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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기획 《길이 된 사람들》을 통해 본 장애예술의 길 찾기 시대를 건너온 기록, 미래의 이정표가 되다

  •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 등록일 2026-05-27
  • 조회수 47

모두기획

“세상의 모든 길은 처음에는 길이 아니었다. 땅 위에는 원래 길이 없다. 사람들이 다니면서 길이 생겼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 개최한 한국장애예술인 역사전 《길이 된 사람들》(4.20.~5.10. 이음갤러리)을 보면서 중국 소설가 루쉰이 『고향』에서 한 말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다. 루쉰은 사람이 다니면서 길이 생겼다고 말했는데, 사람이 스스로 길이 된다는 점을 강조한 전시회 제목은 좀 더 예술적인 표현이라는 점에서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있었다.

《길이 된 사람들》은 독특한 점이 있었다. 대개 전시라면 작품을 중심으로 구성이 되는데 이 전시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생애사 즉, 스토리텔링 콘셉트의 전시라고 할 수 있다. 전시장 입구에서 맨 먼저 관람객을 맞이하는 그림 한 장은 상징적이고 실체적이다. 조선 말기 장애인의 모습들을 담은 김준근 화가의 풍속화 중 〈병신〉이라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림에는 척추장애인, 지체장애인, 저신장장애인 등이 그려져 있는데, 당시 장애인이 사회 구성원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었음을 잘 드러내 주었다. 전시회도 당대 문화예술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인 대표적인 장애예술인을 모아 소개한다.

전시는 전통 사회인 조선 시대부터 근·현대 그리고 1세대에 걸쳐 문학, 미술, 음악, 공연 분야에서 어떤 장애예술인 활동을 했는지를 전하고 있다. 세 개의 벽면을 가득 채운 전시 패널에는 38명의 장애예술가 소개가 국문과 영문으로 쓰여 있고, 대표적인 시나 그림, 문헌·목판본 등의 자료 사진이 꼼꼼한 캡션과 함께 담겨 있었다. 근·현대와 1세대 예술가로 넘어오면서 작가 사진 자료도 볼 수 있었다. 또한 벽을 따라 놓인 진열대에는 조선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작품집과 기록집, 책자 등이 놓여 있어 깊은 감흥을 주었다. 전시 팜플렛은 그 자체로 한 권의 장애예술인 역사책이었다.

  • 전시장의 입구와 내부가 함께 보이는 전경. 화면은 왼쪽의 전시 안내 벽면과 오른쪽의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전시장 내부로 나뉜다. 오른쪽 벽면에는 “한국장애예술인 역사전” “길이 된 사람들” “2026.4.20.~5.10.”이라고 쓰여 있고 영문이 작게 쓰여 있고, 하단에 김준근의 풍속화 〈병신〉 작품 속 인물이 그려져 있다. 왼쪽 전시장 내부에는 벽을 따라 전시 패널이 나란히 걸려 있는 모습이 보인다.
  • 전시실 내부의 아카이브 및 도서 전시 구역. 벽면을 따라 아크릴 케이스가 씌워진 진열대가 길게 놓여 있다. 케이스 내부에는 손병걸 시인의 시집들을 비롯하여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다양한 장애예술 관련 단행본, 도록, 연구 문헌 실물들이 정갈하게 나란히 진열되어 있습니다.

《길이 된 사람들》 전시 전경

기록으로 만나는 조선 시대 장애예술인

조선 시대의 경우 문학에서는 지체장애 예술가로 숙종-영조 시대의 강취주와 장혼이 있다. 강취주는 작대기를 짚고 다니면서도 시를 창작하고 시를 매개로 많은 사람과 교류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고 능동적인 장애 문인의 표상을 느끼게 했다. 장혼은 영조와 순조 시기의 인물인데, 중인 출신의 여항 시인으로 규장각 검서관으로 활약했다고 한다. 여항 문학은 관념적인 사대부 한시의 한계를 넘어 일반 생활 속의 시 창작을 지향했다. 근래 ‘조선의 독서왕’으로 잘 알려진 김득신은 지적장애인으로, 책을 반복해서 읽기로 유명했고 59세에 문과 급제해 대기만성의 최고 모범이었다. 시각장애와 언어장애가 있던 이단전은 경이로운 시 세계를 보인다는 평가를 들었고, 지여교는 지체장애인이면서 시각장애인이었는데 시에서 광채가 난다는 평가를 들었다. 이 두 사람은 하층민 출신의 중복장애라는 상황에서도 많은 이와 시로 소통하고 교감한 점을 충분히 의미 있게 평가할 수 있었다.

미술에서는 영・정조 시대 시각장애 화가 최북이 눈에 들어왔다. 중인 출신으로 여항 문인이었는데 강렬하고 생동감 있는 필치의 그림만이 아니라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예술관과 활동으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이뤘다고 한다. 그의 〈산수도〉는 거칠면서도 섬세한 필치에서 기개를 느낄 수 있었다. 이정은 오른팔을 다치고도 정진하여 시・서・화 삼절을 이루고, 특히 묵죽화로 이름이 높았다. 그의 작품 〈풍죽도〉가 우리가 쓰고 있는 오늘날 5만 원권 지폐에도 사용된 것은 고무적이었다. 조선 명필 서예가 조광진은 언어장애인으로 힘차고도 섬세한 글씨로 세상과 소통했다. ‘눌인’이라는 낙관이 찍힌 ‘검암정사(儉巖精舍)’ 현판은 그의 개성을 잘 보여준다. 음악 분야에서는 시각장애 예술인이 단연 눈에 들어왔다. 선조 시대의 아쟁 연주자 김운란, 영조 시대 비파 연주자 백성휘, 정조 시대의 윤동형, 성종 시대의 거문고 명인 이마지 등을 꼽을 수 있었다. 이마지는 특히 천민 출신으로서 국가 음악기관인 장악원의 전악(음악감독)을 두 차례나 역임했다고 하니 그 실력을 알만했다. 전시에서 궁중 연희 속 관현맹인으로 추정되는 반주 장면 기록 자료 이미지를 살펴볼 수 있었다.

다양한 매체로 기록된 근·현대 장애예술인

근·현대 장애예술가 부문에서 동시 작가가 많아 인상적이었다.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 / 조롱조롱 거미줄에 옥구슬”로 시작하는 〈구슬비〉를 쓴 권오순 시인, 〈봄편지〉의 서덕출 시인, 〈장마 뒤〉를 쓴 서정슬 시인이 대표적이었다. 이들의 작품은 맑고 순수한 마음을 대변한 듯하다. 서덕출 시인의 〈봄편지〉도 의미 깊다. “연못가에 새로 핀 버들잎을 따서요 / 우표 한 장 붙여서 강남으로 보내면 / 작년에 간 제비가 푸른 편지 보고요 / 대한 봄이 그리워 다시 찾아옵니다” 그는 이선관 시인과 함께 민족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이바지하기도 했다.

한국 구필화가 1호 김준호 작가와 꽃 그림의 경이적인 대가 장창익 작가는 분단으로 인한 군대 생활 중 장애를 갖게 되었는데, 예술혼을 갖고 분투한 사례였다. 미술 분야에서 운보 김기창은 물론 미술 교과서를 만든 구본웅 화가의 기여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 최초 시나리오 작가 최금동은 시각장애인으로, 새로운 시각 매체였던 영화 시나리오 계에서 대체불가 작품들을 남겼는데, 향후 영화계의 장애예술인을 따로 조명할 필요성을 제기해 주었다. 음악 분야에서 서편조 시조 박유전이 시각장애인이었다는 점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시각장애가 있는 퉁소 명인 정해시는 물론이고, 유동초는 퉁소만이 아니라 가야금, 단소, 젓대, 세피리 등에 능했던 점도 지나칠 수 없었다. 우리 음악만이 아니라 서양음악에서 바이올린 연주자 안병소는 한국과 만주, 일본을 오간 활동 폭을 보였다.

  • 전동휠체어를 탄 관람객이 전시 패널들 앞에 멈춰 서서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각 패널에는 예술가 이름과 제목, 소개글이 국문과 영문으로 쓰여 있다. 하단에는 문헌 사료나 사진 이미지가 배치되어 있다.
  • 진열대에 조선 시대 문헌 자료 세 권이 펼쳐져 있다. 색이 바랜 책자에는 한자가 세로 행으로 가지런하게 쓰여 있다.

《길이 된 사람들》 전시 전경

역사전 인물 이야기 나누기

4월 22일 전시 현장인 이음갤러리에서 열린 대담 토크 ‘역사전 인물 이야기 나누기’도 각별했다. 두 개 섹션으로 구성되었다. 하나는 장애예술연구자와 전문가가 함께했다. 근·현대와 1세대 구분과 관련해서,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존하는 예술가는 1세대로 분류했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1세대 장애예술가들과 장영희 수필가의 유족이 함께했다. 주영숙 소설가, 석창우 화가, 이해경 만화가, 최준 소리꾼, 김용우 휠체어 무용가, 김영민 한국무용가, 김지수 연극인 등 1세대 장애예술인이 참여해 각자의 예술 활동을 소개한 것도 의미를 더했다. 전시에서는 이들 외에도 이정희 궁중자수장, 이상재 클라리넷 연주자, 차인홍 지휘자 등을 소개하고 있다.

1세대 길을 연 이들은 장애 정체성을 갖고 각 분야에서 최초의 길을 만들어 각별했다. 세밀한 분야에서 길을 만들었기 때문에, 길을 따르거나 만들어가는 데 좌표가 되었을 것이라 여겨졌다. 특히 이들은 비교적 젊은 경우도 있지만, 장애 정체성과 각자 나름의 예술관으로 당당하게 각자 영역에서 장애예술을 개척해 왔다. 무엇보다 현재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장애예술의 지평을 넓히고 심화하는 점에서 1세대의 특징과 미래 지향점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이로써 텍스트와 이미지의 한계를 넘어 이면의 맥락과 진실을 분석적으로 접할 수 있었고, 생동감 있는 현장성을 느끼고 함께 공감할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다양하게 영감받은 포맷이었다.

희망이 되어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근대 이후 세계를, 과학혁명과 계몽주의로 비합리적인 초현실에서 벗어난 ‘탈주술화된 세계’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법칙을 지향하는 근대 과학은 우생학(Eugenics)으로 이어졌고, 나치는 ‘T4 작전’을 통해 장애인 학살을 자행했다. 그 뒤에도 국가주의와 유물주의론 천민 자본의 시스템이 강해질수록 장애인 차별과 편견이 심화되었다. 한편, 막스 베버가 주술 사회로 지칭했을 조선 시대 성리학은 오히려 사람의 인성과 우주의 본질적인 진리를 연결해 장애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세종을 포함한 많은 군주는 장애인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았는지 살폈다고 한다. 현대인들보다 더 인권적이었던 전통 사회의 패러독스를 성찰하지 않을 수 없다.

루쉰이 『고향』에서 언급한 유명한 문장 앞에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표현이 있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땅 위의 길과 같다.”라는 문장이다. 길을 찾는 장애예술인은 앞으로도 그 자체로 길이요, 우리의 희망이다.

김헌식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문화정보콘텐츠학 박사. 한겨레신문, 오마이뉴스에서 사회문화 현상과 미디어 콘텐츠 분석을 했고, 다양한 매체에 기고 활동을 하고 있다. KBS 〈내일은 푸른 하늘〉, 〈함께하는 세상 만들기〉에서 장애 관련 영화와 문화소식을 전하고 있다. 장애예술종합전문지 [E美지] 운영위원으로 참여했고, 『디딤돌』에 대중문화속 장애 인권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시민단체 ‘장애인 먼저’ 영상 콘텐츠 자문, 서울시 장애인식개선사업 전문가 자문위원으로 활동했고, 한국장애예술인협회 감사로 활동 중이다. 대구대학교 장애학과 대학원 박사 과정에서 강의했고, 중원대학교 사회문화대학 종교문화재학과 특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관련 저서로 『비욘드 블랙』 『영화로 읽는 장애예술과 복지』(공저) 등이 있다.
codesss@naver.com

사진 제공.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026년 5월 (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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