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사실은
까마득한 절벽을
기어오르는 것
손끝이 쓰라리고
온몸이
벌벌 떨립니다.
힘없는 다리에
경련이 일어납니다.
사실은
힘들고 자신 없습니다.
늘 일해야 하고 절해야 합니다.
늘 이러고 싶고 저러고 싶습니다.
아직도
휠체어가 민망하고
아직도
크지 못한 마음이 있어
슬퍼합니다.
개 같은 세상.
잠시라도 힘써 줄 바람이 곁에 온다면
하얀 세상을 만날 꿈을 꾼다.
던져진 세상에서 이루지 못할
개꿈이라도
한 번쯤은 그러하고 싶다.
한 번쯤
두 팔 휘저으며 걷고 싶다.
한 번쯤
구두 신고 치마 입고 싶다.
한 번쯤
친구와
대중 목욕탕에 가보고 싶다.
한 번쯤
좋은 사람과
바다에 가고 싶다.
한 번쯤.
한 번쯤은 다른 사람들처럼
씩씩하게
다른 여자들처럼 그렇게 화장하고
치마 입고
예쁘게 보이고 싶다.
욕심보다
용기 적은 비겁함 바보가
꿈을 꾸며 주먹질한다.
다 나와
빌어먹을
희망을 뭉쳐
하늘 낮자에 던진다.
다리에게
어느 누가
나만큼 종종거리며
살았다 한들
너만큼이랴
하고 싶은 것도
할 일도 많았지만
너만큼 고단했으랴
고운 마음 키워 주지 못한 것이
누구 탓이든
오늘을 주물러
내일을 간다.
힘없고 아찔해도
인생길 어제와
오늘 또 내일
누군가
병신이라 내친다 한들
귀여워오를 오기
가진 것이
너 말고 또 있으랴
장애인
극복하는 것이 아니다.
체념하거나 포기하거나
인정하거나
최면을 걸거나
순간 순간 참는다.
사람들이 오해하는 건
뭔가를 해야만 대단하고
웃어야 천사 같고
교회 잘 다녀야 복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
장애를 입고 이 땅에 산다는 것
그것 하나로도 장애인은
세상을 이기며 가고 있다는 걸
그들은 모른다.
칼자루를 쥐이고
나를 잡으라고 윽박지르는
사회의 편견.
은근한 우월이 낳은 베네.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 만들어내
휘두르는
무심한 칼날에
피 흘리며 죽어가는 웃음.
그들이 정해 놓은
극복의 틀 안에 끼울 또 하나의
사례를 찾아
모니터에 매달고
다행이야.
치근함 한 푼을 던지며
베네 한번 추가한다.
장애인의 삶은
견고한 편견과 맞서
치열한 시간 속을 외롭게 걸어가며
새벽을 기다리는 것.
극복이 아니다.
언제나 주어진 하루하루는
투쟁일 뿐이다.
세상
열린 문 밖에는
어떤 사람은 멋진 몸을
어떤 사람은 예쁜 얼굴을
어떤 사람은 훤칠한 키를
어떤 사람은 아담한 귀여움을
어떤 사람은 명석함을
어떤 사람은 부유함을
각자
자기가 가진 외모와 지성으로
시절을 부리며
노래한다.
닫힌 문 안에는
안 보이는 사람이
걷지 못하는 사람이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바보라 불리는 사람이
키가 아주 작은 사람이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이
오늘도 또 뽐내는 세상을
사랑해.
손을 뻗어 하나되기를 바라며
봐주지 않고
들어주지 않아도
시절을 춤추고
노래한다.
평등
장애를 비관하지 않는다.
장애인을 배제해 버린 환경과 법
제도를 비관한다.
장애인이 죽음을 선택하면
장애를 비관해 선택했다고
떠들어댄다.
아니다.
천의 시설의 부재와
변하지 않는 혐오와
차별의 벽이 우리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장애인은
봉사 활동의 선택지가 아니다.
선택해야 할 것은
차별을 깨부수는 법과 제도이다.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같은 출발선에 서고
뒤처지지 않는 환경에서 사는 것이
평등이다.
대학로 노숙 예수
온종일을 기다려
온종일 어둠이 내려 보이지 않을 때까지
살기 위해
누군가의 사랑이 되고
살기 위해
누군가를 사랑한다.
평화를 주기 위해 예수가 이 땅에 오고
사랑하기 위해 자선 냄비가 울고
피 묻은 옹기에
먼지 피어오르는 뒷골목엔
소주병이 나뒹굴고
얼어붙은 손끝엔
쓰레기 고름이 줄렁거린다.
때론 슬프다 하여도
때론 아프고 외로워도
은총의 노래는 가물가물.
포근한 평화도
붉은 사랑도
반짝이는 별보다
높고 멀다.
거리마다 사람으로 발등이 밟혀도
아무도 부르지 않는 내 이름 석 자
하도 오래 묵혀
가슴에도
머리에도
이젠 없다.
메리 크리스마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가 내리는 밤.
인정 없는 뒷골목엔
매몰찬 바람만
구유도 없이
늙어가는 가난을 우려
폭식하고
겨우 남긴
낡은 구두 한 짝
쓰레기통에 처박는다.
부서진 낙엽을 모아 올리며
조롱하는 너.
메리 크리스마스.
비 오시는 날
장마철입니다.
옛날 우리 할머니는
비님이 오신다고 했습니다.
귀한 손님이라
곱게 말해야 한다고 반기며
분주한 마당 곳곳 처마 밑에
모아둔 빈 깡통들을 받쳐둡니다.
해가 나면 모아둔 빗물로
목욕도 하고
머리도 감고
빨래도 하고
마당에 뿌려 주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고맙냐?
할머니는 말하지만
물비린내 풀풀 나는 모인 빗물로
목욕하는 게 싫어서
많이 울었던 건
끝내 모르셨습니다.
제 배가 씻기 싫어한다고
참 모질게도 때리셨지요.
그때는
그래서 싫었습니다.
오늘 또 비가 옵니다.
불 걱정 없는 요즘
우산을 쓸 수 없는 나는
비가 오면 한숨을 쉽니다.
비설거지 해 주실 할머니도 안 계시고
모아둔 깡통도 없고
물 떨어질 처마도 없네요.
빗물로
목욕할 일도 없는데
싫은 마음이 앞서는군요.
매일 아침 출근길에
차가 밀리거나
비 맞을 일이 걱정되고
하루 머리가 끊길까
걱정됩니다.
잃어버린 시간.
많은 날들이
살림문을 흔들어 놓고 떠났습니다.
돌아보며
고챙이 하나씩
숨구멍을 틀어막아
낡은 추억 하나씩 꿰고
낮게 웅얼거리는
악착
이젠 가거라
쓸며 놓아줍니다.
살아서 달려온 정막한 매.
살 비린내가 배어
굼틀거리는 생애의 그림자가
꺾임 없이
들어옵니다.
쓸모없어진 자궁을 드러내고
기막혀 꺾거리던 심장에선
자갈 부딪혀 깨지는 소리가
정정쟁 울리고
한때는 생글거리며 안겨오던
그녀의 면사는
빌리고 검게
만장 장에 새겨져 벌이며
죄를 넘어갑니다.
이젠
꿈도 길을 잃었습니다.
이젠 마음도 없습니다.
이젠 눈물도
이별도
사랑도
찾거나 오지 않습니다.
살림문을 치고 가는
세월의 편린들을
본 듯
미동도 없던 햇살이
비춰 주고 가네요.
지친 날이 칭얼거리며
지나가네요.
어디에도 없습니다.
당신의 모습은
언뜻
지나가며 웃는
볼 밝은 개집배의
자박이
가슴을 치고
떠나네요.
살아야겠습니다.
스치는 겨울바람의 차가움이
귓볼을 찍고 지나던 아침
등 뒤에 늘어진 그림자에
힘없이 굽은 어깨를 보았습니다.
모르는 사이에 굽었을까요?
분명
꽃이 허리 세우고
어깨 펴며 살았던 것 같은데
꼬리뼈처럼 따라오는 세월이
힘겨웠던가 봅니다.
열심히 살았습니다.
처음 사랑을 만나
문방구에 보따리 살림을
그 사랑은 배고픔을 지울 만큼
매일매일
감동의 아침을 맞았습니다.
사랑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며
새 가족을 선물받고
또 그 기쁨에 겨워
정말 힘든 줄 모르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아직 갈무리해야 할 것들이
산처럼 내 앞에 있지만
든든한 내 사랑은
이제 늙었나 봐.
한마디 던지며 해를 등져
얼굴 주름 한가득 웃음으로
사랑 보내며 행복해합니다.
어느덧
희끗해진 정수리의 빈자리가 보이고
손끝 까슬함이 가실 날 없는
애비 애미가 되어
문득 돌아본 뒷자리가
밉지만은 않아서
참 다행입니다.
반생을 넘어선 오늘
남긴 것도 가진 것도 하나
예쁘게 커준 아이들뿐입니다.
무엇을 하고
무엇을 위해 살았을까?
돈도 없고 명예도 얻지 못했지요.
지나온 그림자를 보며
후회해야 하나 위로해야 하나
생각할 것도 없이
보듬으며
굽은 등을 토닥여 주렵니다.
지금도
여전히 감동 주는 행복이
작은 방 안에 가득 차
둘이 아닌 넷이 되었으니
밑지는 장사는 아닌 게 분명하지요.
행복은
평안함 속에 있습니다.
평안함은
작은 감동이 주는 파동입니다.
비록
빈 주머니일지라도
주먹을 펴면
그 안에 따뜻하게 숨어 있는
사랑이 있습니다.
한바탕 주위 속에
주먹을 꼭 펴
담아
살며시
잡아봅니다.
안녕하세요. 책 읽어 드리는 집사
백종환입니다.
오늘의 시집은
60대 장애 여성으로
배제와 차별, 학대와 혐오가 만연한
세상에 살아남은 생존자라고 소개한
박정숙 시인의 시집
통증일기였습니다.
박정숙 씨는
외롭고 어두운 유년을 보냈고
생존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20여 년간 봉제 노동자로 살았다고
본인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2013년
노들 장애인 야학을 알게 되었고
초·중·고등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졸업했고요.
현재는 사단법인 노란들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박정숙 씨는
마음이 서렁거리면 일기장을 펼치는데요.
깊은 슬픔이나 기쁨,
매정함과 환대 속을 오가며
왠지 모를 통증으로 채워지던 날들을
일기로 쓴다 합니다.
이 글들을 묶어
통증일기란 시집을 내놓았는데요.
어린 시절 처음으로 미끄럼틀을 타던 날
올라가서 벌벌 떨며 울고
내려오지 못해 울다가
누군가 등을 밀어 내려왔을 때
안도하며 싱긋 웃었던
그날의 기억처럼
시집 통증일기는
박정숙 시인 인생의 한 매듭이었다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박정숙 시인의 통증일기
어떠하셨는지요?
공감 100%,
같은 마음 아니셨습니까?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음악]
오늘의 시집은 60대 장애여성으로 배제와 차별, 학대와 혐오가 만연한 세상에 살아남은 생존자라고 소개한 박정숙 시인의 시집, 『통증 일기』였습니다. 박정숙 시인은 외롭고 어두운 유년을 보냈고 생존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20여년간 봉제 노동자로 살았다고 본인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2013년 노들장애인야학을 알게 되었고 초·중·고등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졸업했고요. 현재는 사단법인 ‘노란들판’에서 일하고 있다합니다. 박정숙 시인은 마음이 술렁거리면 일기장을 펼치는데요. 깊은 슬픔이나 기쁨, 매정함과 환대 속을 오가며 왠지 모를 통증으로 체감되던 날들 일기를 쓴다합니다. 이 글들을 묶어 『통증 일기』란 시집을 내 놓았는데요. 어린 시절 처음 미끄럼을 타던 날 올라가서 벌벌 떨며 울고 내려오지 못해 울다가 누군가 등 떠밀어 내려왔을 때 안도하며 씽긋 웃었던 그 날의 기억처럼 시집 『통증 일기』는 박정숙 시인 인생의 한 매듭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박정숙 시인의 『통증 일기』어떠하셨는지요. 공감 100%, 같은 마음이셨지요?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제목 : 통증 일기
저자 : 박정숙
출판사 : 끌레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