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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명 <누구야오늘놀기딱좋아쉴게맥주먹자(feat.결혼하고싶어)>

리뷰 일상 속 관계 맺기와 공존의 경험

  • 장윤정 연극평론가
  • 등록일 2022-09-28
  • 조회수1135
  • OH명 <누구야오늘놀기딱좋아쉴게맥주먹자(feat.결혼하고싶어)>의 한 장면. 한 여성이 꽃다발을 안고 행복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주택가 골목 끝자락 출입문, 초인종을 누르자 우성이 반긴다. 기꺼이 발을 들여 현관문을 열면, 덥석 손을 잡아 이끄는 세계가 있다. 소담한 정원과 두 마리의 고양이가 주인인 곳에 소규모 인원이 모여 집안이 복작거리기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말을 건네는 배우들 덕에 낯선 공간은 어느새 친근한 분위기로 변해간다. <누구야오늘놀기딱좋아쉴게맥주먹자(feat.결혼하고싶어)>(이하 <누구야>)는 시작부터 세상의 모든 경계를 와해시키고 있었다.

OH명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누구야>는 OH명의 집들이에 관객이 초대받아 함께 소통하는 형태의 이머시브 공연(immersive theater)이다. OH명은 섬, 윤지, 소정, 소희, 우성으로 구성된 팀으로, 5명이자 OH!명이자, 애(愛)명이다. 이 창의적인 팀명은 소정의 발견이며, 작품은 ‘일을 하고 싶다’는 소정의 의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소희의 쌍둥이 동생이자 발달장애인인 소정은 작품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는다. 소정과 함께 일할 사람들이 모여 OH명 팀이 형성되었고, 소정과 일하는 과정을 담아낸 작품이 <누구야>이기 때문이다.

공연은 손님이 된 관객이 집안 곳곳을 둘러보고, 자신이 불리길 원하는 이름을 직접 지어 공유하며, 거실에 모여 앉아 배우와 함께 소통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웰컴 드링크를 마시며, 때때로 TV에서 송출되는 영상을 보고, 배우가 소개하는 이야기를 듣는데, 모든 과정의 중심에는 소정이 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관객을 향한 소정의 자연스러운 손 잡기다. 배우들이 소정과 관객에게 상황을 충분히 설명하면서 관객에게 손잡는 행위에 대한 허락을 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사실 <누구야>는 이 행위 하나만으로 모든 것이 전달된다.

소정은 상대가 누구건 호기심과 친근한 태도로 다가간다. 그리고 자신의 호감을 손 내밀기로 표현하는데, 그 손을 잡는 것에서부터 상호 간 무언의 소통과 교류가 시작된다. 소정이 자주 하는 말은 “누구의 친구야?”라는 물음이다. 그것은 ‘우리, 친구가 되면 좋겠다.’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관객은 자신에게 직접 말을 건네는 소정과 눈 맞춤을 하고 소정의 손이 따뜻함을 느끼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그간 추상으로 이해했던 대상을 현존하는 존재로서 깨닫게 된다. 요컨대, 장애인을 다른 세계의 관념적인 존재가 아닌 구체적으로 실존하는 동(同)세계의 구성원임을 직관적으로 감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 지점은 장애·비장애의 경계가 허상임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상대에 대한 앎이 모든 경계를 무화시키는 까닭이다.

<누구야>는 소정과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OH명의 시간을 관객이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작품이다. 공연이 진행될수록 관객은 이들의 세계에 정서적으로 동화되어간다. 소정이 인식하는 세계와 소정이라는 인물의 세계 속으로 발을 들이다 보면, 소정 또한 상대의 세계로 조금씩 다가온다. 공연이 마무리될 즈음에는 어느새 ‘친구’라는 상호 수평적인 관계가 형성되는데, 개개인이 모여 알지 못했던 서로의 세계를 발견함으로써 관객은 삶의 외연이 확장됨을 경험한다. 이로써 작품은 관계 맺기의 감각을 통해 공존의 가치를 전달하고 있었다.

권리를 가질 권리

한나 아렌트의 ‘권리를 가질 권리’를 바탕으로, 토빈 시버스(Tobin Siebers)는 『장애 이론』(2019)에서 장애인에게 주어져야 할 권리의 필요성과 가치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인권의 가치는 장애에 대한 이론적·실천적 인식에서 형성되며, 보편적인 인권은 장애인의 권리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누구야>는 이 지점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소정은 일하고 싶어 하며, 일을 하기 위해 팀이 꾸려졌고, 연극이라는 일을 해냈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장애인에게 주어지지 않는 ‘일할 권리’와 ‘일’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노동 사회에서 장애인은 쉽게 배제되는데, 생산성에 대한 의심과 자본주의에 따른 효율 지상주의 태도가 장애인의 일할 기회를 박탈하기 때문이다. 특히 발달장애는 신체적 장애보다 상대적으로 한층 더 주변부에 놓여, 노동자로서 고려조차 되지 못하곤 한다. 권리를 가질 권리가 요구되는 지점이다.

<누구야>는 앞선 문제의식과 관련하여 유쾌한 방식으로 방향성을 찾아간다. 근본적으로 일에 대한 정의를 다시 생각한 것이다. 이들은 소정이 할 수 있는 것과 잘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생산해내는 가치에 주목한다. 이 지점은 마냥 소정을 돕는 것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에 가깝다. 생소했던 장애인과의 만남에서 친구 소정이 되기까지, 섬, 윤지, 우성은 각자 자신들이 경험한 소정과의 시간을 묘사한다. 소희는 소정의 가족으로서 소정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과정을 고민한다. 그리고 이들은 공존하는 방법을 터득해가는데, 그 끝에서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소정에겐 애니메이션 짱구의 대사를 완벽하게 기억해내고 억양까지 동일하게 흉내 내는 능력과 부르는 노래에서 오롯이 전달되는 진심의 능력이 있다. 이 능력의 근원은 ‘좋아하는 것’이다. 작품 제목이 긴 까닭이 여기에 있는데, ‘누구야’ ‘오늘 놀기 딱 좋아’ ‘쉴게’ ‘맥주 먹자’ ‘결혼하고 싶어’는 OH명 구성원 각자가 좋아하는 것을 종합한 명칭이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좋아하는 것’으로 구성된 ‘일’인 셈이다.

일이 꼭 싫고 고달파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것들로 구성하여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내면 그것으로 이미 일인 것이다. OH명은 소정과 함께 일을 하기 위한 방법들로 산책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맥주를 먹고, 노래방을 간다. 그것이 종합되어 공연으로 완성되었고, 소정을 비롯한 OH명 팀원들은 연극을 ‘일’로서 인식하며 행위한다. 관객은 이 연극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변화를 경험하며 사유의 폭을 넓히고, 창작자는 공연으로 인한 수익까지 창출하니, <누구야>는 분명 일의 일환이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은 사회적 구성원으로서 발달장애인의 노동 사회 참여를 실천하는 플랫폼의 역할을 하고 있다. 자연히 일의 의미와 가치, 장애인의 일할 권리에 대하여 되짚어보게끔 하는데, 작품은 그 방안으로 공동체 형성하기를 제시한다. OH명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회활동을 하는 방법을 찾아 나가면서 사회적 가치를 창출했고, 이 지점은 자본주의 사회가 그토록 바라마지않는 생산성이 장애인을 소외하지 않는 태도로써 향상될 수 있음을 방증한다. 이것만으로도 장애인의 일할 권리를 위한 권리의 중요성을 사회가 고려해야 하는 충분한 까닭이 된다.

공연 밖의 세계로 이어지는 관계성

<누구야>는 몸소리말조아라센터에서 진행되었다. 몸소리말조아라센터는 예술가 조아라의 집이자 창작공간이다. 엄밀히 살피자면 그 형태가 가정집이므로, <누구야>는 무대의 전형성에서 벗어난 작품이라고 해야겠다. 이 지점은 장애예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객석과 무대의 구분이 분명한 극장 공간은 물리적으로 경계를 명확히 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장애예술인과의 거리감을 인식하게 만든다. 이러한 형태는 연극이란 가상의 세계에 공존하더라도 장애와 비장애 사이의 경계를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하는 한계가 있다. 반면에 어떤 구분도 없는 공간이자 일상의 공간인 집은 상호 간의 경계를 와해시키므로, 장애·비장애 세계의 구분이 불가능해지고 같은 공간에 함께 존재하는 감각을 형성한다. 무대를 바라보는 방식인 일방향의 시선이 아니기에 상대를 대상화하는 것 또한 불가능해진다. 자연히 일상의 공간은 장애예술을 전달하기에 적합한 공간이 된다. 장소 못지않게 각 배우의 일상적인 태도 또한 중요했다. 배우들은 각자 흔히 취할 법한 일상의 행동들로 공간을 채웠고, 덕분에 관객은 이들의 그리고 장애인의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전체적으로 일상의 힘이 세계의 경계를 허무는 데에 근본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공연은 일관하여 유쾌하고 즐거운 분위기를 이어간다. 현장에서 연주되는 곡과 함께 부르는 노래, 즉흥적으로 발생하는 상황 등이 흥미를 유발한다.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요소가 약속된 장치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발달장애인인 소정은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인지하고 약속된 역할을 수행해내고 있었다. 이 지점은 공연예술에서 발달장애인의 활동 가능성에 대해 가늠하게끔 한다. 공연예술 현장에서 장애예술인의 참여가 점차 활발해지는 가운데에 발달장애예술인의 활동은 다소 드문 편에 속하는데, 연극적 약속을 수행해낼 수 있는가에 대한 불안함이 이들의 활동을 위축시키는 것은 아닌가 짐작된다. <누구야>는 이러한 질문에 소규모 형태,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관계의 작업자, 반복되는 과정과 유연한 방식, 공동체의 구성 등으로 답을 찾아 긍정적인 가능성을 실현해냈다. 이것은 발달장애예술인뿐만 아니라 함께 참여하는 구성원의 역할 또한 중요함을 보여준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창작방식을 구축해나가는 것에 기꺼이 동참할 이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OH명의 등장은 반갑고 기대를 모은다. 어쩌면 이들의 활동이 장애예술의 지평을 확장해나가는 데에 유의미한 역할을 하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공연이 끝난 후 관객은 참여자들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고 이 방 저 방 전시된 소품들을 둘러보며 OH명 의 세계를 더욱 세밀하게 알아간다. 끝내 현관문을 나설 때가 되면, 들어설 때와 동일하게 소정이 선뜻 손을 내민다. 이번에는 그 손을 이쪽에서 덥석 잡으며, ‘친구가 되다’라는 말을 나눈다. 연극적 약속이 아닌, 공연이 끝난 후 현실에서 한 약속이므로 이 관계성은 문밖까지 이어질 것이다. 일상으로의 초대에서 일상과 연극 이상의 것을 만났으니, 문밖을 나설 때면 그동안 알던 세계보다 더 풍부한 세상을 보게 되리라 믿는다. 어쩌면 문 너머의 존재들 또한 그러하지 않을까. 그저 동력을 잃지 않고 지속해서 다음을 약속할 수 있게 되길 바라며, 다양한 관객이 OH명과 만날 수 있길 기원한다. OH!

  • OH명 <누구야오늘놀기딱좋아쉴게맥주먹자(feat.결혼하고싶어)>의 한 장면. 한 여성이 꽃다발을 받고, 3~4명씩 마주보고 앉은 다른 사람들은 박수를 치고 있다.
  • OH명 <누구야오늘놀기딱좋아쉴게맥주먹자(feat.결혼하고싶어)>의 한 장면. 12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여앉아 한 여성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누구야오늘놀기딱좋아쉴게맥주먹자(feat.결혼하고싶어)

OH명 | 2022.9.6.~9.7. | 몸소리말조아라센터

연출 박소희는 작년 한 해 동안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해 고민했다. 문득 쌍둥이 동생이자 발달장애인인 소정이 "일을 하고 싶다."라고 말했던 게 떠올랐다. 소희는 소정과 함께 일을 하기로 결심했고 함께 일을 할 사람들을 모았다. 무엇을 할지는 모르겠으나, 무언가를 해보려고 한다. 펼쳐지는 순간들에 뛰어들어보려 한다. 다섯 명에서 오명에서 OH명이 되기까지의 순간을 모두와 함께하고 싶다. 우리의 움직임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모두와 함께 하는 순간은 확실히 재미있을 것이다. 출연_박소희 김섬 김윤지 박소정 이우성 | 제작_박소희(연출) 신민승(드라마터그) 계은영(디자이너) 김채은(음악)

공연정보 바로가기(링크)

장윤정

연극비평집단 시선 소속 연극평론가. 모든 창작물에는 나름의 미덕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 믿음을 바탕으로 공연에 대한 글을 쓴다. 재미난 공연을 두고서 재미없게 쓰는 것에 고민이 많다. 사람과 글이 함께 성장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yjlife1@gmail.com

사진 제공.OH명

2022년 10월 (35호)

장윤정

장윤정 

연극비평집단 시선 소속 연극평론가. 모든 창작물에는 나름의 미덕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 믿음을 바탕으로 공연에 대한 글을 쓴다. 재미난 공연을 두고서 재미없게 쓰는 것에 고민이 많다. 사람과 글이 함께 성장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yjlife1@gmail.com

상세내용

  • OH명 <누구야오늘놀기딱좋아쉴게맥주먹자(feat.결혼하고싶어)>의 한 장면. 한 여성이 꽃다발을 안고 행복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주택가 골목 끝자락 출입문, 초인종을 누르자 우성이 반긴다. 기꺼이 발을 들여 현관문을 열면, 덥석 손을 잡아 이끄는 세계가 있다. 소담한 정원과 두 마리의 고양이가 주인인 곳에 소규모 인원이 모여 집안이 복작거리기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말을 건네는 배우들 덕에 낯선 공간은 어느새 친근한 분위기로 변해간다. <누구야오늘놀기딱좋아쉴게맥주먹자(feat.결혼하고싶어)>(이하 <누구야>)는 시작부터 세상의 모든 경계를 와해시키고 있었다.

OH명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누구야>는 OH명의 집들이에 관객이 초대받아 함께 소통하는 형태의 이머시브 공연(immersive theater)이다. OH명은 섬, 윤지, 소정, 소희, 우성으로 구성된 팀으로, 5명이자 OH!명이자, 애(愛)명이다. 이 창의적인 팀명은 소정의 발견이며, 작품은 ‘일을 하고 싶다’는 소정의 의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소희의 쌍둥이 동생이자 발달장애인인 소정은 작품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는다. 소정과 함께 일할 사람들이 모여 OH명 팀이 형성되었고, 소정과 일하는 과정을 담아낸 작품이 <누구야>이기 때문이다.

공연은 손님이 된 관객이 집안 곳곳을 둘러보고, 자신이 불리길 원하는 이름을 직접 지어 공유하며, 거실에 모여 앉아 배우와 함께 소통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웰컴 드링크를 마시며, 때때로 TV에서 송출되는 영상을 보고, 배우가 소개하는 이야기를 듣는데, 모든 과정의 중심에는 소정이 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관객을 향한 소정의 자연스러운 손 잡기다. 배우들이 소정과 관객에게 상황을 충분히 설명하면서 관객에게 손잡는 행위에 대한 허락을 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사실 <누구야>는 이 행위 하나만으로 모든 것이 전달된다.

소정은 상대가 누구건 호기심과 친근한 태도로 다가간다. 그리고 자신의 호감을 손 내밀기로 표현하는데, 그 손을 잡는 것에서부터 상호 간 무언의 소통과 교류가 시작된다. 소정이 자주 하는 말은 “누구의 친구야?”라는 물음이다. 그것은 ‘우리, 친구가 되면 좋겠다.’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관객은 자신에게 직접 말을 건네는 소정과 눈 맞춤을 하고 소정의 손이 따뜻함을 느끼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그간 추상으로 이해했던 대상을 현존하는 존재로서 깨닫게 된다. 요컨대, 장애인을 다른 세계의 관념적인 존재가 아닌 구체적으로 실존하는 동(同)세계의 구성원임을 직관적으로 감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 지점은 장애·비장애의 경계가 허상임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상대에 대한 앎이 모든 경계를 무화시키는 까닭이다.

<누구야>는 소정과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OH명의 시간을 관객이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작품이다. 공연이 진행될수록 관객은 이들의 세계에 정서적으로 동화되어간다. 소정이 인식하는 세계와 소정이라는 인물의 세계 속으로 발을 들이다 보면, 소정 또한 상대의 세계로 조금씩 다가온다. 공연이 마무리될 즈음에는 어느새 ‘친구’라는 상호 수평적인 관계가 형성되는데, 개개인이 모여 알지 못했던 서로의 세계를 발견함으로써 관객은 삶의 외연이 확장됨을 경험한다. 이로써 작품은 관계 맺기의 감각을 통해 공존의 가치를 전달하고 있었다.

권리를 가질 권리

한나 아렌트의 ‘권리를 가질 권리’를 바탕으로, 토빈 시버스(Tobin Siebers)는 『장애 이론』(2019)에서 장애인에게 주어져야 할 권리의 필요성과 가치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인권의 가치는 장애에 대한 이론적·실천적 인식에서 형성되며, 보편적인 인권은 장애인의 권리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누구야>는 이 지점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소정은 일하고 싶어 하며, 일을 하기 위해 팀이 꾸려졌고, 연극이라는 일을 해냈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장애인에게 주어지지 않는 ‘일할 권리’와 ‘일’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노동 사회에서 장애인은 쉽게 배제되는데, 생산성에 대한 의심과 자본주의에 따른 효율 지상주의 태도가 장애인의 일할 기회를 박탈하기 때문이다. 특히 발달장애는 신체적 장애보다 상대적으로 한층 더 주변부에 놓여, 노동자로서 고려조차 되지 못하곤 한다. 권리를 가질 권리가 요구되는 지점이다.

<누구야>는 앞선 문제의식과 관련하여 유쾌한 방식으로 방향성을 찾아간다. 근본적으로 일에 대한 정의를 다시 생각한 것이다. 이들은 소정이 할 수 있는 것과 잘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생산해내는 가치에 주목한다. 이 지점은 마냥 소정을 돕는 것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에 가깝다. 생소했던 장애인과의 만남에서 친구 소정이 되기까지, 섬, 윤지, 우성은 각자 자신들이 경험한 소정과의 시간을 묘사한다. 소희는 소정의 가족으로서 소정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과정을 고민한다. 그리고 이들은 공존하는 방법을 터득해가는데, 그 끝에서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소정에겐 애니메이션 짱구의 대사를 완벽하게 기억해내고 억양까지 동일하게 흉내 내는 능력과 부르는 노래에서 오롯이 전달되는 진심의 능력이 있다. 이 능력의 근원은 ‘좋아하는 것’이다. 작품 제목이 긴 까닭이 여기에 있는데, ‘누구야’ ‘오늘 놀기 딱 좋아’ ‘쉴게’ ‘맥주 먹자’ ‘결혼하고 싶어’는 OH명 구성원 각자가 좋아하는 것을 종합한 명칭이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좋아하는 것’으로 구성된 ‘일’인 셈이다.

일이 꼭 싫고 고달파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것들로 구성하여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내면 그것으로 이미 일인 것이다. OH명은 소정과 함께 일을 하기 위한 방법들로 산책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맥주를 먹고, 노래방을 간다. 그것이 종합되어 공연으로 완성되었고, 소정을 비롯한 OH명 팀원들은 연극을 ‘일’로서 인식하며 행위한다. 관객은 이 연극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변화를 경험하며 사유의 폭을 넓히고, 창작자는 공연으로 인한 수익까지 창출하니, <누구야>는 분명 일의 일환이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은 사회적 구성원으로서 발달장애인의 노동 사회 참여를 실천하는 플랫폼의 역할을 하고 있다. 자연히 일의 의미와 가치, 장애인의 일할 권리에 대하여 되짚어보게끔 하는데, 작품은 그 방안으로 공동체 형성하기를 제시한다. OH명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회활동을 하는 방법을 찾아 나가면서 사회적 가치를 창출했고, 이 지점은 자본주의 사회가 그토록 바라마지않는 생산성이 장애인을 소외하지 않는 태도로써 향상될 수 있음을 방증한다. 이것만으로도 장애인의 일할 권리를 위한 권리의 중요성을 사회가 고려해야 하는 충분한 까닭이 된다.

공연 밖의 세계로 이어지는 관계성

<누구야>는 몸소리말조아라센터에서 진행되었다. 몸소리말조아라센터는 예술가 조아라의 집이자 창작공간이다. 엄밀히 살피자면 그 형태가 가정집이므로, <누구야>는 무대의 전형성에서 벗어난 작품이라고 해야겠다. 이 지점은 장애예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객석과 무대의 구분이 분명한 극장 공간은 물리적으로 경계를 명확히 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장애예술인과의 거리감을 인식하게 만든다. 이러한 형태는 연극이란 가상의 세계에 공존하더라도 장애와 비장애 사이의 경계를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하는 한계가 있다. 반면에 어떤 구분도 없는 공간이자 일상의 공간인 집은 상호 간의 경계를 와해시키므로, 장애·비장애 세계의 구분이 불가능해지고 같은 공간에 함께 존재하는 감각을 형성한다. 무대를 바라보는 방식인 일방향의 시선이 아니기에 상대를 대상화하는 것 또한 불가능해진다. 자연히 일상의 공간은 장애예술을 전달하기에 적합한 공간이 된다. 장소 못지않게 각 배우의 일상적인 태도 또한 중요했다. 배우들은 각자 흔히 취할 법한 일상의 행동들로 공간을 채웠고, 덕분에 관객은 이들의 그리고 장애인의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전체적으로 일상의 힘이 세계의 경계를 허무는 데에 근본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공연은 일관하여 유쾌하고 즐거운 분위기를 이어간다. 현장에서 연주되는 곡과 함께 부르는 노래, 즉흥적으로 발생하는 상황 등이 흥미를 유발한다.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요소가 약속된 장치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발달장애인인 소정은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인지하고 약속된 역할을 수행해내고 있었다. 이 지점은 공연예술에서 발달장애인의 활동 가능성에 대해 가늠하게끔 한다. 공연예술 현장에서 장애예술인의 참여가 점차 활발해지는 가운데에 발달장애예술인의 활동은 다소 드문 편에 속하는데, 연극적 약속을 수행해낼 수 있는가에 대한 불안함이 이들의 활동을 위축시키는 것은 아닌가 짐작된다. <누구야>는 이러한 질문에 소규모 형태,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관계의 작업자, 반복되는 과정과 유연한 방식, 공동체의 구성 등으로 답을 찾아 긍정적인 가능성을 실현해냈다. 이것은 발달장애예술인뿐만 아니라 함께 참여하는 구성원의 역할 또한 중요함을 보여준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창작방식을 구축해나가는 것에 기꺼이 동참할 이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OH명의 등장은 반갑고 기대를 모은다. 어쩌면 이들의 활동이 장애예술의 지평을 확장해나가는 데에 유의미한 역할을 하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공연이 끝난 후 관객은 참여자들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고 이 방 저 방 전시된 소품들을 둘러보며 OH명 의 세계를 더욱 세밀하게 알아간다. 끝내 현관문을 나설 때가 되면, 들어설 때와 동일하게 소정이 선뜻 손을 내민다. 이번에는 그 손을 이쪽에서 덥석 잡으며, ‘친구가 되다’라는 말을 나눈다. 연극적 약속이 아닌, 공연이 끝난 후 현실에서 한 약속이므로 이 관계성은 문밖까지 이어질 것이다. 일상으로의 초대에서 일상과 연극 이상의 것을 만났으니, 문밖을 나설 때면 그동안 알던 세계보다 더 풍부한 세상을 보게 되리라 믿는다. 어쩌면 문 너머의 존재들 또한 그러하지 않을까. 그저 동력을 잃지 않고 지속해서 다음을 약속할 수 있게 되길 바라며, 다양한 관객이 OH명과 만날 수 있길 기원한다. OH!

  • OH명 <누구야오늘놀기딱좋아쉴게맥주먹자(feat.결혼하고싶어)>의 한 장면. 한 여성이 꽃다발을 받고, 3~4명씩 마주보고 앉은 다른 사람들은 박수를 치고 있다.
  • OH명 <누구야오늘놀기딱좋아쉴게맥주먹자(feat.결혼하고싶어)>의 한 장면. 12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여앉아 한 여성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누구야오늘놀기딱좋아쉴게맥주먹자(feat.결혼하고싶어)

OH명 | 2022.9.6.~9.7. | 몸소리말조아라센터

연출 박소희는 작년 한 해 동안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해 고민했다. 문득 쌍둥이 동생이자 발달장애인인 소정이 "일을 하고 싶다."라고 말했던 게 떠올랐다. 소희는 소정과 함께 일을 하기로 결심했고 함께 일을 할 사람들을 모았다. 무엇을 할지는 모르겠으나, 무언가를 해보려고 한다. 펼쳐지는 순간들에 뛰어들어보려 한다. 다섯 명에서 오명에서 OH명이 되기까지의 순간을 모두와 함께하고 싶다. 우리의 움직임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모두와 함께 하는 순간은 확실히 재미있을 것이다. 출연_박소희 김섬 김윤지 박소정 이우성 | 제작_박소희(연출) 신민승(드라마터그) 계은영(디자이너) 김채은(음악)

공연정보 바로가기(링크)

장윤정

연극비평집단 시선 소속 연극평론가. 모든 창작물에는 나름의 미덕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 믿음을 바탕으로 공연에 대한 글을 쓴다. 재미난 공연을 두고서 재미없게 쓰는 것에 고민이 많다. 사람과 글이 함께 성장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yjlife1@gmail.com

사진 제공.OH명

2022년 10월 (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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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021-524호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WA-WEB 접근성 (사)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 | 1.업체명: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주소: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고 112 3.웹사이트:http://www.ieum.or.kr 4.유효기간:2021.05.03~2022.05.02 5.인증범위:이음 온라인 홈페이지 | 「지능정보화 기본법」 제47조제1항 및 같은 법 시행규칙 제9조제5항에 따라 위와 같이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를 발급합니다. 2021년 05월 03일 사단법인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