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뷰
나는 난청이 발현된 이후 꾸준히 보청기를 사용하다가 작년 11월에 인공와우 수술을 한 청각장애인이다. 청인 사회에서 일하기 때문에 주로 음성언어로 생활한다. 집 밖에선 언제나 상대방의 말을 듣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이다. 집에 돌아오면 인공와우를 벗어버리고 태초의 ‘나’로 돌아와 휴식을 즐긴다. 서울에서 《아시아 데프 엑스포》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슬로건이 무려 ‘농인의 파워! 농인의 자부심!’이었다. 청인 사회에 살다 보면 ‘농인의 자부심’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매번 나를 의심하게 만든다. 수어를 완벽하게 하는 것? 소리에 의지하지 않는 것? 슬로건이 보여주고 싶은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며 행사장으로 향했다. 행사장 앞은 시끄럽게 도로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줄 서 있는 사람들은 그 소음에 개의치 않았다. 그래서 시작부터 기분이 좋았다. ‘이런 소음 방해로 우리의 열정을 막을 수 없지!’
행사장엔 인파가 가득했다. 공연 무대가 있는 1층에 준비된 객석은 이미 만석이었고, 객석 뒤쪽으로 2층 전시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계단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나중에 기사를 찾아보니 엑스포를 찾은 사람들은 1,300명이 넘었고, 순간적으로 500명 이상의 인파가 몰리기도 했단다. 사람이 정말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고요했다. 음성언어가 존재하지 않는 이곳에서 모든 사람은 손으로, 눈으로 상대와 이야기 나눴다. 보통 행사장이라면 옆 사람 목소리만 겨우 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농인의 대화거리는 무궁무진했다. 1층과 2층 사이를 넘어 서로 시선이 마주치면 대화가 진행되었다. 나는 대화 사이를 수없이 지나다녔다. 마치 책에 적힌 대사의 행간을 걷는 기분이었다. 책 속의 글씨는 시끄럽게 떠들고 있지만 책장 넘기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느낌.
《아시아 데프 엑스포 2026》 행사장 전경
1층에는 유리창에 음성언어를 글자로 띄우는 기술을 전시하는 업체가 있었다. 관광지나 공공기관 안내 창구에 설치된다면 농인과 외국인의 접근성을 크게 높일 수 있겠다. AI가 더 똑똑해진다면 수어를 인식하고 음성언어로 변환하는 기술도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생겼다. 2층과 3층에는 농예술가의 작품 판매, 농인을 대상으로 한 여행 상품 등 다양한 부스가 있었는데 수어로 상담하고 물건을 구매하는 과정이 편리했다. 스티커, 팔찌, 인형, 그림 같은 핸드메이드 상품부터 마사지, 네일, 스쿠버다이빙 투어, 요트 투어까지 분야도 종류도 다양했다. 부스 하나하나 둘러보며 구경하다가, 수다람 작가 부스에서 자음 수어 모양의 키캡 키링을 구매했다. 달가닥달가닥 눌리는 소리도 좋았는데, 작가님의 그림체로 그려진 자음 수어도 귀여웠다. 바로 옆에 있는 『수어가 나에게 괜찮다고 말했다』 저자인 위소 작가 부스에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수어 ‘파-!’(가능하다)로 움직이는 카드를 구매했다. 손을 입에 살짝 대고 있다가 바깥으로 향하며 입은 짧게 “파!”하고 외치는, 손키스와도 비슷한 이 수어를 좋아한다.
부스를 둘러보고서 1층으로 내려왔더니 곧 공연이 시작되었다. 1부는 말레이시아 사라왁 주의 농인 예술문화협회(Sarawak Deaf Art and Culture Association)에서 ‘사라왁 민속춤’을 선보였다. 즉흥적으로 관객 한 명을 선택해서 함께 민속춤을 추고, 긴 장대로 풍선을 터트리는 기연을 선보였다. 2부는 밴드 이층버스의 무대였다. 연주를 시작했지만 공연장에는 아직도 사라왁 민속춤 음악이나오고 있었다. 너무나도 ‘농인’이 할 실수여서 조금 웃겼다. 이층버스는 청각장애인을 위해 모금 공연도 하고 농인 복지를 위하여 노력하는 멋진 밴드였다. 〈내 마음 들리니〉라는 곡의 가사가 인상 깊었다. 3부 무대는 뉴 리트너 댄스 공연이었다. 수어로 노래를 부르는 메인 가수와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는 댄서 두 명이 있었는데, 한 명은 농인이고 한 명은 코다라고 소개했다. 코다 댄서가 소리를 듣고 농인 댄서에게 수어로 박자를 알려주었는데, 그렇게 만들어낸 군무가 정말 멋있었다. 공연 중간중간 둘의 눈 마주침, 정확한 박자, 브레이킹 댄스까지! 신나는 무대였다.
만약 이 행사장에 수어를 모르는 사람이 왔다면, 외국어보다 힘들었을 것이다. 외국어는 통역기 앱을 사용하면 되지만, 음성언어를 수어로 통역하는 기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행사장 어디에도 수어를 음성언어로 통역해주는 공간은 없었다. 청인의 접근성을 고려하지 않은 점은 조금 아쉬웠지만, 나는 듣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움을 즐겼다. 모든 인사와 대화의 시작을 수어로 하는 경험이 어색했지만 좋았다. 평소 우리에게 수어통역사가 필요하듯, 청인은 이곳에서 수어를 음성으로 통역해줄 통역사가 필요했다.
그리고 대망의 4부! 개인적으로 《아시아 데프 엑스포》의 최고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엑스포 안내문에 적혀있는 “3인 특별 공연 - 아톰, 에조에, 쇼헤이”라는 짧은 소개로는 이 공연이 스탠드업 코미디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연극이나 뮤지컬은 ‘핸드스피크’, ‘오롯플래닛’등 다양한 농예술가와 사회적기업을 통해 접할 수 있었고, 갈수록 접근성이 발전하고 있는데, 코미디는 정말 처음 봤다. 코미디는 공연 하는 사람과 보는 사람의 문화가 공유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독도의 주소는?”이라고 던졌을 때 외국인이라면 인터넷에 검색하고 “경북 울릉군 울릉읍 독도안용복길 3”이라고 대답하겠지만,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200리”라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톰, 에조에, 쇼헤이는 아시아 데프 아츠 앤 사인이시어터(ODASIS) 소속 일본 농인이었고, 농인의 문화로 관객을 웃겼다. 청인에게는 없는 농인의 습관, 나라마다 다른 수어의 특징, 사물의 모습과 닮은 수어의 수형을 가지고 개그로 표현했다. 즉흥적으로 관객과 소통하는 것도 스탠디업 코미디의 필수 요소인데, 관객과 티키타카가 잘 되니 공연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청인 친구들과 함께 코미디쇼 방청 갔을 때 졸았던 경험이 떠오르면서 이 공연과 비교되었다. 이 공연은 데프 엑스포의 슬로건을 느끼게 해줬다. ‘농인의 파워! 농인의 자부심!’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청인 중심 사회’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여기 엑스포에선 내가 가진 언어가 중심이 되고, 내가 가진 문화가 주류가 된다. 자연스럽게 농인으로서 자부심과 즐거운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엑스포 공간이 매우 협소했던 점은 아쉬웠다. 작은 공간에 인파가 몰리다 보니 입장 전부터 대기 줄이 매우 길었고, 각 부스 간격도 좁아서 부스에서 이벤트를 진행하기 어려워 보였다. 물론 첫 행사인 만큼 모든 것이 완벽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다음 엑스포에는 청각장애인뿐만 아니라 다른 장애인과 청인의 접근성을 높이면서 모두가 우리의 축제를 즐길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하면 좋겠다. 다음 ‘아시아 데프 엑스포’는 일본에서 열린다고 한다. 시간이 된다면 다시 엑스포에 방문해서 더 재미난 공연과 다양한 나라의 농인을 만나고 싶다. 농인을 위한, 농인에 의한, 농인의 축제! 다음엔 어떤 새로운 경험을 선물해 줄지 기대된다.
밴드 이층버스의 공연
‘3인 특별 공연’ 왼쪽부터 아톰, 에조에, 쇼헤이

아시아 데프 엑스포 2026
닷블랑·예스팔·아시아 데프 엑스포 진행위원회|2026.6.12.~6.13.|플레이스 남산
《아시아 데프 엑스포 2026》은 한국과 일본 농인 공동체가 공동 주최하고 오지라퍼가 주관하는 농인 국제교류 행사로, 농인의 다양한 능력과 기술, 숨겨진 역량을 홍보하고 농인 공동체의 가능성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마련되었다. 이번 행사는 ‘농인의 파워, 농인의 자부심’를 기치로 걸고 한국과 일본을 비롯해 중국, 말레이시아, 베트남, 파키스탄 등 아시아 각국의 농인 공동체가 참여해 각국의 사업, 단체 활동, 문화 콘텐츠를 소개하고 교류하는 장이자 플랫폼이다. 격년제로 운영되며 2028년에는 일본에서 이어서 열린다.
∙ 행사정보 : 이음온라인 [문화소식]
∙ 아시아 데프 엑스포 2026 기록영상(출처: 오지라퍼 유튜브 채널)

한송희
작가. 단국대학교에서 상담학을 공부하다 10년째 지방직 행정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사람들의 심리와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 『여기는 안녕시 행복동입니다』가 있다.
인스타그램 @writer_tree_
so_bear@naver.com
사진 제공.닷블랑
2026년 7월 (77호)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제공하는 자료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 4유형 : 출처표시,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의 조건에 따라 이용이 가능합니다.
댓글 남기기
이전글 보기
다음글 보기