특히 편의점에서 각종 젤리를 자주 사 먹어요.
○노지영(노평) 저랑 똑같으시네요, 취향이.
○선영(딩기)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공간에서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펼치고 싶었어요. 그리고 제 고민 중의 하나를 말씀드리면요. 저는 행복하지 않아도 저도 모르게 웃음을 잘 지어요. 물론 이렇게 활짝 웃는 웃음은 아니지만, 표정 관리를 하려고 해도 잘 안되는 것 같아요. 정말, 정말 기뻐서 나오는 웃음 이런 웃는 표정을 하고 싶은데 얼굴에 늘 웃음이 번져 있어요. 그래서 조금 재미있는 생각을 했어요. 저와 반대로 웃음이 잘 지어지지 않는 사람들이 웃음 점액이라는 특수 그런 제품을 살 수 있는 이상한 편의점을 설정하고 이 제목을 짓게 되었어요.
○김효진(호호) 저는 거꾸로 상상했거든요.
○노지영(노평) 어떻게요?
○김효진(호호) 작품을 보면서 송곳니가 난 케이스처럼 엄청난 슬픔을 간직하고 있지 않았을까, 이렇게 생각했거든요.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네요.
○노지영(노평) 가면성이 있는 작품이라고 우리가 얘기하고 있지 않습니까? 편의점이라는 공간이 현대인들에게는 가장 익숙한 공간이면서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또 표정이 없는 공간이잖아요.
○김효진(호호) 그렇죠.
○노지영(노평) 그래서 자본주의의 익명성이나 편의주의적 속성을 가장 잘 반영한 공간이라고 저는 생각을 하는데요. 이 동화는 그 표정 없이 인간들이 스치고 마는 그 장소에서 잃어버린 웃음의 향방을 좀 찾고 있잖아요. 그래서 쓸쓸하다면 쓸쓸한 편의점을 각자의 서사와 진정한 관계를 발견하는 만남의 공간으로 전환시키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진짜 이상한 편의점이 되는 게 아닌가. 그래서 장소성의 재발견, 장소성의 다시 쓰기라는 측면에서 제목부터 저는 참 흥미로웠어요.
○김효진(호호) 아까 표정 관리가 안 된다고 하셨는데.
○노지영(노평) 웃상이신데.
○김효진(호호) 웃상인데 실제로 웃을 일이 아닐 때도 안 웃어지지가 않는다는 그런 의미예요?
○선영(딩기) 기본 표정이 너무 웃고 있지 않나. 제가 스스로 저를 봤을 때.
○김효진(호호) 그 솔직한 표정이 나오지 않는다? 이런 의미예요?
○선영(딩기) 무표정하고 싶을 때가 생기더라고요. 나이가 들면서.
○김효진(호호) 무표정이 안 된다. 그러니까요.
○선영(딩기) 그런데…
○노지영(노평) 저한테 계속 웃어주신 게 그러면. 제가 약간 의심하고 봐야 하는 건가요?
○선영(딩기)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웃음)
○노지영(노평) 아닌가요?
그런데 말씀하신 어떤 내용들에 공감하면서도 우리가 진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편의점이라는 공간이, 우리가 아니고 저군요. 참 이렇게 각박했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각자의 렌즈로 또 보이는 게 이렇게 다르구나 싶기도 하네요.
○김효진(호호) 그러네요. 여기 『너구리 마을의 이상한 편의점』에서는 웃음을 담은 봉지, 그러니까 웃음 봉지로 물건값을 계산하잖아요. 이 웃음 봉지라는 발상 자체가 정말 기발한데요. 편의점 주인인 하마와 새끼 너구리는 소중한 이를 잃고 웃을 수 없게 됐죠. 그리고 긴 송곳니가 뾰족하게 나기 시작했는데요. 이 작품은 딩기 님의 데뷔작이기도 한데요. 어떤 계기로 이 작품을 쓰게 되셨는지요.
○선영(딩기) 제가 복지관에 수영을 하러 다니는데요. 어느 날 복도를 걷다가 벽에 붙어 있는 슬로건을 봤는데 거기에 ‘함께 울고, 함께 웃는'이라고 써 있었어요. 걸으면서 계속 생각했죠.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눈다는 것은 곁을 내주는 관계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같은 상처를 갖고 있는 것만으로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줄 수 있고 그 슬픔을 발산시킬 힘을 서로에게 얻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면서 웃음 점액을 마시는 순간도 서로가 함께한다면 비로소 진정한 웃음을 되찾을 수 있고 완성된 치유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이 편의점에서는 손님들에게 물건값 대신 웃음 봉지를 파는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김효진(호호) 편의점이라는 공간과 마찬가지로 복지관이라는 공간도 재해석을 하고 계시는 것 같아요. 인권운동 하는 장애인들 사이에서는 복지관이 없어져야 할 공간, 이렇게 보거든요. 왜냐하면, 그 안에 장애인들의 주체성이 발휘되기 어렵고 계속 서비스의 수혜자, 대상자로만 존재하는 공간 이렇게 많이 보고 있거든요. 그런데 딩기 님 말씀을 들으니까 이 공간에서 곁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무언가 나눌 수 있는 이런 공간. 처음 들어봐요.
○노지영(노평) 정말요?
○김효진(호호)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선영(딩기) 저도 놀랍습니다.
○김효진(호호) 지금 저희가 완전히 극과 극의.
○노지영(노평) 두 동화 작가분들이 이렇게 다른 색깔과 다른 생각으로.
○김효진(호호) 그런데 문학이 그런 장르인 거죠. 똑같이 보지 않잖아요. 어떤 사물도, 어떤 공간도, 어떤 사람도. 갑자기 놀랐어요.
○선영(딩기) 제가 호호 님의 책을 다 읽고 난다면 그쪽 편으로 기울 것 같은데요? 제가 챕터를 몇 군데…
○김효진(호호) 그러지 마세요. 딩기 님의 색깔과 이것을 계속 발전시키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노지영(노평) 저는 너무 동화를 또 어둡게만 읽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저라는 사람의 렌즈에 대해서도 또 생각하게도 되는데요.
○김효진(호호) 어떻게 어둡게?
○노지영(노평) 저는 전반적으로 이렇게 죽음, 상실, 기억의 문제 이런 것들을 지속적으로 좀 다루고 계신 게 인상적이었거든요.
○김효진(호호) 네, 맞아요.
○노지영(노평) 그래서 동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되게 트라우마적인 주체잖아요. 잊히지 않은 채 머릿속에 고집스럽게 존속하는 끔찍한 잔상에 시달리고 있잖아요. 예를 들어 먹이를 구하려다가 올무에 걸려 엄마를 잃은 새끼 너구리. 엄마를 잃은 원초적 장면이라는 게 지속해서 끔찍하게 재생되는 그런 모습들이고 그것이 일상을 지배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그것에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칠수록 엄마 몸에 올무가 계속 더 조였던 그런 기억, 이런 것이 하나의 원초적인 장면이고 또 하마도 스트레스를 받은 어른 하마의 몸싸움 속에서 새끼를 잃었던 트라우마에 시달리잖아요. 그래서 그런 기억들이 신체의 어떤 방식으로든 새겨져서 웃음을 잃고 송곳니가 기형적으로 자라는 신체적인 변화까지 오게 되는데 이런 우리가 가지고 있는 내면의 송곳니, 이러한 것들 속에서 어떻게 마스크 뒤에서 우리가 감춰져서 사는 그런 슬픔의 자리. 이런 것들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저는 그런 생각들을 계속하면서 동화를 좀 읽었던 것 같아요.
○김효진(호호) 저는 그런 주제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동화에서 다루기 어려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어둡지 않아서 놀랐어요, 오히려.
○노지영(노평) 맞아요. 그것이 또 미덕이기도 하죠.
○김효진(호호) 그러니까요.
○노지영(노평) 그런데 우리가 슬픔의 자리인 송곳니 같은 것들을 지속해서 바라본다는 게 어떻게 보면 현재를 되게 파괴하는 일이잖아요.
○김효진(호호) 그렇죠.
○노지영(노평) 그런데 편의점에서 그래서 몇 그램씩의 웃음을 사들이면서 현재의 삶을 살아가려는.
○김효진(호호) 그러니까.
○노지영(노평) 그런 주인공의 모습이 저는 또 되게 슬프게 느껴지기도 했던 것 같아요. 웃음이라는 게 그램으로 측정 불가능한 그런 것들이잖아요. 그러면서 그 안에서 어떻게 하면 내가 기억을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과거의 슬픔에 침윤되는 게 아니라 끔찍한 기억 속에 가려진 행복한 순간에 대해서 좀 끄집어내면서 오늘의 내가 과거에 내가 어떻게 화해할 수 있는가, 이런 주제들을 이렇게 샤방샤방한 동화로 다룰 수 있다는 것, 깊이 있게 다룰 수 있다는 것에 되게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 또 읽었죠.
○김효진(호호) 『너구리 마을의 이상한 편의점』에 우리가 깊이 지금 들어가 보았는데요. 벌써 1부 마칠 시간이 되어서.
○노지영(노평) 그런가요?
○김효진(호호)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이 남았잖아요. 아쉽지만 2부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더 하도록 하겠습니다. 딩기 님, 을 보고 듣는 분들께 1부를 마치면서 인사 부탁드릴게요.
○선영(딩기) 제가 에 이렇게 초대되어서 노평 님과 호호 님께서 제 작품들을 읽어주신 이 깊이 있는 감상평을 듣고 제가 또 굉장히… 굉장히 놀라움이 지금 일고 있는데요. 제자리에 둥둥 저 떠 있었거든요? 동화를 쓰고 나서도. 그런데 의 바람길을 타고 새로운 항해를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또 애청자님들께서 등 뒤에서 보내주시는 응원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서 신이 납니다.
○노지영(노평) 어머, 막 동화 구현하는 듯한 느낌?
○김효진(호호) 그러니까요. 2부에서는 날아가시는 거 아니에요, 혹시?
○노지영(노평) 바유타법으로? (웃음)
○김효진(호호) 그러면 2부에서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시즌5 제3회_선영 작가편(1부) 프로그램 소개]
마음속에 사랑하는 사람들의 발자국이 가득 차길 바라는 작가, 선영 작가와 함께했습니다.
저신장장애인 유년의 이야기, 판타지의 세계를 여행하는 아이처럼 상상력을 펼친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실래요?
○ A의 모든 세상
매월 장애 이슈를 들려드립니다. 3회의 주제는 ‘패럴림픽’입니다.
○ A의 특별한 손님 | 선영 작가
2020년 『월간문학』 동화 부문 신인작품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동화집 『너구리 마을의 이상한 편의점』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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