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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장애연극이 써 내려간 전문성 극단 애인은 왜 연구하는가

  • 김슬기 공연예술 드라마투르그
  • 등록일 2026-03-25
  • 조회수 50

이슈

본디 독창성을 주요 속성으로 하는 예술에서 전문성은 판단하고 평가하기 까다로운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도 장애예술인의 전문성을 거론할 때 너무나 쉽게 간과되는 두 가지 지점이 있다. 첫째는 전문성을 축적하는 데 필요한 자원의 부족으로, 이 문제는 특히 제도적으로 보완될 필요가 있다.(주1) 둘째는 전문성을 판단하는 비장애중심적 기준으로, 이는 첫 번째 문제보다 좀 더 본질적이면서도 급진적인 접근을 요청한다. 이 글에서는 극단 애인의 연구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그러한 기준을 다시 쓰기 위해 장애연극인들이 어떤 실천을 이어가고 있는지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2021년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당시 창단 이후 이미 15년째 활동해 온 극단 애인의 구성원들이 모두 자기 전문성을 발휘하고 있다는 전제하에 기획되었다. 다만 프로젝트의 동력이 되었던 문제의식은 비교적 명확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장애배우의 연기를 읽어내는 방식이 무조건적인 경탄이나 연민에 상당히 치우쳐 있었고, 늘어나는 비장애 예술인과의 협업에 장애배우의 예술적 실천을 늘 새롭게 설명해야 했으며, 현장의 여러 프로젝트 또한 장애예술인을 창작의 주체가 아닌 교육의 대상으로 반복 호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주2) 이렇게 해서 2025년까지 쉼 없이 지속된 프로젝트는 아래와 같다. 연결된 링크에서는 각 프로젝트의 결과 자료집을 내려받을 수 있다.

위 자료집은 연구 프로젝트의 전 과정을 기록한 것으로, 무엇보다 고민과 갈등, 탐색과 발견을 가로지르는 장애연극인 당사자의 말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다만 이 글에는 당연히, 지난 5년간 극단 애인의 연구 프로젝트를 함께해온 드라마투르그이자 공연예술 연구자로서의 관점과 해석이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시간이 쌓일수록 깊어진 질문과 확장된 탐색을 세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 살펴봄으로써, 전문성을 판단하는 비장애중심적 기준의 실체를 확인하고 극단 애인이 ‘연극’이라는 실천을 통해 이것을 어떻게 다루어 왔는지 들여다보고자 한다.

장애를 설명하는 언어는 어떻게 미학이 될 수 있을까

극단 애인은 언젠가 전문가에게 공연 음성해설을 의뢰하고, 한 뇌병변장애 배우가 무대에 등장하는 장면에 대해 “배우가 비틀비틀 걸어 들어온다”라는 해설을 받은 적이 있다. 장애를 설명하는 언어 자체가 이미 장애에 대한 편견을 재생산하는 현실 앞에, 모두는 자기 몸과 움직임, 말과 호흡의 고유성을 각자의 언어로 다시 써야 할 필요를 절감했다. 동시에 그러한 각자의 고유성을 어떻게 관객에게 알릴 것인지의 문제가 대두되었다. 비장애에 익숙한 시선으로는 장애배우의 표현을 잘못 해석하거나 연기력이 충분치 못한 것으로 받아들일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1~2년 차 프로젝트에서 이와 관련한 탐색을 집중적으로 해나갔고, 그 결과 모두 자기 몸을 설명하는 소개 글을 만들었다. 이는 이후 연구 프로젝트는 물론 극단 애인의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여러 공연에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었다.

예를 들어, 관객이 장애배우의 퍼포먼스를 접하기 전에 미리 그 몸을 그려볼 수 있도록, 배우들이 직접 녹음한 자기소개를 음성카드(반으로 접힌 카드를 열었을 때 음성이 자동 재생되는 방식)로 제작했다. 나아가 장애배우들이 자기 장면에 대한 음성해설을 쓰는 것이 당연한 약속이 되었고, 4년 차와 5년 차 프로젝트에서는 그 음성해설을 공연에 완전히 통합해 접근성을 구현하는 시도로 발전시켰다. 즉, 공연을 다 만들어놓고 별도의 음성해설 대본을 작성해 배우들의 대사 사이사이에 그것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임에 대한 해설 자체가 대사가 되는 방식으로 장면을 구축한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장애배우의 고유성과 이를 설명하는 대안적인 언어가, 어떻게 누군가를 남겨두지 않는 미학적 경험이 될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찾아가고 있다.(주3)

감각의 교란, 내면화된 비장애중심주의에 대한 성찰

한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내내 끈질기게 우리를 따라다니는 질문 중 하나는, ‘의도한 것과 의도하지 않은 것 사이에서 무엇을 길어 올릴 수 있는가’이다.(주4) 이를테면 배우는 역동성을 전달하기 위해 몸의 움직임을 최대한 활용하는데 관객에게 그것이 불안하고 위험해 보인다면? 떨림과 흔들림이라는 운동성에서 즉각적으로 느껴지는 불안함을 억누르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면, 이런 연유로 장애배우의 연기가 필연적으로 미끄러질 수밖에 없다면, 그것을 어떻게 뚫고 나갈 수 있을까. 이것은 장애가 있는 다양한 몸의 고유성을 인식하고 그것을 능동적으로 해석할 준비를 하는 것만으로 해소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몸을 통제할 수 있다는 비장애중심적인 믿음을 거부한다고 하더라도, 통제된 것이 안정적이라는 감각 자체가 깨지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4년 차 프로젝트의 결과 발표에서는 이 어려움에 정면으로 부딪쳐 보기로 했다. 배우는 전혀 불안함을 느끼지 않는데, 보기에 불안한 움직임을 찾아 의도적으로 반복 수행해 보면 어떨까. 그 모순을 극대화했을 때 거꾸로 비장애중심 사회가 무엇을 미덕으로 상정하는지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 시도는 배우의 부상으로 결국 중단되었고, 애초에 의도했던 것보다 훨씬 근원적이고 성찰적인 대화로 우리를 이끌었다.(주5) 공연의 결과물을 통해 비장애중심주의에 저항하려 했으나, 그 공연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여전히 우리 안에 내면화되어 있던 효율성과 생산성에 대한 압박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장애 당사자이자 배우라는 교차적 위치에서 발견한 이러한 배움들은, 우리가 어떻게 예술을 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장애의 관점으로 세계를 이야기하기

마지막으로 짚어야 할 것은 극단 애인이 장애연극의 서사를 탐색해 온 과정이다. 장애예술을 둘러싼 미학적 논의가 ‘다양하고’ ‘새로운’ 감각에 초점을 맞추는 동안, 장애인을 근거 없는 희생자와 악당, 영웅으로 묘사해 온 역사는 물론, 장애 당사자가 경험하는 여전한 억압과 폭력, 그리고 그에 대한 저항으로 구성된 현실을 없는 셈 치는 것은 어딘가 이상한 일이었다. 다행히 연극은 이야기를 다룰 수 있는 예술이었고, 우리는 그간 무대화해 왔던 여러 공연을 토대로, 그리고 다양한 장애학 서적을 함께 읽으며 장애연극이 다뤄야 할 서사가 무엇인지 함께 고민했다. 그저 장애인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장애의 관점으로 세계를 다시 읽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깊이 들여다보고자 했다.

5년 차 프로젝트에서 이를 본격적으로 구현해 볼 기회를 만들었는데, 무엇보다 이미 쌓아온 연기의 기술이 서사의 출발점이 되거나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동안 장애배우들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역할을 먼저 떠올렸고, 왜 그러한 역할에 장애배우를 캐스팅하지 않는지, 장애배우가 그 연기를 하면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논의했다. 물론 이 프로젝트는 기존에 발표된 작품들의 극히 짧은 장면만을 다시 써본 것이기에, 아직은 더 풍성하고 다층적인 서사로 거듭날 가능성의 조각들에 가깝다. 그러나 장애배우가 당사자의 삶을 연기하리라는 익숙한 기대 바깥에서, 장애를 고통이나 투쟁, 혹은 정반대로 다양성이나 희망 등에 대한 메타포로 남겨두지 않는 장애서사에 대한 고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026년 5월, 극단 애인의 신작에서 또 다른 장애서사가 관객을 찾아갈 예정이다!)

***

짧게 정리했지만, 지난 5년간의 연구 프로젝트는 실로 어마어마한 시행착오의 좌절과 발견의 기쁨을 통과해 왔다. 극단 애인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스스로 학교를 열었고, 서로가 서로에게 스승이 되어주었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장애연극인들이 무엇을, 왜 연구하고자 했는가이다. 극단 애인이 어떤 전문성도 없이 되는대로(!) 연극을 해오다, 전문 연극인으로 인정받기 위해 무언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연구 프로젝트는 장애연극인들이 가진 전문성이, 연극과 연기를 판단하고 평가하는 비장애중심주의를 어떻게 흩트려버리는지 보여준다. 다행히 처음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하던 5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은 상황이 꽤 바뀌었다. 그러나 여전히 장애연극인들은 전문성을 의심받는다.

물론 당연히 장기간의 연구를 통해 새롭게 획득한 전문성도 있다. 미처 인식하지 못했지만, 연극하는 일상에 촘촘히 스며들어 있는 비장애중심주의에 대한 통찰력, 창조적인 방식으로 그에 대응하는 실천적 역량과 탁월성, 서로 돌보고 의지하며 함께 그것을 돌파해 나가는 상상력 같은 것들이다. 그 어떤 ‘전문’ 예술 관계자도, ‘전문’ 예술 서적도, ‘전문’ 예술 프로그램도 이런 것들을 일러준 적은 없다. 장애연극인들은 오직 스스로의 경험 안에서, 그리고 동료들의 지지 속에서 이 모든 것들을 연구해 나갔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가 증명(!)해야 할 전문성이 남아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한 극단의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서가 아니라, 더 넓은 공론장에서 함께 논의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증명을 요구하는 그 모든 이들과 더불어서 말이다.

주1.지면의 한계로 이 글에서는 심도 있게 논의하지 못하지만, 그 사안이 결코 가볍지 않아 짧게 언급하고 넘어가려 한다. 모든 예술인에게는 저마다의 기술과 숙련도, 노하우와 수완이 있지만, 이것은 부단한 수행을 통해 몸에 쌓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이 원하는 수행에 접근할 기회가 열려 있어야 한다. 여기서 예술과 관련한 제도 교육의 장벽을 새삼 환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좀 더 실질적인 예를 들어보자. 중극장 규모의 모두예술극장이 문을 연 것은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그런데 그 정도 규모의 공연을 연습할 수 있는, 접근성이 확보된 연습실이 없다면? 장애배우가 미처 그 극장에 적응할 기회가 없어 공연에서 충분한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결과만 놓고 보자면 이것은 배우의 전문성 부족으로 읽히기 십상이다. 단편적인 예에 불과하지만, 장애예술인들의 실천 사이에는 이러한 제도적 장벽이 촘촘히 자리 잡고 있다. 장애예술인들은 그 장벽을 우회하기 위해 훨씬 많은 시간과 에너지와 비용을 들여가며 각자의 방식으로 전문성을 쌓는다. 그러한 현실을 외면한 채 장애예술인의 전문성을 논하는 것이 얼마나 온당치 않은 일인지 지적해 두고 싶다.
주2.연구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하던 당시의 문제의식과 관련해서는 2021년 자료집의 ‘프롤로그’(1-3쪽)를 참고할 수 있다.
주3.5년 차 프로젝트의 영상 결과물에 배우들이 직접 쓴 음성해설이 공개되어 있다. 음성해설을 장면에 통합한 사례는 〈난가 젠가 넌가〉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주4.이와 관련해서는 프로젝트 곳곳에서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탐색을 지속했다. 특히 장애배우들이 각자의 연기 안에서 이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 갔는지는 2023-2024 자료집의 두 번째 파트 ‘내부 워크숍’(38-56쪽)에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주5.이 대화는 2023-2024 자료집의 세 번째 파트 ‘세미나’ 기록(87-89쪽)에 남아 있다.
김슬기

김슬기

창작을 위한 읽기와 기록을 위한 쓰기를 한다. 공연예술의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한다. 일상과 연극, 연극과 사회가 만나는 방식 및 예술의 사회적 가치와 예술가의 역할에 대해 고민한다. 공연 드라마투르그로 활동하며 이론과 실천을 잇는 연구를 하고자 한다.
soolsoolgi@naver.com

썸네일 제공.극단 애인(극단 애인 20주년 기념 아카이브전 《배우수업: 장애배우의 연기로부터 장애미학의 탐색으로》)

2026년 3월 (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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