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장애를 갖는다는 것은 단지 신체 일부의 기능을 잃는 일이 아니다. 이전까지 당연하게 믿어왔던 세계 전체가 무너지는 일에 가깝다. 계단 하나의 높이가 달라지고, 문의 폭이 달라지고,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진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시간의 감각일 것이다. 일상적인 행동 하나하나에 이전보다 훨씬 많은 체력과 시간이 필요해진다. 그러므로 장애 이후의 삶이란 단순히 ‘불편한 삶’이 아니라, 이전과는 전혀 다른 감각 체계로 들어가는 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김용우 휠체어 무용가
인정하니 보이기 시작했다
김용우가 장애를 갖게 된 것은 캐나다 어학연수 시절이었다. 자동차 전복 사고로 척수를 다쳤다. 당시 한 사회복지사가 그에게, 장애로 인해 앞으로 살아가며 많은 어려움이 있을 텐데,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물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열 가지를 다 할 수는 없겠지만, 할 수 있는 서너 가지를 남들보다 두세 배 더 즐기며 살면 되지 않을까요?” 그 말은 당시의 결심이었지만, 곧 그의 삶의 태도가 되었다. 그는 낙담 대신 재활을 선택했다. 골반까지 올라오는 보조기를 착용하고 목발을 짚은 채, 차가 다니지 않는 길을 하루 한 시간 가까이 오갔다. 그렇게 3년 동안 거의 매일 몸을 단련했다.
시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다시 예전의 몸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물속에서 허우적대는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아, 나는 장애인이구나’ 하고 인정하게 되더라고요. 그때 비로소 바닥이 보였어요. 그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었죠.” 장애를 인정한 뒤에야 비로소 삶의 바닥을 딛고 올라설 힘이 생겼다.
김용우는 자신의 삶을 설명할 때 ‘만들다’라는 동사를 반복해서 사용했다. 그는 자신을 “삶을 만들어가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춤추는 사람 이전에, 장애인 이전에, 우선 자기 삶의 구조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는 자신의 생을 연극에 비유하기도 했다. 사고 이전이 1막이었다면, 휠체어를 타고 살아온 지금까지의 시간이 2막이고, 앞으로의 삶은 아직 쓰이지 않은 3막이다. 중요한 것은, 장애가 그의 삶을 끝낸 사건이 아니라 삶의 서사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꺾어놓은 사건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이 장애를 ‘상실’이라는 단어로만 이해한다. 그러나 어떤 이에게 장애는 새로운 감각 체계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이전과는 다른 속도로 움직이고, 다른 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몸의 중심을 다시 배우게 되는 일. 김용우의 삶은 바로 그 감각의 변화로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몸을 다시 배우는 시간
그때 그에게 우연처럼 찾아온 것이 휠체어 댄스스포츠였다. 누군가 보여준 외국 영상에서 그는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화려한 의상을 입고 음악에 맞춰 춤추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다른 장애인 스포츠에는 크게 끌리지 않았지만, 춤은 달랐다. “우와, 저렇게도 움직일 수 있구나.” 그는 그 순간을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한국에 휠체어 댄스스포츠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2002년, 그는 사실상 처음으로 이 분야를 개척했다. 유일한 선수였다. 지도자도 없고, 교육 자료도 없었다. 그는 외국 영상을 반복해서 보며 동작을 익혔고, 거의 독학에 가까운 방식으로 한 동작씩 몸에 새겨 넣었다. 동작을 익히기 위해서는 몸을 단단히 고정한 채 회전하고, 멈추고, 방향을 바꾸어야 했다. 휠체어와 몸이 완전히 하나가 되어야만 가능한 움직임이었다. “휠체어가 잘 움직이려면 중심을 정말 정확하게 잡아야 해요. 그래야 앞바퀴도 들리고, 빠르게 회전도 하고, 파트너와 호흡도 맞출 수 있거든요.” 그의 말은 단순한 기술 설명처럼 들리지 않는다. 몸의 중심을 다시 배운다는 것은, 어쩌면 삶의 중심을 다시 배우는 일과도 닮았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점차 점수와 규칙의 세계를 넘어섰다. 댄스스포츠 대회는 정확성과 기술을 평가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몸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충분히 담아낼 수 없었다. 공연 요청이 늘어나면서 그는 2분 남짓한 경기용 안무를 4분, 5분짜리 작품으로 확장했다. 그 과정에서 춤은 기술을 넘어 서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스포츠 문법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감각을 발견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정적인 계기는 영국 무용단 캔두코 댄스 컴퍼니(Candoco Dance Company)의 공연을 본 순간이었어요. 장애·비장애 무용수들이 한 작품 안에서 각자의 몸으로 서로 다른 문장을 만들어내는 장면은 저에게 춤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했습니다. 저렇게도 춤출 수 있구나, 춤이 꼭 정해진 동작일 필요는 없다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번역에서 창작으로
이후 그는 휠체어 무용수가 중심이 된 케이휠댄스프로젝트(K-Wheel Dance Project)를 창단하고,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 안무가들과 협업하며 움직임의 어휘를 넓혀갔다. 당시 그의 작업은 각 장르의 움직임을 휠체어의 언어로 옮기는 일이었다. 한국무용의 호흡, 현대무용의 중심 이동, 발레의 균형 감각을 휠체어의 회전과 이동으로 다시 해석했다. 다시 말해, 비장애 무용수의 동작을 휠체어 위에서 새롭게 구현하는 과정이었다. 여기서 김용우의 작업 세계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비장애인의 움직임을 ‘번역’하던 단계에서, 장애의 몸 자체가 새로운 움직임을 ‘창작’하는 단계로 나아간 것이다.
“단순히 기존 문법을 휠체어에 적용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왜 늘 비장애인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가. 중요한 것은 형식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의 몸이 실제로 경험하는 시간과 호흡, 속도를 작품의 구조로 삼는 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그의 작업에서 휠체어의 역할은 고정되지 않는다. 몸의 일부였다가 이동 장치가 되고, 때로는 무대 위의 독립적인 조형물이 된다. 비어 있는 휠체어는 부재를 말하고, 공중에 매달린 휠체어는 중력과 균형의 감각을 뒤흔든다. 관객은 더 이상 휠체어를 보조 기구로만 바라볼 수 없게 된다.
이는 그의 대표작들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춤추는 詩(시)〉에서는 시각장애인의 시, 청각장애인의 언어, 지체장애인의 몸을 하나의 무대 위에 올렸다. 시각장애 무용수에게는 종소리와 음향으로 방향을 전달하고, 청각장애 무용수에게는 조명으로 리듬을 제시했다. 단순한 배려가 아니라, 기존 무용이 전제해 온 감각 체계 자체를 다시 설계한 안무였다. 〈춤추는 畵(화)〉에서는 의수로 수묵 크로키를 그리는 화가 석창우와 협업했다. 무용수가 춤을 추면 화가는 그 움직임을 그림으로 붙잡았고, 그림은 다시 움직임의 리듬이 되었다. 한순간 명멸했다 소멸하는 춤이 캔버스 위에 크로키로 영원히 남게 되는 이 작업에서, 움직임과 흔적은 서로의 결핍을 보완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전환점은 〈방황하는 몸〉이었다. 그는 현대무용에서 말하는 ‘방황하는 몸’이라는 개념을 접하며, 오히려 장애인의 몸이야말로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없고, 늘 균형을 새롭게 찾아야 하는 ‘방황하는 몸’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이 작품에서 처음으로 휠체어에서 내려왔어요. 이전에 어떤 안무가가 휠체어에서 내려오는 것을 제안한 적이 있었어요. 거절했죠. 저는 휠체어 위에서 오히려 가장 자유롭거든요. 바닥으로 내려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한편으로는 가장 나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고요.”
그렇게 휠체어에서 내려오기까지 10년이 걸렸다. 그 시간은 단순한 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까지 걸린 내면의 시간처럼 들린다. 이후 그는 기어가고, 넘어지고, 다른 무용수의 몸에 기대며 움직였다. 그 과정에서 춤은 자신이 잘하는 동작의 총합이 아니라, 몸의 상태와 관계를 드러내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후 그의 안무는 완성된 형태를 보여주기보다, 몸이 흔들리고 멈추고 다시 방향을 찾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장애인의 몸이 지닌 느린 속도, 예상치 못한 멈춤, 비대칭적인 균형은 더 이상 수정해야 할 결함이 아니라 작품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가 되었다. 번역은 창작이 되었고, 몸은 하나의 새로운 문법이 되었다.
〈방황하는 몸〉은 모든 무용수가 상자 위에 앉아 손으로만 춤을 추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관객은 누가 장애인이고 누가 비장애인인지 구분할 수 없다. 이후 모두가 바닥으로 내려와 몸을 끌며 이동하는데, 단순히 ‘장애도 예술이 될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게 아니다. 이 장면은 기존 무용이 전제해 온 정상성의 문법 자체를 뒤흔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주변인가, 어떤 몸이 아름답다고 규정되어 왔는가를 다시 묻게 만드는 셈이다.
또 다른 작품 〈돌아가는 것들은 어디로 가는가?〉에서는 휠체어를 의자들과 함께 무대 위에 놓았다. 무용수들은 그것들을 밀고, 들고, 기대고, 눕히는데, 이 작품에서 휠체어는 더 이상 결핍의 상징이 아니다. 속도이고, 리듬이며, 세계를 인식하는 하나의 방식인 것이다. 이처럼 김용우의 작업은 새로운 몸의 문법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비장애의 몸을 기준으로 결핍을 증명하는 예술이 아니라, 서로 다른 몸들이 각자의 감각 체계를 통해 세계를 새롭게 조직하는 예술이다.
〈춤추는 樂 - 바람 소리〉
장애예술, 다른 감각을 위한
그는 ‘장애예술가’라는 호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어떤 이들은 이 호칭이 오히려 예술의 수준을 제한한다고 우려한다. ‘장애예술’이라는 이름을 전문 예술이 아니라 아마추어 예술로 오독하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는 이를 다양하게 부른다. 또 다른 가능성을 강조하는 ‘에이블 아트(Able Art)’, 누구나 향유할 수 있다는 뜻의 ‘액세서블 아트(Accessible Art)’,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함께 창작하고 향유한다는 의미의 ‘인클루시브 아트(Inclusive Art)’ 등이 있다. 그래서 물었다. “‘장애예술’이나 ‘장애예술가’라는 호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는 이 질문에 담담하게 말했다.
“장애인은 그냥 장애인이에요. 남자나 여자처럼 하나의 특징일 뿐이죠. 이미 저는 그걸 인정했기 때문에, 그 말 자체에 크게 거부감은 없어요. 하지만, 같은 출발선에 서기 전에, 각자의 언어를 만들 수 있는 시간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것은 명칭 그 자체보다, 그 명칭이 왜 아직 필요한지를 이해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김용우는 지금도 ‘장애예술’이라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무용의 경우, 비장애 예술가들은 어린 시절부터 오랜 훈련 시스템 안에서 성장한다. 반면 많은 장애예술가는 성인이 된 뒤에야 비로소 예술을 시작한다. 후천적으로 장애를 얻게 된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흔히 예술을 재능과 노력의 문제로만 생각하지만, 실제로 예술은 감각을 훈련하는 시간의 문제이기도 하다. 어떤 몸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무대 위를 경험하지만, 어떤 몸은 오랫동안 사회에서 배제된 뒤에야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한다. 장애를 가진 몸은 기존의 문법에 곧바로 들어맞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차이가 새로운 예술 형식을 탄생시키는 원천이 된다. 그러므로 장애예술이라는 제도는 단순한 보호 장치가 아니라, 서로 다른 감각들이 자기만의 언어를 획득하기 위한 시간의 장치라고 보아야 한다. 자신의 감각을 충분히 탐색하고 실패할 수 있는 시간, 그리고 그 과정을 지속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김용우의 작업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의 작품은 장애를 극복의 서사로 소비하지 않는다. 대신 장애를 통해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감각과 움직임을 발견하게 만든다. 비장애 무용에서 당연하게 여겨졌던 균형, 속도, 호흡은 휠체어의 움직임 속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조직된다. 그는 바로 그 차이를 예술의 재료로 삼는다. 장애예술은 어쩌면 ‘다른 몸의 예술’이라기보다 ‘다른 감각의 예술’에 더 가깝다. 새로운 예술은 대개 늘 그런 방식으로 등장해 왔다. 기존의 질서에서 배제되었던 감각들이 자신의 언어를 만들 때, 아직 이름 붙지 않은 몸들이 먼저 길을 낼 때, 예술은 비로소 자신의 경계를 넓힌다.
***
김용우는 인터뷰 내내 자신의 삶을 특별한 극복담처럼 이야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담담하게, 자신의 몸이 어떻게 변했고, 그 몸이 어떻게 새로운 움직임을 발견했는지를 설명했다. 어쩌면 바로 그 담담함이야말로 그의 작업이 지닌 힘인지도 모른다. 그는 장애를 부정하지도 과장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것을 하나의 감각으로 받아들이고, 그 감각으로 세계를 다시 조직한다. 시련을 한계로 생각하면 벽이 되고, 또 다른 가능성으로 생각하면 문이 된다. 그는 자신의 몸으로, 그리고 자신이 만든 작품들로 새로운 문을 열어왔다. 그의 바퀴는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방향을 향해 돌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바퀴가 그려온 수많은 궤적은 한 사람의 생애를 넘어, 인간의 몸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 되었다. 그의 춤은 우리에게 조용히 되묻는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것은 벽인가, 아니면 아직 열리지 않은 문인가.
〈춤추는 畵(화)〉
제4회 서울예술상 특별상을 수상한 김용우 무용가(오른쪽)

김용우
휠체어 무용가, 케이휠댄스프로젝트 예술감독. 국내 휠체어 무용 1세대로, 휠체어 스포츠댄스 국가대표로 활동하며, 2005년 홍콩 아시아 댄스스포츠 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아시아선수권 4년 연속 우승 등 우리나라 최초로 휠체어댄스스포츠를 개척했다. 이후 예술 영역으로 확장하며 자신만의 현대무용 언어를 구축해 왔다. 2018년 현대무용가 이소민과 함께 케이휠댄스프로젝트를 설립해 장애·비장애 무용수와 함게 작품 창작과 공연활동을 기획·제작하고 있다. 2020년 한국장애인무용협회를 설립하고 라라미댄스페스티벌을 창설·운영하는 등 제도적 기반과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에도 힘써왔다. 제10회 대한민국장애인문화예술상 대상(2015), 제4회 서울예술상 특별상(2026) 등을 수상했다. 주요 안무 및 출연작으로 〈춤추는 詩〉(2015), 〈돌아가는 것들은 어디로 가는가?〉(2018), 〈춤추는 畫-순간을 흐르는 몸〉(2020), 〈춤추는 樂-바람소리〉(2021), 〈방황하는 몸-몸에 대한 연구〉(2023) 등이 있다.
2kyw7@hanmail.net

김일송
공연문화 월간지 [씬플레이빌] 편집장을 시작으로, 서울무용센터 웹진 [춤:in], 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예술 국제교류 정보 플랫폼 [더아프로] 편집장을 지냈다. 현재 희곡, 평론, 아카이빙 등 공연 관련 도서 전문 출판사 책공장 이안재를 운영하고 있으며, 예술경영지원센터 월간 [공연전산망] 편집장과 국립발레단 계간 소식지 [보내드림 <POINT & FLEX>] 편집장을 맡고 있다. 연극 〈젤리피쉬〉 아카이빙을 담당했고, 책공장 이안재를 통해 장기영 평론집 『보란듯한 몸, 초과되는 말들: 배리어컨셔스 공연』을 출판했다.
ilsong75@gmail.com
사진.이재범 라무팜스튜디오 실장 andy45a@naver.com
자료 사진.김용우 휠체어 무용가, 서울문화재단
2026년 5월 (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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